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그러니까 걔가…….”
“진짜? 미친 새끼 아니야?”
“근데 요즘 걔는 또…….”
정인아는 친구들이 하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예전에 모여서 밥도 먹고, 볼링도 쳤던 그 친구들이었다. 그때 한 번 같이 놀았던 이후로 학교에서는 항상 같이 다니고 있다.
모여서 달리 하는 일은 없다. 같이 밥을 먹거나,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였다.
화제는 언제나 거기서 거기였다. 남의 험담 아니면 칭찬, 걔 얘기 아니면 쟤 얘기였다. 정인아는 맞장구만 칠 뿐 이야기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밌기는 하지만, 듣다 보면 마음이 찜찜하고 죄책감이 드는 게 싫었다.
“근데 도선우는 왜 안 오는 거야?”
그때, 어느 아이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나올 때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정인아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친구들이 전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선우 이야기가 나오면 친구들의 이목이 정인아에게 집중되는 건 이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나도 몰라. 왜 다 날 보는 거야?”
정인아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음……. 알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
“저번에 들어보니까, 가끔 기숙사는 온다는 것 같던데.”
“맞아, 나는 아직도 걔 번호도 모름. SNS도 안 하지 않나?”
“진짜? 일상생활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나도 안 하는데?”
친구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근데, 진짜 몰라? 벌써 한 일주일은 안 나온 거 아닌가.”
“벌써 그렇게 됐다고?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관심 좀 가져라. 반 친구인데, 그래도.”
친구들은 SNS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가, 다시 도선우 이야기로 돌아왔다. 친구들의 시선이 다시 정인아에게 집중되었다. 정인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니까. 요즘 연락도 잘…….”
우우웅─!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정인아의 휴대폰이 진동음을 토했다. 정인아는 하던 말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가 오고 있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정인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대폰을 꽉 쥔 그녀의 손이 잘게 떨렸다. 한창 대화하던 친구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정인아를 올려다보았다.
“……잠깐만, 전화 좀 받고 올게.”
“어? 어, 그래.”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정인아는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휴대폰에 떠 있는 이름을 가만히 응시했다. 도선우였다.
평소 같았으면 별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가 선교여행에 갔다 온 뒤, 정인아는 그에게 몇 번의 전화를 걸었고 몇 통의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도선우는 단 한 번도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정인아는 그가 학교를 몇 주간 쉬기로 했다는 것도 모른 채, 그의 빈자리를 보며 내심 걱정했다.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 아닐까, 하고.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기숙생들 사이에서는 가끔 도선우를 보았다는 증언이 들려왔다. 그때부터 정인아는 더는 그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도선우가 없어도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수업은 조금 어렵지만 이해할 만은 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같이 다닐 친구도 있고.
그러니까, 전화도 받지 않을 거다. 평소에 보낸 연락에는 답장도 안 하면서, 대뜸 전화해 놓고 받아 주기를 바라는 게 괘씸하다. 절대 안 받는다. 절대…….
“……여보세요?”
정인아는 끝내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휴대폰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전화가 끊겼나? 확인해 보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정인아는 침묵이 흐르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계단을 내려왔다. 쉬는 시간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설령 전화 도중에 쉬는 시간이 끝난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수업에 조금 늦게 들어가도 크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으니까.
정인아는 건물 밖으로 나와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뭐야? 전화 걸어 놓고 왜 아무 말도 없이……!”
– 잠깐 나올 수 있어? 너네 집 앞인데.
“…….”
목소리가 들리자 말문이 막혔다. 분명 화를 내려고 전화를 받았는데,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정인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 지금 학교야.”
– 아, 그렇겠네. 그럼 방과 후에 볼까.
“……헛소리하지 마.”
정인아는 날카로운 말투로 대답했다.
정인아는 선교여행에 가기 직전 도선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다.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교여행에서는 사건이 터졌고, 도선우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연락이라도 됐으면 이 정도로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정도로 화를 낼 일은 아니다. 도선우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 ‘나름의 사정’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그걸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도선우도 꼭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그녀는, 필요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 딱 그 정도의 관계라는 것에 화가 났을지도 몰랐다.
“방과 후도 안 돼. 바빠. 슬슬 공부도 해야 되고.”
– 잠깐이면 되는데.
“……갑자기 전화해서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러면 내가 좋다고 나갈 것 같아서?”
– 그때 말했잖아.
“뭘?”
정인아가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휴대폰 너머로 잠깐 정적이 흘렀다.
– 돌아오면 학교 째고 밥이나 먹자고 말했던 것 같은데, 그때.
“…….”
– 학교 앞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릴게.
“기다리지 마. 어차피 안 나갈 거니까.”
– 그럼, 7시까지만 기다릴게.
뚝.
도선우는 그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정인아는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가 없었다.
“……미친놈.”
지금은 3시였다.
* * *
밖으로 나오니 날이 제법 쌀쌀했다. 얼마 전까지는 반팔을 입어도 더웠는데, 지금은 반팔만 입기에는 바람이 서늘했다. 정인아에게 기다리겠다고 말한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앉아서 책을 읽었다.
역행의 지팡이를 다루고, 역주술을 연습하는 시간 외에는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역주술에 대한 단서를 조금이라도 얻어 보려고 시작한 독서였는데, 나중에는 재미가 붙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하는데, 독서를 통하면 그 시행착오 과정을 넘기거나 줄일 수 있었다.
우우웅.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정인아에게 문자가 온 줄 알았는데, 성하연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책을 덮고 문자를 확인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그때 말한 것에 대해서. 주말에 만날 수 있어요?] [문자로는 못 하나?]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문자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니까요]성하연도 바로 답을 보내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연은 정확히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고 있었다.
[그래, 그럼 장소랑 시간 정해서 알려줘]나는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았다. ‘그때 말한 것’, ‘문자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표현들. 이걸 문요셉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사실 성하연이 이러한 표현을 쓰는 건, 내가 그렇게 하도록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문요셉이 내 문자나 전화를 감청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고 중요한 일은 되도록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사전에 얘기를 해두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성하연은 의도대로 잘 움직여주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문요셉과 성유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계획의 성패가 달려 있다.
딸랑─!
그때, 카페의 문이 열리고 정인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으나, 그녀는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내게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일찍 왔네.”
나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7시까지는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여기로 온 모양이었다. 교복도 입고 있었고.
“진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
“안 기다렸어. 나도 방금 왔는데?”
“뭔……. 또,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능청스레 거짓말을 하자, 정인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카운터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돌아와서는, 한참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음료가 나와서 그녀가 가지러 갔다. 그녀는 딸기가 들어간 스무디 같은 걸 받아와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요즘 학교 안 나오더라.”
“응, 준비하는 게 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준비? 무슨 준비?”
“그냥, 이것저것.”
“……그래. 말하기 싫은가 보네.”
“싫은 게 아니라, 말할 수 없어서 그래. 지금은.”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말해줄게. 금방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
“…….”
정인아가 입을 다문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보는 그 갈색 눈동자가 익숙했다. 예배당에서 본 정윤아의 눈빛이 겹쳐 보였다.
정인아와 정윤아는 자매가 아니라 쌍둥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이 닮아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정인아를 불러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정윤아가 이제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대로 가면 언어 능력을 온전히 되찾는 것도 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정인아가 정윤아를 만나게 되는 것도 조만간이다.
그 기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누구를 만나야 할까,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정인아였다.
“……말도 안 해주고, 학교도 안 나오고.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준비하고 계시길래.”
“엄청 대단한 걸 준비하고 있지.”
나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기대해, 너도.”
“이래 놓고 별거 아니면 때린다?”
“그러든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잠깐 잡담을 나누었다. 대부분 학교 얘기였는데, 나는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아서 이해가 어려웠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은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학교는 시시각각 변했다. 내가 모르는 사건과 소문이 매일같이 생겼다.
10분 정도 지났을 때, 정인아가 음료를 다 마셨다. 나는 빈 잔 두 개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잡다한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인아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벌써 가?”
“내가 괜히 시간 뺏는 것 같아서. 바쁘다고 그러지 않았어?”
“……아니, 그거. 조금 더 있어도……. 괜찮은데. 너 더 있고 싶으면.”
“난 괜찮아. 나도 얼굴만 보려고 불렀던 거니까.”
“…….”
정인아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쉬운 듯했다. 바쁘다고 했던 것도, 표정을 보니 아마 거짓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하루빨리 정윤아를 사람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예배당에 돌아가고 싶었다.
교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예뻤다. 생기와 활력이 있었다. 정윤아의 그런 모습도 보고 싶었다. 생기와 활력이 가득한,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의 정윤아를.
정윤아가 정인아처럼 교복을 입지 못하고, 생기를 잃어버린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은 내 잘못이었다.
정인아를 보고 나니, 책임감이 더욱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나 전처럼 좌절하거나, 슬프거나,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정윤아를 낫게 할 방법이 있었다. 좌절하거나 슬퍼할 시간 따위는 없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