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30
제230화
카페를 나와 집 쪽으로 정인아와 함께 걸었다. 그녀와 나는 집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이왕 만난 거 집까지 바래다줄 생각이었다.
나는 그녀를 흘깃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집으로 걷고 있었다.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뭔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는 언제부터 올 거야?”
한참 이어지던 정적을 깬 것은 정인아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그녀의 눈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시험 기간 전후로는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럼 곧 오겠네.”
“그렇지. 아마 2주 정도면…….”
시험 기간까지는 대략 2주 정도 남았다. 그때에는 좋든 싫든 학교에 나가야만 할 것이다. 정윤아를 낫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험을 잘 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피렌체에 입학한 이유는 고위 성직자가 되어 지하 감옥에 들어갈 자격을 얻고, 그곳에 갇혀 있을 어머니를 구하는 것.
마유현을 이용하면 지하 감옥에 들어갈 자격을 예정보다 빠른 시일 안에 얻게 될 수도 있지만, 마유현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준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플랜A부터 플랜B, C까지 준비해 놓아야만 했다.
“2주 뒤에는 갈게.”
그렇다면 시험이 시작하기 전, 즉 2주 안에 정윤아를 낫게 해야 한다. 2주는 조금 빡빡할 것 같고, 적어도 3주 이내에는 낫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시험공부에 차질이 안 생긴다. 되도록 빨리 정인아와 정윤아가 만나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이래 놓고 또 안 올 거잖아.”
정인아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입술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웃음이 나왔다.
“진짜 간다니까.”
“꼭 와. 학교에서 나 혼자 심심해.”
“왜, 너 친구 많잖아. 걔네랑 다니면 되지.”
“친구 없어. 너처럼.”
“……뒷말을 굳이 붙여야 했냐?”
정인아가 내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그녀의 집 앞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뒤, 예배당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집에 들어갔던 정인아가 급하게 다시 나와서, 돌아가려는 내 손목을 잡아챘다.
“……잠깐 있다가 갈래?”
그렇게 묻는 정인아의 말투가 조금 다급했다. 나는 당황해서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 손목을 잡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가, 시선을 바닥에 떨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 그냥 해본 말이야. 어차피 집에 아무도 없어서…….”
“나중에 갈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횡설수설 변명하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아직 나는 정윤아를 낫게 하지 못했다. 얼른 예배당에 돌아가 봐야 했다.
무엇보다 정윤아가 다 낫지도 않았는데 정인아의 집에 머무르면 내 마음이 편치 못할 것 같았다.
“……알겠어, 조심히 들어가.”
정인아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예배당으로 돌아왔다.
* * *
몇 주간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도중에 잠깐 학교에 갈 일이 생겼다. ‘파견 실습’ 때문이었다. 성직자들이 실제로 근무하고 있는 성기사단, 성전사단, 사제단 등에 가서 실무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모든 학생들은 파견 실습을 치르고 싶은 장소를 선택하여 원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나도 원서를 제출하러 학교에 갔다.
보통의 경우 원서를 제출하고, 1차 서류를 통과한 뒤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 고지를 받아야만 해당 장소에서 파견 실습을 치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는 서류 점검이나 면접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서울동부성기사단에 배정되었다. 한대호 덕분이었다.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종종 서울동부성기사단에서 부르면 가서 잡무를 하는 게 전부였다. 본격적인 실무는 시험이 끝난 뒤에 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는 편이 성기사단 입장에서도, 학생 입장에서도 편하기 때문이라고.
그 외의 시간은 예배당에서 역주술을 연습하고, 정윤아를 낫게 하는 데에만 썼다.
“윽.”
정윤아에게 역주술을 몇 번 사용했다가 피를 쏟고, 잠깐 쉬러 나왔을 때 하수영과 마주쳤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뒷걸음을 쳤다. 조금 상처받았다.
“너무 대놓고 싫어하네.”
“싫은 게 아니라……. 거울이나 보고 와. 꼴이 왜 그래?”
“왜, 어떤데?”
“아, 빨리 씻고 오기나 하라고!”
하수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통해 내 몰골을 살폈다.
얼굴과 옷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눈은 충혈되어 있고, 입술은 말라서 갈라졌다.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하수영이 기겁을 한 것도 이해가 되는 몰골이었다.
세수를 하고 나와서 물을 마시고, 대충 밥을 차려서 먹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지만, 뭐라도 먹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밥을 먹고 있으니 하수영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맨날 뭐 하는 거야, 도대체? 그 좀비 됐다는 여자애 때문에 그러는 거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강지아한테 들었어.”
하수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었다. 그녀가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하수영에게는 달리 숨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수영은 밥을 먹는 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수저를 내려놓고 그녀를 보았다.
“왜 계속 쳐다봐. 밥을 못 먹겠네.”
“그거, 나도 봐도 돼?”
“뭐?”
내가 되묻자 하수영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좀비 됐다는 그 여자애. 어떤 상태인지 보고 싶어. 도울 거 있으면 돕고 싶기도 하고.”
“너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건데.”
“……아, 그러세요. 너 혼자 해, 그럼. 그런 식으로 맨날 피 토하다가 죽어버려라, 그냥.”
하수영이 거칠게 툴툴거렸다. 말이 험하기는 해도, 말투에서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그녀에게 정윤아의 상태를 보여줘도 괜찮을지. 충격을 받지는 않을지……. 그런 것에 대해서.
“이거 먹고 다시 갈 거니까, 와서 봐.”
나는 생각을 마친 뒤,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장 죽을 생각은 없지만, 만약 내가 죽게 되면 하수영은 교주가 될 것이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는 좀비화 주술을 사용할 날도 올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도 보아야만 했다.
좀비화 주술이 어떤 것인지, 어째서 좀비화 주술을 남용해서는 안 되는지 깨닫게 할 필요가 있었다.
“진짜? 그래도 돼?”
“안 될 건 없지. 대신 옆에서 보기만 해. 아무것도 하지 마. 부두 마력을 사출하는 것도 안 돼.”
“알겠어,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거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경고해야 했다.
역행의 지팡이, ‘포토미탕’은 변덕스럽다. 내가 사출한 부두 마력이 아니라, 하수영이 무심코 사출한 부두 마력까지 흡수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내 의도와는 달리 엉뚱한 주술이 사용되어, 정윤아는 물론 하수영에게도 해를 가할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윤아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하수영이 나를 따라왔다. 지팡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얌전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정윤아의 모습이 보였다.
“쟤야?”
하수영의 반응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처음 보면 당연히 놀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정윤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정윤아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정윤아는 눈을 깜빡이며 하수영을 보았다. 두 사람은 한참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되게 예쁘네. 가만히 있으니까 인형 같기도 하고.”
“조용히 해!”
“아잇, 깜짝이야. 뭐?”
“진짜 조용히 하라는 뜻은 아닐 거야. 지금은 저 말밖에 할 줄 모르거든.”
“아하……. 그렇구나.”
하수영은 안심한 듯 말했다. 나는 부두 마력을 사출한 뒤, 지팡이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왜 저렇게 됐는지는 알고 있어?”
“그것도 강지아한테 들어서 대충은 알아.”
하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불쌍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참 정윤아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늘 밝기만 하던 하수영의 표정도 이번만큼은 어두웠다. 나는 지팡이를 잠시 내려놓고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윤아를 본 하수영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아마,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정윤아를 낫게 한 뒤에는, 언젠가 삼촌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증오를 내려놓고 이대로 살아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성전 같은 건 더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평화롭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으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정윤아를 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까닭은, 더 이상 정윤아나 하수영과 같은,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물러 터진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철컥!
“교주님.”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강지아였다. 경상교단 간부 육은형에게 전달할 것이 있어서, 한동안 경상교단 예배당에 머무르겠다던 강지아가 벌써 돌아와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팔에 붕대가 감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솜씨가 아니었다. 지혈을 위해 되는 대로 붕대를 감아 놓은 모양새였다.
“누나?”
“꺅……! 팔! 팔에 피!”
하수영이 강지아의 팔을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강지아의 왼팔을 보았다. 몇 겹이나 되는 붕대가 그녀의 팔을 두껍게 감싸고 있었다. 그토록 두껍게 감았음에도 붕대는 이미 피로 흥건했다. 붕대가 흡수하지 못한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강지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모양새였다.
내가 그녀를 부축하자, 강지아가 제 팔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먼저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교주님.”
그녀가 말했다. 나는 붕대에 감춰져 있던 그녀의 팔을 보았다. 팔에 총상으로 보이는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나는 손바닥으로 급히 구멍을 막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나는 숨을 가까스로 고르며 물었다. 강지아는 내 품에서 숨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경상교단과, 간부 육은형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