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31
제231화
촤륵!
나는 일단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그리고 주술진을 그렸다. 손이 떨려서, 주술진의 모양이 자꾸만 흐트러졌다.
어지간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겠는데, 지금은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어떻게든 주술진을 그렸다.
중급 복원. 이 정도면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실 하급 복원만으로 치료가 가능할 것 같았지만, 보다 확실하게 치료하고 싶었다. 강지아의 팔에 나 있던 구멍에 주술의 안개가 닿자 상처가 차츰 낫기 시작했다.
“하수영, 물수건 가져와. 그리고 삼촌한테 연락해. 이진성 간부. 알지?”
“어…… 아, 응!”
하수영은 금방 화장실에서 물수건을 가져왔다. 나는 강지아의 팔에 묻어 있던 피를 물수건으로 닦아냈다.
따뜻한 물을 떠서 강지아에게 먹이자 하얗게 질려 있던 그녀의 얼굴이 그제야 혈색을 되찾았다. 급한 대로 강지아를 내 방에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감사합니다. 저, 교주님…….”
“왜 이렇게 됐어요? 난 누나가 경상교단에 뭘 전하러 간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내가 추궁했지만 강지아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할 기력이 없는 것 같지는 않고, 말하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화가 났다. 그러나 화를 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주먹을 쥐어서 화를 삭였다. 손톱이 손바닥을 찔러서 피가 났다.
“말해요. 나한테 숨겨야 할 일은 없잖아요.”
“……로마니카교에서……. 성전사단을 파견해서, 육은형의 용병단을 진압, 아니……. 학살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죠?”
“몇 번의 전투가 있었고……. 용병단 거점의 3분의 2는 이미 성전사단 측에 점령된 상태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강지아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모든 전투에서 패배하고 성전사단에 불가항력으로 거점을 내어준 모양이었다.
당연하다. 육은형의 용병단은 소수다. 소수 정예도 아니고 그냥 소수. 육은형을 제외하면 단원 개개인의 전투력도 낮은 편이다.
반면 로마니카교 성전사단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강지아가 진압이라는 말 대신 학살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있다.
육은형의 용병단이 로마니카교 성전사단을 전투로 이길 가능성은 전무하기 때문에.
“상처는……. 총격전 도중, 오발탄에 맞은 것 같습니다. 저를 노리고 쏜 건 아닐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알지?”
“상식적으로 저를 노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그럼 나도 실수로 죽이면 그만이겠네.”
덜컹!
그때, 문이 열렸다. 삼촌이 식은땀으로 머리와 옷을 흥건하게 적신 채, 방 안으로 다급히 들어왔다. 삼촌은 침대에 누워 있는 강지아를 보고, 그다음 나를 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누나가 경상교단에 지원을 갔다가 총상을 입었어.”
“……총상? 아니, 경상교단이면…….”
삼촌은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마를 탁 짚으며 말을 이었다.
“……육은형. 용병단이 있는……. 이번에 진압이 어쩌고 했던 데가 거기였나.”
“삼촌, 경상교단이 어디였지? 알고 있어?”
“알아. 하지만 지금 갈 방법은 많지 않을 거야. 도로는 봉쇄했을 가능성이 커. 아니, 무조건 봉쇄했겠지.”
삼촌이 옷깃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때, 강지아가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그러고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가지 않으시는 게 맞습니다. 육은형 간부도, 교주님께서 오기를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교주님이 그 자리에 가시면……. 교황청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셈이 됩니다. 육은형 간부는 교주님께서 경상교단을 버리시기를 바랐습니다.”
“경상교단은 버릴 수 있어요.”
“윽, 잠깐, 교주님……!”
나는 강지아의 팔을 강하게 쥐었다. 가늘고 앙상한 팔이었다. 이 자그마한 팔에 탄환이 박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심장이 가파르게 뛰었고 숨이 가빠졌다. 시야가 자꾸만 하얗게 흐려졌다. 나는 눈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가야 해요. 경상교단이 아니라 누나 때문에.”
나는 강지아의 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하수영, 너는 누나 간호하고 있어. 예배당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 네가 대처할 수 있는 일이면 알아서 대처하고.”
“아, 알겠어.”
“삼촌, 경상교단까지 차로 안내해. 얼마나 걸리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근처까지는 간다고 해도…….”
“바다를 통하면 돼. 경상교단이랑 육은형 용병단의 거점은 바다에 접해 있으니까.”
“뭐? 하지만 지금 와서 배를 구할 수도 없고, 바다를 건널 방법도…….”
“있어.”
방법은 있다. 나는 삼촌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배는 못 구해. 대신 바다는 건널 수 있어.”
“…….”
나는 지팡이와 가면을 챙겼다. 얼굴을 가릴 일이 생길 것 같았다.
“가자.”
“진짜, 씨발……. 뭐 어쩌다 이런……. 하. 그래.”
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거는……. 나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그 목소리에서 슬픔과 분노가 또렷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 * *
탁.
손때가 묻어 까무잡잡한 장기판 위. 장발의 남자가 말을 옮겨 놓는다. 장기판 근처로 구경꾼은 많으나,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이가 없다.
그저 장발의 남자와 노인이 번갈아 말을 옮기는 소리만 반복적으로 들려올 뿐이다.
노인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으로 장기판을 한참 노려보았다. 노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렀다. 곧 노인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졌네. 항복하지.”
“아쉽군요. 한 수 물러 드릴까요?”
“아니, 됐어. 고작 한 수 무른다고 이길 수 있는 판이 아니야.”
노인은 복기를 하려는 듯 장기판 위에 놓인 말을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다가, 이내 그것조차 지쳤는지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군.”
“그렇군요……. 상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웠습니다.”
“나도 즐거웠네.”
노인은 장발의 남자와 악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켜보고 있던 노인들도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구경꾼은 단 한 명만 남았다. 샛노란 머리에 구릿빛 피부, 가늘게 째진 눈. 마유현이었다.
그는 장발의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장발의 남자는 말없이 장기판을 노려보기만 했다.
똑똑.
기다리다 지친 마유현이 장기판을 노크하듯 두드렸다. 그제야 장발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마유현을 쳐다보다가, 한쪽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우리 유현이. 무슨 일이야?”
“그래, 오랜만이네. 형님. 나야 뭐, 그냥 수다나 떨러 왔지. 시간 남아?”
“시간은 남아돌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유현이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남자가 장기판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말들을 정리해서 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놓아둔 체스판과 바둑돌이 든 통을 꺼내 들었다.
“앉아서 얘기만 하기도 좀 그러니까, 뭐라도 좀 할래? 체스, 아니면 바둑? 오목도 되고.”
“알까기 가능?”
“그건 안 되지. 전략적이지 못하니까.”
“알까기 무시하네. 그것도 나름 전략이 있다고. 뭐, 아무튼 그럼 체스로 해.”
“체스 좋지. 역사가 깊은 게임이야.”
남자가 그렇게 말하면서 체스판을 펼치고, 그 위에 말을 놓았다. 말을 놓는 모습이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마유현은 체스판 위에 일사불란하게 놓이는 말과, 그 말을 놓는 장발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남자의 이름은 연. 이름이 연으로, 외자였다. 성은 없다.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도 서류상 21살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불명이다. 그 역시 차기 교황 후보였다. 그리고 천사의 선택을 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마유현과 마찬가지로.
“자, 됐다. 흑, 백 중에 뭘로 할래?”
연은 체스 세팅을 마친 뒤 마유현에게 물었다. 말투는 나긋나긋했고, 입가에 지은 미소는 여전했다. 마유현은 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뭐가 유리하더라? 백이었나?”
“아무래도 백이 선공이니까, 조금 더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지.”
“그럼 백으로. 먼저 시작하면 되지?”
탁.
마유현이 기물을 옮겼다. 뒤이어 연이 기물을 옮겼다. 탁, 탁. 정적 속에서 서로가 기물을 옮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마유현은 매번 고민을 길게 했지만, 연은 항상 일말의 고민 없이 기물을 옮겼다. 눈 깜짝할 새에 게임은 마유현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네가 왜 갑자기 찾아왔는지 알 것 같네. 부두교 때문이지?”
탁.
기나긴 침묵을 깬 것은 연이었다. 그는 기물을 옮기며 마유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마유현은 눈썹을 긁적이다가 피식 웃었다.
“그걸 또 어떻게 아셨대. 소름 끼치네.”
“타이밍이 그렇잖아. 지금 한창 부두교 쪽 용병단을 진압하고 있으니까. 너는 선교여행도 다녀왔고.”
“꼭 그 얘기만 하려고 온 건 아니긴 한데……. 뭐, 맞기는 해.”
탁.
마유현이 기물을 옮겼다. 연은 체스판 위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묘한 수였다. 계속 망설임 없이 두던 연이 처음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유현이 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번 용병단 진압, 어떻게 생각해?”
“성급했지.”
탁.
고민하던 연이 기물을 옮겼다. 마유현의 기력으로는 연의 수를 읽을 수 없어서, 묘한 수고 자시고 하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마유현은 체스판을 뚫을 기세로 노려보며 고민했다. 연이 말을 이었다.
“트리니타스 성전사단을 이용해서 대중의 환심을 얻으려고 한 것 같기는 한데……. 글쎄, 뜻대로 될까? 대중들은 부두교를 잊고 있어. 고작 이 정도 수작으로는 진압을 빙자한 학살에 설득력을 싣기 어려워.”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dBP기업을 파고들었겠지.”
“갑자기 dBP는 왜? 거기는 딱히 문제 삼을 것도 없잖아.”
“교황군은 dBP기업의 성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dBP도 그걸 알고 있고, 슬슬 그걸 이용하려는 조짐도 보이고 있지. 견제할 겸 조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거야.”
“조사의 빌미가 없을 텐데.”
“부두교든, 사탄교든, 어쨌거나 사교도와 dBP기업이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어. 연초에 피렌체에 그, 배성현이었나. 그 친구 사건 때문에 생긴 소문이지.”
“소문만으로 명분을 잡을 수 있나?”
“명분은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 세무 조사나, 뭐 그런 것. 중요한 건 조사한다는 사실 그 자체야. 교황청이 dBP기업을 조사하기 시작하면, 대중들은 그걸 기존에 있던 소문과 연결 지어 생각할 거야.”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dBP기업을 견제할 수 있겠네.”
“그렇지. 뭐, 언제나 말은 쉬워. 그러니까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하긴, 여러 가지 고려할 게 많으니까.”
탁.
마유현이 고민 끝에 기물을 놓으며 말했다.
“무엇보다, 용병단은 이런 식으로 진압하면 안 돼. 특히 부두교가 얽혀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연이 곧바로 다음 수를 놓으며 말을 이었다.
“……교주가 올 거야. 그리고 피해는 반드시, 로마니카교. 교황청이 보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연은 여전히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