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4
제24화
왜애애앵─!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렸다. 길을 지나던 주민들이 두런두런 공원에 몰려들었다. 고요하던 공원에 소란이 찾아들었다.
“다리는. 일어날 수 있어?”
“응.”
김진서의 손을 끌어 일으켜 주었다. 힘겹게 일어선 그녀의 다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서거나 걷는 데에 지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회복력이 좋았다.
“먼저 갈게.”
김진서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터는 동안, 나는 떠날 채비를 했다.
“가? 어딜?”
“집 가야지. 내일 학교도 가는데.”
“병원은. 이제 곧 성기사들도 올 텐데. 조사하러.”
그녀의 말대로 이곳에는 곧 성기사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도심 한복판에 악마종이 출현한 것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
“아픈 데 없어서 병원은 괜찮아. 그리고 조사받기 싫어.”
“아…….”
김진서가 탄식하며 사방에 흩어진 잿가루를 훑어보았다.
“악마종은 그냥 너 혼자 처치한 걸로 하자.”
“거짓말하라고? 나보고?”
“그냥 그렇게 말해줘. 틀린 말은 아니잖아.”
김진서는 기적을 사용하여 악마종의 살점을 태웠다. 그녀가 악마종을 처치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하나다. 성기사들에게 조사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들과 얽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부두교의 교주인 나는 더더욱 성기사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부탁이야. 믿을게. 고마워.”
왜애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차츰 가까워졌다. 나는 김진서에게 그 말을 남기고 황급히 공원을 떠났다. 여유로울 겨를이 없었기에 인사는 되도록 짧고 간결하게 했다.
나는 인파를 헤쳐 걸으며 흘깃 공원을 돌아보았다. 어느덧 도착한 구급차에서 성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김진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김진서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성실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뛰다시피 걸으며 비로소 공원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불어오는 밤바람이 차가웠다. 나는 그곳에서 바론 삼디의 조언을 떠올렸다.
“불조심이라.”
김진서는 ‘기적’을 사용하여 불기둥을 재현했다. 불기둥은 내게 달라붙은 살점을 태우고 재로 만들었다. 불기둥은 악마종의 살점만을 태울 뿐, 내게는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격통을 느꼈다. 7년 전 화형을 당한 아버지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던 탓이었다. 그때 나는 주저앉아 울음을 토했고, 흩어져 사라지는 재를 원망했다.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버지의 죽음은 생생했다. 아직도 불길만 보면 그때가 떠올라 슬프고 아팠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속에 남아 하염없이 끓었다.
[오늘은 얼른 집으로 가서 쉬어라. 피곤해 보여.]“네. 피곤하네요.”
[그래. 트라우마라는 건 쉽게 이겨낼 수 없는 것이지. 참, 조사를 피한 건 아주 잘했다. 보기 드물게 현명한 짓을 하는구나.]“‘보기 드물게’는 그냥 빼고 말하시지.”
[너는 평소에 어리석은 짓을 너무 많이 해. 현명한 짓을 하는 모습을 보기가 드물지.]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고준민은 악마종이 되어 죽었다. 사탄교도가 그를 악마종으로 만든 목적은 무엇일까. 김진서는 악마종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전의를 잃었다. 그녀는 왜 그토록 악마종을 두려워했을까.
[김진서라는 아이에게 관심이 많군.]렉바가 나를 놀리듯 말했다.
“그냥 궁금한 거예요. 관심이 아니라.”
“왜요?”
친해지지 않는 편이 좋다니? 나는 렉바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김진서는 피렌체 이사장의 딸이다.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만 판단해도, 친해져서 나쁠 게 없는 인물 중 하나였다.
[집에 들어가면 그때 설명하지.]“아, 그냥 지금 알려주면 안 되나.”
[안 돼. 주변에 사람이 있잖아.]렉바는 단호했다. 맞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그를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 궁금해서라도 걸음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 * *
“그 부근 CCTV가 다 박살이 나 있어서, 목격자 증언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어.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아니요, 괜찮습니다. 조사는 끝인가요?”
“응, 이만 돌아가렴. 성실히 응해줘서 정말 고맙구나.”
김진서는 조사를 마치고 성기사단을 나왔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악마종이 된 것은 고준민이라는 학생이며, 피렌체 급우였다. 사적으로 할 말이 있어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고준민이 갑자기 악마종으로 변태(變態)했다. 전투 도중 ‘기적’을 부려 불기둥을 소환하였으며, 그것으로 악마종을 처치했다. 김진서는 그 일련의 과정을 성기사에게 낱낱이 고했다.
그러나 도선우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성기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그렇다고 도선우의 부탁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믿을게.”
귓가에 도선우의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김진서가 성기사에게 거짓말까지 쳐가며 도선우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것도 전부 그 말 때문이었다.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김진서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 말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도선우는 아마 평생토록 모를 것이다. 아주 괘씸했다. 그래도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궁금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성기사를 무서워하나.’
도선우는 성기사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범죄자가 아닌 이상 성기사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도선우는 왜 성기사를 무서워할까? 설마 범죄자인가? 아니면 전과자? 가능성은 낮았다. 전과자는 피렌체에 입학할 수 없으니까.
의문만 무성했다. 김진서는 어느덧 집에 도착했다. 크고 넓고 호화로운, 마치 궁전과 같은 집이었다. 몇 년을 살았음에도 적응이 안 됐다.
“왔어, 요.”
김진서가 떨떠름하게 인사하자, 그녀의 아버지이자 피렌체 이사장인 김창원이 뛰쳐나왔다.
“왔구나! 몸은 괜찮아? 다친 데는 없지?”
“응, 괜찮아요.”
“나는 네가 어떻게 된 줄 알고, 정말……. 연락받고 깜짝 놀랐어. 정말 괜찮은 거 맞니, 응?”
김창원이 눈물을 훔쳤다.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진짜 괜찮아요. 별일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참, 많이 놀랐을 텐데 얼른 들어가서 쉬렴. 나이가 드니 눈물이 많아져서, 미안하구나.”
“아니에요.”
김진서가 빙긋 웃었다.
고준민이 자신을 미행하며 도촬했던 것. 그가 악마종이 되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 조사를 받느라 진이 다 빠졌던 것. 그 모든 일을 김진서는 ‘별일 아닌 것’으로 간추렸다. 그녀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하는 법을 알았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려던 김진서가 문득 발을 멈췄다.
“저,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기엔 아직 어색했다. 언제쯤 익숙해질지는 본인도 몰랐다.
“응?”
“이번에 저랑 같이 표창장 받았던 애 있잖아요. 이름이 그, 도선우였나.”
김진서는 도선우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음에도 긴가민가한 척을 했다.
“입학할 때 특이 사항이나 뭐 그런 거 있었나, 해서요.”
실습 때는 하급 치유조차 제대로 못 했으면서,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가락을 붙여주었던 것. 30명분의 고통을 흡수하고도 아픈 티 한번 내지 않았던 것. 자신이 기절한 사이, 악마종이 된 고준민을 처치하였던 것.
도선우에게는 이상한 점이 너무나 많았다. 마치 본 실력을 숨기는 것처럼 보였다. 속내도 알 수 없었다.
“도선우. 도선우라.”
김창원이 턱을 쓰다듬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 어렴풋했다. 이윽고 김창원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아! 그 학생이구나. 특례 입학으로 들어온.”
“특례 입학이요?”
“순직 성직자 자녀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이야. 어머니 쪽이 성전으로 돌아가셨다고 그러더구나.”
“아…….”
김진서가 탄식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띵했다.
“입학 성적이 저조해서 걱정을 많이 했지. 괜히 기죽으면 어떡하나 하고. 그래도 이번에 표창장 받은 거 보니 마음이 좀 놓이더구나.”
김진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갑자기 그 학생은 왜? 혹시 걔가 너한테 무슨 짓 했니?”
“아니, 아니에요. 진짜 그냥 궁금해서.”
“다른 궁금한 거 있으면 더 물어봐도 된단다. 사소한 거라도.”
김창원은 조금 더 대화를 하고 싶은 듯했다.
“괜찮아요. 이제 들어갈게요.”
그러나 김진서는 대화를 맺고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복잡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색했다. 그녀는 아직도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서툴렀다.
김진서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워, 제 왼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문득 바라보았다. 연노란색 끈으로 엮인 조잡한 팔찌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헤져 있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모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도선우의 어머니는 성전으로 순직했다. 도선우가 그토록 성기사를 두려워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학교에선 본 실력을 숨기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듯싶었다.
“되게 힘들게 사네, 너도.”
막연히 혼잣말을 읊었다. 듣는 사람은 없었다.
* * *
[그건 12년 전 기사. 옆에 연관으로 뜨는 게 5년 전 기사다. 요즘은 손가락만 움직여도 정보가 술술 나오는구나. 편리하군.]집으로 돌아온 렉바가 내게 기사를 두 개 보여주었다. 각각 12년 전 김창원 부부가 여아를 입양했다는 내용과, 5년 전 한 주부가 악마종에게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창원 부부가 12년 전에 입양했다는 아이가 김진서다. 악마종에게 죽었다는 주부가 바로 김진서의 모친이고. 친모는 아니지만.]다소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런 건 언제 알아봤어요?”
[바론 삼디가 말해줬다. 그놈은 쓸데없는 정보도 닥치는 대로 모으니까.]“그분은 왜 자꾸 남 뒷조사를 하고 다녀요?”
[모르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음습하고 음침한 놈.]렉바가 바론 삼디를 험담했다. 둘은 사이가 좋은 것 같으면서도 안 좋았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기사의 내용과 렉바의 말을 종합하여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두 개였다. 김진서가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것과 그녀의 양어머니가 악마종에 의해 죽었다는 것.
김진서가 악마종을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선 납득이 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김진서와 친해지면 안 될 이유는 없었다.
“설마 고아라서 친해지지 말라고 한 건 아니죠?”
[그것도 맞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나도 고아인데.”
[그러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잖아.]“네, 말해봐요.”
렉바가 언짢다는 듯 잠깐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 바로 아래, 6년 전 기사를 봐라.]나는 렉바의 지시대로 기사를 살폈다. 김진서의 양어머니가 사고로 죽기 1년 전 기사다. 11살 초등학생이 ‘기적’을 일으켜 마수를 처치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의 재능과 용기를 칭찬했다. 아이의 이름은 김진서였다.
[그러고 1년 뒤, 아이의 재능을 두려워한 사탄교도가 아이의 가택을 습격했다. 허나 아이는 집에 없었지. 결국 양어머니가 아이를 대신하여 죽었다.]그것이 김진서의 양어머니가 죽게 된 경위였다.
“천재네요. ‘기적’을 11살에 썼다는 건.”
[엄청난 재능이지.]‘기적’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방법 중에 가장 난도가 높다. 30살에 처음으로 ‘기적’을 사용한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평생토록 ‘기적’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김진서는 그것을 11살에 사용했다. 엄청나다는 말로도 부족할 재능이었다.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재능.
[결과적으로 보면, 그 재능이 오히려 독이 되었지만.]그러나 김진서의 양어머니가 죽은 것 또한 그 재능 때문이었다. 재능이 없었더라면 사탄교도가 김진서에게 눈독을 들일 일도, 그녀의 양어머니가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헌데,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근데 왜 그때는 기적을 안 썼지?”
그녀는 11살에 기적을 사용하여 마수를 처치했다. 지금도 기적을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때보다 실력이 더 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축사의 모든 개가 마수로 변했을 때, 그녀는 기적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녀가 기적을 사용하며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주었다면, 내가 그란브와의 권능을 사용하다 실신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친해지지 말라고 한 이유가 그거야. 김진서라는 아이는 본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본 실력을? 아니, 왜요?”
[자신의 재능이 세간에 알려지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거라 판단한 거겠지.]“아.”
김진서는 11살에 기적을 사용하여 마수를 몰아냈다. 17살인 지금, 다시금 기적을 사용하여 악마종을 처치했다. 실로 압도적인 재능이다.
이러한 사실이 사탄교도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들은 다시금 악마종을 이끌고 김진서를 죽이려 할 것이다. 김진서의 재능은 훗날 사탄교 전체를 위협할 만큼 찬란하니까.
만일 그렇게 되면, 김진서는 물론 그녀의 양아버지인 김창원까지 위험에 처하고 말 것이다. 김진서가 자신의 본 실력을 숨기는 이유도 그것인 듯했다.
[김진서라는 아이는 숨기는 게 너무 많아. 설령 친해져도 숨기고, 감추고, 속이려고만 할 거다.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거야.]“그래서 친해지지 말라고요?”
[그래. 가급적이면 아예 엮이지도 말아라.]렉바가 단호하게 말했다. 엮이지도 말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굳이 친해질 필요도 없지. 뒤가 구린 사람과 같이 다니면 필연적으로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다.]“그래도 피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
김진서는 절대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친해져도 속내를 숨길 것이고, 심지어는 나를 속이려 들지도 모른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허나, 숨기는 게 많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과, 부두 마력을 다룰 줄 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으니까.
[가까워진 뒤에는 돌이킬 수 없어. 애초에 친해지지 말고, 엮이지도 말아라. 그게 제일 좋다.]“에이, 그래도.”
[내 조언을 무시하면서까지 그 아이를 도와주는 이유가 뭐지? 단순히 예쁘기 때문인가? 외모에 홀리지 말아라. 어리석은 짓이다.]렉바가 쉬지도 않고 독설을 퍼부었다. 김진서가 예쁘게 생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외모에 홀린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누군가를 돕지 않는다.
“외모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그냥 뭐……. 되게 힘들게 사는 거 같아서, 쟤도.”
동정심? 연민이라고 해야 할까. 복잡하고 막연한 감정인지라,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동질감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군.]“오, 그거 같기도 하네요.”
[알아서 해라. 귀찮아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니.]렉바의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살짝 삐진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