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43
제243화
“……일단 치료부터 받고 와요.”
하예진이 복도에 쓰러져 있던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잠깐 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하예진의 눈빛에는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선명했다.
걱정할 수밖에 없는 몰골이기는 했다.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에, 교복에도 적잖은 피가 묻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나는 얼마 전에 하예진을 보았다. 육은형의 용병단에서 전투를 치렀을 때.
그러나 그때와 지금의 하예진이 너무 달랐고, 또 그때와 지금의 내가 너무 달라서,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했다.
나는 일어나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왔다.
“뭐, 이거……. 도대체 뭐 하다?”
보건실로 가자, 학기 초에 자주 봤던 보건 교사가 말했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내 얼굴을 보고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와서는 상태를 살폈다.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작게 웃어 보였다.
“맞았어요.”
“누구한테……. 아니, 아니다. 일단 치료부터…….”
보건 교사는 허둥대며 붕대와 연고를 들고 왔다. 소독 솜 같은 것과 젖은 천 같은 것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얼굴에 묻어서 굳은 피를 닦아냈다. 치료를 하는 동안 보건 교사는 계속 한숨을 푹푹 쉬었다.
“상처가 아주 심하지는 않네. 출혈이 커서 그렇지……. 어지럽거나 그러지는 않고?”
“조금이요.”
“그래, 지금은 일단 응급 처치만 한 거니까, 바로 병원 가고.”
“네.”
“너.”
치료를 마치고 보건실을 나가려고 할 때, 보건 교사가 나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좋은 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보건 교사가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또 병원 안 갈 거지?”
“…….”
“지금이야 몸도 튼튼하고 하니까 금방 낫지만……. 나중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은 꼭 가.”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나는 학교에서 다치게 되면, 늘 보건실에서 간단한 응급 처치만 받고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복원 주술을 쓰면 나을 상처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원 기록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저번에 강지아가 육은형의 용병단에 갔다가 전투에 휘말려 다쳤을 때,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기록이 남으면 추적의 단서가 될 수 있다면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도 위장 신분을 쓰고 있었다. 병원 기록이 많이 남으면 추적의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문요셉에게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 기록을 비롯해서, 어떤 기록이든 되도록이면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대답하고 보건실을 나왔다.
그럼에도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도, 나중에도. 복원 주술을 쓰면 나을 작고 사소한 상처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다음부터는 다칠 일을 만들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그것 또한 의심의 빌미가 될 수 있었으니.
[단서와 빌미 될 일이 참 많구나.]교무실로 가는 길에, 렉바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두교는 존재하는 것이 문제였고, 부두교도는 살아 있는 것이 죄였다.
이제는 새삼스러워서 더는 언급할 것도 없었다.
교무실로 가자 마유현과 김진서가 보였다. 둘은 하예진의 앞에서 뒷짐을 진 채 뭐라고 꾸중을 듣고 있었다. 대부분의 꾸중은 마유현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다가가자, 하예진이 한숨을 푹 쉬며 두 사람에게 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무실을 나갔다.
“……왜 왔어요? 바로 병원부터 가지.”
하예진이 내 몰골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내 얼굴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머리에는 붕대가 한 겹 감겨 있었다. 어이가 없을 만한 몰골이기는 했다.
나는 말없이 잠깐 하예진을 쳐다보았다가 입을 열었다.
“상황 설명은 좀 하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정신력도 세다……. 근데 뭐, 딱히 들을 건 없어요. 어차피 마유현이랑 김진서한테 다 얘기 들어서.”
하예진이 말을 이었다. 김진서와 마유현이 증언을 해준 덕에 대략적인 상황 파악은 됐고, 증언에서 엇갈리는 부분도 없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뭐라고 말했냐고 물었다. 김진서는 내가 마유현에게 맞고 있는 걸 보고, 말리려고 하다가 본의 아니게 마유현의 손가락을 꺾었다고 말했다.
마유현은 나를 때렸던 것을 전부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를 왜 때렸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처벌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결정할 것 같고…….”
“위원회를 안 여는 방법은 없나요?”
“네? 왜요?”
“그 정도로 일 키우고 싶진 않아서요.”
내가 하예진에게 말하자,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왜요? 화나지도 않아요?”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학교폭력 위원회 같은 게 열렸다가, 정황을 살핀답시고 CCTV라도 보게 되면 내 처지가 곤란해진다.
마유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창문에 머리를 박으면서 자해하는 모습을 모두가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어려워진다.
애초에 마유현이 처벌을 받기를 바라고 이런 일을 벌인 게 아니기도 했다. 그냥 조금 화풀이가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왜 맞고 있던 거예요? 중요한 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하예진이 물었다.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어떤 식으로 둘러대야 할 지 고민을 하다가, 생각해보니 굳이 둘러댈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소를 지었다.
“싸웠어요.”
“싸우기는, 맞기만 했으면서.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성격은 아닌데.”
“늘 맞고 다녀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마냥 농담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예진이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고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네. 병원은 갈 거죠? 조퇴 확인서 써 줄게요. 혹시 모르니까.”
하예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랍을 뒤적거렸다.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종이 하나를 꺼내서, 거기에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건넸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가려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어 걸음을 멈췄다. 물어볼 게 있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하예진이 교사직을 내려놓고, 문요셉의 밑에서 일한다는 소식은 피렌체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왜 다시 여기로 돌아왔는지 궁금했다. 하예진은 대답을 주저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볼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동료 교사들이랑, 반 애들도 좀 보고 가려고요. 너무 갑작스럽게 나가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
“복직하실 생각은 없으신가 봐요.”
“뭐……. 그렇죠? 아무래도.”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왜, 이제 학교에서 볼 일 없어서 좋아요?”
“아니요, 아쉬워서.”
“고맙네요. 빈말인 것 같지만.”
하예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사로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적어도 예전처럼 절박하거나 조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육은형의 용병단을 지키기 위해 전투를 했던 날, 나를 보고 두려움에 떨었던 그녀의 표정이 문득 떠올랐다.
두 표정은 너무나 달라서 겹쳐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의 하예진과 지금 내 앞에 있는 하예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용병단 진압 때 가셨다고 들었는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이쯤에서 대화를 마치고, 그간 고마웠습니다, 그 정도의 작별 인사를 남기면서 떠나는 게 맞았을 것이다.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하예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맞아요. 좋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죄송합니다, 괜한 걸 물어서.”
“아니에요. 궁금할 만도 하죠. 언젠가는 도선우 학생도 그런 곳에 가게 될 수 있으니까.”
하예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딘가를 보았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를, 멀고도 공허한 눈이었다. 생각에 깊이 잠긴 것 같았다.
나도 잠깐 그때 생각을 했다. 나를 두려워하던 하예진의 모습과, 소도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끔은 누가 선이고 악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요즘은 그런 게 있는지조차도 모르겠고.”
“…….”
“……미안해요, 이번에는 내가 괜한 말을 했네요.”
하예진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너무나 무거운 침묵이라 잠깐 숨이 막혔다.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꺼낸 걸까. 나는 몇 번이고 후회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하예진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가끔 오면 인사나 해요. 밥이라도 한번 사주게.”
소도진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역시나 괜한 말일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신 하예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도 미소로 화답하며,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몇 번이나 하예진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교무실을 나왔다.
그대로 건물 밖으로 나왔다. 파릇파릇하던 나뭇잎들이 어느덧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흔들렸고, 몇 개의 낙엽이 떨어졌다.
“……이제야 나오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렸다. 김진서가 벽에 몸을 기댄 채 나를 보고 있었다.
* * *
“그래, 소도진 선생. 몸은 좀 어떤가?”
문요셉이 소도진에게 물었다. 소도진은 병상에 누워서 꼼짝 못 하는 상태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내장이 비틀리는 통증이 와서, 자다가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불편할 지경이었다.
소도진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가끔 죽을 정도로 아픈 것 빼고는.”
“미안하네. 나도 굳이 찾아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위에서 이번 일에 대해서 조사를 하라고 압박을 줘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된 걸 어쩌겠습니까.”
소도진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문요셉을 보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교주와 칼을 맞대고도 정신이 멀쩡한 게 소도진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미쳤거나, 혹은 사직서를 내고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그래……. 그래서, 부두교의 교주와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나?”
“예, 아마 현직 성직자들 사이에서 신분을 위장한 채 살고 있을 겁니다.”
소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창……. 그중에서도 투창. 또는 투척 무기를 다루는……. 성전사나 성기사.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렇습니다.”
교주는 지팡이를 써서 소도진의 공격을 전부 막아냈다.
창을 다루는 성전사들은 창대를 이용해서 공격을 막는 기술을 배운다. 때문에 소도진은 교주가 창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성전사, 혹은 성기사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교주는 지팡이를 던져서 후방 대열에 뱀을 소환했다. 그러한 투척 기술은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창과 투척 무기를 다루는 성기사나 성전사. 그중에서도 소도진과 안면이 있는 자를 중심으로 조사를 해보면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그렇군. 지팡이를 잘 활용했다고 했으니……. 일리가 있는 말이야.”
문요셉은 소도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겉으로는 소도진의 의견에 동의하며 맞장구를 치는 것 같았지만, 그는 사실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성 훈련장에서 대련을 했을 때. 도선우는 철퇴를 단순히 휘두르는 게 아니라, 던지는 등의 응용 기술을 활용하여 문요셉을 놀라게 했다.
문요셉도 도선우가 부두교의 교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교주와 일말의 연관은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확증편향일 가능성도 있었다. 한번 도선우를 의심하니, 계속 도선우를 의심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자네, 조금 외람된 얘기지만 도선우와 대련을 해본 적이 있나?”
“예?”
“그러니까, 도선우가─”
벌컥!
그때였다. 문요셉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누군가 병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고 들어왔다. 문요셉의 부하 직원이었다.
그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숨을 토했다.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문요셉이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다가갔다.
“헉, 허억……! 이, 이단 심문관님. 저…… 죄송합니다, 숨이…….”
“괜찮으니 천천히 말하게.”
“……사무실에 감사가 들이닥쳤습니다. 뭐라고 명분을 만들어 오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수사를 방해하려는 느낌이…….”
문요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턱 근육이 움찔거리며 떨렸다.
“감사……. 교황청에서, 우리 쪽으로 감사를 보냈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요, 교황청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부하 직원이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 국제신학회에서……!”
국제신학회. 그건 정화의 일족 산하에 있는 신학회의 이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