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45
제245화
하수영은 이진성의 차에 타고 있었다. 이진성이 나갈 일이 생겼는데, 나가고 싶으면 같이 나가자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마침 예배당에만 있기 답답했던 참이라 하수영은 흔쾌히 수락했다.
“하판석…. 아니, 너희 아빠한테 연락은 안 오냐?”
이진성이 운전을 하며 물었다. 하수영은 휴대폰을 꺼내서 흘깃 보았다. 하판석에게 전화와 문자가 몇십 통이나 와 있었다. 당연히 하수영은 전화를 받지도, 문자에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하수영은 잠시 휴대폰을 노려보다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매일 와요.”
“그렇겠지.”
이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차를 몰고, 양주나 와인 등 고가의 술을 파는 매점으로 갔다.
이진성은 아주 신중하게 술을 고르더니, 몇십만 원을 가뿐히 넘어가는 것을 골라서 샀다. 하수영은 자기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닌데 괜히 떨렸다.
“되게 비싼 술을…. 드시네요.”
차에 다시 탔을 때, 하수영이 말했다. 이진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먹을 거 아니야. 선물용이지.”
“선물? 누구한테 주려고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
이진성이 말했다. 하수영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댔다. 저렇게 비싼 술을 굳이 싫어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이유가 있나 싶었다.
이진성은 말없이 운전을 하다가, 도로가 한적해질 무렵 입을 열었다.
“옛날에는 술을 안 먹으면 손이 떨렸어. 근데, 지금은 먹으면 손이 떨려.”
이진성이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하수영은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예전에, 취해서 선우를 때린 적이 있었어. 걔 어릴 때.”
“…….”
“누나랑 매형이랑, 다 그렇게 되고 나서. 걔가 우는 걸 보는데 너무 꼴 보기가 싫더라고. 그래서, 웅크리고 우는 애를 밟고, 때리고.”
이진성은 그러고 나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는 것 같았다.
하수영은 그때 일을 상상해 보았다. 도선우가 웅크려서 울고 있고, 이진성은 그런 그를 밟고, 때리는 광경을.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지금 이진성과 도선우는 사이가 좋았다. 무엇보다 이진성이 누구를 때릴 사람 같지 않았다. 도선우가 누구에게 맞을 사람 같지도 않았다. 적어도 하수영이 보기에는 그랬다.
“걔는 그때도 주술을 잘 썼어. 아마 마음만 먹었으면 나 같은 건 죽이고도 남았을걸. 반쯤 미친 상태로 만들었거나…. 아니, 그때는 이미 반쯤 미쳐 있었지만.”
“…….”
“근데 걔는 그냥 맞기만 했어.”
이진성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수영도 입을 다문 채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앞 유리에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빗줄기는 가늘었다. 이진성이 와이퍼를 작동시키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때리고, 욕을 하고, 물건을 던져도 그냥…. 그냥, 가만히만 있어. 누나가 잡혀간 거랑 매형이 죽은 게 다 자기 탓이라는 것처럼, 그냥 가만히 맞기만 해.”
“…….”
“그런데도 나는 내 잘못이 아무것도 없는 양. 다 네 잘못이야, 너 때문에 누나가 죽은 거야, 네 아버지도 네가 죽인 거야. 그딴 소리나 하면서….”
차가 터널에 접어들었다. 이제 앞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와이퍼는 계속 좌우로 움직이면서, 없는 빗방울을 닦아냈다.
“…그때 정신 차렸어. 그 뒤로 술은 입에도 안 대. 담배도. 그냥, 의존이나 중독될 여지가 있는 건 아무것도.”
하수영은 좌우로 흔들리는 와이퍼를 계속 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술은 선물용으로만 사. 싫어하는 사람 주려고. 나도 그때 내가 싫어서 술을 마셨던 것 같거든.”
“사과는요?”
“응?”
이진성이 되물었다. 하수영은 이진성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사과는 했어요?”
“했어. 지금까지 한 7년 정도. 매형. 그러니까, 2대 교주님 기일에. 그리고 선우 생일이나, 가끔 생각날 때마다 언제든.”
“…지금은 다 용서를 받은 건가요?”
“걔는 날 용서했지. 근데 나는 아직.”
“내가 나를 용서하고, 내가 나에게 용서를 받으려면…. 앞으로 한 70년 정도 더 사과하면 될 것 같은데.”
하수영은 머릿속으로 수를 가늠해보았다. 앞으로 70년이면…. 이진성은 100살을 넘게 더 살아야 했다. 하수영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엄청 오래 사셔야겠네요.”
“그러려고. 욕심 안 부리고 딱 150살까지만 살아보게.”
이진성이 농담을 건넸지만 하수영은 웃지 않았다. 그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는 문득 옛날 일이 떠올랐다. 간부회의 때, 멋모르고 숲에 들어갔다가 도선우에게 도움을 받았던 날.
그때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던가? 아니, 그 이전에 미안하다는 말은 했던가?
“차를 댈 데가…. 아, 오케이. 있네.”
술을 사고, 드라이브를 마친 이진성은 적당한 곳에 차를 댔다. 차를 댈 곳이 없어서 동네를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찾은 곳이었다.
이진성과 하수영은 차에서 내려서 예배당 쪽으로 걸었다.
조금 걷자 피렌체가 나왔다.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었다. 성직자들이 입는 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수십, 수백 명 쏟아져 나왔다.
하수영은 사악하고 잔인한 로마니카교도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사악하고 잔인하게 생기지 않아서, 어쩐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하교하네. 선우 있나 한번 봐봐. 있으면 같이 가게.”
“…아.”
이진성의 말을 따라 학생들의 얼굴을 살피며 도선우를 찾던 하수영이 작게 목소리를 냈다.
이진성도 학생들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도선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진성이 고개를 갸웃대며 하수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있어?”
“…아니요, 잘못 봤어요. 그냥 먼저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그러고.”
이진성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다시 예배당 쪽으로 걸었다. 하수영이 그를 뒤따라 걸었다. 그러다가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보았던 그 남자가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으로 교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짙은 구릿빛 피부와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카락.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표독스럽고 불쾌한 눈빛.
‘별 없는 밤’, 부두교도들을 몰살하고, 하수영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사람. 그리고 하수영의 친오빠가 잡혀가게 만든 사람.
마유현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곧 걔 생일이네.”
걸으면서 이진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수영은 그 말을 듣지 못하고, 마유현의 모습을 계속 보았다.
눈동자에는 분노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피렌체에 다니고 있었구나. 도선우랑 같은 학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 * *
문요셉은 부하의 연락을 받고 황급히 사무실로 달려갔다. 부하가 문요셉을 뒤따라갔지만, 그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전력으로 달리는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부하는 헉헉대다가 이내 탈진하여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달려가는 문요셉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뒷모습은 금세 점이 되어 사라졌다.
덜컥!
사무실로 돌아온 문요셉이 거칠게 문을 열어젖혔다. 낯선 사람들이 보였다. 국제신학회에 소속된 성직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은퇴한 사람도 있었고, 현역 고위 성직자로서 문요셉과 교계를 나란히 하는 자도 있었다.
문요셉은 사무실을 어질러 놓은 그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문요셉 이단 심문관입니다. 다들 뭐 하는 짓거리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 왔군. 문요셉 이단 심문관.”
사무실에 찾아온 국제신학회원 중 최연장자인 노인이 말을 받았다. 교계로는 대주교로 문요셉과 같았지만, 연차가 달랐다. 소위 ‘짬 차이’라는 것이었다. 문요셉은 이를 악물었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국제신학회 분들이 이런 귀한 곳에는 어쩐 일로? 허가는 받고 이러시는 겁니까?”
“그래, 허가는 받았지.”
“무슨 빌미로 어떻게 허가를 받으셨을까. 일개 신학회가 이단 심문관의 수사에 관여할 수 있을 리 없을 텐데.”
문요셉의 말이 점점 짧아졌다. 표정은 차츰 어두워지고 있었다. 반면 노인은 여유로운 듯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노인은 품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문요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노인은 마치 먹이로 동물을 길들이는 조련사처럼 책을 흔들며 입을 열었다.
“사무실에서 이게 나왔어. 내가 알기로는 이건 금서일 텐데.”
“…….”
“자네 말처럼 일개 신학회가 수사에 관여하거나 간섭할 수는 없지. 그건 월권(越權)이니까.”
문요셉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입술에서 피가 났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팔뚝에 핏줄이 얼기설기 돋았다.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금서에 대한 부분은 다르지. 국제신학회는 교황청령에 따라 금서에 대한 관리 권한이 있으니까. 자네도 그 부분은 알지 않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서는 도대체 어디서 구했나?”
노인이 물었다. 그는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문요셉은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금서를 어디서 구했는지조차 말할 수 없었다. 문요셉은 그 자리에 서서, 그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침묵했다.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답을 잘하는 게 좋을 거야.”
노인은 문요셉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대로 정화의 일족을 적으로 돌릴 것인지. 아니면 힘 앞에 굴복할 것인지.
문요셉의 사무실에서 발견된 금서는 정화의 일족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정화의 일족 측에서는 문요셉에 금서의 출처를 어디에도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설마 그걸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
만약 문요셉이 여기서 금서의 출처를 밝힌다면, 정화의 일족은 더 악랄하고 지독한 방법으로 문요셉을 괴롭힐 것이었다. 문요셉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노인을 보았다.
“대답을 미뤄도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기억이 안 나는군요. 하도 오래전에 구한 책이라.”
“그래, 이해하네. 나도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해.”
“…그럼, 이만 가주십시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툭.
“그래. 책은 여기 놓고 가겠네.”
문요셉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바닥에 내던졌다.
문요셉은 그 책을 주워서 먼지를 털었다. 노인은 뒷짐을 진 채 문요셉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이 사달을 내나?”
“…….”
“성하(聖下)께서 시킨 일만 해. 시킨 일만.”
문요셉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어떤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인은 물끄러미 문요셉을 쳐다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만 가겠네. 자, 다들 철수해.”
사무실을 뒤지던 국제신학회원들이 노인의 말을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은 노인을 따라 문요셉의 사무실을 나갔다.
문요셉이 사무실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기껏 정리했던 서류와 책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서랍도 전부 열려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정화의 일족의 뒤를 캐려고 시도한 것에 대한 대가였다. 뒤를 캐는 데에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본격적인 뒷조사에 착수한 것도 아니었다. 고작 시도에 대한 대가가 이것이었다.
문요셉은 서류를 주워서 정리했다. 열려 있던 서랍을 닫았다. 책을 집어 들다가, 문요셉은 화분을 보았다. 취미로 파리지옥을 키우던 화분이었다.
파리지옥은 밥을 달라는 듯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질러진 가운데에서, 오직 파리지옥이 사는 화분만 멀쩡했다.
쨍그랑!
문요셉이 화분을 들어서 바닥에 던졌다. 파리지옥이 입을 멍청하게 벌린 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콰직.
문요셉이 파리지옥을 밟아서 죽였다. 이 모든 사태의 빌미가 된 금서를 갈기갈기 찢었다. 종잇조각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문요셉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금서를 태웠다. 금서와 함께 파리지옥이 불탔다. 파리지옥은 타면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오그라들며 움직였다.
고작 이까짓 책 한 권이 빌미가 되어서, 정화의 일족에 발목이 잡힌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화풀이로 책을 태웠다. 어차피 몇백 번도 더 읽은 책이다. 책의 내용은 전부 머릿속에 있었다. 태우든 태우지 않든, 달라질 건 없다.
그때, 뒤늦게 문요셉의 부하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사무실의 풍경을 둘러보고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단 심문관님.”
“도선우에게 연락해.”
문요셉이 부하를 향해 말했다. 눈동자에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