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47
제247화
“괘, 괜찮니?!”
감독관이 정인아에게 달려들었다. 시험을 치던 아이들이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감독관이 정인아의 몸을 흔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번뜩 눈을 뜨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정인아는 뒤늦게 시험 도중이라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빤히 쳐다보았다.
“……괜찮아? 저, 일단 보건실로 가서─”
“답안지 바꿔주세요.”
정인아가 감독관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피가 묻은 답안지를 감독관에게 건네면서 말을 이었다.
“답안지 좀 바꿔주세요. 빨리요. 피가 묻어서…….”
“…….”
감독관은 정인아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눈빛은 멍하게 풀려 있었고 코피는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시험을 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억지로 시험을 못 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감독관은 새 답안지와 휴지를 가져와서 정인아에게 주었다.
“혹시라도 너무 힘들면, 중간에─”
“괜찮아요.”
정인아는 답안지를 받아 들면서 말을 이었다.
“진짜, 진짜 괜찮아요.”
그녀는 답안지를 책상 위에 놓고 시계를 보았다. 남은 시간은 4분. 촉박했다. 하지만 답안 제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인아는 사인펜을 들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답을 작성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글씨가 춤추듯 날뛰어서, 시험지에 미리 작성해둔 답이 뭐였는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정인아는 고개를 흔들어서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차분히 글자를 읽어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글자는 계속 춤을 추었다. 아까 흘린 피가 문제지에 묻어서, 답이 뭐였는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정인아는 그때그때 문제를 다시 풀거나, 혹은 문제를 풀 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답을 유추했다.
그렇게 마지막 문제까지 답안을 모두 작성했을 때였다.
“시험 종료. 전부 책상 아래로 손 내리세요.”
그리고, 시험이 끝났다.
몇몇 학생들은 시험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환호했다. 벌써부터 어디로 놀러갈지 계획을 세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끔찍할 만큼 어려웠던 시험 난이도에 여전히 경악을 토하는 학생들도 있었으며, 넋을 잃은 듯 가만히 시험지를 응시하는 학생도 있었다.
정인아는 여전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글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글자는 종이 안에서만 춤을 추는 게 아니었다. 가끔은 종이 바깥으로 기어 나와서 흐느적거렸고, 눈을 감아도 나타나서 춤을 추었다.
글자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정인아는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글자는 많아졌다.
“……아.”
쿵.
정인아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의자가 넘어지면서 그녀의 몸도 덩달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간지러웠다. 종이에서 빠져나온 글씨들이 몸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괜찮아?! 얘, 정신 좀……!”
“구급차를 불러야 되나? 아니, 일단은…….”
글씨가 겹겹이 시야를 가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감독관과 몇몇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대답을 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서, 도망치듯 집으로 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괜찮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낼 힘조차 없었다.
그때,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정인아는 안간힘을 써서 눈을 떴다.
“……뭐야.”
눈을 떴던 그 찰나의 순간에, 정인아는 자신을 안아 든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너무 익숙하고 친하지만, 또 그래서 밉기도 했던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소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어쩐지 그 얼굴이 낯설었다. 정인아는 눈을 감았다. 암흑 속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만 간신히 들렸다.
* * *
“……우와!”
눈을 뜨자마자 정인아는 탄성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랬다가 다시 누웠다. 갑자기 일어났더니 현기증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정인아는 함께 몰려온 두통을 몰아내려고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보건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 같은 것이 맡아졌다.
깜깜하게 어두웠던 시야가 차츰 밝아지고,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와서, 커튼이 너울거렸다.
커튼은 저녁노을을 받아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노을이었다.
정인아는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시험을 본 게 10시쯤이었으니까……. 거의 8시간을 기절한 셈이었다.
“일어났네.”
“아, 네……. 어? 어어!”
정인아는 보건 교사인 줄 알고 존댓말로 대답했다가, 뒤늦게 말을 건 상대가 누구인지 깨닫고 놀라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도선우가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정인아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지만, 도선우가 막았다.
“그냥 누워 있어.”
“…….”
일어날 힘이 없기도 했고, 누워 있는 게 편했던 것도 사실이라서 그냥 도선우의 말을 듣기로 했다. 정인아는 힘없이 침대에 누웠다.
도선우는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정인아는 뭐라도 말을 걸고 싶어서 도선우를 보았는데, 눈이 마주치자 어쩐지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왜, 왜 계속 보고 있어?”
“걱정돼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네.”
“널 여기까지 업고 온 게 나야.”
“……알아.”
정인아는 할 말이 없어서 괜히 퉁명스럽게 답했다. 의식을 잃기 직전, 잠깐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도선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때 도선우는 매우 조급하고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까지 정인아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도선우가 자신을 걱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착각인지도 몰랐다.
도선우는 늘 차분하고 여유로웠다. 고작 나 하나 쓰러진 것 가지고 얘가 그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도선우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준 것이었다면 좋겠다고.
“참나, 나는 너 학교 온 줄도 몰랐네. 연락을 하도 안 해서.”
정인아는 화제를 돌리려고 말했다. 도선우가 정인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같은 시험장이었는데. 시험 보는 내내.”
“……아, 그럼 인사를 해야지!”
정인아가 괜히 큰 소리를 냈다. 그녀는 도선우와 같은 시험장에서 시험을 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시험 외에 다른 것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피식 웃으며 정인아를 쳐다보았다.
“그만 봐. 나 누워 있으면 못생겼어.”
정인아가 장난스레 말했다. 도선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안 누워 있어도 별 차이 없는데…….”
“……너, 내가 멀쩡하기만 했으면 방금 맞았어. 진짜 세게 맞았을걸.”
“그래?”
도선우가 정인아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빨리 회복해야겠네. 나 때리려면.”
“하, 그래. 딱 기다려라.”
정인아가 피식 웃으며 화답했다. 그러나 미소는 스쳐 지나가듯 금방 사라졌고, 대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뒤늦게 시험 생각이 난 탓이었다. 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답안지를 교체해서 뒤늦게 답을 기입했다. 그러나 답을 제대로 기입했는지 확신이 없었다.
어쩌면 맞았어야 할 문제를 틀렸을 수도 있었고, 최악의 경우 답을 밀려 썼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정신이 없기도 해서 답안지를 검토하지 못했다. 불안했다.
실수 하나가 등수를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실수를 몇 개나 했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1등은 차치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10등 안에도 들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시험은, 잘 봤어?”
정인아는 불안을 숨기려고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도선우는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표정을 굳히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적당히.”
“적당히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
“아직 결과가 안 나와서…….”
도선우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정인아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도선우는 개인 사정으로 학교를 몇 주나 나오지 않았던 데다가, 가끔 학교에 오는 날에도 공부는 하지 않았다.
저번보다 못 봤으면 못 봤지, 잘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 물어봐야 그를 곤란하게만 만들 것 같았다.
“뭐, 잘 봤으면 좋은 거고! 또 못 보면 어때. 너 어차피 실기 깡패 아니야?”
“그게 무슨 소용이야. 이번 중간에는 실기도 안 본다는데.”
“중간이 없으면 기말 실기 때 잘 보면 그만이지!”
정인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도선우를 위로하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넨 건 아니었다.
실제로 도선우는 필기보다는 실기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서, 실기 깡패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반대로 정인아는 필기 깡패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저번 필기 수석은 마유현이 차지했지만, 그는 평소 행실이 하도 안 좋아서 그냥 ‘깡패’라는 별명은 있어도 ‘필기 깡패’라는 별명은 얻지 못했던 것이다.
정인아는 그 유치한 별명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필기와 실기, 각각의 분야에서 서로 1등을 차지했다는 것이 좋았다.
겉으로는 별명이 너무 유치하다며 싫은 티를 냈지만, 속으로는 도선우와 어쩐지 동등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마유현이랑 싸웠다고 그러던데.”
정인아는 별명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마유현이 떠올라서 물었다. 도선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뭘 싸워, 그냥 맞기만 했는데.”
“왜 맞기만 했어? 네가 어디 가서 맞을 성격인가.”
“……가끔은 맞는 게 유리할 때가 있어서.”
“그래도 맞고 다니지 마. 너 때리는 거는 나만 할 거니까.”
“그래, 그러든가.”
도선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인아가 배시시 웃었다. 어째서 마유현에게 맞았는지, 김진서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냥 마음에 묻어 두기로 했다.
괜한 걸 물었다가 오해를 사거나,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대로. 편하게 말을 걸고, 이따금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는 이대로가 충분하다.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가, 오히려 멀어지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 * *
교실은 아침부터 시끌시끌했다. 오늘은 성적이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야야, 인아야! 그거 들었어?”
최근 들어 부쩍 정인아에게 말을 자주 걸기 시작한 친구는, 오늘도 어김없이 정인아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날 미처 못 잔 잠을 자고 있던 정인아가 고개를 들고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그거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 뭔데?”
“마유현! 저번에, 로마니카 종교학 풀다가 도중에 그냥 나갔대. 답안지 제출도 안 하고.”
“……그래서?”
정인아는 아직 잠이 덜 깨서, 친구가 하는 말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는 매우 신난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마유현 빼면, 당연히 네가 1등인 거 아니야?”
“……아.”
정인아는 그 말을 듣고 뒤늦게 탄성을 흘렸다. 마유현이 로마니카 종교학 시험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다면, 그가 1등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시험에서는 정인아가 1등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유현을 제외하면 그녀의 적수가 될 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섣불리 기뻐할 수는 없었다. 정인아 역시 신성물질학 과목만큼은 점수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인아는 조금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1등은 무슨, 아니야.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결과를 꼭 봐야 아냐, 마유현 없으면 그냥 네가 1등인 거지.”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그녀가 체념 섞인 미소를 지었다.
곧 유정학이 교실에 들어왔다. 그는 하예진이 완전히 사직을 선언한 이후, 자선반의 임시 담임에서 담임이 되었다.
그가 성적표 뭉치를 교탁 위에 무신경하게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앞 번호부터 받아가라. 이의 신청은 이번 주 목요일까지. 이상.”
유정학은 그러고 나서 그냥 나가버렸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알아서 번호순으로 나가서 성적표를 받아왔다.
도선우는 성적표를 받아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 대충 올려놓았다. 표정을 보니 잘 본 것도 아니고, 못 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정인아는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앞으로 나가서 성적표를 받아왔다. 곧바로 석차를 확인했다.
“…….”
2등이었다.
또, 2등이었다. 마유현이 과목 하나를 포기했으니 당연히 1등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게 처음에는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나중 가서는 괜찮았다. 신성물질학 시험을 치다가 쓰러진 탓에 실수를 해서 점수가 조금 깎였다. 그래서 2등이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10등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었는데, 2등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도선우! 잘 봤냐? 뭐, 나보다는 못 봤겠─”
정인아는 도선우에게 성적을 물어보려다가, 그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성적표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 1등…….”
도선우의 성적표에는 1등이라는 글씨가 너무도 당당히 적혀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글씨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도선우는 전혀 기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정인아가 건강을 혹사하면서까지 얻고 싶었던 ‘수석’ 칭호를 도선우가 가져갔다.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너무나 당연하게.
“우와, 저번보다 엄청 올랐네! 1등, 우와.”
도선우는 정인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정인아는 무안해서 괜히 입을 열었다.
“공부 안 한 줄 알았는데. 몰래몰래 엄청 열심히 했나 보다? 대단하네.”
그녀는 마치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것처럼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표정 안 좋길래 못 봤나 했는데, 완전 기만이었구만. 내가 괜히 걱정했네. 아무튼 진짜 다행이다. 다행이기도 하고, 잘되기도 했고…….”
“……왜 울어?”
뚝, 뚝.
정인아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