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다음 날 아침. 학교는 떠들썩했다. 고준민 사건 때문이었다.
“도촬한 사진이 2,400장이랬나.”
“2,400장? 미친 거 아니야? 와, 개더러워.”
고준민이 악마종이 되었던 것. 김진서가 기적을 사용하여 고준민을 처치한 것. 고준민이 평소에 김진서를 미행하며 도촬한 것까지 모두 낱낱이 밝혀졌다.
아이들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근데 김진서도 대단하다.”
“그니까. 우리 학년에서 기적 사용할 줄 아는 애는 걔밖에 없는 거 아니야?”
덕분에 김진서는 유명인이 되었다.
일개 학생이 악마종을 물리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헌데 김진서는 무려 ‘기적’을 사용하여 악마종을 물리쳤다. 유명해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모두가 김진서의 재능을 칭찬했고, 부러워했고, 시기했다.
“요즘 이상한 일이 많네. 마수 사건도 그렇고. 폭로 글 올라온 것도 그렇고.”
“야, 야. 듣잖아.”
“들으면 뭐 어때. 우리가 왜 가해자 눈치를 봐야 돼?”
사건이 있은 뒤에도 나에 대한 여론은 바뀌지 않았다. 일전에 올라온 거짓 폭로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을 올린 것이 고준민이라는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했다.
그러나 해명할 방법은 없었으며, 해명한다고 한들 믿어줄 리도 만무했다. 나는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다만 우울에 잠길 뿐이었다.
“듣지 마.”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정인아가 소문에 대해 떠드는 무리를 흘깃 째려보며 말했다. 눈빛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나에 대해 떠들던 무리는 불쾌하다는 듯 혀를 차며 교실을 나갔다.
“지들이 뭔데 혀를 차. 어이가 없어서.”
정인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깟 거짓 폭로 글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믿어주었다. 고마웠다.
“근데 너 진짜 가해자였냐? 전혀 아닐 것처럼 생겼는데.”
뒷자리에서 구준혁이 내 등을 톡톡 치며 물었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었고, 순전히 나를 놀리기 위해 저런 질문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퉁명스레 대답하자 구준혁이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아닐 것 같아. 아무리 봐도 가해자처럼은 안 생겼어.”
“그게 뭔 소리야.”
“그니까, 누굴 때릴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다고. 오히려 맞고 다닐 것처럼 생겼지.”
맞고 다닐 것처럼 생겼다는 게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칭찬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불쾌했다.
그래도 구준혁은 정인아와 마찬가지로 나를 믿어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밉살스럽기는 해도 나름 의리가 있는 놈이었다. 내심 고마웠다.
“좋은 아침이에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하예진이 들어왔다. 어느덧 조회 시간이었다. 오늘도 구준혁, 정인아와 수다를 떠느라 공부는 거의 하지 못했다.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요즘 흉흉한 일이 많아요. 항상 조심하도록 해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저나 다른 선생님들에게 전화하세요. 알겠죠?”
“네~”
학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하예진은 그 뒤로 자잘한 공지 사항을 전했다. 근처에서 납치 사건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범인이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 범인은 하나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사이비 단체일 수도 있다 등등.
“다들 정말, 정말! 조심해야 해요. 흘려듣지 말고, 꼭!”
하예진이 언성을 높이며 당부했다. 학생을 지극히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것으로 조회는 끝났고, 하예진은 교실을 나갔다. 금세 시끄러워진 교실을 가로질러 구준혁이 다가왔다.
“우리 반만 조회가 너무 길어. 다른 반은 10초면 끝난다는데.”
구준혁이 혀를 내둘렀다.
“걱정해 주시는 거잖아.”
“걱정해 주는 건 좋은데 너무 과하잖아. 우리가 애도 아니고.”
“선생님 입장에서는 애처럼 보이겠지. 실제로 어리기도 하고.”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도 그렇지만, 우리는 애가 맞다. 17살이면 턱없이 어린 나이다.
구준혁이 내 말을 듣곤 미간을 찌푸렸다.
“너 가끔 늙은이처럼 말하더라. 아, 너 그거냐? 회귀. 너 회귀자냐?”
“헛소리 좀 그만. 그리고 회귀가 뭔데. 연어 말하는 거야?”
산란기 연어는 강을 거슬러 고향으로 회귀한다. 내가 아는 회귀는 그거 말고 없었다.
“과거로 돌아가는 거. 너 맨날 공부만 하지 말고 소설이나 만화도 좀 읽고 그래라. 그리고 갑자기 연어는 왜 나와. 회귀랑 연어가 뭔 상관이야?”
“너는 책 좀 읽어, 제발.”
구준혁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어쩐지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구준혁과 관심사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생각해 보면 이만큼 친해진 것도 기적이었다.
“왜 나만 빼고 놀아, 너네.”
구준혁과 비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슬슬 지루해질 무렵, 정인아가 슬쩍 다가왔다. 내심 서운한 듯한 얼굴이었다.
“아, 정인아! 마침 잘 왔네. 너는 회귀하면 뭐 할 거냐.”
“회귀? 연어 말하는 거야? 아니면 과거로 가는 거?”
“과거로 가는 거. 근데 자꾸 연어는 왜 나오는 거야?”
구준혁이 천진하게 물었다. 정인아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너는 책 좀 읽어야겠다. 아무튼 과거로 가면 뭐 할 거냐는 거지?”
“어.”
정인아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구준혁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도 정인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음, 나는…… 동생이랑 놀 거 같은데.”
“아, 하긴.”
구준혁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정인아의 동생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듯했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정인아의 눈에 막연한 후회가 깃들어 있었다.
“야, 왜 갑자기 다 조용해져. 어색하게. 암튼 빨리 나가자. 늦겠어.”
정인아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억지로 되살리려 웃었다.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은 여전히 슬펐다.
우리는 정인아를 따라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다음 시간은 훈련으로, 체육관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근데 무슨 훈련이랬지.”
“호신술 훈련이랬나. 오늘 갑자기 편성된 거라던데.”
물음에 정인아가 대답해 주었다. 난데없이 호신술 훈련을 하는 걸로 보아 학교에서도 고준민 사건을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사건의 피해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진서였으니, 이사장 눈치를 보고 급히 호신술 훈련을 일정에 끼워 넣은 걸로 보였다.
“야, 근데 너는 회귀하면 뭐 할 거냐? 그니까 과거로 돌아가면.”
운동장을 가로질러 체육관으로 향하던 도중 구준혁이 물었다. 나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어머니는 수감되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 애초에 의미가 없는 고민이었다.
“글쎄. 주식이나 코인?”
나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평범한 대답을 내놓았다.
“현실적이네.”
“너는?”
되묻자, 구준혁이 땅바닥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고민했다. 보기 드물게 진지한 모습이었다. 눈빛은 복잡해서 읽을 수 없었다. 슬픈 것 같기도 했고, 화난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주식이나 코인. 아, 로또도 해야겠다.”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기대와 달리 평범했다.
웃으며 말하는 구준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바닥으로 내리깐 시선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
조금 의아했지만, 굳이 뭔가를 더 캐묻지는 않았다. 물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물어도 대답을 해줄 것 같지가 않았다.
* * *
쿠웅!
체육관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복동 앞에 서 있던 시범 상대가 한바탕 넘어져 매트 위에 널브러졌다.
“방금 보여준 동작은 난도도 높지 않고, 무엇보다 실전에서 쓰기 용이하다.”
호신술 훈련 교사인 김복동은 기술을 걸어 시범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제압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빠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가 보여준 기술은 대부분 유도나 주짓수에서 사용되는 것들이었다. 또는 그것의 응용이거나.
“이상, 총 5가지 기술을 알려주었다. 2인 1조로 조를 편성할 테니, 조별로 연습 후 내 앞에서 호신술 시범을 보이면 된다. 기술의 숙련도와 시범의 완성도를 보고 점수를 매기도록 하지.”
설명을 마친 김복동이 곧바로 조를 편성했다.
“2조. 정인아, 서하린.”
“12조. 배성현, 구준혁.”
“35조. 도선우, 오병훈.”
아는 이름들만 간추리자면 이랬다.
나는 오병훈이라는 아이와 같은 조였다. 양옆으로 쫙 찢어진 눈매와 튀어나온 앞니, 그리고 반삭 머리가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아침에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던 무리 중 하나였다.
연습 시간은 총 15분이 주어졌다. 그 안에 다섯 가지 동작을 완벽히 숙지하는 것은 물론, 조원과 합을 맞추기까지 해야 했다. 시간이 꽤 촉박했다.
“같은 조네. 잘해보자.”
호신술 연습을 시작하기 전, 오병훈 쪽에서 선뜻 악수를 건네 왔다. 말투가 무척 친절했다. 아침에 내 욕 했던 그놈 맞나? 완전 딴 사람이네.
“응, 잘해보자.”
악수를 받았다. 맞잡은 손에 상당한 압력이 느껴졌다. 오병훈이 내 손을 으스러트릴 기세로 쥐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태연한 미소가 걸려 있었으나, 턱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다.
“이제 놓지?”
“아, 미안. 좀 긴장해서. 하하.”
기어코 불쾌한 티를 내고 나서야 오병훈이 손을 놨다. 맞잡았던 손이 저릿저릿 아팠다. 손등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신경전치고는 과했다. 이래서야 연습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기술 걸리는 쪽은 몸에 힘 풀고. 기술 거는 쪽은 뒤통수 받쳐주고. 그렇게 하기로 하자.”
“아, 좋네.”
“시범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지, 우리끼리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그러나 걱정과 달리 연습은 순조로웠다. 오병훈은 생각보다 착했고, 우리는 합이 잘 맞았다. 완벽하게 연습을 마치고 나서도 6분이나 시간이 남을 정도였다.
순조롭게 연습을 마친 우리와 달리, 배성현과 구준혁이 속한 12조는 아직도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연습 시간이 끝났다. 김복동의 호명에 따라 조별로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2조. 정인아, 서하린.”
정인아가 속한 2조는 별 탈 없이 성공적으로 시범을 마쳤다. 좋게 말하자면 정석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무난했다. 어찌됐건 정인아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12조. 배성현, 구준혁.”
12조는 시범이 아니라 대련을 보는 것 같았다. 배성현과 구준혁은 서로를 진심으로 넘어뜨리려 했다.
퉁, 쾅, 콰직. 둔탁한 소리가 체육관 가득 울렸다. 시범이 끝났을 때, 배성현과 구준혁 모두 자신의 허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아주 훌륭하다.”
김복동은 오히려 박진감이 넘치는 시범이었다며 박수를 보냈다. 덕분에 그들 둘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35조. 도선우, 오병훈.”
이윽고 차례가 왔다. 우리는 당당한 걸음으로 김복동 앞에 섰다. 사전에 이야기를 나눈 대로, 오병훈이 나를 넘어뜨리는 것으로 호신술 시범이 시작되었다.
콰앙─!
그러나, 예정과 달리 오병훈은 나를 진심으로 바닥에 내던졌다. 뒤통수가 얼얼하게 아팠고 등허리가 찌릿했다.
오병훈이 미안하다는 듯 찡그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헐, 야, 미안. 긴장해서.”
“……아니야.”
다행히 고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머리가 아파서 의식이 흐릿했으나, 어찌어찌 정신을 다잡았다.
다음은 내가 오병훈을 넘어뜨릴 차례였다.
“야, 뭐 해.”
그러나 오병훈은 넘어지지 않았다.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면 오병훈은 지금쯤 몸에 힘을 풀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면서까지 힘을 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너를 엿 먹일 생각이었던 모양인데.]렉바의 말이 맞았다. 오병훈은 애초부터 나를 엿 먹일 작정이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오병훈이 나를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도선우, 시범을 재개해라.”
팔짱을 낀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김복동이 재촉했다. 설상가상이었다.
김복동은 시범을 재개하라며 나를 재촉한다. 근데 오병훈은 내게 협조해줄 생각이 없다. 정말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보수.
작게 중얼거렸다.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보수가 말하길, 제단이 없어서 10초가 한계라고 하는군. 괜찮나?]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근육에 타오르는 듯한 작열통이 느껴졌다. 피가 끓어 온몸이 뜨거웠다. 몸에 힘이 넘치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보수의 권능, ‘괴력’이 발동된 것이었다. 나는 그 상태로 오병훈에게 다가갔다.
나는 이 괴력을 이용하여 그를 강제로 넘어뜨릴 생각이었다. 10초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2초.
2초면 충분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