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53
제253화
“……사과?”
“응. 줄 것도 있고.”
내가 말하자 정인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댔다. 나는 그녀를 성기사단 쪽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날 따라오려고 하지 않던 그녀도, 집요하게 설득하자 못 이기는 척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걷다가 시선이 느껴져서 하늘을 보았다. 까마귀 한 마리가 늘어진 전선 위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까마귀는 희멀건 눈동자로 한동안 우리를 보고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가 버렸다.
“왜? 뭐 있어?”
“그냥 별 좀 봤어.”
“별? 없는데.”
정인아가 나를 따라서 덩달아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도 고개를 들어서 밤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없네.”
별은 없었다. 까마귀도. 밤하늘은 깜깜했고, 골목에 늘어선 가로등이 침침한 빛을 토하고 있을 뿐이었다.
묵묵히 그녀와 함께 걸었다. 그녀는 걸음이 느렸고, 나는 그녀의 걸음에 맞춰서 나란히 걸었다.
“근데, 너 왜 아직도 성기사복을 입고 있냐.”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나는 뒤늦게 내가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는 업무가 끝나자마자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그럴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연기 냄새가 나는 성기사복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급하게 나오느라. 이상한가?”
“응. 너는 성기사복보다 사제복이 낫겠다.”
“그러고 보니까 너 사제복 입은 것도 궁금하네.”
“안 돼. 너무 예뻐서 반할걸.”
“…….”
실없는 대화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성기사단에 도착했다.
성기사단에서 정인아의 집까지 오는 데는 20분 정도가 걸렸는데, 다시 성기사단으로 가는 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성기사단 앞에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치유 사제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한대호 단장과 오희진도 나와 있었다. 그들은 정윤아를 둘러싸고 서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 보냈다던 정윤아가 깨어나서, 성기사단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성기사단 앞에 모인 사람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정인아를 보았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정윤아를 보고 있었다.
“찾았어, 네 동생.”
“…….”
“저번에……, 아.”
저벅, 저벅.
이참에 그녀에게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그럴 틈은 없었다. 정인아는 넋을 잃은 얼굴로 정윤아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정인아는 그토록 느린 걸음으로 정윤아에게 다가가서, 한참 멍하니 정윤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곁에 있던 치유사제가 다가오는 정인아를 말리려고 했지만, 한대호가 재빨리 눈치채고 치유사제를 막았다.
정인아는 정윤아를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어 정윤아의 뺨을 쓰다듬었다. 꼬집어도 보았다. 정윤아가 아야, 작게 목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언니. 뭐 하는─”
와락.
정인아는 정윤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아이처럼 울었다. 정윤아는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하다가, 이내 눈을 감고 그녀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정인아는 몇 분이고 정윤아를 껴안은 채, 마치 눈물을 쏟아내듯이 하염없이 울었다.
그녀가 흐느끼는 동안,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치유 사제도, 오희진도, 한대호도, 나도 그저 입을 다문 채 두 사람의 재회를 지켜보았다.
나는 두 사람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고, 다른 사람도 아마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치유 사제는 두 사람의 재회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덩달아,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대호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한대호가 말을 이었다.
“고생했다, 도선우.”
그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은 채 한대호의 말을 들었다. 정윤아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 가끔은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 정윤아를 보며 절망하기도 했다. 나의 무능력함에 화가 나기도 했다.
몇 번이나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피를 토했다.
나는 정인아를 보았다. 그녀는 울고 또 울다가, 우는 것에 지쳤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웃었다.
웃다가, 울다가, 또다시 웃기를 반복했다. 도무지 상태가 낫지 않는 정윤아를 보며 느꼈던 좌절과 분노. 그리고 그것을 이겨 내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이, 오늘 이 순간만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웃으니까 보기 좋네. 평소에도 좀 그러고 다녀라.”
한대호가 장난스레 말했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번에 북부성기사단장을 폭행한 것에 대한 징계 결과가 나왔다. 견습 성기사이며, 파견 실습 도중 일어난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교내봉사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 정도 징계는 기록에도 남지 않아서, 훗날 중앙성기사단에 들어갈 때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무려 단장을 폭행했는데도 이 정도 징계로 그친 것은 전부 한대호 단장 덕분이었다.
그는 북부성기사단장과 협상을 해주기도 했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나를 두둔해 주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었다.
교내봉사를 위해 주말에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이 끔찍할 만큼 싫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그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만은 했다.
교내봉사를 마치고 나서 기숙사에서 쉬고 있었는데, 정인아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아, 음, 크흠! 어? 아, 여보세요! 응, 여보세요?
정인아는 목을 가다듬다가, 뒤늦게 내가 전화를 받았다는 걸 눈치채고 말했다. ‘여보세요’를 두 번이나 말하는 걸로 봐서는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왼쪽 귀에 대고 있던 전화기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응, 왜?”
– 지금 어디……. 어디야? 주말이라서 바쁜가?
“기숙사. 안 바빠.”
– 그래? 그럼……. 음…….
“잠깐 볼까? 할 것도 없는데.”
나는 그녀가 하려던 말을 대신해 주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리려면 몇십 분은 더 통화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래! 아니, 그러든가! 이따가……. 한 4시쯤에 볼까? 학교 앞에서.
“그래.”
뚝.
정인아는 당황한 듯 허둥지둥 대답하더니,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4시면 대충 1시간 뒤였다.
갑작스러운 약속이었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언제 한번 정윤아의 상태를 물어볼 겸, 그리고 정인아의 상태도 알아볼 겸 만나자고 얘기해볼 생각이었으니까.
오히려 그녀가 내게 먼저 전화를 걸어주어서 다행이었다.
나갈 준비를 했다. 씻고, 적당한 옷을 골라서 입고,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바람에 가을 냄새가 실려 왔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걸 냄새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쌀쌀하지는 않았지만.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남아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학교 주변을 걸었다. 가을 냄새를 맡다가, 어디서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나서 인상을 찌푸렸다. 익숙한 담배 냄새가 나고 있었다.
[방해했나?]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바론 삼디가 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입에 문 시가에서 보랏빛 연기가 너울너울 솟아올랐다.
바람이 불자 연기가 바스러졌다. 나는 그런 그를 찌푸린 눈으로 흘겨보았지만,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근처에 누가 있을까 봐.
[편하게 대답해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설령 누가 들어도, 전화를 하고 있었다고 발뺌하면 그만 아니냐?]“……그럼 시가 좀 꺼요. 아니, 그냥 끊을 수는 없어요?”
[이게 내 유일한 낙인데, 이것마저 하지 말라고 하면 난 뭘 위해서 살라고?]“죽어요, 그럼.”
[그것도 나쁘지 않지.]바론 삼디가 껄껄 웃었다. 나는 손을 휘저어 바론 삼디의 시가 연기를 내쫓으려고 애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정인아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몸에 시가 냄새가 배면 곤란했다.
그렇게 옷을 털면서 걷다가, 멀찍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이 보였다. 정인아였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바론 삼디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가요. 쟤가 보면 어떡하려고…….”
[괜찮다.]다급한 나와 달리, 바론 삼디는 여유롭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저 아이의 눈에는 내가 안 보일 것이니.]바론 삼디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 정인아는 어느덧 가까워져 있었다. 그녀가 방실방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바론 삼디가 신경 쓰여서,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엄청 일찍 나와 있네? 아직 3시 40분인데?”
정인아가 말했다. 나는 흘깃 바론 삼디 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여전히 시가를 태우고 있었다.
인근이 그의 시가 연기로 자욱했는데도, 정인아는 바론 삼디가 내뿜는 연기 냄새를 맡지 못했다. 그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봐라, 내 말이 맞지? 이만 가보마.]바론 삼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는 곧 보랏빛 안개가 되어, 자신이 내뿜은 연기와 함께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정인아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댔다.
“어디 봐?”
“아니야, 그냥…….”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그러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카페로 왔다. 음료를 시키고 자리에 앉아서, 잠시 실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도 나를 보면서,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말을 꺼내기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서, 내가 선수를 치기로 했다.
“미안해. 저번 일.”
“……내, 내가 먼저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땅만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이윽고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내 눈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때,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해서.”
“됐어, 나도 그때는 심하게 했고…….”
“흥, 그것도 그래. ……그래도, 시작은 나였으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사과를 하고, 카페를 나왔다. 정말 잠깐 보기로 한 것이었고, 정인아는 오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해서 얼른 들어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로 출장을 가 있던 그녀의 부모님이 며칠 전 귀국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윤아를 포함한 가족이 다 같이 식사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고, 정인아는 아주 신난 듯이 말했다.
나는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가는 길에,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났다.
그녀는 바람을 막으려고 옷깃을 여몄다. 바람이 잦아들자, 그녀가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가을이 싫었어.”
“겨울을 싫어한다고 그러지 않았나? 춥다고.”
“겨울보다 가을이 더 싫었어. 겨울은 크리스마스라도 있지, 가을은 아무것도 없잖아. 춥기만 하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근데 이제는 가을도 좋은 것 같아. 덕분에.”
그녀가 나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녀를 보고 웃었다. 정인아는 뒷짐을 진 채, 나뭇가지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낙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좋아질 것 같아. 이제…….”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보았다. 언젠가 정윤아의 기억 너머로 보았던 웃음과 닮은, 환하고 맑은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피어 있었다.
그녀는 바론 삼디를 보지 못했고, 바론 삼디의 시가 냄새도 맡지 못했다. 나아진 것은 정윤아만이 아니었다. 정인아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져 있었다.
어쩌면 내가 정윤아뿐만 아니라 정인아도 치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 하여금 나 또한 치료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 왜, 왜 울어?”
그때, 정인아가 나를 보고 물었다. 나는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정말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제부터 흘렀는지, 왜 흐르는지도 모를 눈물이었다. 아무리 닦아내도 눈물은 쉽게 멎지 않았다.
“야, 갑자기 왜…… 혹시 나 오늘 뭐……. 뭐 잘못했어?”
정인아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녀는 소매로 내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길을 막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나도 좋아서.”
“진짜 그래서 우는 거 맞지? 나 잘못한 거 없지?”
“응, 맞다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제야 눈물이 멎었다. 다시 그녀의 집으로 걸어갔다.
정인아는 계속 자신이 잘못한 게 없느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로 좋아서 흘린 눈물이라고 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잘 들어가.”
“응, 너도……. 아, 참.”
기숙사로 돌아가려던 나를 정인아가 붙잡았다. 그녀가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다음에, 시간 되면 우리 집으로 와. 부모님이 너 한번 보고 싶다는데?”
“응, 꼭 갈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인아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난 뒤, 기숙사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씻었다.
침대에 누워서 쉬려고 했다가, 문득 꽃이 생각나서 벌떡 일어났다. 컵에 물을 받아서 화분이 있는 테라스로 갔다.
시들시들했던 줄기와 이파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생기를 되찾았고, 줄기 끝엔 자그마한 꽃이 피어 있었다.
“…….”
나는 그 자그마한 꽃을 손끝으로 몇 번이나 어루만졌다. 부드러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