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59
제259화
“…….”
문요셉과 성유다, 그리고 나. 세 명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성유다는 나를, 문요셉은 나와 성유다를 번갈아 쳐다보았으며, 나는 문요셉과 성유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기에 침묵은 오래도록 흘렀다.
“……성유다 이단 심문관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이제는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겠군요.”
침묵을 깬 것은 문요셉이었다. 그는 나를 흘깃 보았다가, 성유다를 향해 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성유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요셉을 쳐다보기만 했다. 인사조차 없었다.
그때, 멀찍이 있던 김진서가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다가왔다.
“…….”
그녀는 나를 보았다가, 뒤늦게 문요셉과 성유다의 존재를 눈치채고 걸음을 멈추었다. 침묵 속에서 문요셉이 나와 김진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한차례 계산을 마치고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지. 간만에 뵙는 선배님과 할 얘기가 많아서 말이야. 자네는 저 친구랑 이야기 나누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김진서 쪽으로 갔다. 내심 그녀에게 고마웠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이 숨 막히는 삼자대면을 계속 이어갈 뻔했다.
나는 정화의 일족을 이용해서 문요셉을 견제했고, 문요셉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성유다는 정화의 일족이며, 내게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아 문요셉을 견제하는 데에 일조했다.
나로서는 둘 사이에 끼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어떤 대화가 오가든 내 입장만 난처해질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야?”
김진서는 성유다와 문요셉을 번갈아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둘은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건지는 들리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글쎄. 잘 모르겠네.”
나는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그저 일개 견습 성기사일 뿐이었다. 교계로든 나이로든 까마득한 윗사람인 문요셉과 성유다 사이의 일을 내가 아는 것도 이상했다.
김진서는 어딘가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뭐 했어? 그동안.”
그녀가 나를 보고 물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그동안이라는 게 얼마를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냥 파견 실습하면서 실종자 수색도 하고. 이것저것 잡일 떠맡아서 했지.”
“아하.”
김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근데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뭐 하고 지냈는지.”
“너는?”
“별거 안 했어. 너처럼 파견 실습 가서, 잡일 떠맡아서 하고. 전투도 많이 했지만.”
“……별거 안 했으면 왜 물어보라고 한 거야?”
“글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녀의 대답과 웃음이 너무 능청스럽고 뻔뻔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들고 있던 검을 허리춤에 찬 칼집에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소원 들어주기로 한 거, 기억하고 있지?”
“그래. 안 잊어버릴 거니까, 굳이 안 물어봐도 돼.”
“무섭지 않아?”
“뭐가?”
“내가 무슨 소원을 말할지 모르잖아.”
“소원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사귀어 달라고 하면?”
“안 그럴 거잖아.”
“왜? 혹시 모르지.”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당황하네? 장난인데.”
“아, 도선우. 여기 있었네요.”
그때,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나를 불렀다. 뭔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던 김진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성하연이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김진서 쪽을 흘깃 쳐다보고는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
“……다음 밀회는 언제로 할까요?”
“밀회?”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김진서가 대답을 가로챘다.
나는 성하연을 흘겨보았다. 따지고 보면 밀회라는 말이 맞기는 했다. 나는 정화의 일족을 이용하기 위해, 정확히는 문요셉을 떨쳐내려고 성하연과 종종 몰래 만나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김진서가 있는 앞에서 밀회라는 단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성하연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놀란 시늉을 했다.
“아, 남이 있는 데서 할 얘기는 아니었는데. 미안해요.”
“……야, 뭐 하는 거야?”
“그러니까, 미안해요. 마음이 급했나 봐요. 한동안 연락만 했지 만난 적은 없었으니까.”
성하연이 뻔뻔스럽게 하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성하연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성유다, 문요셉을 비롯한 그 외 여러 가지 것을 먼저 말해야 했다.
“…….”
김진서는 말없이 나와 성하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을 때, 나는 흠칫 놀랐다. 그녀의 얼굴은 방금 지었던 미소가 무색할 만큼 굳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선우!”
그때, 한대호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나를 불렀다. 성하연은 나를 보고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봐요. 빠른 시일 내에.”
“…….”
“먼저 갈게요. 저도 사제단 분들이 부르시는 것 같네요. 그럼.”
성하연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중앙사제단의 사제들이 모여 있던 곳으로 총총 걸어갔다.
사제들은 죽어버린 악마종 중,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지 않고 남은 사체를 주워 담고 있었다. 일부는 치유진을 그리며 부상을 입은 사제와 성전사를 치료했다.
얼핏 말단으로 보이는 사제들은 악마종의 사체를 주웠고, 제법 직위가 높아 보이는 사제들은 치료를 맡았다. 성하연은 견습 사제일 텐데도 치료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성하연이 떠나고 나와 김진서만 남은 자리에는 정적만이 가득했다. 한대호 단장은 멀리서 얼른 오라는 듯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갈게, 단장님이 불러서.”
“……그래, 가. 가야지, 나도.”
김진서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성전사단 쪽으로 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걸음에 힘이 없어서 유심히 보았는데,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아까 전투를 하던 중에 다친 것 같았다. 아까 내가 다쳤냐고 물어봤을 때, 안 다쳤다고 거짓말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한대호가 왔다. 그는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마, 도선우! 오라고 하는데 오지를 않아. 내가 단장 달고 너 데리러 가야겠냐?”
“……아, 죄송합니다.”
“알면 됐다. 어찌됐든 고생했다! 그 정도면 애초에 주력 무기를 창으로 해도 되겠던데?”
한대호가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만 웃으며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창을 다룰 수 있는 건 보수의 권능이 발동되고 있을 때뿐이었다. 다른 때에는 창을 쥐는 법조차 제대로 몰랐다.
한대호는 나를 성기사단 차량에 데리고 갔다. 차의 운전석에는 오희진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조수석에 앉자, 그는 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도선우. 아까 보니까 잘 싸우더라. 어쭙잖은 성기사들보다 훨씬.”
“감사합니다. 오희진 성기사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오희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에 담긴 감정이 복잡했다.
자그맣게 떠오른 감정은 의심과 감사. 그리고 가장 크게 떠오른 감정은 선망과 경계였다.
무엇을 선망하고 무엇을 경계하고 있는가. 나는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보다 자세히 읽으려고 했지만, 오희진이 고개를 갑자기 휙 돌려버린 탓에 읽지 못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희진. 그는 분명 부두교에 대해서 해박하게 알고 있었다. ‘보수’라는 로아가 존재한다는 것까지도.
방금 전투에서 로아의 권능을 많이 사용했다. 정확히는 ‘많이’가 아니라, 티 나게 사용했다.
부두교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은 오희진이라면, 보수의 권능으로 창을 던지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교주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오희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죽여야 하나? 아니, 오희진 정도라면 주술로 적당히 기억을 조작하는 방법도…….
[너는 늘 네가 원하는 대로만 생각하는구나.]그때, 렉바가 말했다.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 * *
도선우가 가고 난 뒤, 성유다와 문요셉은 한참이나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문요셉은 성유다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성유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성유다가 도선우를 보았을 때, 찰나 표정이 굳었던 것만 겨우겨우 포착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 반갑습니다, 선배님. 제가 이단 심문관이 되는 진급식에 선배님도 계셨지요. 얼마나 영광이었는지 모릅니다.”
문요셉이 성유다에게 불쑥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성유다는 다소 떨떠름하게 악수를 받았다.
“그래요……. 정말 오랜만이군요. 내가 그때 책을 한 권 줬던 것 같은데. 잘 읽고 있나요?”
“아, 죄송하지만 그거 찢어서 태워 버렸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유감입니다, 정말.”
“하하. 유감이라…….”
문요셉은 성유다의 말을 나지막이 되풀이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도선우에 대해서 떠올렸다. 정확히는, 그를 향한 의심에 대해서.
문요셉은 성유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도선우 학생을 보고 꽤나 당황하시던데.”
최근, 도선우는 장기 실종자를 찾아냈다. 실종자의 이름은 정윤아. 반년 이상 찾지 못했던 실종자가 발견되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장기 실종자를 찾아내는 건, 엄청난 노력과 더불어 어마어마한 운까지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도선우는 그것을 해냈다.
도선우의 주변에서는, ‘드문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도선우 학생과 구면이라면 혹시,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딸아이와 친한 사이라서, 얼굴만 알고 있습니다.”
정윤아를 발견한 당시, 부두교도로 추정되는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권능과 주술 등을 써서 성기사들의 추적을 따돌렸다.
그 탓에 정윤아를 납치한 것은 부두교일 것이라는 추측이 자연스럽게 정설이 되었다.
그곳에 나타난 여자가 부두교의 교주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성직자도 더러 있었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모르는 척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문요셉의 생각은 달랐다.
“도선우 학생에 대해서, 뭔가 더 알고 계시는 게 있지 않으십니까?”
“…….”
문요셉은, 도선우가 부두교도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니, 그보다 나아가 도선우가 부두교의 교주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