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65
제265화
노아.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에서, 방주를 만든 것이 나의 아버지와 성유다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
내게 말하는 걸 보아서는 부두교의 편인 것 같지만, 또 로마니카교 성직자들에게 방주를 빌려주는 등의 모습을 보면 마냥 우리 편인 것 같지는 않은 인물.
그는 언젠가 보았던 태연하고도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갑작스레 나타난 노아 탓에 놀라서 뒷걸음쳤다. 그러나 아무리 뒤로 물러나도 노아의 모습은 멀어지긴커녕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방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시겠지만, 저는 노아입니다.”
노아가 말했다. 성유다와 나는 얼빠진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우리는 방주로 들어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성유다를 따라 산길을 걸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 추락했을 뿐이었다. 노아는 나와 성유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들은 이미 방주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한참 전부터. 제가 장난을 좀 쳐서 모르고 계셨을 뿐이죠.”
“……언제부터?”
“산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일 겁니다.”
노아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나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를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순백의 공간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성유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주에 찾아오신 이유는……. 대충 알겠지만, 그 전에.”
노아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두 분이 방주에 같이 오실 일은 오늘 이후로 없겠지요.”
“…….”
“도명준 님이 남기고 가셨던 기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노아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걷기 시작했다. 성유다와 나는 노아를 따라 걸었다.
찰랑.
어느 순간의 걸음에, 맑은 소리가 났다. 고요한 호수에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듯 청아하고 아름다운 울림.
그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뭔가 생겨났다. 물감이 칠해지는 것처럼 조금씩 풍경이 채워지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자, 어느덧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어 있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그를 비추는 거대하고 푸른 달. 잔잔한 파도를 따라 일렁이는 윤슬. 그 중앙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찰랑.
다시금 맑은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풍경이 뒤바뀌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숲이었다. 폭풍우는 맹렬하게 몰아쳤다. 숲의 나무들이 풍향을 따라 갈대처럼 너울거렸다. 빗방울이 얼굴에 부딪치는 탓에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벅찼다.
그 중앙에는 한 남자가 폭풍우를 굳건히 버티고 서 있었다.
찰랑, 찰랑, 찰랑…….
그러다 겨우 눈을 떴을 때, 풍경은 또 한 번. 작열하는 태양에 말라가는 황야로.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별이 촘촘하게 자리 잡은 밤하늘과 그 밤하늘이 보이는 산중의 오두막으로. 고래와 치어와 인어가 뛰노는 바다 속으로.
걸음을 한 번 내디딜 때마다 방주는 우리를 낯설고 아름다운 곳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공간의 중앙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
그때, 성유다가 탄성을 흘렸다. 문득 돌아본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탄한 것인지, 아니면 충격을 받은 것인지 모를 얼굴로. 입을 반쯤 벌린 채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도명준 님은 자신의 기억을 실체로 남기고 싶어 하셨고, 그래서 방주를 만드셨습니다. 방금 보여드린 환상적인 장면들은 전부 도명준 님의 기억 속 풍경입니다.”
나는 풍경이 뒤바뀔 때마다 바뀌지 않고, 계속 공간의 중앙에 서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
노아의 말대로라면 그 남자는 나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노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버지의 기억으로 빼곡했던 눈앞이 다시금 순백의 공간으로 되돌아갔다.
“자신의 기억을 타인에게 완벽히 보여주고, 동시에 타인의 기억을 보는 것.”
나는 노아의 말로 하여금 정윤아를 떠올렸다. 정윤아가 치료되기 직전, 나는 그녀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정윤아의 기억을 통해 그녀의 생애를 엿보았다. 그것은 역행의 지팡이, 포토미탕을 통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말이나 글이 아닌, 실체로써 가감 없는 기억의 전달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이 도명준 님의 바람이며 소원이었습니다.”
노아의 말대로라면, 나는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가 그토록 원했던 주술의 경지에 잠깐이나마 이르렀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정윤아의 기억을 엿보았던 그 순간에 정윤아도 내 기억을 엿보았을지도 몰랐다.
노아는 내게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고, 성유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은 성유다 님의 기억을.”
“잠깐, 나는……!”
딱.
성유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순백의 공간이 단숨에 보랏빛으로 메워졌다.
사방천지를 뒤덮은 보랏빛 광채는 차츰 탁하게 흐려지더니, 이내 까마득한 암흑이 되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암흑은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낯선 풍경과 낯익은 얼굴이 동시에 눈앞에 나타났다.
“미안하다.”
침울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아버지. 아버지의 곁에는 어머니가 있다.
“……유다야.”
그것은, 성유다의 기억이었다.
* * *
“우리가 왜 친하지?”
언젠가 도명준이 물었다. 성유다는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다.
사람과 사람이 친한 데에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에 반드시 이유가 존재하는 건 아니듯이.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로 왜 친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같은 게 하나도 없잖아?”
도명준과 성유다는 너무나 달랐다. 잘생겼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던 성유다와, 무섭게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도명준.
성실하고 바른 성격 덕에 어디를 가나 평판이 좋았던 성유다와 달리, 늘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도명준.
무엇보다 둘은 종교가 달랐다. 성유다는 로마니카교의 명문가이자 유서 깊은 정화의 일족이었고, 도명준은 부두교 초대 교주의 아들이었다.
“피렌체를 같이 다녔으니까.”
“아니지, 애초에 너랑 친했으니까 내가 피렌체에 잠깐이나마 발을 담갔던 거지.”
도명준이 말했다. 성유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명준과 성유다는 피렌체를 같이 다녔다. 피렌체는 로마니카교 성직자를 양성하는 곳이었으므로, 신성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도명준은 입학조차 하지 못해야 했다.
“……애초에 입학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네가 억지로 입학을 시켰지.”
그러나 도명준은 부두교뿐 아니라 로마니카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피렌체에 입학까지는 아니더라도 견학 정도는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성유다는 일족의 권력을 통해 편법을 부려 도명준을 피렌체에 입학할 수 있게 만들었다.
“뭐 어때, 같이 학교 다니면서 재밌었잖아.”
“……졸업을 못 했으니까 문제지.”
도명준은 신성력을 다루지 못했기에 실기고사 등에서 거의 성적을 딸 수 없었다. 주술 사용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명준은 사고를 무척이나 많이 치고 다녀서 벌점을 수두룩하게 받았고, 끝내는 졸업을 하지 못하고 도중에 퇴학 조치를 당했다.
성유다는 도명준과 함께 피렌체를 다닐 때를 회상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네 덕분에.”
“맞아. 나도 재미는 있었던 것 같다. 로마니카교라고 다 착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됐고.”
“……부두교는 아직도 인신공양을 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참 야만적인 종교야.”
“인신공양은 무슨 인신공양. 도대체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러는 로마니카교는 아직도 산 제물을 바치는 것 같던데.”
“산 제물은 무슨……. 너 피렌체 수업 안 들었지? 아, 졸업을 못 하셨구나?”
“야……. 그건 주술을 못 써서 그런 거고. 애초에 나는 거기 입학할 생각이 없었다니까?”
둘은 종교관이 달랐기 때문에,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늘 티격태격했다.
그래도 사이는 좋았다. 종교관과 견해 차이로 언쟁이 과열되면, 그럴 때마다 먼저 도명준 쪽에서 사과하고 갈등을 끝맺었기 때문이었다.
성유다는 도명준이 자신에게 져준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명준에게 져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로마니카교에 비하면 부두교는 작은 종교였다. 성유다는 피렌체를 수석 졸업한 인재였고, 도명준은 도중에 퇴학을 당한 문제아였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심 도명준과 급을 나누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친구와 급을 나누는 건 비열한 자나 하는 짓이었다.
성유다는 화제를 돌리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주술 쓰는 건 본 적이 없네.”
“아, 그랬나?”
도명준은 잘 떠오르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굳이 보여준 적이 없긴 하네. 너한테는 어차피 통하지도 않으니까.”
“언제 보여줄 거야?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자꾸 언급하는지 궁금한데.”
“정화의 일족이라는 부조리한 놈들을 붕괴시킬 만큼 강한 주술이 완성되면.”
“평생 네가 주술 쓰는 건 못 보겠네.”
“두고 보자, 어디.”
도명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성유다도 마찬가지로 피식 웃었다.
성유다는 도명준의 주술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두교 초대 교주, 즉 도명준의 아버지가 다루는 주술을 본 적은 있다. 그러나 축복이나 기적 재현처럼 화려하거나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저 주술에 취한 사람 몇 명이 풀썩풀썩 쓰러지는 것을 본 게 전부였다.
도명준의 주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초대 교주의 주술보다 훨씬 초라할지도 몰랐다.
도명준이 굳이 주술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까닭은, 자신의 주술이 초라하고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성유다는 넘겨짚었다.
“미안해요, 조금 늦었어요.”
그때,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성유다는 다가오는 그녀에게 무심코 시선을 빼앗겼다.
피렌체에 다닐 때부터 졸업한 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봐왔지만 그럼에도 성유다는 그녀에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세화. 도명준과 성유다와 선후배로 아는 사이인 그녀는, 피렌체 수석 졸업을 했다는 점에서 성유다와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도명준과 성유다를 가늘게 뜬 눈으로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유다 선……. 아, 이쪽이 유다 선배였구나.”
사람을 가느스름한 눈으로 흘겨보는 것은 눈이 나쁜 그녀의 습관이었다.
성유다는 그 가느스름한 눈매를 오히려 고혹적이라고 느꼈다. 아주 옛날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 번도 그것을 입 밖으로 내어본 적은 없었다.
성유다는 정화의 일족이었다. 그에게는 결혼해야 할 상대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일족에서 정해준 상대 외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됐다.
그는 이세화를 볼 때마다 매번 마음이 흔들렸지만,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 뭐해요? 술?”
이세화가 두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성유다는 그런 이세화가 귀엽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너는 사제가 되겠다는 애가 오자마자 술 타령을…….”
“왜요, 교리상으로는 문제없는데.”
“그래도 술은 안 돼. 내가 안 마시니까.”
도명준이 끼어들어 말했다. 이세화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죠.”
“나는 아직도 술을 왜 먹는 건지 모르겠어. 술 마시면 기억이 제대로 안 나잖아?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거면 왜 마시는 거야?”
“글쎄……. 그래서 마시는 거 아닐까.”
성유다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넘겼다. 도명준은 예전부터 술을 마시지 않았다. 취했을 때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대신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날도 추운데, 빨리 아무 데나 들어가서 있죠. 으, 이제 진짜 겨울이네.”
“그래, 일단은 아무 데나─”
우우웅─!
이세화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을 꺼내고, 성유다가 그 말에 대답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진동음이 울렸다. 도명준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웃는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차츰 굳었다.
도명준이 전화를 하는 동안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성유다와 이세화도 뒤늦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입을 다물었다.
마침내 전화가 끊겼을 때, 도명준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아버지가.”
도명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명준의 아버지, 부두교의 초대 교주가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