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69
제269화
성유다는 휴가를 다녀오겠다는 명목으로 며칠간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이단 심문관이 된 이후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을 해온 성유다였기에, 그를 말리는 아무도 사람은 없었다.
그 무렵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성유다가 곧 대주교에서 추기경이 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며칠을 집에서 쉬기만 했더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성유다는 습관적으로 연구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간 연구했던 자료들을 쳐다보았다.
신성력, 축복, 기적에 대한 연구 자료도 많았지만, 부두교, 주술에 대한 연구 자료가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
전부 이세화를 위해 연구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더는 필요가 없는 자료들이었다.
성유다는 그것들을 찢어서 전부 태워버릴까 고민했다. 그러나 연구에 들인 시간이 아까웠다.
다른 건 몰라도 부두교와 주술에 대해서 연구한 자료는, 언젠가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휴가 기간 동안, 그는 정화의 일족에서 결혼 상대로 정해 둔 여자를 만났다. 지금까지 계속 미루기만 했던 만남이었다.
성유다는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그냥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끌리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내키지 않았다. 그는 아직 이세화를 향한 마음이 다 정리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이세화를 보면, 떨리고 설레기도 하면서 동시에 화가 나고 억울했다.
좋아하는 마음, 호감, 이런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이세화를 향해 아직도 남아 있었다.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그 감정들을 전부 정리하고 난 뒤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결혼 상대로 정해진 여자에게도 예의였다.
일족에서는 계속 결혼을 보챘지만, 성유다는 조금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미뤘다.
“유다 선배.”
이세화를 만나게 된 것은, 삼자대면을 했을 때 부쉈던 테이블을 아직 교체하지도 않았을 때였다.
저번에 그녀는 도명준과 함께였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성유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충혈된 눈으로 이세화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뭐 하러 왔어?”
“부탁할 게 있어서 왔어요.”
이세화가 성유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잠깐 말없이 성유다를 쳐다보았다.
성유다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예전처럼 가느스름하게 뜬 눈은 변함없이 매력적이었으나, 그 눈동자에 깃든 빛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그 눈동자에는 예전보다 더욱 강하고 굳건한 힘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돌연 등골이 오싹했다. 눈동자 너머로, 이세화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보이는 것만 같아서.
그녀는 성유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명준 선배가……. 도움이 필요해요.”
이세화가 말을 이었다. 도명준이 뭘 만들고 싶은데,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유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도명준은 부두교와 로마니카교의 근원이 같다고 믿었고, 주술과 신성력을 합쳐서 새롭고 독특한 뭔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구절절 말은 길었지만, 성유다가 듣기에는 그저 새로운 성물을 개발하자는 뜻으로 들렸다. 주술과 신성력, 두 가지 힘을 합쳐서.
“염치가 없는 줄은 알아요. 하지만…….”
“도명준 어디 있어?”
성유다는 이세화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물었다.
“이런 얘기할 거면, 본인이 직접 오라고 해.”
“…….”
이세화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자마자 도명준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이세화를 먼저 사무실 안으로 보내 놓고, 문밖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열한 새끼.”
“내가 먼저 가면 때릴 것 같아서.”
퍽!
도명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유다가 주먹을 날렸다. 도명준의 코에서 피가 났다.
도명준은 곧바로 부두 마력을 사출하더니, 허공에 뭔가를 그렸다. 축복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것은 주술진이었다.
안개가 도명준의 얼굴을 감쌌다. 그러자 코피가 멎었다.
“맞을 만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먼저 들어갈 걸 그랬어.”
도명준이 웃었다. 성유다는 그런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 미친놈. 예전이랑 달라진 게 없네.”
“사람은 잘 안 바뀌지.”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
도명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뭘 만들려는 건데?”
성유다가 물었다. 도명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어떤 거대한 ‘장소’였다.
누군가의 기억을 담고, 그 기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 때로는 그 누구도 겪어볼 수 없을 새로운 기억과 경험을 창조할 수 있는 장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유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확히는 그의 자본력과 정화의 축복, 그리고 로마니카 교황청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너도 알겠지만, 요즘 부두교 상황이 말이 아니라서.”
도명준이 말했다. 부두교는 최근 극단 세력의 범죄로 인해 단단했던 입지가 무너지는 중이었다.
굳이 성유다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성유다와 함께 공동으로 제작한다면 교황청이나 다른 로마니카교 세력의 견제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라고.
도명준은 전부 솔직하게 말했다.
“좋아, 돕겠다.”
성유다는 도명준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명준의 얼굴에 화색이 채 돌기도 전에, 그는 말을 이었다.
“대신, 발명자는 공동으로. 발명품에 대한 논문 등은 전부 나를 제1저자로 올려.”
“…….”
“발명품의 이름은 ‘노아의 방주’로 하고, ‘방주’의 최종 소속은 로마니카교로. 이에 모두 동의한다면, 돕도록 하지.”
사실상 발상이나 발명 등은 전부 도명준이 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에, 발명자를 공동으로 올리는 것조차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관련 논문의 제1저자를 성유다로 하고, 발명품의 최종 소속을 로마니카교로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평등하고 비인간적인 조약이었다.
성유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도명준이 이 제안을 거절하기를 바라고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었다.
도명준은 성유다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야, 별거 없네.”
“…….”
성유다의 예상과 달리, 도명준은 너무나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방주’를 제작하는 일은 성유다에게는 너무나 쉬웠다.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명준과 부두교도들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성유다는 자금을 대고 신성력을 보탤 뿐이었다.
사실상 그의 역할은 교황청과 로마니카교 세력의 견제와 압박을 막는 것뿐이었다.
가끔 공사 현장에 들를 때를 빼면, 성유다는 이단 심문관으로서의 업무에 다시 열중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방주는 완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다 선배.”
“……아, 세화.”
완공 기념으로 방주에 들렀을 때, 이세화가 성유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녀는 성유다를 부르고 나서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성유다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성유다는 완공된 방주의 아래에 모여 있는 부두교도들을 보았다. 도명준을 중심으로 모인 그들은 감격에 겨운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유다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때 네가 했던 말, 아직 기억하고 있어?”
“무슨 말이요?”
이세화가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그날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렸다. 생각해보니 기억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야.”
성유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이대로, 그냥 셋이 종종 만나면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도명준을 보았다. 성유다는 그가 자신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그가 달라졌고, 그렇기에 도명준과 이세화와 자신이 멀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공된 방주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짓는 도명준의 모습은 어릴 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성유다는 달라진 것이 그가 아니라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도명준을 보면 숨이 막히고 몸이 덜덜 떨렸다. 분노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유다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세화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또 울렁이는 마음으로 뜨겁게 끓었던 가슴도. 이제 더는 끓지 않았다. 정말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금방이네.”
“그러게요. 생각보다 금방 완공이 된 것 같아요.”
이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녀는 방주의 완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고, 성유다는 용서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 * *
방주를 제작하는 데에 쓰인 논문과 연구 자료는 전부 성유다의 손에 들어왔다.
전부 기억을 주입하거나 타인의 기억을 읽는 등, 기억에 관한 주술을 연구한 자료들이었다.
주술을 다루지 못하는 성유다에게는 쓸모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갖고 있기로 했다. 도명준이 성유다가 갖고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성유다는 사탄교 간부 중 하나인 ‘탐욕’을 몰아내고, 도명준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아도나이의 힘’이라는 새로운 축복의 활용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공적으로 그는 ‘최연소 추기경’이라는 칭호를 달게 되었다. 그 무렵에 정화의 일족에서 정해준 상대와 결혼했다.
이세화가 도명준과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생각보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성유다는 놀랐다.
그 무렵 성유다도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이름은 하연이라고 지었다. 백색증을 가진 아이였다.
그 해에, 교황 선거인 ‘콘클라베’가 있었다. 추기경이었던 성유다는 투표권이 있었고, 그가 지지하던 후보가 마침내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듬해 새롭게 선출된 교황과 부두교의 교주인 도명준의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교황은 성유다를 교황청으로 불러냈다.
“예, 성하. 부르셨습니까.”
성유다가 교황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성유다는 교황 앞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교황 입장에서는 정화의 일족과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었고, 그건 정화의 일족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일방적인 존중보다 서로가 존중하는 관계였다.
“성유다 추기경. 그대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교황은 식은땀을 흘리고,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말을 이었다.
“부두교와 성전을 일으킬 거야. 그대가 전쟁을 이끌어 주었으면 해.”
“…….”
성유다는 갑작스러운 교황의 요청에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성전. 전쟁.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단어를 교황은 너무나 쉽게 입에 올리고 있었다.
더구나 부두교와의 성전이라니. 부두교의 교주는 도명준이었다. 성유다가 성전을 이끈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친구인 도명준과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성유다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부두교의 교주가 도명준이 아니었더라도 성유다는 교황의 요청을 거절했을 것이었다.
전쟁은 어떤 상황에서든 옳지 않은 것이었다. 교황이 헛기침을 했다.
“그대도 알고 있지 않나. 일부 추기경들이 나를 아니꼽게 생각한다는 걸.”
“…….”
“……무엇보다, 도명준이라는 자는…….”
교황이 말하면서 몸을 떨었다. 그를 보좌하던 7인의 호위대장 중 하나가 교황을 진정시키러 왔다. 교황은 호위대장의 부축을 만류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그대도 무슨 뜻인지 알 거라고 믿네.”
“……죄송, 합니다.”
성유다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 교황이 ‘정화의 일족이 아니면 뽑히지 못했을 최악의 교황’이라는 평을 듣는 것도, 그래서 더욱 교황권에 목을 매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어쨌든 부두교의 교주는 도명준이었고, 선지자는 이세화였다. 성유다는 그 둘을 전쟁 통에서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게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성하연이 있었으므로, 그는 전쟁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성유다는 교황청을 나왔다.
교황과 7인의 호위대장이 쏘아 대는 시선 탓인지, 등이 따가웠다. 그러나 성유다는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성하연이 2살이 되던 해에, 부두교를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부두교가 인신공양을 하고, 인육을 먹는다는 괴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산 사람을 불에 태운다는 소문도 돌았다.
부두교도를 차별하는 단체와 세력이 생겼다. 그들은 부두교를 퇴출하거나, 혹은 ‘사교’로 지정해야 한다고 시위했다.
부두교도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반대 시위를 했고, 시위는 격화되어 차츰 무력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 진압 도중 성기사 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성기사 하나가 죽었다. 부두교를 향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고, 부두교를 향한 괴소문은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리고 그 괴소문의 중심에는 도명준이 있었다.
사람들은 도명준이 인간의 피를 주식으로 삼는다고 했다. 주술로 죄 없는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 노예처럼 부린다고 했다.
사람들을 세뇌하고, 뱀을 산 채로 먹고, 난교를 주도하고, 질병을 퍼트린다고 했다. 사람들은 도명준을 악마라고 불렀다.
성유다는 부정했다. 그가 아는 도명준은 악마가 아니었다.
확실히 어딘가 결핍된 면이 있고, 연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난 괴짜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순수한 영혼을 가진 자였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도명준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악마’ 그 자체였다. 보도와 여론이 전부 도명준을 악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성유다는 도명준에게 연락해서 진상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성하연이 5살 되던 해였다.
“성유다 추기경 님……! 나, 납치 사건이……!”
“……뭐?”
성하연이 납치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