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73
제273화
악마종의 굉음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을 때, 김진서는 또 한 번 환각을 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환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같은 흑마법에 두 번이나 당해본 경험이 있어서, 빨리 환각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본능적으로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성직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성직자가 아니지만 로마니카교와 연관이 깊어 진급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물론, 일부 흑마법에 익숙하지 않은 고위 성직자들은 괴성을 듣고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성직자들은 눈을 부릅뜬 채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촤아악!
단상 위에 돌연 나타난 악마종은 길쭉하고도 흉악한 팔을 휘둘러, 12인의 진급 대상자 중 4명의 몸을 단숨에 반으로 토막 내어 죽였다.
나머지 8명의 몸에도 깊은 상처가 났다. 무기조차 들고 있지 않았던 그들에게 저항할 틈은 없었다.
단상 위에 흩뿌려진 피가 성당의 황홀하고도 찬란한 조명에 비쳐, 불길한 빛을 토했다.
“아, 뭐, 이게 뭐야…….”
“비, 비켜! 가만히 서 있지 말고 비키라고!”
“어? 아, 악마종이 왜…….”
흑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조차, 갑작스러운 소동에 패닉 상태가 되어 있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허겁지겁 성당을 나와 도망치는 사람이 반이었고, 상황을 채 이해하지 못하고 단상 위에서 소란을 피우는 악마종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사람이 반이었다.
“북부성전사단─!!”
그때, 성당의 소란을 깨는 목소리가 있었다. 우렁차고도 쩌렁쩌렁한 그 목소리는 북부성전사단장의 것이었다.
잠시 혼란에 빠졌던 북부성전사단의 단원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일제히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전원, 장비를 챙기고 악마종과의 전투를 준비─!”
콰직!
그러나 그 목소리는 섬뜩하고도 불길한 소리에 끊기고 말았다. 악마종의 주먹이 북부성전사단장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었다.
북부성전사단장은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목숨을 건진 듯했지만, 충격이 심했는지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준비, 하라……!”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목소리를 내어, 단원들에게 전투 지시를 내렸다.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부상을 안고도, 끝까지 단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사’였다.
얼이 빠져 있던 북부성전사단원들의 눈동자에 빛이 들어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사, 살려. 살려줘. 사, 살려…….”
“꺄아아아악─!!”
그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성하연이었다.
검은 눈물을 흘리며 쓰러졌던 성직자들 중 몇 명이, 얼굴의 온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일어나서는 아무나 붙잡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비위가 약했던 성하연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성유다에게 전화가 걸려 있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당장, 당장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으로 출동해. 빨리!”
어디선가 한대호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는 도선우에게 전화를 걸어 황급히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으로 출동을 명령하고 있었다.
진급식에 함께 참석했던 오희진은 한대호의 지시를 받아 성당 바깥으로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빨, 리……?”
그때, 한대호가 쥐고 있던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몸을 덜덜 떨며 어딘가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진급을 앞두고 단상 위에 올라가 있던 동부성기사단의 단원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급을 앞두고 환한 미소를 지은 채, 고스란히 죽음을 맞은 후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맞은 죽음이었다.
한대호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뚝뚝 흘러나왔다. 그의 시선이 죽어 있던 단원들에서,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가는 한 남자로 옮겨졌다.
또각, 또각.
남자는 구둣발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단상 위로 태연하게 걸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북부성전사단장의 얼굴과 몸을 불쾌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한참 북부성전사단을 쳐다보던 남자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꽤 우월한 몸이구나.”
화륵!
남자의 말과 함께, 북부성전사단장의 몸에 불이 붙었다. 빛을 뿜는 불이 아니라, 사방의 빛을 빨아들이는 검고도 불길한 불꽃이 단장의 몸에 붙어서 춤추듯 일렁였다.
악마종의 공격에 당해 빈사 상태가 되었던 그의 몸이 불길에 의해 회복되고 있었다.
아니, 회복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았다. 북부성전사단장의 몸은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고 있었다.
불길이 잦아들고 이내 완전히 꺼졌을 때, 단장의 몸은 변해 있었다. 인간의 몸이 아닌, 악마종의 몸으로.
살의가 담긴 붉은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그 모습에서는 이미 인간의 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놀랍도록 우월한 종이 탄생했구나.”
짝, 짝, 짝.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그러고는 단상 위에서 죽었거나 상처를 입은 성직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찬찬히 들여다본 그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대신, 험상궂게 얼굴을 굳혔다.
“나머지는 모두 열등한 종자야. 비통하게도.”
우직, 콰직, 뿌드득…….
그 말과 함께, 단상 위에 나타난 악마종이 살아남은 성직자들과 죽은 자들의 시신을 하나씩 밟아 터트리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채 바들바들 떨며 목숨을 구걸하던 성직자들은 처참히 죽음을 맞았고, 이미 죽어 있던 자들은 시체조차 온전하지 못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성직자 12명을 순식간에 참살해버린 남자는, 단상 위에서 객석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여기는 우월한 종자들이 아주 많군. 그놈 말을 듣기를 잘했어.”
그 비열하고도 끔찍한 미소를, 한대호는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가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단상 위에 서 있던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진급, 대상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미친 사람처럼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입술은 아무런 물기가 없이 바짝 말라 있었다. 얼핏 흑마법에 취한 듯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흐르고 있는 눈물은 검지 않았고, 오히려 맑고 깨끗했다. 그는 흑마법 따위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정말 좋아했는데. 나도, 너희도…….”
그는 아무런 장비도 없이 단신으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몸에서 축복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대호가 스스로 축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부사제단장이 피를 토하며 축복진을 그리고, 그 빛을 한대호에게 전하고 있었다.
남부사제단장 역시 한대호와 마찬가지로, 방금 나타난 악마종에 의해 단원들을 잃었다.
그녀는 피눈물을 쏟으며 몇 번이고 축복진을 그렸다. 모든 축복의 빛이 한대호 한 명의 몸에 쏟아졌다.
마침내 한대호의 몸은 빛 그 자체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찬란한 빛에 온통 휘감겼다.
“단장님, 장비를……!”
그때, 오희진이 한대호의 지시를 따라 중앙사제단 무기고에 있는 장비를 닥치는 대로 챙겨서 성당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내 그는 들고 있던 장비를 놓치고 바닥에 전부 쏟아버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 아니 광경들 때문이었다.
단상 위, 짓뭉개진 채로 끔찍한 죽음을 맞은 성직자들. 피눈물을 토하며 축복진을 그리는 사제들과, 그 축복의 빛을 받아 성큼성큼 남자를 향해 다가가는 한대호.
검은 눈물을 흘리며 좀비처럼 성당을 떠도는 성직자들과, 공포에 질려 혼비백산 흩어져 도망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참상을 보고도 여유롭다는 듯 실실 웃고 있는, 의문의 남자.
“연회다.”
텅.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성당의 모든 불이 꺼졌다. 정확히는 성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성당이 아닌 다른 장소로 초대되었다.
‘연회’. 그것은 사탄교도 ‘색욕’의 흑마법이었다. 인근을 광란과 혼돈이 들어찬 사탄의 장소로 바꾸는 것.
그것을 깨달은 오희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선명한 절망이 떠올라 있었다.
‘연회’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 죽거나, 혹은 흑마법의 발동자인 ‘색욕’에게 굴복하고 악마종이 되는 것.
둘 중 어느 방법을 택하든, 살아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공포에 질려 웅크리고 떨었다. 눈을 감았다.
– 언제까지 단장의 심부름꾼 노릇만 할 건가요?
암흑 속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톡톡.
“흐아아아악……!”
그때, 주저앉아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오희진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오희진이 놀라서 추잡한 비명을 질렀다.
‘연회’는 그야말로 사탄교도의 장소였다. 악마종, 마수, 그 밖에 사탄교도가 만들어낸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죽음을 맞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공간.
그렇기에 오희진은 자신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을 때, 자신이 이미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희진은 이상하게도 살아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깜깜한 암흑 너머,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자네에게는 매번 도움만 받는군. 고맙네.”
문요셉은 오희진이 가져온 무기 중, 철퇴와 검을 하나씩 집어 들며 말했다.
오희진이 두 눈을 끔뻑이며 문요셉을 쳐다보았다. 문요셉은 몸을 돌려, ‘연회’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암흑 속에서 악마종의 시뻘건 눈들이 별처럼 떠올라 있었다.
으득.
문요셉이 이를 악물었다. 철퇴와 검만을 들고 암흑 속으로 홀로 걸어가는 문요셉의 모습은, 성기사인 오희진에게 그야말로 귀감이었다.
그는 문요셉을 향해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한편,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는 자신에게 깊은 절망과 혐오를 느꼈다.
– 당신도, 할 수 있어요.
그때, 다시금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는 계속 오희진에게 선택을 종용하고 있었다.
* * *
꺄아아아아악─!
아악, 살려줘! 제발, 살려주세요─!
성당은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갑작스러운 암흑에 뒤덮였다. 암흑 속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목숨을 구걸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하연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그렇게 가만히 있던 성하연을 향해, 뭔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결코 사람의 발걸음은 아니었다. 발소리가 너무나 묵직하고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암흑 속에서 새빨간 빛이 두 점 떠올랐다. 악마종의 눈이었다. 성하연의 앞에 나타난 악마종은 붉은 눈으로 그녀의 몸을 기분 나쁘게 훑어보았다.
“너는 아니다. 너는…… 아니다.”
“…….”
악마종은 성하연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성하연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을 치려고 했으나,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괜히 다리를 움직였다가 털썩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암흑이 무서웠고, 악마종이 무서웠다. 암흑 속에서 마주한 악마종은 더더욱 무서웠다.
촤악!
악마종이 성하연을 향해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을 휘둘렀다. 성하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죽음을 직감한 그 순간에, 성하연은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감각을 느꼈다. 누군가 그녀를 안아 들어서, 악마종의 공격을 피하게 해준 것이었다.
“…….”
성하연은 자신을 구해준 것이 누구인지 보았다. 김진서였다. 그녀는 안아 들고 있던 성하연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악마종을 보았다. 악마종은 김진서를 발견하고 붉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찾았다. 진서, 김진서……!”
“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음에도 김진서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 악마종은 그녀가 실기고사장에서 일찍이 마주친 적이 있는 놈이었다.
그때도 김진서, 김진서 하며 이름을 불러 대더니,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다. 어이가 없었다.
김진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마종의 모습을 보았다. 실기고사장에서 보았을 때보다 더 크고 흉악해진 외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손을 꼼지락거렸다. 검이라도 있으면 상대를 해보겠는데, 검은커녕 나무 막대기 같은 조잡한 무기조차 없었다.
맨주먹으로 악마종을 상대해서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아니, 이건 가능성을 논할 문제가 아니었다.
무기가 없으면 전투 같은 건 해보지도 못하고 개죽음을 맞이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김진서는 악마종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주먹을 쥐었다.
“성하연, 축복 좀 쓰지?”
“……네.”
성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신성력을 사출했다. 축복진이 그려졌고, 축복의 빛이 김진서의 몸을 휘감았다.
김진서의 몸에서도 신성력이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기적 재현의 전조였다.
김진서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거대한 불꽃이 되었다.
“지면 네 탓이다.”
“네?”
화르륵!
성하연이 입을 연 그 순간, 김진서의 기적 재현이 만들어낸 불꽃이 이내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악마종의 위로 쏟아져 내렸다.
김진서는 성하연의 축복을 몸에 두른 채, 그 불꽃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