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76
제276화
나는 고개를 든 채, 나를 응시하는 거대한 두 눈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서 이상야릇한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마치 당장이라도 빨려 들어갈 것처럼 매혹적인 눈매였다. 그러나 나는 그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있던 남자를 죽였다. 보수의 권능을 쓰고, 심장을 뽑아서. 그런데도 흑마법은 건재했다. 흑마법을 시전한 자가, 내가 죽인 남자는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아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두 눈. 저 눈의 주인이 흑마법을 시전한 자, 정확히는 흑마법의 근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자가 바로 진짜 사탄교의 간부, ‘색욕’일 것이다.
– 아아, ‘시기’. 그놈이 너를 왜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지 알겠어.
그때, 귀에서 매혹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였는데, 담 발라의 매혹적이고 끈적한 목소리와 아주 닮아 있었다.
나를 보고 있던 눈이 가늘어졌다.
– 너무나 탐나는 정신이야. 한 치의 틈도 없는 정신……. 그렇기에 결코 가질 수 없는, 절벽 위의 꽃.
그건 사탄교의 진짜 간부, ‘색욕’의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 눈을 쳐다보며, 어떻게든 저 눈을 공격할 방법을 궁리했다.
얼핏 보기에 눈은 너무 높은 곳에 달려 있어서,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공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쿵, 쿵.
“크르르르……!”
“아, 아아. 아아, 아…….”
그보다 저 눈을 공격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공간 내에 존재하는 악마종과 마수들이었다.
깜깜한 암흑 속이라서 악마종과 마수의 수를 헤아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걸음 소리와 마수의 울부짖는 소리, 그리고 악마종의 기괴한 목소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소보, 바데, 단 웨도.”
나는 시험 삼아 말썽쟁이 로아 3인방을 불러보았다.
[안 돼! 여기는 구름이 없어!] [맞아! 이상한 세계다! 애초에 다른 세계야!] [인정……. 한다…….]목소리는 들렸다. 그러나 비도, 천둥번개도, 바람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세 로아가 말한 것처럼, 구름이 없어서 권능이 발동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혹은 흑마법이 만들어낸 공간 안이기 때문에,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이유로 권능이 발동되지 않거나.
어떤 이유든, 일부 로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만은 명확했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일부 로아의 권능은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아까 보수의 권능을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식물이 없으니 그란브와의 권능은 사용할 수 없을 테고, 그 밖에 다른 로아는…….
“마리네트.”
당장 생각나는 건, 마리네트뿐이었다.
화륵!
손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내 손에 붙어 있던 불꽃은 어느새 떨어져 나와, 자아를 갖추기나 한 듯 스스로 움직였다.
불꽃은 이내 거대한 용과 같은 형상을 갖추어, 내 몸을 휘감았다. 불길이 암흑을 사르자,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악마종과 마수의 모습이 전부 드러났다.
예상한 대로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아까 안 세길 잘했네.”
촤르륵!
나는 별 의미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부두 마력을 사출하고 주술진을 그렸다.
재현 주술, 참수검.
순식간에 수십 개의 주술진을 그리자, 거기서 수십 개의 참수검이 나왔다.
참수검이 저마다 지르는 비명이 뭉쳤다. 그 비명들은 이내 마수의 울음과 악마종의 목소리를 뒤덮을 만큼 커졌다.
그중 하나를 쥐었다. 쥐지 않은 다른 수십 개의 참수검은 내 등 뒤에 머물러 있었다.
“보수.”
[오늘은 호출이 아주 많다!]“불만?”
[대만족.]콰직!
나는 보수의 권능으로, 쥐고 있던 참수검을 다가오던 악마종을 향해 던졌다. 참수검이 악마종의 심장부에 정확히 꽂혔다.
악마종의 몸이 뒤로 고꾸라졌다. 나는 등 뒤에 머물러 있던 참수검 중 하나를 다시 쥐어서 던졌다. 악마종 하나가 또 쓰러졌다.
이렇게 계속 참수검을 쓰다가, 모자라면 주술을 써서 다시 보충하면 그만이었다. 이곳은 사탄교의 간부, ‘색욕’이 만들어낸 공간.
그 누구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고, 나를 볼 수 없는 공간.
그렇기에 나에게는 오히려 너무나 편한 곳이었다. 로마니카교 성직자들의 시선이 나에게는 곧 족쇄였으니까.
– 부두교.
하늘 위에서 나를 지켜보던 눈이 깜빡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까 들렸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화륵!
그러는 동안, 마리네트의 불꽃은 부지런히 다가오는 마수와 악마종을 태우고 있었다.
마수는 불꽃을 보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용감하게 불길을 향해 달려든 마수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일부 악마종은 불꽃에도 끄떡없었는데, 그러면 참수검으로 심장을 찔러버리면 됐다.
– 어째서, 부두교인 네가 로마니카교를 돕는 걸까.
“아, 아아……!”
“깨갱, 깽!”
다가오던 악마종과 마수들이 심장을 꿰뚫리거나 불길에 타서 죽었다.
– 아아, 그래. 연정이구나. 금지된,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
목소리는 계속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참수검을 던졌다. 참수검이 다 떨어져서, 주술로 보충했다.
새로 나온 따끈따끈한 참수검을 하나 쥐었다. 그리고 던질 대상을 찾았다. 악마종도, 마수도 거의 죽어서 많이 없었다.
여남은 악마종과 마수들은 불길에 겁을 먹고 내게 다가오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누구에게 던질까 하다가, 천장에 붙어서 나를 보고 있는 기분 나쁜 저 눈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콰직!
천장에 떠올라 있던 눈에 참수검이 박혔다. 그 눈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피는 이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이 박히지 않은 다른 한쪽 눈이 일그러졌다. 마치 고통을 느끼는 듯한 반응이었다. 머릿속에 맴돌던 목소리는 그제야 들리지 않았다.
“이제 조용하네.”
나는 참수검을 새로 뽑아서 쥐고, 남은 한쪽 눈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 * *
모두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도선우를 찾는 동안, 문요셉이 지원 요청을 했던 사제단이 성당에 도착했다.
진급식에 참여하지 않았던 중앙사제단의 사제들도 허겁지겁 성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몇몇 신참 사제들은 구석에서 구토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많은 성직자들의 시체를 보고도 의연한 자들이 있었다. 경력이 많이 쌓인 사제들이었다.
그들은 죽음이 익숙했다. 성직자는 전투나 전쟁으로 동료를, 혹은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경악을 하거나 구토를 하는 대신, 죽은 동료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했다.
“…….”
김창원은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함께 기도했다.
“도선우가 같이 있었습니까?”
성당에 들어온 사제들이 뒷일을 수습하는 동안, 문요셉이 성유다에게 물었다. 성유다는 초조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당에 같이 왔는데……. 김창원 이사장도 봤습니다. 설마…….”
성유다는 말을 하다 말고, 성당 구석에 있는 새까맣고 거대한 구체를 쳐다보았다.
무슨 흑마법으로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선우가 휘말려서 저 안에 들어가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성유다는 도선우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은 됐다.
사탄교 간부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교주라고 해도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도선우는 죽어서는 안 됐다. 성유다에게는 속죄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살아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뭐, 저 안에 들어갔다고 해도 살아는 있을 겁니다.”
그런 성유다의 걱정을 무시하듯, 문요셉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는 검은 구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구체 안에 들어가 있을 도선우와 사탄교 간부, 그리고 수많은 악마종과 마수를 응시하려는 듯이.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니, 오히려……. 간부를 때려잡은 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지도 모를 일이지요. 도선우라면.”
정확히는, 도선우가 부두교의 교주라면. 문요셉은 뒷말을 삼켰다. 아직 그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확신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날이 의심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그가 교주라는 확증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었다.
문요셉은 대신 성유다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한데, 어쩌다 도선우와 같이 오시게 되셨습니까?”
문요셉의 물음에 성유다가 입을 다물었다. 성유다는 뒤늦게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요셉은 지금 도선우와 정화의 일족 간 관계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다. 도선우와 함께 성당에 왔다는 사실을 문요셉이 알아서 좋을 게 없었다.
“우연히.”
고민하던 성유다가 말했다. 오래 고민하면 문요셉의 의심이 깊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급하게 떠올린 변명이었다. 이 밖에 달리 변명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요셉이 성유다를 보며 지그시 웃었다. 묘하게 서늘한 웃음이었다.
“…….”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일 때 김진서는 정신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성당에 도선우가 함께 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계속 눈으로 도선우를 찾던 그녀는 뒤늦게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진급식을 위해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에 함께 왔던 그 아이. 아이의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다.
성당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나 부상자들 중, 그 아이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어, 지, 진서야!”
김진서는 김창원이 부르는 목소리조차 무시하고, 성당을 돌아다니며 시체와 부상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얼굴이 피에 뒤덮였거나, 심하게 훼손되어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체도 있었다. 그녀는 그런 시체들을 더욱 유심히 보며, 그 아이인지 확인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피와 시체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쩍!
그때, 성당 구석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태가 종식된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던 성직자들이 그쪽을 일제히 쳐다보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구석에 있던 새까만 구체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균열이 차츰 커지더니, 이내 구체를 완전히 휘감았다.
쩌저적─!
그리고, 검은 구체가 깨지면서 누군가 나왔다.
“……역시.”
문요셉이 구체에서 나온 사람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구체에서 나온 것은 도선우였다.
그는 한 손에 머리끄덩이를 쥐고, 웬 남자의 시체를 질질 끌어내고 있었다. ‘연회’에서 문요셉과 전투를 벌였던 그 남자였다.
구체가 깨지면서 나온 것은 도선우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던 마수와 악마종까지 모조리 구체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죽어서, 새까만 연기를 토하며 사라지는 중이었다.
알에서 나온 도선우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상황을 파악하려는 눈짓이었다.
그는 성당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와 부상자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 눈동자는 너무나 싸늘했고, 표정에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그저 완전한 무표정이었다.
텅!
그토록 초연한 얼굴로, 도선우는 들고 있던 남자의 시체를 문요셉과 성유다 앞에 내던졌다. 당황한 두 사람이 뒷걸음을 쳤다.
남자의 시체는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거, 간부가 아닙니다.”
도선우는 그 시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성유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문요셉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문요셉은 시체와 도선우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지?”
“간부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했으니까.”
도선우가 대답했다. 문요셉은 내심 도선우의 말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는 그제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에서 남자와 전투를 치를 때에도, 문요셉은 도선우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간부치고는 너무 약하다, 라고.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의문도 들었다. 간부가 아닌 일개 사탄교도가 벌인 짓이라고 하기에는, 흑마법의 규모가 너무 크다고.
사아아아…….
그때, 마수와 악마종이 죽으면서 남긴 검은 연기와, 구체가 깨지면서 흘러나온 잔여 마기가 한 점에 뭉치기 시작했다.
몇몇 연기는 성당 바닥에 널브러져 죽어 있던 시체의 입에서도 나왔다. 뒷수습을 하던 사제들이 허둥지둥 뒷걸음을 치며 연기와 거리를 벌렸다.
검은 연기는 꼬리를 길게 빼면서 어딘가로 움직였다.
연기가 멈춘 곳은, 성당 입구 쪽에 있던 오희진의 앞이었다.
‘연회’에서 모두가 빠져나온 직후 계속 넋을 잃은 채 어딘가를 보고 있던 그는, 입을 벌린 채 눈물을 흘린 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검은 연기는 오희진에 앞에서 계속 소용돌이치고 응어리지더니, 인간의 형상을 갖추었다.
– ……아, 아아.
연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나체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오희진의 목을 팔로 휘감아 안고는 목소리를 냈다.
여인의 목소리는 작았으나, 기이하게도 성당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성당의 모든 사람들이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혼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여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 일어나렴, 나의 아이야.
우직, 우지직─!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오희진의 몸이 기이하게 변했다. 살가죽을 뚫고 새로운 육체가 그의 몸에서 돋아났다.
새롭게 돋아난 육체는 악마종의 것도 아니었고, 마수의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악마종도 마수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인간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