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79
제279화
“……단장님.”
다가오는 한대호를 보고 오희진이 중얼거렸다. 서서히 붉어지면서 동시에 차츰 악마종의 것으로 변해가던 눈동자에, 인간일 적의 순수하고 맑은 빛이 떠올랐다.
그의 몸에 돋아나 있던 촉수는 공격을 멈추고 허공에 떠 있었다. 한대호가 오희진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자칫 오희진에게 공격을 받기라도 하면 곧바로 목숨이 위험해질 만큼의 중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희진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죽여.
그때, 오희진의 귓가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내 여유로운 웃음만을 지어 보이고 있던 여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희진이 여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대호를 죽이라는 여인의 명령에도 오희진은 가만히 있었다. 촉수도, 팔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서, 다가오는 한대호를 응시하기만 했다.
–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어. 당장, 죽여.
여인이 재차 명령했다.
– 지금, 당장.
촤아악!
오희진의 촉수가 움직였다. 그리고 한대호의 팔을 휘감아 뜯었다. 그의 팔에서 선혈이 낭자하며 사방으로 튀었다.
오희진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촉수를 움직여 한대호를 공격한 것은 오희진의 의지가 아니었다. 여인의 명령을 강제적으로 따른 것이었다.
“다, 단장님. 죄송합니다. 다, 단장. 단장님…….”
“괜찮아. 나는 괜찮다.”
오희진이 괴물과 같은 목소리로 애타게 단장을 불렀다. 한대호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와중에도, 꿋꿋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오희진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당당하고 힘차던 한대호의 걸음은 더 이상 힘이 없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가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한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또 의식이 혼탁해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오희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희진의 코앞까지 다가갔을 때, 한대호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말했다.
“너는, 괜찮냐.”
한대호가 오희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전투를 거듭하며 기괴하고 흉측하게 변해버린 어깨. 날카로운 비늘 같은 것이 덕지덕지 나 있어서, 손을 대는 것만으로 상처가 나는 흉악한 어깨.
그러나 한대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남은 하나의 팔로 오희진의 어깨를 계속해서 두드렸다. 한대호의 손바닥에 상처가 늘었다.
“그게 네가 정말로 원하던 힘이냐.”
한대호가 물었다. 그는 오희진이 마음에 품고 있던 열등감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단련을 거듭해도 강해질 수 없는 육체. 타고나기를 골격이 작고, 근육이 적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재능이 있는 자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강함을 동경하고, 또한 자신의 나약함을 혐오했다.
그래서 그는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지식을 축적했다. 그것이 그의 힘이 되었다. 한대호는 그런 오희진을 든든하고 유능한 부하로 생각했다.
한대호에게는 강한 육체가 있었으나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없었다.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오희진의 지식 덕분에 해결되기도 했다.
“……너는 나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까지 언제나, 나는 너를 그렇게 생각했어.”
한대호가 말했다. 오희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인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 저놈을 당장 죽여! 당장!
“그만하자. 더 나약해지기 전에.”
한대호가 말했다. 촉수에 잘려 나간 그의 오른팔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한대호는 지혈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피가 흐르게 두었다. 오희진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검지 않았다. 순수하고 맑은, 인간의 눈물이었다.
푸욱!
그때, 한대호의 어깨 너머로 나무 조각이 날아와 오희진의 가슴을 꿰뚫었다. 매섭게 회전하며 날아든 나무 조각은 오희진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을 냈다.
구멍에서 울컥울컥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오희진이 촉수로 자신의 가슴에 뚫린 구멍을 매만졌다.
오희진의 몸은 그 어떤 상처나 부상을 입어도 단숨에 회복했지만, 가슴에 뚫린 구멍마저 메우지는 못했다.
“아아…….”
털썩.
오희진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오희진의 눈은 한대호의 어깨 너머, 나무 조각을 던진 장본인을 향했다. 도선우였다.
오희진은 한대호의 말로 하여금 전의를 잃고, 도선우의 공격으로 하여금 목숨을 잃었다.
“……다행입니다.”
오희진은 자신의 시작이었던 동부성기사단의 손에 최후를 맞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탄교 간부 ‘색욕’의 꾐에 넘어가 악마종도 인간도 아닌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고 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감, 사…….”
오희진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사탄교 간부의 종으로서의 살의와 욕망, 그리고 로마니카교 성직자로서의 신념과 결의가 공존하며 들끓었던 눈동자가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채 죽음을 맞았다. 그의 사인은 나무 조각에 가슴을 꿰뚫린 것이 아니었다.
가슴에 뚫린 구멍쯤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복되지 않은 것은, 그가 스스로 죽음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성직자로서의 마지막 신념이 아직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가 스스로 죽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한평생 강함을 쫓던 그는, 최후의 순간에 마침내 강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악─!”
그때, 오희진의 뒤편에 서 있던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성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녀는 죽어버린 오희진을 쳐다보며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댔다.
문요셉과 성유다, 한대호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다급히 귀를 막았다. 그들의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종으로 쓴 게 문제였어!”
여인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입가는 기괴하게 뒤틀려서 추악한 욕설을 토해냈고, 서글서글한 눈웃음이 머물던 눈가에는 흉측한 주름이 서리고 있었다. 가지런하고 하얗던 이도 짐승의 것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변해갔다.
유혹을 위한 모습이 아닌, 사탄교 간부 ‘색욕’의 본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전부 처리했어야 하는데!”
여인이 손을 들었다. 손끝에 거대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려 있었다.
손톱에서는 새까만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손톱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애당초 손톱이 마기로 이루어진 것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여인은 성당에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해 손을 휘두르려고 했다.
‘사탄의 손톱’, 그것으로 성당의 모든 이들을 베어서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원래는 우월한 인자들을 모아 종으로 쓰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를 죽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을 만큼 화가 났다.
서걱.
그러나, 여인이 채 손을 휘두르기도 전. 섬뜩한 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여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목이 달아난 몸뚱이에서 새까만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김진서는 검과 얼굴에 묻은 새까만 피를 태연하게 털어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여인의 모가지를 내려다보았다.
푹.
그리고 다시 검을 들어 여인의 머리통을 찔렀다. 김진서를 올려다보는 여인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인의 얼굴은 유혹을 위해 갖추고 있던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을 잃어버린 채, 새까만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
김진서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러나 여인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혐오와 경멸, 그리고 분노가 서려 있었다.
성당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하, 하하. 꺄하하!”
정적을 깬 것은 여인의 웃음소리였다. 여인은 몸과 머리가 분리된 와중에도 뭐가 그리 웃긴지 미친 사람처럼 웃어 댔다.
마침내 웃음이 멈추었을 때, 여인은 눈동자를 굴려 자신을 죽인 김진서와 성당에 있는 모든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돌아올 거야, 반드시! 그리고 다시금 끔찍한 악몽을 선보일 것이다!”
분리된 여인의 몸뚱이와 머리통에서 새까만 연기가 흘러나왔다. 여인의 몸은 그대로 연기가 되어 성당 바깥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김진서는 검으로 연기를 베어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연기를 검으로 벨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새까만 연기가 성당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가 사라지기 직전까지, 여인의 섬뜩한 웃음소리는 계속해서 성당을 울리고 있었다.
* * *
사아아아…….
성당을 빠져나온 검은 연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연기는 바람을 타고 계속해서 나아가며 어딘가로 향했다.
연기가 움직임을 멈추고 응집하기 시작한 곳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어느 산의 계곡이었다. 겨울의 한기가 가득한 계곡의 중심에서, 연기는 서서히 응집하며 형체를 갖추었다.
그리고 다시금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체의 여인은 겨울바람에도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계곡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하, 하. 아, 아아. 아아아악─!”
여인은 얼어붙은 계곡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제 몸을 미친 듯이 긁으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할퀸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 맑았던 계곡이 순식간에 여인의 피로 검게 물들었다. 계곡에 있던 몇 안 되는 송사리들이 죽어서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아아……. 이놈도, 저놈도. 전부…….”
여인이 하염없이 손톱으로 자신의 살갗을 긁고 깎아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아까의 전투를 복기했다. ‘시기’의 간부 구준혁에게는 ‘창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첫 번째 종은 터무니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너무나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여인은 급한 대로 오희진을 자신의 두 번째 종으로 삼았지만, 그 역시 죽어버렸다.
인간일 적 단장으로 모셨던 한대호라는 작자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흔들려서, 너무나 어이없게 죽어버렸다.
어디부터 잘못되었을까? ‘창식’을 첫 번째 종으로 삼은 것? 오희진을 두 번째 종으로 삼은 것? 아니면, 마수와 악마종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고 전투를 시도한 것?
아니다, 전부 아니다. 준비는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 검은 머리 남자. 첫 번째 종이었던 ‘창식’을 너무나 손쉽게 죽여 버리고, ‘양막’ 안에 있던 마수와 악마종을 전부 처치하고, 두 번째 종이었던 오희진까지 마무리한 그놈.
“교주…….”
부두교의 교주. 그놈이 문제였다. 그놈이 아니었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모인 성직자들 중 열등한 종자들은 전부 죽여 버리고, 우월한 종자들을 남겨 종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교의 간부 중 가장 강한 ‘사탄의 그릇’이 되어, 비로소 지옥의 군주가 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부두교의 교주가 모든 것을 망쳤다. 그놈, 그놈만 어떻게든 죽인다면. 아니, 오히려 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찰박, 찰박.
그때, 누군가 계곡의 물 위를 걸어서 여인에게 다가왔다. 여인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분명 아까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기척이었다. 여인은 남자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구준혁?”
그건 ‘시기’의 간부이자, 사탄의 그릇 중 한 명인 구준혁이었다. 여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끔벅였다.
“탈출했나? 지하 감옥에서? 어떻게?”
“아니, 이건 박제야. 본체는 아직 감옥에 있고.”
구준혁이 태연하게 말했다. 여인은 구준혁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봐도 구준혁이었다.
구준혁의 모습을 어설프게 흉내 낸 박제 따위라고 하기에, 그것은 너무나 정교하고 완벽한 구준혁이었다.
여인은 한참 놀란 얼굴로 구준혁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몹시 성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진급식을 노리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네 말을 듣고 너를 돕다가, 내가 이 꼴이 났어. 종과 마수와 악마종을 전부, 전부 잃어버렸다고!”
“아, 그래?”
구준혁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인과 그의 종, ‘창식’에게 진급식을 습격하라는 조언을 한 것은 구준혁이 맞았다.
진급식 습격을 위한 밑 작업이나, 이런저런 정보 등을 제공한 것도 전부 구준혁이었다.
여인은 구준혁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진급식을 노려 소동을 일으켰다.
여인은 처음에 구준혁이 자신을 왜 도와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탄의 그릇’인 그는 여인과는 경쟁자 관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진급식을 노려 소동을 일으키면, 그 틈에 지하 감옥에서 탈옥하겠다’라는 구준혁의 말을 듣고, 여인은 순진하게 의심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구준혁을 믿은 결과, 여인은 이제껏 조련했던 종과 마수, 악마종을 모두 잃었다.
여인은 매서운 눈으로 구준혁을 노려보았다.
“네가, 네가 그딴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러게, 믿을 사람을 믿었어야지.”
화륵.
구준혁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연 그 순간, 새까만 불꽃과 함께 구준혁의 등 뒤에 거대한 손가락이 나타났다. 여인이 저항할 틈도 없이, 손가락이 여인의 목을 그었다.
끼기기기긱─!!
쇠가 부딪치는 듯 소름 끼치는 굉음과 함께, 여인의 목이 잘렸다.
잘린 목은 다시 붙지 않았다. 연기가 되어 도망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여인은 유언도, 단말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문자 그대로, 그냥 죽어버렸다.
“이제 하나만 남았네.”
구준혁이 여인의 사체에서 떨어져 나온 손톱을 주운 후 자신의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의 손에서 여인의 것과 같은 크고 날카로운 손톱이 마기와 함께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