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8
제28화
다음 날, 학교. 여느 때와 전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하루가 흘렀다. 배성현과 오병훈이 결석했다는 점만 빼고.
방과 후, 나는 자취방으로 가기 이전에 먼저 지하 예배당부터 들렀다. 다행히 이진성 삼촌은 언제나 있던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곧장 본론부터 꺼냈다.
“삼촌. dBP 주식, 지금이라도 파는 건 어때.”
“어허.”
삼촌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책만 읽었다. 대답조차 건성이었다. 대답인지 추임새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곧 떨어질 거라니까? 감이 아니고 확신이야. 진짜로.”
“씁. dBP 기업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데.”
“아니야. 곧 어두워져. 제발 믿어.”
삼촌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인마. 지금 주가가 오르다 못해 차트판을 뚫을 기세야. 고점 찍으려면 한참이라고! 지금 팔면 완전 호구 되는 거라니까?”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
“네~ 교주님. 절대 후회 안 합니다. 아니, 애초에 너는 주식 볼 줄도 모르면서 뭘 그리 참견이냐.”
“그건 맞는데…… 하.”
막막하고 답답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배성현에 대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하자니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았다.
[그냥 말하지 마라.]한창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렉바가 태연하게 조언을 건넸다. 대답할 틈도 없이 렉바가 말을 이었다.
[저대로 돈을 잃게 두라는 말이다.]“네?”
[이참에 교주를 무시하면 화를 입는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는 교주다. 이진성은 제사장이고. 근데 이진성은 네 말을 무시하고 있어. 월권(越權)이라 보아도 무방하지.]나름 타당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진성 삼촌은 내 가족이다. 이대로 마냥 돈을 잃게 둘 수는 없었다.
“삼촌. 마지막으로 다시 말할게. 팔자.”
“왜 자꾸 팔라는 거야. 이유는 있고? 설마 또 감이냐?”
“dBP 주식은 무조건 떨어지게 돼 있어. 내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니까?”
“너한테 뭔 재주가 있다고 주가를 조작해.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무리 설득해도 삼촌은 듣지 않았다. 이쯤 되니 슬슬 화가 났다.
“허. 마음대로 해봐, 그럼. 나는 분명 팔라고 했다.”
“어이구, 그래. 나중에 뭐 사 달라고 떼쓰지나 마세요.”
“예, 예.”
알아서 하라지.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단념하고 돌아섰다. 화도 삭일 겸 뉴스나 보기로 했다. 마침 뉴스를 봐야 할 이유도 있었다.
나는 예배당 뒤편,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TV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연쇄 납치 사건은 실마리조차 없다. 서울동부성기사단장이 비리를 저질러 사퇴했고, 새로운 단장이 취임했다 등등.
어째 좋은 소식은 하나도 없었다. 뉴스라는 게 원래 그렇다고는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말이 아니군.]같이 뉴스를 보던 렉바가 새삼 한탄했다.
그날 저녁까지는 쭉 예배당에 머물면서 뉴스만 봤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봐도 원하던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급할 거 없다. 아직 조사 중일 수도 있지 않느냐.]“하긴.”
고개를 끄덕였다. 렉바의 말대로 아직 조사 중일 가능성이 높았다. 조급할 것은 하나도 없다. 마음을 편히 가지고 기다리자. 기다리다 보면 다 잘될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조작했으니까.
우우웅─!
“아, 깜짝.”
그렇게 한참 뉴스를 보다 잠깐 졸았던 것 같다. 불현듯 울려온 진동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문자가 와 있었다. 발신자는 정인아.
늘 그렇듯 아무 의미 없는 안부 문자일 것이다. 나는 별생각 없이 내용을 확인했다.
“어?”
그러나, 생각보다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군. 제목만 봐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아, 제발. 아도나이시여.”
[뭐? 이 새끼가.]나는 기도를 하며 정인아가 보내준 주소를 타고 들어갔다.
‘그랑체’.
일전에 나를 향한 거짓 폭로 글이 올라왔던 그곳이었다.
* * *
사건의 조사는 서울동부성기사단이 맡게 됐다. 전임자의 비리로 새롭게 단장직에 취임한 한대호는, 이번 사건으로 머리가 아프다 못해 깨질 지경이었다.
“증거가 없다? 하나도?”
“예. 배성현 학생 머리 위에 놓여 있던 이 천 쪼가리. 이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하 성기사가 봉투 안에 담긴 증거품을 내밀었다. 기괴한 문양이 그려진 천 조각이었다. 어느 종교를 상징하는 문양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마니카교의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피해자 학생들한테도 증거 보여줬어? 반응은?”
“다른 학생들은 별 반응이 없는데, 그.”
부하 성기사가 말끝을 흐리며 주저했다.
“편하게 말해.”
“네, 어. 배성현 학생이 증거품을 보고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발작?”
한대호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은데, 조사를 이어가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
쨍그랑─! 쨍 쨍그랑─!
“아, 단장님. 죄송합니다. 전화가.”
“뭔 벨 소리를 그딴 걸로…… 아니다. 받고 와.”
부하 성기사가 전화를 받으며 단장실을 나갔다.
“발작. 발작이라. 뭐가 있기는 있다는 건데.”
단장실에 홀로 남은 한대호가 중얼거렸다.
괴상한 문양이 그려진 천 조각. 그것을 보고 발작을 일으킨 배성현. 둘 사이에 연관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연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추측만 무성했으며 이렇다 할 실마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장님.”
이윽고 전화를 받고 돌아온 부하 성기사가 한대호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어, 그래. 말해.”
“방금 연락 받았는데, 이 천 조각이 사교도 의식에 사용되는 제사용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사교도? 정확히 무슨 종교인지도 알아냈어?”
“예. 알아냈습니다.”
근심 가득하던 한대호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떠올랐다. 천 조각의 출처를 밝힐 수만 있다면 수사에도 진척이 생길 것이다. 서류를 훑어보던 부하 성기사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예, 부두교─”
“부두교!”
“─랑, 사탄교, 수메르교, 드루이드교, 셈족교. 그 외 3개 종교 중 하나입니다.”
한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머저리가. 결국 하나도 모른다는 거잖아!”
“예? 그래도 8개로 추리긴 했습니다?”
“됐다. 널 믿은 내 잘못이지. 드루이드교는 뭐냐? 게임도 아니고.”
한대호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있는 종교입니다. 정식 명칭은 켈트 다신교.”
“야 이 새끼야. 그런 거 외울 시간에 일이나 제대로 해.”
“단장님, 저는 하루라도 종교를 외우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사람입니다.”
부하 성기사가 태연하게 말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일명 종교 오타쿠였다.
국교인 로마니카교는 물론, 사탄교와 부두교, 드루이드교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모든 종교에 대한 정보가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후, 일단은 원칙대로 차근차근 진행해보자. 일단 현장에서 사교도 제사용품이 발견됐으니, 피해자들 신분 용의자로 전환하고 사교도 수색부터 진행해.”
“예, 그럼 디지털 포렌식부터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혹시 이상한 거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부하 성기사가 단장실을 나갔다. 홀로 남은 한대호는 자리에 앉아 침음을 흘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미치겠네.’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고등학생 8명이 골목길에서 기절한 사건, 일명 ‘골목길 집단 혼절 사건’까지 일어났다.
더구나, 골목길 집단 혼절 사건의 피해자 중에는 배성현도 있다. dBP 기업 배정환의 아들. 그래서인지 윗선에서 엄청나게 압박을 주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그냥 윗선이 아니라 상당한 윗선.
자칫 범인을 찾지 못하면 단장직에서 사퇴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취임과 동시에 사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반드시 찾는다.’
그렇기에, 한대호는 간절했다. 단장에 취임했다는 말을 듣고 기뻐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
한숨을 쉬며 다시금 사건 수첩을 살피던 한대호. 그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단장실로 들어왔다.
“단장님!”
아까 그 부하 성기사였다. 종교 오타쿠 그놈.
“뭐야. 포렌식이 벌써 끝났어?”
“네? 아니요, 그건 아닌데.”
“뭐? 그럼 왜 왔냐?”
“이거 보십시오.”
부하 성기사가 휴대폰을 들이밀어 사진을 보여주었다. 웬 고등학생 여자애가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었다. 그 외에도 비슷한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한대호가 고개를 갸웃댔다.
“뭐가 문제야. 설마 도촬이냐? 이거 누구 폰이야?”
“배성현 학생 휴대폰입니다. 근데 이게 그냥 도촬이 아닙니다. 그, 저번에 있잖습니까. 악마종.”
악마종, 이라는 말에 한대호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 보니 사진이 익숙했다. 악마종으로 변했던 고준민. 그놈 휴대폰에 있던 사진과 똑같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나머지는. 휴대폰에 뭐 이상한 거 없어?”
“예.”
“나머지는 대충 조사하고 풀어줘. 그리고 배성현은 용의자로 전환한다. 사탄교도일 가능성, 또는 사탄교도와 연관 가능성 조사해.”
“예, 알겠습니다.”
부하 성기사가 허겁지겁 단장실을 나갔다.
‘이제야 알겠군.’
한대호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배성현은 사탄교도, 혹은 사탄교도와 유착 관계. 사탄교 의식을 직접 거행, 또는 조력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하였고, 자신을 포함한 8명의 학생이 모두 기절.
그렇다면 천 조각을 보고 발작을 일으킨 것도 설명이 된다.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거나, 증언을 피하기 위해 연기를 했거나.
이제야,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단장님!”
그로부터 30분 뒤. 나갔던 부하 성기사가 다시 돌아왔다.
“그래. 조사 결과는?”
“배성현은 일절 대답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휴대폰만 조사했습니다. 아직 미흡하지만 증거로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읊어봐.”
“예. 먼저─”
부하 성기사가 조사 결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진. 배성현의 휴대폰에 있던 사진은 고준민의 휴대폰에 있던 것과 동일하다. 고준민과 전화 및 문자를 한 기록도 있다. 배성현이 고준민 사건에 개입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배성현의 휴대폰에는 그 외에도 여러 기괴한 것들이 많았다. 알몸으로 뒷짐을 진 채 중요 부위를 드러낸 남학생의 사진, 남학생의 뼈를 부러트리고, 치유를 사용하여 다시 뼈를 붙이기를 반복하는 고문 영상 등등.
“학교 폭력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도 같이 터트려.”
“저, 단장님. 근데 이게.”
부하 성기사가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뭐. 왜. 빨리 말해, 뜸들이지 말고.”
“사건 용의자인 배성현이, dBP 기업 회장 외동아들 맞습니까?”
“맞아. 근데?”
“dBP 기업 회장 배정환이 여기 찾아온답니다. 10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뭐? 아니 이런 씹.”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려던 한대호가 문득 말을 멈췄다.
그의 이마에서 난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단장실에 막역한 정적이 흘렀다.
“단장님 계십니까. 배정환입니다.”
끼이익.
한대호가 대답을 하기도 전, 배정환이 문을 열고 단장실로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10분 뒤에 온다고는 했는데, 제가 원체 마음이 급해서.”
배정환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은은하고 푸근한 동시에 어딘가 서늘한 미소였다.
배정환이 느릿느릿 악수를 청하자, 한대호가 허겁지겁 악수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서울동부성기사단장 한대호입니다.”
“예, 안녕하십니까. 덩치가 상당히 크십니다. 하하하.”
“아, 예. 하하…….”
배정환과 한대호, 둘 다 웃고는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살벌했다.
“이번에 새로 취임하셨다고 들었는데, 일은 어떱니까. 많이 힘들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한대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배정환이 큼, 목을 가다듬었다.
“뭐, 서론이 길면 피차 지루할 테니. 바로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예?”
“우리 아들이 피해자 신분으로 잡혀 있다고 들었어요. 내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무튼 잘 부탁합니다.”
“아. ……예, 물론입니다.”
한대호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배정환은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입을 열었다.
“참. 서울동부성기사단은 성물이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맞나?”
“많이는 아닙니다. 조금.”
“조만간 넉넉해질 겁니다. 이번 일만 잘되면 말이지요.”
배정환이 서늘하게 웃어 보였다.
‘뇌물.’
한대호는 그 말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배정환이 손목을 들어 흘깃 시계를 확인했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일하는데 내가 방해를 했네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하, 예. 살펴 가십시오.”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단장실을 나가는 배정환을 향해 한대호가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다. 이윽고 배정환이 성기사단을 완전히 떠났을 무렵, 한대호는 그 자리에 흘러내리듯 주저앉았다.
“하아아아…….”
깊은 한숨. 안 그래도 근심에 차 있던 얼굴이 배정환과의 만남으로 10년은 더 늙은 듯했다.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부하 성기사가 한대호에게 다가왔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너한테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어, 음. 아니요.”
한대호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단장님, 그래서 수사는 어떻게 진행할 생각이십니까.”
“…….”
한대호가 한참 침묵을 지켰다. 단장실에 정적이 들어찼다. 이윽고 한대호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실성한 듯, 체념한 듯 투명한 미소였다.
“내가 취임한 지 얼마나 됐더라.”
“비공식적으로는 2주, 공식적으로는 이틀 전입니다. 보도는 오늘이었구요.”
“그래. 얼마 안 됐네.”
한대호가 풀썩 고개를 떨궜다. 기뻐하던 어머니 얼굴이 다시금 떠올랐다. 착잡했다.
“벌써 사퇴하기는, 아직 이르지?”
“……예. 누구도 단장님을 탓할 수 없을 겁니다.”
한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이게 당연한 거지. 이게 맞는 거야.”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 뭐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개같은 거…….”
“…….”
한대호의 탄식이 단장실을 메아리쳤다. 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