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80
제280화
여인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소란스러웠던 성당에는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누군가는 연기가 되어 도망가는 여인을 멍하니 쳐다보았고, 누군가는 부상에 못 이겨 그 자리에 주저앉았으며, 또 어떤 누군가는 부상을 입었거나 죽은 이들을 위해 묵묵히 기도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거나 죽어 있었다. 흑마법에 취해 여인의 종이 되었던 오희진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죽었고, 그 앞에서 한쪽 팔을 잃은 한대호는 두꺼운 손으로 절단면을 눌러 지혈하고 있었다.
성유다는 눈을 감고 성하연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의 품 안에서 성하연은 뜬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았다.
문요셉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어딘가로 걸어가다가, 풀썩 쓰러졌다. 김진서는 의식을 잃은 김창원을 보며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참상의 중앙에는 바론 삼디가 있었다. 죽음의 향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바론 삼디는 시가를 빼문 채로 태연히 죽은 자들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슬픈가?]바론 삼디의 붉은 눈동자는 어느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론 삼디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는 나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나 깨달았다고 해서 쉽사리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고 다만 주위 풍경을 둘러보았다.
잘린 한대호의 팔은 상급 복원 주술을 사용하면 붙일 수 있었다. 죽은 듯 보이는 김창원도 역행의 지팡이, 포토미탕과 렉바의 권능을 사용하면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창원 외에도, 곧 죽음을 맞이할 수많은 사람들을 나는 구할 수 있었다.
“…….”
그러려면 나는 내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밝혀야만 한다. 그러면 코앞에 있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와의 재회 또한 멀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죽는 날까지도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나는…….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꼬마야.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니?]렉바와 담 발라가 한마디씩 했다. 두 로아의 말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바론 삼디와 렉바와 담 발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그리고 뒤늦게 나는 바론 삼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분명히 슬펐다. 이곳 성당에서 사탄교도와 전투를 치르다가 부상을 입었거나 목숨을 잃은 자들을 향해 분명하게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구할 능력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스스로에게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로마니카교가 나의 적이듯, 로마니카교에게는 내가 적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구해도 나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정체가 발각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모두를 구한 영웅이라는 칭호는커녕, 정체를 숨기고 모두를 기만한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로마니카교와 부두교가 적대 관계가 아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랐을까. 이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됐을까.
“…….”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 * *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당 근처에 인적이 없는 외진 숲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얼어붙은 계곡에 떠오른 여인의 머리를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한 것이었다.
이로서 사탄교 간부 ‘색욕’은 완전히 죽었다. 사탄교도 간부를 처치한 것에 대한 공적은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모든 성직자들에게 돌아갔다.
사탄교 간부 ‘색욕’의 토벌이 발표된 직후, 사건이 있었던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에서 추모식이 치러졌다. 장례식은 오늘 자로 전부 끝났고, 오늘은 전투 중 죽은 이들을 다 같이 추모하는 날이었다.
나는 동부성기사단에서 파견 실습을 하며 받은 성기사복을 입고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으로 갔다. 수많은 성직자들의 얼굴 사진이 꽃 위에 늘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오희진의 얼굴도 있었다.
“왔냐.”
죽은 성직자들을 추모하는 길고 긴 행렬 중에는, 한대호도 있었다.
그의 한쪽 팔은 잘려서 사라져 있었다. 늘 산처럼 거대하게 보였던 몸도 어쩐지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팔은 괜찮으십니까.”
“운동할 때마다 늘 오른쪽 팔꿈치가 아팠는데, 이제 안 아파서 좋다. 잠도 오히려 잘 오고.”
한대호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오른쪽 팔이 통째로 잘려 나갔으니, 없는 팔꿈치가 아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농담으로 꺼낸 말 같았지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었다. 한대호는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고는, 내가 입은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 옷이 동부성기사단에서 준 거였나?”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그거 입을 일 없겠네. 파견 실습 기간도 끝났고.”
한대호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견 실습 기간은 끝났다. 이제 나는 동부성기사단 소속 견습 성기사가 아닌, 무소속 견습 성기사였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로 어디에도 소속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파견 실습이 끝난 이후로는 원하는 성기사단에 입단 신청을 넣어볼 수 있었다.
입단이 확정되면, 그때부터는 견습 성기사가 아니라 어엿한 정식 성기사가 될 수 있었다.
“중앙에 입단 신청은 해볼 생각이냐?”
“네. 시험도 쳐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해볼 생각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대호의 물음에 대답했다. 원래 같으면 이제 막 파견 실습을 마친 피렌체 학생이 중앙성기사단에 입단 신청을 넣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유다의 도움과 더불어, 여러 성직자들에게 받은 추천서와 지금까지 쌓은 공적을 생각하면 입단이 아예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성유다는 입단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기만 하면 입단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일단 중앙성기사단에 입단하고 나면 지하 감옥에 출입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 아쉽네. 가고 나서도 종종 연락하고 그래. 중앙으로 갔다고 모른 척하지 말고, 인마. 너 만약이라도 입단 성공하면 그때는 내 덕도 있는 거 알지?”
“알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앞에 줄을 서서 죽은 성직자들을 추모하던 행렬이 짧아졌다. 곧 우리 차례가 되었고, 나는 로마니카교 예법에 따라 오희진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리고 물러났다.
성당에는 성직자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목 놓아 우는 이들도 있었으나, 내게는 그럴 여력까지는 없었다.
“이제 어디 가냐?”
성당을 나왔을 때, 한대호가 물었다. 그는 하늘을 보고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이상할 만큼 쾌청하고 맑은 하늘이었다. 하늘의 푸른빛이 단숨에 쏟아져서, 눈이 조금 아팠다.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숙사로?”
“집으로……. 가족들이 걱정을 해서요.”
“하긴, 그렇겠네. 알겠다.”
한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길로 우리는 헤어졌다. 한대호는 나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가족 핑계를 댔다.
가족들이 걱정한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강지아와 삼촌, 하수영이 나를 제법 걱정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예배당으로 가서, 강지아와 삼촌, 하수영을 보러 갈 생각은 없었다. 그건 정말로 단순히 핑계에 불과했다.
나는 한대호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와 얼굴을 마주하기가 부끄럽고 메스꺼웠다.
“단 웨도.”
툭, 투둑…….
단 웨도를 불러 비를 내렸다.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꼈고, 가는 빗방울이 떨어져서 이마에 부딪혔다.
이런 날에는 비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는 비가 내리기 마련이었다. 영화나 책 같은 데서는 늘 그랬다.
그러나 막상 비는 많이 내리지 않았다. 날이 추워서, 비가 반이었고 나머지 반은 눈이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비와 눈을 맞으며 걸었다.
걸음은 목적지가 없었다. 나는 비에 젖어서 무거워진 걸음을 그저 가까스로 옮겼을 뿐이었다.
다른 성직자들의 추모식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예배당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탁하고 침침한 거리를 마냥 걷기만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나는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받았다.
– 어디야?
들려오는 목소리는 익숙했다. 그러나 말투는 어딘가 낯설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싸늘하고 차가운 말투.
나는 김진서의 물음에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그 자리에 섰다.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모르는 얼굴들이 모르는 길과 거리를 바쁘게 나다니고 있었다.
“그러게.”
뚝.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고, 김진서는 돌연 전화를 끊었다.
* * *
김진서는 아이의 장례식을 찾아갔다. 사탄교 간부 ‘색욕’이 나타난 그날, 많은 성직자들과 민간인들이 죽었고, 그중에는 고위 성직자들도 있었다.
별다른 공적을 세우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아이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김진서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알았다. 김진서에게 그 아이는 ‘그날 죽었던 수많은 사람 중 하나’가 아니었다.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성격과 그 밖에 많은 것을 아는. 그녀에게는 특별한 누군가였다.
김진서는 아이의 장례식을 찾아가 그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고, 그녀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김창원의 빈소로 돌아왔다.
평소에도 몸이 좋지 않았던 김창원은 그날의 전투로 하여금 끝내 목숨을 잃었다.
허무한 죽음은 아니었다. 성당에 있는 모두가 전멸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 전투에서, 그나마 사망자가 적었던 것은 김창원이 재현해낸 기적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허무하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김진서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았다. 김창원이 사제로 있을 당시 동료였던 사람들. 이런저런 경로로 친분이 있는 고위 성직자들. 교사들. 조문객들은 많았다.
조문객 대부분이 김진서와는 친분이 없었지만, 그녀에게 알은체했다. 그들은 김진서 앞에서는 상투적인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뒤에서는 벌써 부모를 다 잃어서 큰일이다, 어차피 친부모도 아니니 괜찮지 않겠냐, 김창원이 불쌍하다, 그따위의 앞에서는 하지 못할 말들을 했다.
콰창!
그때, 조용하지는 않아도 소란은 없던 식장에 불현듯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 퍼졌다. 정신을 반쯤 놓고 있던 김진서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식사를 하고 있던 조문객들 사이, 여민서가 깨진 술병을 들고 누군가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중얼중얼 말들이 많아. 이사장님한테 할 말이 그렇게 많으면 직접 가서 하시죠? 내가 그리로 보내 드려? 아, 같은 곳으로 간다는 보장이 없나?”
“뭐, 이게 지금 뭐 하는……!”
여민서에게 위협을 당하는 늙은 성직자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숨을 골랐고, 여민서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그 성직자를 응시했다.
한수련이 허둥지둥 말리려고 들었지만 이미 고삐가 풀려버린 여민서를 말릴 수는 없었다. 김진서는 멍하니 그쪽을 쳐다보고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여민서에게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그리고 여민서의 어깨를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이성을 잃고 날뛰던 여민서는 김진서의 만류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대충 내팽개치고 혀를 찼다.
“쯧……. 이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또 그딴 소리 하면 진짜로 아도나이 님한테 보내 드리는 수가 있어.”
“…….”
그 말을 남기고 여민서와 한수련은 식장을 나갔다. 김진서는 여민서가 벌인 소란의 뒷수습을 하고, 식장을 나왔다.
여민서와 한수련은 멀리 나가지 않은 곳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진서가 다가가자 한수련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고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김진서와 여민서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 저기! 미안해, 진서야. 민서가 좀,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또라이잖아? 그래서 이런 일이…….”
“죽은 사람 앞에서 저딴 말이나 지껄이고 앉아 있는 놈들이 더 또라이지. 그 자리에서 안 죽인 게 어디야?”
여민서는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씩씩대며 말했다. 그러고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김진서를 마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뭐, 할 말 있어?”
“아니, 고마워서.”
김진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비아냥대는 기색조차 없었다.
여민서와 한수련은 그 말을 듣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여민서는 이내 피식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 때문에 화낸 거 아니야. 이사장님 때문에 그런 거지.”
“알아.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아, 씨. 뭔……. 왜 안 하던 말을 하고 지랄……. 됐어. 나 간다.”
여민서는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한수련을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김진서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위로는 안 할게. 위로한다고 괜찮아질 게 아니니까.”
여민서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김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멀어지는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어쭙잖은 위로보다는 차라리 저 말이 더 나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김창원의 장례가 끝나고, 사건이 있었던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에서 치러진 추모식도 끝이 났을 무렵, 김진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냥 고요했다. 양어머니가 죽었을 때에는, 슬픔에 잠긴 김창원의 울음소리라도 들렸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었고 그게 마침 도선우였다. ‘어디야’라고 묻자, 그는 ‘그러게’라고 답했다.
이게 무슨 대화인가 싶어, 김진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전화를 끊었다.
“…….”
그녀는 집에 있던 담배를 들고 나와서 피우려고 입에 가져다 댔다. 몇 개월 만에 입에 대 보는 담배였다.
불을 붙이려고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키지 않았다.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이 허무한 마음이 달래질지. 자그마하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맛있는 것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입맛 자체가 없었다. 공기가 차서 바람을 쐬어도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쾌청했던 하늘은 어느덧 먹구름이 껴서 어두침침했다. 그제야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눈 섞인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그녀는 아까 도선우의 대답을 떠올려 보았다. ‘어디야’라는 질문에 ‘그러게’라고 답했던,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녀도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김진서는 담배를 부러트려서 버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질끈 눈을 감았다.
가슴이 답답하기는 한데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띵─!
그때 방 안에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깊은 정적 속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라서, 김진서는 흠칫 놀랐다.
뒤늦게 그게 초인종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올 사람이 없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김진서는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었다.
“있네.”
거기엔 비에 젖어서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꼴이 된 도선우가 있었다. 그는 김진서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