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85
제285화
그곳에서 성하연을 만난 것은 그야말로 예기치 못한, 우연한 일이었다.
성하연은 원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데다가, 성유다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탓에 본가에는 자주 드나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하연을 만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성하연의 손에 들린 여러 장의 추천서를 보고, 뒤늦게 그녀가 여기 온 이유를 알아챘다. 곧 있을 입단 시험을 위해 성유다에게 이런저런 서류를 받기 위한 것이리라.
나 또한 비슷한 이유로 성유다의 집에 방문한 것이라서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 도둑? 도둑질인가요?”
그러나 성하연은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계속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표정과 몸짓에서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진정하라는 뜻으로 양손을 펼쳐 보이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도둑이라니, 내가 훔칠 게 뭐가 있다고……. 그냥 볼일이 있어서─”
“가까이 오지 마요! 더 오면 시, 신고할 거니까!”
성하연은 내가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외쳤다. 내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 씨. 진짜…….”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곧 있을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에 대한 성유다의 자문과 실질적 도움, 그리고 저번에 미처 받지 못했던 아버지의 연구 자료를 받으러 이 자리에 온 것이었으니까.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을 치르는데 왜 성유다의 도움을 받으러 오냐, 그런 식으로 성하연이 묻기 시작하면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소리를 꽥꽥 질러대는 성하연에게 그럴듯한 해명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뒤편에서 웬 소란스러운 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쪽으로 황급히 다가오고 있는 성유다가 보였다. 그는 성하연과 함께 있는 나를 보고 놀란 듯이 잠깐 입을 벌렸다.
“…….”
그리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성유다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감을 못 잡은 모양이었다. 나는 어떻게 상황을 수습해야 할지 몰라서 성하연과 성유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뒷수습은 성유다에게 맡기고, 그냥 이대로 나가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입단 시험에 필요한 서류나 추천장, 정보 같은 것은 이미 다 얻어낸 뒤였으니까.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
나는 성유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한 뒤, 그대로 성유다의 저택을 나왔다.
조금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성하연과 접촉하지 말아 달라는 성유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선.
* * *
도선우가 나간 뒤, 성유다와 성하연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탁자 위에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차 두 잔이 올려져 있었으나,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차에는 입을 대지 않았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찻잔에서 흘러나오는 김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하연아.”
먼저 입을 연 것은 성유다였다. 그는 여전히 차에는 입도 대지 않은 채, 다만 언짢고 떨떠름하다는 듯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성하연은 성유다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다.
차에서는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가 아닌, 단지 분위기가 어색해서 마신 거였기 때문이었다.
“도선우가 왜 이 집에 있어요?”
달그락.
성하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성유다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움찔거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상황이 곤란했다. 그는 재빨리 핑곗거리를 떠올렸다. 핑곗거리는 많았다. 그러나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성하연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까닭이었다.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에 대해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하길래, 조금 도움을 주고 싶어서 부른 거야.”
“그걸 왜 아버지가 도와줘요? 아니, 애초에 도선우는 왜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 거예요?”
“그건……. 도울 수 있는 능력이 되니까 도왔을 뿐이야. 다른 뜻은 없어.”
“전에는 저에게 도선우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그러셨잖아요?”
성하연이 추궁하듯 물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성유다는 분명 성하연에게 도선우를 멀리하라고 말했다. 도선우는 문요셉에게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고, 그래서 성유다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 사실이라면, 성유다는 도선우를 도울 이유가 없다. 도선우 또한 성유다에게 도움을 청할 이유가 없고.
“도선우가 이 집에 찾아온 진짜 이유가 뭔가요?”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성하연은 도선우와 성유다 사이의 관계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아까 복도에서 마주한 도선우와 성유다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성유다는 도선우를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고, 도선우는 성유다를 앞에 두고도 이상할 정도로 당당하고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도선우는 오히려 성유다보다 성하연을 더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듯했다.
“……요즘 들어 도선우가 학교에서 나를 피하는데, 오늘 일과 관계가 있나요?”
그 묘한 위화감. 성유다와 도선우와의 관계. 그리고 요즘 들어 성하연을 피하는 도선우의 태도……. 그 모든 것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성하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성유다는 그녀의 물음에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길쭉한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 툭 건드렸다.
고요한 방 안에 마르고 건조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더는……. 더 이상은, 이 일에 대해 궁금해하지 마.”
성유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성하연은 그 날카롭고 냉소적인 말투에 잠시 어깨를 움츠렸다. 지난 몇 년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습관이었다.
성하연은 성유다가 저런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건 안 돼요.”
그러나, 성하연은 포기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찻잔을 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성유다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떨림이 없었다.
“정화의 일족은 서로에게 비밀이 없는 것 아니었나요? 적어도 일족과 직결된 문제는 숨기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정화의 일족 내의 규율이었다. 정화의 일족끼리 사적인 일로 다툼을 벌이거나 견제를 할 수는 있어도, 일족과 직결된 문제에 한해서는 서로 힘을 합치고 일족의 부흥을 도모하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규율.
“저도 정화의 일족이에요. 무슨 일인지 알 권리 정도는─”
“아니, 그래도 알려줄 수 없어.”
“왜……!”
“이건, 정화의 일족과 관계된 일이 아니니까!”
성유다가 탁자를 주먹으로 쳤다. 성하연이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성유다는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부르르 떨면서 잠시 숨을 골랐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흰자위에는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몇 번이고 거친 숨을 토하던 성유다는 가까스로 분을 삭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네가 궁금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그러니까…….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
성하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도선우가 갑자기 자신을 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유다가 도선우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이유와, 그리고 도선우에 대해 물으면 흥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성유다나 도선우에게 묻는다고 해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성하연이 자력으로 알아내야 할 일이었다.
성하연은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 자신이 보았던 풍경을 떠올렸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저택의 모든 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오직 연구실만이 불이 켜져 있었다.
이는 성하연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성유다와 도선우가 연구실에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성유다의 연구실에 그 해답이 있을 것이었다.
* * *
한동안 나는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노력에만 열중했다. 그것이 지하 감옥에 입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성유다의 도움을 통하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입단 시험에서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노력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대놓고 사용이 가능한 기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했다. 축복진을 비롯하여 신성력을 활용하는 기술과, 몸만 있으면 되는 전투술 전부가 이에 속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여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연습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직 모든 사탄교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구준혁이 살아 있는 한 변수를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술이나 로아의 권능은 아무 데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물론, 예배당에서 사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노아의 방주를 이용했다.
그곳에서는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고, 동시에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도 있었다.
나는 육은형의 용병단을 불러, 그들을 상대로 주술과 권능을 연습했다.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상대가 있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겸사겸사 육은형의 용병단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었으니, 일석이조였다.
“……졌습니다, 교주님.”
방주에서 나와 전투를 벌이던 육은형은 끝내 지쳤다는 듯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육은형의 편에 서서 나와 전투를 벌이던 단원들도 그제야 하나둘 풀썩풀썩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주저앉은 육은형에게 다가갔다.
“오늘 훈련은 어땠습니까? 전보다 좀 나아진 게 있던가요?”
“예, 보수의 권능을 이용한 근접전에서 특히…….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권능은 어땠습니까?”
“감히 뭐라고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처음보다 많이 절제된 듯한 느낌입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권능만이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육은형이 거친 숨을 토하며 말했다. 내 기분을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로아의 권능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최대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피를 토해가면서 소모적으로 전투를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성과가 있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나는 주저앉아 있는 육은형에게 손을 건넸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저희 용병단 쪽은 어땠습니까? 너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 같아서 걱정인데…….”
“아닙니다. 권능으로 육은형 간부를 집중적으로 노렸는데, 기어코 다 피하면서 저에게 접근하시더군요. 놀랐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로아의 권능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수직적인 느낌이 강하다 보니……. 몇 번 맞아보고 나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더군요.”
나는 훈련 전투 도중 육은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바데의 바람과 소보의 번개, 그란브와의 살아 움직이는 나무뿌리를 모두 피하면서 기어코 내게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가 진심을 다해 권능을 사용하지 않았고, 지형지물 또한 육은형의 용병단 측에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육은형은 타고난 전투 센스가 남달랐고, 훈련을 거듭할수록 그 센스는 배가 되고 있었다.
“아무튼 대단하네요. 지형지물……. 그 부분은 참고해야겠습니다.”
나는 육은형의 말에 작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육은형은 지형지물을 이용하며 나의 권능을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했다.
로마니카교 성직자나 사탄교 또한 같은 방식으로 나의 권능을 피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었다. 이는 정밀한 조절이 어려운 로아의 권능이 가진 유일한 단점이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훈련을 통해 차차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로아의 권능을 연달아 사용한 부작용으로 몰아닥친 피로를 토해내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는 노아의 방주가 만들어낸 환상의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초원은 무척이나 광활하고 아름다워서,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감탄을 토하게 하는 웅장함이 있었다.
육은형은 그 풍경을 둘러보며 짧게 탄성을 내뱉다가,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교주님께 근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차치하고……. 보수의 권능만으로도 대부분의 성직자는 제압이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 권능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요?”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아는 건 한 명 정도.”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문요셉을 떠올렸다. 한때 보수의 권능을 사용하여 그와 대련을 한 적이 있었다.
대련에 불과할 뿐이었기에 그의 전투력을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고, 나 또한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문요셉은 나와 거의 호각을 다퉜다.
둘 다 전력을 다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승패를 완전히 장담할 수 없는 존재가 로마니카교 측에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주술과 권능 연습을 소홀히 하면 안 됐다.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로마니카교 성직자와 사탄교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했다. 훗날 나에게, 부두교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오늘 훈련은 이쯤으로 하죠. 다들 지치신 것 같으니…….”
나는 쓰러져 있는 육은형의 용병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노아의 방주가 자아낸 환상 속에서 입은 신체적 피해는 밖으로 나가면 곧바로 회복될 테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그렇지 못했다.
나와 장장 몇 시간을 싸운 용병단원들의 정신적 피로를 고려하면 훈련은 이쯤에서 중단하는 것이 맞았다.
나는 땅에 꽂아 두었던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걸 본 육은형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지팡이는 훈련할 때 사용하지 않으시는군요.”
“네, 이건 훈련 중에는 안 씁니다. 굳이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노아의 방주에서 하는 훈련은 주술과 로아의 권능을 연습하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육은형과 용병단원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팡이를 사용해 버리면 육은형과 용병단원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없었다.
훈련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 압도적인 격차로 전투가 끝나버릴 테니까.
그런 식으로 나는 몇 날 며칠을 훈련과 연습, 공부에 매진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를 만큼 바쁜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정신을 차렸을 때는,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