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286
제286화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 장소는 당연하게도 중앙성기사단이었다.
정확히는 중앙성기사단과 중앙성전사단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연무장이었는데, 무척 넓어서 수백 명에 달하는 응시생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남아돌 지경이었다.
듣자 하니 이곳에서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뿐 아니라 중앙성전사단 입단 시험도 치러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나는 김진서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까지는 아니었다. 입단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그녀와 몇 번 연락을 나누었고, 그녀가 경험 삼아 중앙성전사단 입단 시험에 응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
김진서는 그 많은 응시생 중에서 용케 나를 발견하고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김진서가 내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고 있던 나는 뒤늦게 고개를 까딱이며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성전사복을 입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길쭉한 검 한 자루를 차고 있었다. 나는 그 검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무서운 걸 차고 다니네.”
“개인 무기 지참해 오라고 하길래. 너희는 그런 거 없어?”
“우리는 오히려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하던데.”
개인 무기를 지참하라는 규정이 있던 성전사단 입단 시험과 달리, 성기사단 입단 시험은 아무런 장비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기나 성물은 당연히 반입 불가였고,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까지 전부 압수해갔다.
물론 나는 압수에 순순히 응하는 척만 하고, 몇 가지 물품은 제출하지 않았다. 부두교의 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휴대폰 하나, 그리고 역행의 지팡이였다.
정확히는, 언제든지 역행의 지팡이로 변할 수 있는 담 발라에게 휴대폰을 맡기고 시험장 구석에 머물도록 시켰다.
아무리 로마니카교 성직자들이 포진한 곳이라고 해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저번에도 수많은 고위 성직자가 가득했던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이 습격을 당해,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던가.
만일 사탄교가 습격을 해오거나, 그 밖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시에는 지팡이를 사용하여 위기를 타개할 생각이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대처 방안을 수십 가지 정도 떠올려보았다. 그때 김진서가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입을 열었다.
“너, 뭐 가져오면 안 되는 물건 가져왔지?”
“……그걸 어떻게?”
“표정만 봐도 알아. 괜찮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니까.”
김진서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이제는 성직자들이라고 다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
그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곳에 모인 수많은 응시생과 시험관 중, 사탄교 혹은 부두교의 첩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
동시에 더는 로마니카교의 본진, 이를테면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이나, 중앙 연무장과 같은 공간도 사탄교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이는 지난 몇 주간 로마니카교 성직자들 사이에 떠돌던 소문과 관련이 있었다.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에 사탄교 간부 ‘색욕’이 습격한 이후 불거진 소문으로, 고위 성직자나 혹은 그와 연관된 피렌체 학생 중에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소문이 돈 적은 꽤나 많았고, 보통은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치부되고 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러나 이번 소문은 조금 달랐다. 문요셉을 비롯한 여러 이단 심문관들이 그 첩자를 잡아내겠다고 공개 발표를 한 탓에, ‘로마니카교 내 중요 인물 중에 사교의 첩자가 숨어 있다’라는 소문은 기정사실화되어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 첩자는 나를 말하는 것이리라. 어찌 보면 상당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 같지만, 문요셉을 비롯한 여타 이단 심문관들은 나를 의심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용의선상에 내 이름은 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유다의 도움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생각해보면, 사실 너도 믿을 만한 사람은 못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김진서가 대뜸 말했다. 나는 순간 놀라고 당황해서 사레들릴 뻔했다.
“……내가 왜?”
“믿기 어려운 짓만 하니까.”
“내가 뭔 짓을 했다고…….”
“저번에.”
김진서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문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를 보는 그 눈동자에 묘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입을 다문 순간 흐른 짧은 침묵이 무척이나 무거웠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정인아 집에 갔더라. 나 몰래.”
“아, 그거…….”
그리고 뒤늦게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그녀에게 정체를 들킬 만한 실수를 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괜히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몰래가 아니라, 그냥 말을 안 한 거지.”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하기도 뭐하니까.”
“그런 건 안 물어봐도 알아서 재깍재깍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김진서가 추궁하듯 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걸 굳이 말해서 뭐 하나 싶었다.
정인아의 집에서 나는 김진서에게 말해야 할 만한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윤아와 관련된 일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그건 김진서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굳이 내가 먼저 말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뭐 이상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말하자 김진서는 약간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헛웃음을 쳤다.
“아하. 나는 이미 넘어왔으니까, 이제 다른 여자나 만나겠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 아니,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말이 이상하잖아.”
“나한테 그런 짓까지 해놓고, 이제 와서 날 버리려고…….”
그렇게 말하는 김진서의 목소리가 꽤 컸다. 주위에서 우리를 보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는 피렌체에서 본 얼굴도 조금 있었다.
상황이 곤란했다. 나는 김진서가 어째서 이런 곤란한 상황을 벌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식은땀이 났다.
손등으로 흐르는 땀을 털어내고,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김진서에게 뭐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정말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울상을 짓던 그녀가 지금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놀리냐?”
내가 묻자 김진서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간지럽지도 않은 뒷머리를 괜히 긁적였다.
“장난도 때를 가려서 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오해를 할 줄 알고…….”
“미안, 너 당황하는 게 재밌어서.”
“재밌어?”
“음, 재밌다고 하기보다는…….”
김진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나한테만 당황하는 게 좋아. 평소에는 안 이러니까.”
– 안내합니다.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 응시자는 모두 연무장 동편으로…….
김진서의 말이 끝난 것과 동시에, 연무장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 응시자를 위한 공지였다.
중앙성전사단 입단 시험 응시자를 위한 공지는 아직 없었다. 같은 장소에서 시험을 치르기는 해도, 시험 내용은 다른 모양이었다.
“가야겠네.”
김진서는 연무장 동편으로 우르르 향하는 응시자들을 보며 말했다.
“잘 보고 와.”
“잘 봐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하고, 다른 응시자들을 따라 연무장 동편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때 김진서가 내 팔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그때 약속한 건 지킬 거지?”
김진서가 나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추모식이 있었던 그날 김진서의 집에서 했던 그 약속을 말하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때 김진서는 내게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마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대답을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녀의 집을 나왔다.
나는 그 이후로 다른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을 잘 보는 것에 집중했다. 그건 어쩌면 김진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녀에게 대답을 돌려줄 수 있는 것은, 내가 지하 감옥에 입장한 이후. 어머니와 만나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고 난 다음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진서와 헤어지고 연무장 동편으로 향하는 길에, 흘깃 고개를 돌려 김진서를 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는 미소 한 점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얼굴 전체에 검고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내 앞에 있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
나는 불현듯 추모식을 떠올렸고, 뒤이어 김창원이 죽고 난 뒤 텅 비어 버린 그녀의 집을 떠올렸다.
그녀의 집은 무척 넓었고, 그래서 더욱 공허해 보였다. 김진서는 나와 대화할 때는 괜찮아 보이지만, 아직 마냥 괜찮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잠깐 슬픔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지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마음 깊이 새겨진 슬픔은 그리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멍하니 어딘가를 보는 김진서를 잠시 쳐다보다가, 걸음을 다시 옮겼다.
동편에는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을 보러 온 응시자들, 말하자면 나의 경쟁자들이 우글우글 넘쳐나고 있었다.
* * *
중앙성전사단 입단 시험을 치러 온 응시자들이 연무장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향하고, 마침내 연무장에는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 응시자만 남았다.
시험관으로 보이는 사람은 응시자를 모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뒷짐을 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응시자들은 빳빳하게 굳은 몸으로 가만히 서서, 결의와 약간의 긴장으로 물든 눈으로 시험관을 응시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연무장에 감도는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장인 연무장은 넓었다. 그러나 그 광활한 크기에 비해, 배치된 인원이 너무 적었다.
시험관으로 보이는 자는 고작 다섯. 그중에서도 두 명 정도가 제대로 된 시험관이었고, 나머지 세 명은 응시자들에게 동선을 안내하는 등의 잡무만을 했을 뿐이었다.
본디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이라고 한다면, 그 규모에 걸맞은 인원이 배치되어야 마땅하다.
시험관의 수가 이렇게 적어서야, 시험을 진행하기는커녕 응시자를 인솔하는 것조차 벅찰 듯했다.
– 아, 아. 죄송합니다. 현재 시험관 일부가 교통체증으로 시험장 입장에 어려움을 겪는 바, 시험 일정이 다소 연기되고 있어…….
응시자들 앞에 서 있던 시험관이 마이크를 쥐고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나는 혹시나 이런 상황에 사탄교가 이곳을 습격해 온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지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만두었다.
더 정확히는, 의미가 없다기보다 가능성이 없었다. 오늘 사탄교가 이곳을 습격해올 일은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입단 시험을 치르기 직전 구준혁이 나를 찾아와 했던 그 말 때문이었다.
– 한동안 조용할 거야.
시험 준비로 바빴던 어느 날, 거대한 까마귀 마수가 기숙사 창문을 깨고 내 방으로 찾아와 구준혁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까마귀는 내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 우리는 내전 중이야. 한동안 로마니카교나 너희, 부두교랑 부딪칠 일은 없어. 우리끼리 싸우느라 바쁘거든. 너희가 ‘색욕’이라고 부르는 그년도 내가 죽인 거고.
– …….
–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안심하라는 거지. 그럼…….
까마귀는 그렇게 말하며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도약을 준비하는 듯했다.
– 나중에, 아니, 이따가, 아니…….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조만간. 조만간, 그래. 조만간 보자. 조만간. 아주 상징적인 말이야…….
푸드득!
까마귀는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고, 거세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도약했다.
그 뒤로 구준혁이 내게 찾아와 말을 전한 적은 없다. 내전인지 뭔지, 아무튼 그걸 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구준혁이 한 말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어찌 됐건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한동안 사탄교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낮을 듯했다.
적어도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이 치러지는 오늘, 사탄교가 습격해올 걱정을 지레 할 필요는 없었다.
쿠우웅─!
그때였다. 정적으로 가득한 연무장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시험관들이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몇몇 응시자들은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된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괴상하게 생긴 생물체들이 연무장 벽을 부수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 사람 두셋 정도는 우습게 죽이고도 남을 듯 흉악하게 생긴 생물체들이었다.
생물체들은 위협적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자, 그것이 마수와 악마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악마종과 마수를 통솔하는 이가 있었다. 얼핏 사탄교 간부와 비슷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그러나 어딘가 달랐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사탄교 간부, 즉 구준혁과 ‘색욕’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인과 비교해 보았을 때…….
“…….”
마침내, 나는 무엇이 다른지 깨달았다. 저건 사탄교 간부가 아니었다. 가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고용된 배우.
즉, 중앙성기사단 입단 시험의 시험관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