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03
제303화
정윤아는 전에 봤던 것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굳이 달라진 점을 찾자면, 눈빛에 조금 생기가 생겼다는 것.
작게 웃어 보이는 정윤아의 모습은, 그녀의 언니인 정인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윤아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서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너희 언니는?”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정인아 얘기를 했다. 정윤아가 나를 흘끔 쳐다보았다.
“왜 언니부터 찾아요?”
“아니……. 왜 같이 안 오나 싶어서. 같이 살잖아.”
“면접 보러 간다던데. 북부사제단인가, 남부사제단인가. 오후에 온대요.”
“아, 그래?”
나는 그렇게 말하고, 더 할 말을 생각해 보았다. 딱히 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정윤아는 1학년 건물에 다다랐을 즈음, 걸음을 멈추고 나를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이따가 학교 구경이나 시켜줘요. 피렌체는 너무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친구 없어?”
“네?”
정윤아가 당황한 듯이 되물었다. 나도 당황했다. 나도 모르게 정인아에게 말하던 것처럼 편하게 말해버린 것이었다.
“아, 이게 아니라……. 알겠어. 점심시간에 찾아오든가 해.”
“저는 2학년 건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네. 내가 갈게, 그럼. 무슨 반이야?”
“자선반이요.”
정윤아는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보았다.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늦었는지, 그녀는 허겁지겁 내게 인사를 하고 교실로 올라갔다.
나는 느긋하게 걸어서 교실로 갔다. 굳이 급하게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렌체는 2학년부터 선택 강의 제도였다. 과에 맞춰서, 혹은 적성이나 흥미 분야에 맞춰서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여 듣는 제도였다.
나는 성기사과에 맞춰 강의를 골랐고, 중앙성기사단에 출근해야 할 것까지 고려해서 시간표를 느슨하게 짰다.
선택 강의 제도는 특성상 교사가 교실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 학생이 강의실을 찾아가야 하는 구조였다. 자연히 이동이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었다.
“오, 도선우!”
가장 먼저 만난 건 강대만이었다. 당연했다. 그 역시 성기사과였으므로, 나와 같은 수업을 들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중앙성기사단에 들어갔다는 소식 들었다! 정말 대단하군. 조만간 따라가겠다! 내가 만일 중앙성기사단에 입단하게 된다면, 네 후임으로 들어가게 되겠군.”
“어어, 그래. 고생해라. 너는 어디 들어갔댔지?”
“동부성기사단이다!”
“한대호 단장님은 잘 계시냐?”
“물론! 네게 안부 전해달라고 자주 말씀하시더군.”
한대호 단장은 잘 지내는 듯했다. 사탄교 간부 ‘색욕’과의 전투에서 한쪽 팔을 잃었는데도 성기사 일은 계속하려는 모양이었다. 하긴, 한대호쯤 되는 인간이면 한쪽 팔이 없어도 건재할 것이다.
“뭐야, 도선우!”
그 다음 만난 것은 한수련이었다. 그 옆에 여민서도 있었다.
“야, 너 중앙성기사단 된 거 봤어. 거긴 어때? 요즘도 군기 잡고 그러나?”
“조금? 심하지는 않아.”
한수련은 호들갑을 떨면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단장은 어떠냐, 거기 있으면 이단 심문관도 될 수 있는 거 아니냐, 등등. 나는 대충 대답해주었다.
“중앙 쪽에 어디 티오 있는 곳 없냐? 되면 나 좀 꽂아줘라.”
여민서는 조금 퉁명스럽고 날카로운 어조로 내게 말했다. 나는 고민하는 시늉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줄 자리는 없는데. 너는 인적성 검사에서 탈락일걸.”
“그래? 근데 너 말을 좀 싸가지 없이 하네?”
나는 여민서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여민서도 웃겼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나서 둘은 각자의 강의실로 들어갔다.
“…….”
한 번은 성하연과도 만났다. 눈이 마주쳤지만 내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성하연도 이제는 달리 내게 말을 걸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전 강의는 대개 이론이어서, 나는 제대로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중간에 교사가 나를 지목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기는 했다. 겨울방학 동안 책을 열심히 읽은 덕분인지, 상식적인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밥을 먹으러 가지 않고 곧장 1학년 자선반으로 향했다.
정윤아는 교실 뒷문 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윤아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다들 정윤아와 친구인 것 같았다.
정윤아를 나를 보더니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정윤아의 친구들로 보이는 아이들은 나를 보고는 자기들끼리 뭔가를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친구들이야?”
“네, 오늘 사귄 애들. 다들 교……. 아니, 선배를 알던데요.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그러던데.”
“알 사람들은 알겠지.”
나는 중앙성기사단에 다른 누구보다 일찍이 입단했기 때문에, 성직자나 성직자를 지망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했다.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유명세였다.
나는 정윤아와 함께 말없이 걷다가, 주변에 사람이 없어졌을 즈음에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말실수하지 마.”
“아, 네…….”
정윤아는 이따금 나를 ‘교주님’이라고 부르려고 했다. 혹여라도 그녀의 입에서 정말 ‘교주님’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큰일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곤란한 일은 겪게 될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주의를 줬고 정윤아는 조금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윤아를 데리고 피렌체 곳곳을 돌아다녔다. 여기가 식당이고, 여기가 도서관, 여기가 2학년 건물이고, 기숙사, 교무실……. 많이도 돌아다녔다.
아이덴 동산과 축사는 데려가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어서.
“저번에 주술을 쓰려고 해봤어요.”
신성 훈련장을 지날 때, 정윤아는 말했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 부두 마력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주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정윤아 외에는 아무도.
“……그래서?”
“안 됐어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가르쳐줄 수 있는 건가?”
“가르쳐주는 건 힘들지. 걸음마를 가르쳐주는 거랑 비슷한 거야. 말로 설명하기 좀 그래.”
더구나 부두 마력을 사출할 줄도 모르는 정윤아에게 주술을 가르쳐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양 손을 펼쳐서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신성력이랑 축복밖에 못 쓰는데, 그럼 도움이 되기는 어려운 걸까요.”
“아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부분에서 네가 필요한 거야. 어떤 면에서는 네가 더…….”
쓸모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려던 나는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신성 훈련장에서 누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신성 훈련장에서 나온 그녀는 검을 쥐고 있었고,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동자로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내가 뭘 들은 거지?”
김진서가 말했다.
“……그러게,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지?”
나는 반사적으로 헛소리를 했다.
“…….”
정윤아는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흐른다.
* * *
마유현은 병원에 있었다. 도선우에게 맞아서 기절한 김 씨의 병문안을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자식은 누구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네 친구 아니야? 어?”
“친구? 친구……. 뭐, 아직은 아니야. 하여튼 미안해. 그 놈이 좀 막무가내, 독불장군. 그런 놈이라서.”
“좀이 아니잖아, 새끼야! 어떡할 거야? 의뢰가 몇 개나 밀려 있는데, 병원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마유현은 김 씨에게 최대한 신경을 써주었다.
1인실을 내어준 것은 물론, 읽고 싶은 책이나 갖고 싶은 전자기기 같은 것이 있으면 전부 사줬다. 매일 과일이나 건강 음료 같은 것을 사다가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
교황청 직속의 능력 있는 치유 사제를 불러서 치유를 부탁하기까지.
마유현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는 하나. 김 씨가 아직은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전국의 거대 용병단과 친분이 깊었다. 용병 업계에서는 김 씨를 거치지 않고서는 의뢰인을 받을 수 없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적어도 콘클라베까지는 김 씨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도선우 때문에 친밀도가 조금 떨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마유현은 이것조차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미안, 미안. 돈은 넉넉하게 챙겨줄 테니까 그렇게 서운한 티 내지 말어. 내가 이거저거 다 계산해서 후하게 챙겨줄게. 의뢰 몇 개보다, 내가 크게 한몫 쥐어주는 게 김 씨한테도 좋잖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네.”
마유현은 김 씨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어떻게든 좋게 말했다. 그러나 김 씨의 입에서는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이래서 어린애들은 안 돼. 장사, 계약, 그런 개념을 몰라. 의뢰인과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걸 돈으로 환산할 수가 있냐고.”
“……그래, 내가 어려서 잘 모르네. 하여튼 내가 미안함의 표시로 김 씨한테 이것저것 잘 챙겨줄 테니까, 너무 화내지 말고…….”
김 씨의 그 말을 들은 마유현은 지독한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표정 관리 하나는 마유현도 프로였다. 어금니를 빠득빠득 갈면서도 김 씨를 향해서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그래, 딱 콘클라베까지만. 교황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콘클라베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그때, 김 씨를 통해서 전국의 용병들을 싹…….
“아니, 아니지.”
그때, 마유현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야, 김 씨.”
“뭐, 야? 너 지금 뭐라고……?”
마유현에게 윽박을 지르려던 김 씨가 입을 다물었다. 마유현의 표정이 기묘했다.
그의 입은 분명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악문 탓에 턱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눈은 김 씨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눈동자가 공허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이었다.
그때 마유현이 입을 크게 벌리고 환하게 웃었다. 새하얀 이가 다 드러났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네. 김 씨!”
“…….”
“김 씨 말이야, 가족이 있지? 근데 의뢰인한테 밝히지는 않고. 독신인 척, 가정이 없는 부랑자, 나그네, 뭐 그런 척 살고 있잖아.”
“……그걸 어떻게.”
“내가 그걸 어떻게 모를까. 술만 마시면 휴대폰을 그렇게 뻔히 열어두고 다니는데. 가나안로 12-29였나? 좋은 곳에 살던데.”
주소까지 나오자 김 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유현을 향해 징징거리며 화를 낼 때와는 다른 의미의 굳음이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아. 그런데 티 내지는 않지.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을 경계하더라고. 실수나 약점을 잊어버리는 법이 없어서 그런가.”
“…….”
“출애굽기 12장 29절, 알아?”
“모, 모르는데…….”
“아오, 씨발. 이래서 사교도들은.”
김 씨는 말하자면 사교도라기보다 무교에 가까운 인물이었으나, 마유현은 개의치 않았다. 그건 그저 아까 느낀 모멸감에 대한 복수로 내뱉은 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찾아서 읽어 봐. 한 번만 더 징징거리면, 거기 나오는 대로 내가 김 씨를 심판해줄 거야. 알아들어?”
“…….”
“그러니까 그냥 내가 뭐 하나 주면 징징거리지 마.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라고. 어?”
마유현이 말했다. 김 씨는 마유현의 살벌한 협박에 겁을 먹은 듯 벌벌 떨고 있었다.
마유현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는 콘클라베를 준비하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추종자들, 달리 말하자면 사병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굳이 추종자들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병합에 성공한 다른 교황 후보를 이용하면 김 씨 하나쯤은 우습게 제거할 수 있었다.
김 씨의 가족들을 찾아 제거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미 사이가 틀어진 김 씨에게는 아첨을 떠는 것보다, 그냥 이 힘으로 협박을 하는 게 훨씬 편하고 효과적일 것이었다.
“김 씨.”
“예? 아, 아니. 어?”
“먹어, 이거.”
마유현은 포크로 사과 하나를 통째로 찍었다. 그러고는 김 씨의 입에 가져다 댔다.
김 씨가 입을 벌려 사과를 베어 물려는 그때, 마유현이 사과를 김 씨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김 씨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사과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마유현은 계속 김 씨의 입에 사과를 밀어 넣고 있었다. 사과 부스러기가 김 씨의 병원복에 후두둑 떨어졌다.
“용병 장사 좀 한다고 나랑 같은 급이라고 생각하지 마. 좀 잘해준다고 나를 밑으로 알지도 말고.”
“웁, 우웁! 컥, 커걱……!”
“말을 잘 들으라고. 앞으로도. 알겠어? 그럼 내가 알아서 이렇게 떠먹여줄 테니까.”
마유현은 거기까지 말하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김 씨가 거칠게 기침을 하며 사과를 토해냈다.
마유현은 김 씨의 병실을 나오고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무음으로 해놨던 휴대폰에 알림이 수백 개나 쌓여 있었다.
“……뭐야, 씨발.”
마유현이 휴대폰을 쥐고 중얼거렸다.
기사가 나 있었다. 교황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교황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있었다.
교황청의 공식 입장이 아닌, 어느 용감하고도 무식한 기자의 속보로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