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06
제306화
‘……저는 신성력이랑 축복밖에 못 쓰는데, 그럼 도움이 되기는 어려운 걸까요.’
‘그런 부분에서 네가 필요한 거야. 어떤 면에서는 네가 더…….’
김진서는 신성 훈련장에서 본의 아니게 엿들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선우의 말에 기분이 나빴다. 정윤아에게, 아니, 사실 정윤아가 아니라 다른 누구였어도 별 상관은 없다. 그냥 도선우가 다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말한 것부터가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부분에서 의구심이 들었다. 정윤아의 말이었다. 신성력과 축복밖에 못 쓰는데,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는 그 말.
정식 성직자도 아닌 피렌체의 학생이, 신성력과 축복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도움이 되기가 어렵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김진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선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신성력과 축복 그 이상의 것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건가? 그 이상의 것이라면 정확히 무엇을?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궁금했다. 도선우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때 궁금했으나, 도선우를 믿기 때문에 잠시 접어두었던 의문이었다.
“…….”
그녀는 도선우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만난다고 해서 의문이 풀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추궁해서 대답을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그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김진서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대답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언젠가,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그는 대답을 해줄 것이다. 김진서는 그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 * *
모든 것은 성유다와 나의 계획대로 흘러갔다.
X는 가족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고 했다.
성유다가 X를 지하 감옥에 보내기 위해서 수많은 거짓 증거를 확보했던 것처럼, X 또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거짓 증거를 만들었다.
거짓된 증거로 죄를 증명하고, 또 거짓된 증거로 결백을 증명하는 재판이 이어졌다.
X는 횡령과 비리 혐의에서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해낼 수 있었다. 거짓 증거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사교와의 내통 혐의와 내란 혐의에 대한 것은 무죄임을 입증할 수 없었다. X가 거짓으로 만들어낸 증거보다, 성유다가 거짓으로 만들어낸 증거가 더 견고하고 강했다.
거짓의 견고함으로 우리는 승리했다. 아니, 승리가 맞나?
어쨌거나 X는 지하 감옥에 수감된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 2주 뒤에. 우리는 쾌재를 불렀고, 곧 어머니를 지하 감옥에서 구출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콘클라베 전에 큰 시위가 한 번 있을 겁니다. 로마니카교 과격파, 정확히는 이번에 죽은 전 교황을 광적으로 지지하던 집단이 벌이는 시위예요. 폭력 시위로 번질 수 있도록 수를 써놨습니다.”
“폭력 시위로 번질 수 있도록? 어떻게 말입니까?”
“……시위대에 우리 쪽 인물을 몇 명 심었습니다. 시위대 측이 먼저 로마니카교 진압군을 공격하게 만들어서, 시위의 규모를 키울 겁니다.”
“…….”
“진압군은 그때 중앙성기사단을 포함한 여러 기관에 지원 요청을 할 겁니다. 우리는 그때를 노립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가 있는 그때.”
성유다가 말했다. 나는 어쩌면 성전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성전은 사실, 부두교도의 시위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부두교도가 모여서 시위를 하던 와중 로마니카교 성직자가 죽었고, 그 결과 로마니카교와 부두교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도, 로마니카교 성직자를 죽인 건 부두교도가 아니라…….
“왜 그러십니까?”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나를 보며 성유다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는 것은 지금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내 감정과 신경을 분산시킬 뿐이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어요. 계속 말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자 성유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이세화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녀가 지하 감옥에서 사라진다고 한들, 공개적으로 수사나 수배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예 수사를 안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교황이 죽었고, 또 차기 교황조차 선출되지 않은 지금, 수사를 해봐야 몇 명의 성직자만 가까스로 동원하는 게 전부일 겁니다. 시위 탓에 지하 감옥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거구요. 정말 급하면 용병단까지 고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사실…….”
“성직자 쪽은 성유다, 당신이 정리할 수 있겠군요. 용병단 쪽은 내가 알아서 정리하면 되고.”
“그렇습니다.”
성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유다는 차후 계획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나도 이미 전부 알고 있던 내용이었으나, 확인 차 다시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지하 감옥에 들어갈 때, 위치 추적기를 달고 간다. 성유다는 그 위치 추적기를 통해 지하 감옥의 위치를 알아내고, 근처로 몰래 접근한다.
지하 감옥에 들어갈 때에 나는 중앙성기사단 소속 선임 성기사 한 명과 동행하게 되는데, 나는 주술로 그의 의식을 빼앗는다.
그리고 지하 감옥에 있는 어머니를 구출하여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유다에게 전달한다.
그때 성유다는 내게 인간의 생김새를 정교하게 본 뜬 인형을 하나 준다. 그 인형을 원래 어머니가 수감되어 있던 자리에 놓는다.
인형으로 지하 감옥의 간수와 중앙성기사단 소속 성기사의 눈을 속인다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그들의 눈을 완전히 속이는 게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가 지하 감옥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들이 뒤늦게 눈치채게 만들기만 하면 됐다.
“전달 과정에서는 바알의 아가리를 사용할 겁니다.”
성유다는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고개를 기울였다.
“……다만, 성물 반입이 제한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부터 괜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니까.”
“믿겠습니다.”
성유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2주 뒤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연락은 잠시 멈추도록 하죠. 교황 사망과 콘클라베 때문에, 교황청 측에서 무작위 도청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음모론자의 헛소문에 불과할 뿐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알겠습니다. 그때 뵙죠.”
나는 성유다의 연구실을 나왔다. 분명 들어갈 때는 날이 밝았는데, 나오고 보니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비가 올 것처럼 구름이 무겁게 껴 있었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다. 비 냄새가 났다. 문득 바론 삼디의 말이 떠올랐다.
‘선택해야만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 의미심장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택해야만 하는 날. 내가 지하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2주 뒤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빠른 시기인가, 늦은 시기인가.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묘한 불안을 느끼며 기숙사로 돌아왔다.
씻고 침대에 누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왔다.
* * *
나는 여느 때처럼 중앙성기사단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별 일은 없었다. 평소처럼 잡무만 떠맡아서 하고 있었다.
교황의 사망이 알려진 이후, 악마종과 마수의 출몰 빈도가 급감한 탓에 출동할 일은 없었다. 중앙이 나설 필요도 없이, 지방성기사단이나 성전사단에서 알아서 처리를 해주었다.
“도선우 성기사. 잠시 이야기 좀 할까.”
단장이 나를 부른 것은, 점심시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원래 중앙성기사단의 단장은 직접 나서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생겨도 그는 자리에 앉아 태연히, 평소와 같은 속도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나 결과는 확실했다. 어떤 어려운 일이나 급한 일도 단장의 손을 거치면 단숨에 해결되었다.
그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단 성기사에 불과한 나를 직접 호명한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무실에 있던 다른 성기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나와 단장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먼저 갈게. 일 보고 와.”
중앙성기사단에서 일하면서 친해진 선임 성기사 한 명이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단장을 따라, 범죄자를 심문할 때에 쓰는 심문실로 들어갔다. 단장은 친히 의자를 빼주었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단장은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주로 심문을 하는 위치인 성기사가 앉는 자리였고, 단장은 반대로 심문을 당하는 범죄자가 앉는 자리였다.
“먼저 다른 곳도 아니고 심문실로 데려온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달리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말이야. 다른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될 얘기를 해야 하거든.”
“괜찮습니다.”
나는 예의 삼아 웃어 보이며 말했다. 실제로 괜찮았다. 단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를 멍한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다가, 돌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번 일은 정말로 놀랐어. 북부성전사단장…….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 놈을 잡아낸 일을 말하는 거야.”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아니, 운이 좋았던 게 아니지. 사실 모두가 직감하고 있기는 했어. 그 놈이 뒤가 구리다는 것쯤, 중앙성기사단에 근무하는 성기사라면 모를 수가 없으니까.”
단장은 그렇게 말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내가 칭찬하는 건, 그 행동력이야. 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더구나 이제 막 입단한 말단 성기사로서는 더더욱.”
“말단이기 때문에 무지했고, 그래서 용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하네.”
단장은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단장이 웃는 모습은 지금껏 중앙성기사단에서 근무하면서 지금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의 웃음에서는 어쩐지 중성적인 느낌이 났다.
“그럼 이제 본론을 말할까.”
단장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지하 감옥에 들어가서 직접 북부성전사단장의 얼굴을 보고 싶은지. 만일 보고 싶다면, 그 일시는 언제로 하고 싶은지 말해 주었으면 해.”
“…….”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갑자기 본론을 꺼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연히 대답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북부성전사단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고, 그 일시는 성유다와 계획한 날짜로 한다.
그러나 바로 대답을 하면 단장의 입장에서 내가 이상해보일 수도 있었다. 단장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어쩌면 나를 의심할 지도 몰랐다.
나는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하 감옥은 이단 심문관을 제외하고는 입장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관습적으로, 중앙성기사단 소속 성기사는 자신이 체포한 자를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있어. 내가 체포한 범죄자가 어떤 처분과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도록 하는 거지.”
“아하.”
“애써 체포했는데 감옥 가서 편하게 떵떵거리면서 살면, 성기사 입장에서 기분도 나쁘고 모양새도 조금 떨어지지 않겠어?”
단장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성유다가 말한 대로였다.
중앙성기사단은 원칙을 중시한다. 그러나 그 원칙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원칙 이전에 수립된 관습이다.
“……직접 보고 싶습니다. 일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다음 주 수……. 아니, 목요일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하 감옥에 가면 생각보다 끔찍한 걸 보게 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네가 체포한 범죄자의 얼굴을 직접 보면, 괜한 연민이나 죄책감이 들 수도 있고.”
“어차피 범죄자입니다. 연민이나 죄책감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끔찍한 광경을 보아도 별로 개의치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건 사실 거짓말이었다. 나는 지하 감옥에 가서 내가 보게 될 광경이 두려웠다. 그러나 전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래야만 했다.
단장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는 뭔가 생각하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기도 하고, 또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기도 했다.
침묵은 길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문제가 하나 있어.”
침묵을 깬 것은 단장이었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교황 사망 소식이 알려진 건 사실 사고였다는 거, 알고 있어? 중앙성기사단 출신의 성직자가 내부 기밀을 유출한 거야.”
“아……. 몰랐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중앙성기사단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야. 저번에 지혜성 사건도 그렇고, 단장인 나로서는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단장이 나를 불렀던 그 순간부터, 자그맣게 일렁이던 불안감이 서서히 커지고 있었다.
“원래는 동행할 성기사는 네가 정할 수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좀 어려울 것 같네.”
“그 말은…….”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직접 너와 같이 가야 할 것 같아.”
단장이 말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