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12
제312화
나는 방에서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본 예배당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밝았다. 아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방이 어두웠던 걸까.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방에서 나왔다. 비로소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 나서 강지아가 만들어준 미음을 먹었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뭘 먹으니 몸에 힘이 조금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수영의 친오빠는 내가 방에서 나왔을 때 이미 깨어나 있었다.
나는 하수영과 함께 있는 그에게 다가가, 가장 먼저 이름을 물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교주님, 이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하수현입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또 고개를 끄덕였다. 하수현. 하수영과 이름이 비슷해서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수영과 이름이 헷갈릴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수영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녀는 내게 뭐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불편한 것처럼.
“왜?”
내가 묻자 하수영은 놀란 듯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아니, 그냥…….”
“편하게 해.”
나는 하수영을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작게 웃어 보였다. 하수영은 그제야 긴장을 조금 푼 것 같았다.
삼촌은 예배당을 치우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거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삼촌도 내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고, 나도 삼촌에게 먼저 말을 건네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나에게는 편했다. 삼촌에게도 편할 것이었다. 우리는 난장판이 된 예배당을 말없이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강지아는 내 방을 치우려고 했다.
“내가 할게요.”
나는 그런 그녀를 저지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청소는 제가 교주님보다 잘하지 않습니까?”
“내가 치우고 싶어서요.”
“…….”
강지아는 더 말하지 않고 비켜주었다.
예배당을 대충 다 정리한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피와 살점이 마구 흩뿌려져 있는 방을 치웠다.
방에서는 끔찍한 악취가 났다. 지하 감옥에서 맡았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악취였다. 대충 시체 냄새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듯한, 그런 냄새.
방을 다 치우고 방향제까지 뿌렸는데도 냄새는 계속 났다. 냄새가 방에 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냄새는 나에게서 나고 있었다.
나는 방 안에 처박혀 있던 동안, 나 스스로에게 냈던 상처를 아직까지 치료하지 않고 있었다.
몇몇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아물었고, 몇몇 상처는 곪아서 썩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도, 썩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일단 몸을 씻었다. 그것으로 악취는 조금 사라졌다. 거울을 봤다. 상처가 많았다. 얼굴에 난 상처는 다행히 아직 곪지 않아서, 복원 주술을 쓰면 흉터 없이 치료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몸에 난 상처들을 복원 주술로 조금씩 지워나갔다. 흉터는 남았지만 이제 악취는 나지 않았다.
전부 정리하고 나자, 예배당은 여느 때와 같았다. 며칠 사이, 삼촌과 강지아, 하수영, 안나는 전부 여느 때와 같아졌다. 그들은 전부 여전했다.
“좀 어때.”
그때, 안나가 물었다. 그녀는 나를 몹시도 불쌍하게 여기는 듯이 보고 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하지만 억지로 웃어 보였다.
“똑같아.”
나는 안나의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성전이 끝난 직후,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살아서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했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성전이 끝난 직후,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때. 그때로부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
예배당과, 예배당에 있는 사람들, 삼촌, 강지아, 하수영, 안나와 같이. 그저 여전할 수 있었다.
나는 피렌체와 로마니카교의 수많은 학생과 성직자들을 속였다. 필요에 따라서는 부두교도들을 속였고, 가끔은 로아에게까지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을 하고, 상대를 속이는 것은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속여야 하는 상대가 설령 나 자신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 * *
성유다는 연구실에 있었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앉은 내내 다리를 떨고, 이따금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 손끝으로 책상을 무의미하게 두드렸다. 그는 불안했다.
우우웅―!
그때 진동이 울렸고 성유다는 황급히 휴대폰을 들었다. 도선우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던 연락이 비로소 온 것이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그렇습니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도선우의 목소리에 그는 다만 묵묵히 대답했다. 도선우는 계속해서 말했다. 성유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만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할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그저 도선우의 말을 듣고만 있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무력했다. 그 무력함이 끔찍했다.
“……알겠습니다.”
뚝.
성유다는 도선우의 말에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멍하니 앉아 있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시 앉았다. 또다시 일어났다.
그러기를 반복했다. 그는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걷다가 다시 주저앉기도 했다.
그 모든 행동에는 의미가 없었다.
“아, 아아……!”
그토록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던 성유다는 마침내 주저앉아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조차 의미가 없는 울부짖음이었다.
성유다는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성유다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행하는 모든 행동이 더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속죄의 방법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구원의 방법 또한 없었다. 그는 이제 속죄할 수도, 구원받을 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하나의 방법만이 그에게는 남아 있었다. 아니, 그것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 * *
“……뭐, 왜?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도선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갑자기 입을 다무는 친구들을 향해, 정인아는 태연한 척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았다.
최근 도선우는 정인아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한 적이 없었지만, 마치 죽은 것처럼 아무 말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만, 정인아는 괜찮았다.
도선우는 원래 그런 놈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늘 말없이 떠나고 사라져 버리고는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언젠가는 돌아왔으므로, 정인아는 괜찮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으면 그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었다. 도선우는 원래 그런 놈이었다.
“그래? 그럼 도선우 얘기 그냥 한다? 뒷담화도 해도 되나?”
“아니, 그건 안 되지. 내 친구를―!”
툭!
그때, 정신없이 이야기하며 걷던 정인아와 친구들 앞에 웬 거구가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거대한 덩치에 정인아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압도되었다.
“아, 미안하다! 미처 못 봤군.”
그러나 상대가 강대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모두들 긴장을 풀었다.
강대만은 그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성격은 무척 온순했다. 어지간한 일로는 화도 잘 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괜찮나? 약하게 부딪혀서 다행이다!”
“아, 응. 괜찮은데…….”
“아, 하지만 그럼에도 아팠을 수도 있겠군. 약하게 부딪혔다고 느낀 건 나뿐일 수도 있으니……. 아무튼 미안하다!”
강대만은 그렇게 몇 번을 더 사과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강대만은 한수련과 같이 있었다. 둘은 마치 연인처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있지, 대만아. 너 저번에 헬스장 나올 때 웬 여자랑 같이 나오던데, 누구야?”
“여자? 아…… 서하린이라고, 작년에 같은 반이었다. 종종 같이 운동을 하고는 하지.”
“아하, 종종……. 미쳤냐? 죽을래?”
“아니, 왜지? 나는 서하린과는 정말로 운동만 한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
“운동은 혼자 하면 되지, 왜 굳이 같이 하냐고!”
한수련은 그렇게 말하며 강대만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강대만은 한수련에게 맞고도 마냥 좋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정인아와 친구들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최근 피렌체에서는 강대만과 한수련이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본인들은 그 사실을 부정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나, 학교에서 매번 붙어 다니는 꼴을 보면 소문이 사실인 게 분명했다.
덩치는 크지만 어쩐지 둔한 분위기의 강대만과, 덩치는 작지만 날쌘 한수련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빛내주는 조합이었다.
정인아와 친구들은 걷다가 여민서도 만났다. 그녀는 원래 한수련과 늘 같이 다녔는데, 강대만과 한수련이 그런 사이가 된 이후로는 혼자 다녔다.
그러나 여민서는 그러한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혼자 다닐 때 그녀는 편해 보였고, 오히려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불편해 보였다.
“여민서, 요즘 성격 좋아졌다던데?”
정인아의 친구 중 한 명이 여민서를 보고 말했다. 사실 여민서는 성격이 좋아진 게 아니었다. 그냥 사고 안 치고 물 흐르듯 조용히 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은 여민서의 성격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여민서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평판은 알아서 좋아졌다.
“김진서는 맨날 신성 훈련장에 있네. 지치지도 않나?”
김진서는 학교에 있을 때면 신성 훈련장에서 종일 훈련만 했다. 그 모습이 멋있다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다.
“야야, 현수막 걸린 거 봤냐? 성하연은 진짜 열심히 살더라. 난 그렇게는 못 살겠던데.”
성하연은 중앙사제단에서 연구를 하면서, 다양한 축복과 기적을 발명하고 발견해내고 있었다.
여러 위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성유다와 마찬가지로, 성하연은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를 향해 꿋꿋이 나아가고 있었다.
“…….”
정인아는 친구들을 통해 문득문득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소식을 들었다.
누군가 피렌체를 자퇴하고 용병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고를 쳐서 정학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인아는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나도, 너도, 우리도 아닌, 그저 먼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의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정인아는 모든 것이 너무나 여전하다고 느꼈다.
바뀐 것은 분명히 있었다. 한수련과 강대만의 관계. 여민서의 성격. 마유현이나 김진서,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바뀌었을 뿐, 크게는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문득 든 생각이었다.
정인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여름이 오고 있었고, 슬슬 햇살도 따가워지고 있었다.
“안녕.”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정인아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도선우가 있었다.
“야, 너…….”
정인아는 갑자기 나타난 도선우를 향해 뭐라고 말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피렌체는 여전했다. 정인아도 여전했다. 그토록 여전한 공간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선우만은 여전하지 않았다. 그는 달라져 있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너, 왜 그래.”
정인아가 물었다.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웃지도 울지도 않는 모호하고 이상한 얼굴로 정인아를 쳐다보기만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