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13
제313화
정인아의 물음에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 웃음은 너무나 선명하게 어색했다.
도선우가 웃을 때, 정인아는 이따금 그 웃음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정확히는 그가 억지로 웃음을 짓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도선우가 뭐 하러 억지로 웃겠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금세 잊히는 얄팍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지금 도선우의 웃음은 달랐다. 그건 정인아가 아니라, 정인아와 함께 있던 친구들조차 위화감과 이질감을 느낄 만큼의 어색한 웃음이었다.
정인아의 친구들은 흘깃흘깃 정인아를 보다가 자리를 비켰다.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인아 맞지?”
친구들이 가고 난 뒤, 도선우는 정인아에게 말했다. 정인아는 처음에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얘가 장난을 치는 건가? 평소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실없는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하려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도선우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했다.
“아닌데? 사실 정윤아야.”
“……진짜?”
“농담이지, 멍청아. 정신 차려.”
정인아는 도선우에게 다가가면서,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정인아는 도선우가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 그저 잠깐 컨디션이 안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학교를 나오지 않았던 며칠 동안 무슨 큰일이라도 겪었던 건지.
도선우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고, 정인아도 당연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다.
도선우와 정인아는 오후에 듣는 수업 중 하나가 같았다.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둘은 강의실로 함께 걸음을 옮겼다.
강의실로 가는 길에 도선우는 정인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며, 입을 다문 채 비척비척 걷기만 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정인아는 불편했다. 그녀는 원래 도선우와 함께 있을 때 종종 찾아오고는 했던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침묵이 너무나 불편하고 거북했다.
“……물어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동안 학교 안 오고 뭐했어? 내내 중앙성기사단에 있지는 않았을 거고.”
“…….”
정인아의 물음에도 도선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인아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정인아의 그 말은 도선우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비참함을 느끼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정인아는 도선우의 성격을 잘 알았다. 적어도 남들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도선우는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리 추궁해도 결코 말하지 않고 끝내 입을 다물어 버리는 성격이라는 것도, 정인아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묵묵히 기다렸다. 도선우가 뭐라도 말을 해주었으면 했다. 그 질문에는 아직 대답할 수 없다는, 그런 상투적이지만 뚜렷한 거절의 말이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아, 뭐라고?”
그때, 도선우가 대답했다. 정인아의 얼굴이 잠시 딱딱하게 굳었다. 도선우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는 정인아의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아니야, 됐어.”
정인아는 더 말하는 것도 지쳐서, 그냥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도선우와 함께 강의실에 들어가고,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정인아는 수업에 집중하기보다는 도선우 쪽을 보았다.
도선우는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사는 이따금 도선우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도선우는 그럴 때마다 아예 대답을 하지 않거나, 질문과는 상관이 없는 이상한 대답을 했다.
“……자, 이러한 성물의 발전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도선우 학생이 한번 말해줄 수 있겠나?”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고통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뭐?”
교사와 도선우의 담론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학생들은 키득거렸고 교사는 얼굴을 붉혔다.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에도 도선우는 꼭 이상한 답변만 내놓았다. 학생들은 도선우에게 뒤늦은 반항기가 찾아온 것 같다며 저들끼리 속닥거렸다.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오후 수업이 전부 끝났을 때, 도선우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정인아를 붙잡고 그렇게 말했다. 도선우는 정인아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정인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도선우에게 잡힌 손목이 부러질 듯이 아팠다. 도선우는 힘 조절도 하지 않고, 그냥 무식하게 정인아의 손목을 잡아서 쥐고 있었다.
“알겠는데, 이거 좀 놓고 말해.”
“어?”
“놓고 말하라고!”
탁!
정인아는 도선우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외쳤다. 그러자 도선우는 한참을 멍한 얼굴로 정인아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고, 얼굴도 완전히 무표정했다. 마치 선 채로 죽은 듯한, 아무런 생기도 활력도 없는 도선우의 그 모습이 섬뜩했다.
“……오늘 진짜 왜 이래? 갑자기 온 거는 그렇다 치고. 너는 항상 그러니까. 근데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무슨, 진짜……! 미친 사람처럼!”
정인아는 도선우에게 ‘미친 새끼’라고 말하려다가, ‘미친 사람’으로 순화해서 말했다. 도선우는 정인아의 외침을 듣고 잠깐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 잠시나마 이채가 돌았다.
도선우는 정인아의 얼굴을 한 번, 그리고 정인아의 손목에 남은 빨간 자국을 한 번 쳐다보고는 몹시 슬픈 듯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
“미안해.”
도선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앞으로 뻗었다. 허우적거리는 그 손은 허공을 마구 휘젓고 있었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손처럼 보였다.
정인아는 사과를 하는 도선우에게 차마 더 화낼 수가 없었다. 정인아에게 사과를 하는 도선우의 표정은 정말 너무도 슬퍼 보였고, 살짝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였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또 화냈네.”
“…….”
“밥은 어디서 먹을 건데?”
정인아는 화제를 돌리려고 물었다. 도선우는 정인아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식당 하나를 골라서 거기로 들어왔다.
인테리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별로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식당이었는데, 가격이 평범하지가 않았다. 메뉴 하나의 가격이 정인아의 한 달 용돈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조, 좀 비싸지 않나.”
정인아는 도선우를 향해 속삭이듯이 말했다. 도선우는 그 말을 무시하고, 종업원을 불러서 메뉴를 제 마음대로 주문했다.
식당에 온 것은 도선우와 정인아, 두 명이었으므로 2인분만 주문했으면 충분했을 텐데, 도선우는 거의 5인분 가까이 되는 양을 한 번에 시켰다.
“뭐, 뭐 하는 거야.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거를……! 그리고 나 돈 없어!”
“내가 사게.”
“…….”
도선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정인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밥을 얻어먹는 입장이었는데도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비싼 음식을 얻어먹게 되니 부담스럽기만 했다.
곧 음식이 나왔다. 종업원은 음식을 내올 때마다, 음식에 들어간 재료와 조리 방법, 그리고 먹는 방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도선우는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식탁 위가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음식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웠다.
정인아는 이 식사 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또 어떤 의미로는 불쾌했지만, 그럼에도 배는 고팠기에 음식을 몇 개 집어 먹었다.
“무슨 맛이야?”
도선우는 음식에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대신 정인아가 음식을 먹으면, 그때마다 맛이 어떤지 물었다.
입맛에 맞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정말로 어떤 맛이 나는지 궁금해서 하는 질문 같았다. 정인아는 우물우물 씹고 있던 음식을 삼켰다.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어. 트러플 향이 어쩌고, 뭐가 뭔지. 이런 걸 먹어본 적이 있어야지…….”
정인아는 투덜대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눈앞에 있는 음식을 착실히 먹어 치우고 있었다.
도선우는 그런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정인아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정확히는 부끄러웠다.
“왜 자꾸 봐?”
“……곧 방학이지.”
도선우는 정인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질문과는 상관도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응? 그렇지……? 필기 끝났으니까, 이제 실기만 끝나면 방학이겠네.”
정인아는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언제 갈까?”
“어디를 가?”
“놀러 가기로 했잖아.”
도선우가 말했다. 정인아는 고개를 갸웃댔다.
“무슨……. 우리가 언제?”
“아……. 아니구나. 아니야.”
도선우는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황급히 저으며 말했다. 정인아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다녔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건지.
“…….”
물어보려던 그 순간, 정인아는 보았다. 드러난 손목 위로 보이는 크고 작은 흉터들. 도선우는 정인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아채고, 옷깃을 다듬어서 손목을 가렸다.
흉터를 가리고도 마음이 불안했는지, 그는 아예 양손을 식탁 아래로 내려서 숨겼다. 그 모습을 정인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지켜보았다.
“왜?”
도선우의 물음에 정인아는 숨이 막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도선우는 정인아에게 놀러 가자고 말한 적이 없었다. 놀러 가기는커녕, 자잘한 약속조차 한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정인아는 최근 도선우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연락도 한 적이 없다.
정인아는 도선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인아는 자신의 앞에 있는 도선우가, 도선우가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도선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인아는 그런 도선우의 모습이 섬뜩했고, 무서웠다. 정인아는 도선우가 처한 상황을 몰랐다.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도울 방법도 없었다. 상투적인 위로의 말조차 섣불리 건넬 수 없었다.
“……아니야. 방학에 놀러 가고 싶어? 그럼 갈까?”
정인아는 의미도 없는 걱정과 위로 대신,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묻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선우의 얼굴에 자그마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전히 그의 미소는 어색했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소나마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정인아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응, 어디로 갈까.”
“……아무 데나. 해외도 좋고, 국내나……. 산으로 가도 되고. 아니면, 바다. 너 가고 싶은 곳.”
“언제?”
“네가 편할 때.”
도선우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정인아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선우도 덩달아 일어났다.
그는 음식값을 전부 지불했다. 식당을 나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정인아는 계속 도선우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마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막막하게 어두웠다.
“별일 없어?”
정인아는 용기를 내어서 물었다. 도선우는 그 질문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응. 많이 괜찮아졌어.”
“그렇구나.”
무엇이 괜찮아졌다는 건지, 정인아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도선우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문득 돌아오고는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문득, 정인아가 예상하지 못한 그 순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멀쩡히 돌아올 것이라고. 정인아는 그렇게 믿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