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14
제314화
똑똑.
강지아는 간식거리를 들고 도선우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몰랐다. 가족도 없었다. 그렇기에 가족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모른다.
대신 추측할 수는 있었다. 그녀에게도 가족과도 같은 사람은 있었다. 이를테면 이진성이나 도선우. 가족이라고 부르기는 뭐하지만 하수영도 이제는 나름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 소중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강지아는 아무래도 슬펐다.
하지만 이진성도, 도선우도, 하수영도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도선우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똑똑.
방 안에 있는 도선우는 강지아의 노크를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강지아는 한 번 더 노크를 했다. 그럼에도 대답이 없자, 그냥 문을 벌컥 열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도선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방은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침구류는 말끔하게 개어져 있었다. 늘 어수선하던 책상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도선우는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묵묵히 책을 읽고 있었다.
도선우는 요즘 멀쩡했다. 정확히는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밖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강지아나 이진성, 하수영, 하수현, 안나,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멀쩡해 보였다.
강지아의 눈에는 그런 도선우의 모습이 오히려 위태로워 보였다.
“교주님.”
강지아는 도선우를 불렀다. 도선우는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강지아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조금 섬뜩했다.
강지아는 터벅터벅 걸어가서, 도선우의 탁자 위에 간식을 올려놓았다.
“조금 드시겠습니까?”
“뭐예요, 이게?”
“쿠키입니다. 방금 만들었습니다.”
도선우는 그릇에 담긴 쿠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쿠키도 만들 줄 알았어요?”
“최근에 배웠습니다. 이것저것 해두면 좋을 것 같아서, 다양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아하……. 미안한데 못 먹을 것 같아요. 요즘 소화가 잘 안 돼서.”
도선우가 말했다. 요즘 도선우는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먹는다고 해도, 남들의 1/3 가량을 겨우 먹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는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는지, 이따금 구토를 했다.
그런 도선우에게 강지아가 괜찮냐고 물으면, 도선우는 늘 괜찮다고 했다. 그저, 잠깐 입맛이 없을 뿐이라면서.
강지아는 그런 도선우를 위해 죽도 끓여보고 미음도 끓여 보았지만, 도선우는 전부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음식이 문제가 아니었다.
“요즘은 좀 어떠십니까.”
강지아가 물었다.
강지아는 도선우가 쿠키를 먹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쿠키를 구워 온 건, 그 빌미로 도선우에게 말을 걸기 위함이었다.
요즘 도선우는 아주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전혀 괜찮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무척 단단하지만, 조금만 균열이 나면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강지아는 이런 빌미를 만들지 않고서는 그에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도선우는 강지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강지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했다.
내내 무표정하던 그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요. 누나는?”
“……저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강지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또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강지아는 눈치가 빨라서 도선우가 하는 말의 진위를 대부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강지아조차 가끔은 도선우의 거짓말에 속았다. 도선우는 거짓말을 잘했다.
하지만 지금의 도선우는 거짓말조차 하지 못했다. 지금의 그는 ‘좋아요’라는 거짓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떨고 있었다.
강지아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무슨 말을 해야 될까. 몇 번을 고민하고 주저했다.
“같이 나갈까요?”
그렇게 고민하던 강지아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용기를 냈다.
아니, 욕심을 냈다.
* * *
로마니카교 사회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악마종과 마수는 이제 더 이상 출몰하지 않았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로마니카교 과격 집단이 콘클라베를 앞두고 시위를 벌였고, 시위군 중 일부가 진압군을 집단 구타하면서 폭력 시위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진압군에 속해 있던 성기사 한 명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고, 시위군에 속해 있던 사람 중 10명이 중상,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진압군과 시위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의 규모를 생각하면, 사상자는 적은 편이었다.
문제는 진압군을 폭행한 시위군의 일부가, 교황 후보인 마유현을 지지하는 단체였다는 것이었다.
콘클라베를 앞둔 상황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마유현이 과격 집단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대중들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진압군 때린 시위대 있지. 걔네가 그…… 레위단! 맞아, 레위단인데, 걔네가…….”
“요즘 같은 시대에 시위를 누가 저런 식으로 해. 애초에 시위를 한 이유는 뭔데?”
“나는 이게 마유현을 견제하는 세력의 정치적인 공작이라고 봐. 근거는…….”
정치에 관심이 많거나, 혹은 관심이 없더라도 정치 얘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몇몇 피렌체 학생들은 줄곧 그것에 대해서 떠들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제각기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유력 후보인 마유현의 위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이번 사태로 마유현은 여러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마유현의 경쟁 세력은 마유현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을 이용하여, 그의 정치적 미숙함을 짚어 공격했다. 그 밖에도 마유현을 지지하는 세력의 비도덕적인 행보 등을 짚기도 했다.
피렌체의 모든 학생들이 이 사태에 관심을 갖는 건 아니었다. 사태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대는 학생은 분명 소수였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파급이 컸다.
“……글쎄, 바다? 기차 타고 간다고 치면, 음…….”
그러는 동안, 정인아는 친구들에게 여행을 위해 자문을 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다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위에서 사람이 죽었고, 또 그로 하여금 수많은 정치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정인아에게는 너무나 먼 이야기였다.
시위를 진압하던 누군가의 의식 불명. 시위를 하던 누군가의 죽음. 부상. 사고. 전투.
각각의 단어를 늘어놓고 보면 사태는 얼핏 심각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사태는 결코 정인아에게 와닿지는 않았다. 먼 어딘가에서 벌어진 비극, 참상. 그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사탄교나 부두교의 공격이 아닌, 로마니카교도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사태에 대해서 애도를 표하기보다, 시위대의 편과 진압군의 편으로 나뉘어서 싸우기 바빴다.
“동해가 낫지 않나? 거기가 해수면도 깔끔하고 예쁘잖아.”
“어차피 당일로 갈 건데 가까운 게 낫지 않아? 동해는 가는 데만 시간 다 쓰겠다.”
정인아의 친구들은 어느 바다로 여행을 가는 것이 나은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왕 가는 거 동해로 가는 편이 낫다, 어차피 당일치기인 거 가까운 서해로 가는 게 합리적이다.
두 파로 나뉜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자신만의 논리를 펼쳐나갔다.
그때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정인아가 조용히 손을 들면서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아직 당일치기로 정해진 건 아니야.”
“…….”
정인아의 말에, 열띤 토론을 벌이던 두 친구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흘렀다. 멀찍이 마유현이 어쩌고, 시위대가 어쩌고 하는 다른 무리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친구는 정인아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당일치기 아니면 뭐, 1박 2일로 가게? 도선우랑 둘이?”
“완전히 미쳤군. 이거 사제 맞아? 사교 아니야?”
“뭐, 아니! 내가 언제 둘이 간댔어? 애초에 도선우랑 간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
정인아는 두 친구를 향해 황급히 해명했다.
“엥, 뭐야. 도선우랑 가는 거 아니었어?”
해명을 들은 친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도선우도 가긴 가지! 근데 이제, 다른 애들도 같이…….”
정인아가 우물쭈물 말했다.
“누구누구 가는데?”
그때, 누군가 물었다. 그 말을 한 것은 정인아도 아니었고, 정인아의 두 친구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대화를 나누고 있던 3명이 아닌, 불청객이 하나 끼어들어서 말하고 있었다.
정인아와 친구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수련이 있었다. 한수련은 싱글벙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야, 언제 온 거야?”
“지나가다가 들렀지. 재밌는 얘기 하는 것 같길래~”
한수련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한수련은 2학년이 되자 피렌체의 거의 모든 여학생과 얼굴을 텄다. 정인아와 정인아의 친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인아의 친구들은 한수련을 웃는 얼굴로 반기는 반면, 정인아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정인아는 사실 도선우와 둘이서만 바다에 가려고 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놀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인아가 보기에 도선우의 상태는 몹시 나빴다. 그는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정인아는 그런 도선우를 위해 이번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한수련이 이번 여행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정인아의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수련은 입이 가벼웠다. 그녀는 여기저기 여행의 존재에 대해서 떠들어댈 것이며, 정인아의 계획과는 달리 이런저런 불청객들이 여행에 끼어들게 될 것이었다.
“……그, 별거 아니야. 그냥 어느 바다가 예쁜가, 그런 얘기 하고 있었던 건데?”
정인아는 한수련을 향해 어색하게 거짓말을 했다. 한수련은 묘한 눈빛으로 정인아를 쳐다보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도선우랑 여행 간다는 얘기 하고 있었잖아. 나 다 들었는데?”
“…….”
젠장, 다 들었군.
정인아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그, 그래. 근데 여행은 아니고, 그냥 근처로 놀러 가려고. 꼭 바다 아니어도 되고, 그냥 어디 아무 데나…….”
“어, 생각해 보니까……. 다 같이 여행 가면 재밌겠다. 애들 모아서 바다나 갈까?”
정인아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던 한수련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는 동안 정인아의 얼굴은 점점 더 굳고 있었다.
한수련이 끼어들자 정인아의 계획은 완벽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한수련은 말한 김에 즉시 사람들을 모으러 갔다. 그녀가 가장 먼저 찾아간 것은 강대만이었다.
“바다? 좋지! 요즘 나는 가슴이 아주 좋아졌다. 바다에 가기에는 최적의 몸이라고 할 수 있지.”
“그건 안 물어봤는데~ 아무튼, 간다는 거지?”
“물론!”
강대만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다음으로 김진서를 찾아갔다.
“……도선우가 온다고?”
“응!”
“걔가 왜? 아니, 애초에 걔는…….”
“아무튼 와! 도선우도 온다니까!”
김진서에게는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었다. 도선우가 온다고 하면 김진서는 무조건 올 테니까.
한수련은 그렇게 통보하고는, 다음으로 성하연을 찾아갔다. 그러나 성하연은 오늘 중앙사제단으로 출근해서 학교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한수련은 여민서를 찾아갔다.
“……바다? 뭐 타고?”
“글쎄, 기차?”
“기차……. 표값이 얼마나 하지.”
“몰라? 내가 내줄까?”
“그럼 당연히 가지.”
기차표값을 내준다는 한수련의 말에 여민서는 흔쾌히 수락했다.
“있지, 인아야! 한 6명 정도 모였어! 너랑 나 포함.”
한수련은 정인아가 있는 교실로 돌아와서 말했다. 정인아의 얼굴은 더 나빠질 것도 없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한참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한수련을 노려보던 정인아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널 데려간다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
“응? 그럼 도선우랑 둘이서만 가려고 했어?”
한수련이 순진하게 물었다. 둘이서만 가려고 했다, 라고 사실대로 대답하면 그건 그것대로 모양이 이상했다.
정인아에게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니, 뭐……. 그래, 네가 알아서 해…….”
정인아는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