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17
제317화
여행을 갈 무렵에 지진이 났다.
큰 지진은 아니었다. 서해라고는 해도, 육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 일어난 지진이었다. 그 덕분인지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 밖에 다른 피해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인아와 친구들이 가기로 한 바다는 동해였으므로, 여행 일정에 변동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여행 당일에 멤버들은 기차역에 모였다. 가장 먼저 온 것은 정인아였고, 그다음이 여민서였다. 둘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정인아도 여민서를 알았고 여민서도 정인아를 알았지만, 별로 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착하고 나서도 둘은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뭐야, 언제 왔어? 엄청 빨리 왔네!”
그 어색한 분위기는 한수련과 강대만이 오고 난 뒤에야 풀렸다.
둘은 이제 사귄다는 걸 숨길 생각도 없는지 아예 붙어 다니고 있었다. 여민서는 그 둘을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꼴 보기 싫다, 너네.”
“부러운가?”
여민서의 말에 강대만이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여민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강대만을 응시했다.
지금 여민서는 당장이라도 강대만의 턱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그리고 참아낸 자신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여민서는 강대만에게 딱 붙어 있는 한수련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이딴 애랑 만나냐? 네가 너무 아까운데, 진짜…….”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한수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솔직히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깝다는 말을 듣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강대만도 마찬가지로, 별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민서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강대만을 지그시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이런 근육 덩어리가 뭐가 좋다고. 별 의미도 없는 살덩어리를 비효율적으로 덕지덕지 달고 있는 거 아니야?”
여민서는 강대만의 몸을 흘겨보며 말했다. 강대만은 그 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는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살덩어리가 아니다. 전부 근육이지. 보통은 내가 아니라, 네 몸에 붙어 있는 그런 것들을 살덩어리라고 부른다.”
“……아주 말을 좆같이 하네? 바다에서 한다이 할까? 탁 트인 곳이라 싸우기도 좋겠네. 공정하고.”
“그러지. 너 같은 살덩어리에게 맞아 봐야 별로 아프지도 않다.”
“이 새끼가 계속……!”
강대만과 여민서는 만나자마자 말싸움을 시작했다. 한수련은 그 풍경이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는, 혼자 있던 정인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정인아의 옷차림을 훑어보며 활짝 웃었다.
“헥, 우리 인아. 오늘 엄청 예쁜데?”
“그래? 음……. 그냥 하는 말이지?”
“아니, 아니. 진짜로!”
한수련은 아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평소에도 늘 들뜬 상태였지만, 오늘은 특히 더 들뜬 것 같았다. 여행을 가는 날이어서 더 신난 모양이었다.
정인아는 그런 한수련의 반응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예쁘다는 말은 듣기 좋았다. 여행을 가는 날인 만큼, 그녀도 평소보다 조금 더 꾸몄기 때문이었다.
“고마워. 너도…… 예쁘네. 키 커서 부럽다…….”
정인아도 한수련을 보고 말했다. 한수련은 전체적으로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말라서 그런지 무척 잘 어울렸다.
“응? 너랑 별로 차이 안 나지 않아?”
“아닐걸…….”
정인아는 조금 우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다투고 있는 강대만과 여민서를 보았다. 그들도 모두 평소보다 조금 더 꾸민 것 같았다.
강대만은 일부러 달라붙는 옷을 입은 건지, 아니면 그냥 덩치가 커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여민서는 중성적인 스타일로 입고 왔다. 성격이랑 잘 맞았다.
정인아는 밝은 톤의 옷을 위주로 화사하게 꾸민 편이었다. 다들 스타일로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도선우는 어떻게 입었을지, 정인아는 조금 궁금해졌다.
“우와, 새까맣네. 안 덥나?”
그때, 한수련이 어딘가를 보며 말했다. 멀찍이 도선우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는 한수련이 말한 대로 온통 새까맣게 입고 있었다. 또한, 그는 더운 날씨에도 긴팔을 고수하고 있었다.
정인아는 저번에 우연히 본, 도선우의 손목에 난 흉터 자국들을 떠올렸다. 흉터 자국을 감추기 위해서 긴팔을 입은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비록 더워 보이기는 했지만 도선우가 입고 온 옷은 괜찮았다. 전체적으로 어두운색을 사용한 덕분에, 오히려 도선우에게는 잘 어울렸다.
그는 오자마자 정인아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멍하니 도선우를 보고 있던 정인아가 뒤늦게 놀라며 덩달아 손을 흔들었다.
“으, 안 더워?”
한수련이 도선우에게 물었다.
“아직 추워.”
도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 * *
다들 기차에 탔다. 다만 김진서는 기차에 없었다.
그녀는 요즘 북부성전사단에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는데, 이번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급히 그쪽으로 갈 일이 생겼다고 한다.
일이 끝나고 오후 중에 합류하겠다고 도선우에게 말을 해두었고, 도선우는 그걸 다시 정인아에게 전달했다. 표값은 사전에 받아 두었으므로 예산에 변동은 없었다.
김진서가 늦게 온다고 말한 덕분에, 원래 그녀와 함께 앉기로 되어 있었던 여민서는 혼자서 가게 되었다.
“자리 넓어지니까 좋네. 쾌적하고.”
여민서는 오히려 좋아했다. 한수련과 강대만은 당연하다는 듯이 같이 앉았고, 자연스럽게 정인아도 도선우와 함께 앉게 되었다.
정인아는 내심 김진서가 늦게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구차하고 부끄러운 생각이었지만, 아무튼.
“바다를 얼마 만에 가는 건지! 정말 설레는군.”
“나도! 대만이랑 가서 더 좋네.”
“바, 밖에서 그런 이야기는 크게 하면 안 된다.”
“왜? 왜 하면 안 되는데?”
“그건……. 내가 부끄럽기 때문이지.”
강대만과 한수련은 앉자마자 자기들끼리 즐겁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고 몇 분이 지나자, 한수련과 강대만은 조용해졌다. 잠든 것이었다. 그 무렵에 여민서는 진작 잠들어 있었다.
다들 잠이 들었을 때도 정인아는 깨어 있었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은 도선우가 신경이 쓰여서, 자고 싶어도 도저히 잘 수 없는 상태였다.
도선우는 턱을 괴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정인아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선우의 얼굴과 눈빛에는 설레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지루하고, 우울해 보였다.
“재밌겠다.”
정인아는 괜히 도선우에게 말을 걸었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도선우가 고개를 돌렸다.
창밖을 보던 텅 빈 눈빛 그대로, 멍하니 정인아를 응시하던 그가 피식 웃었다. 그 미소는 자연스러웠다.
“응, 재밌을 것 같아.”
“……그치!”
정인아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어색하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정인아는 이전처럼 그 침묵이 마냥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인아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의 상태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불편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도선우가 대답을 하기 직전 보여주었던 그 자연스러운 미소가 정인아의 마음에 깊이 남았다.
기차는 생각보다 금방 목적지에 도착했다.
멤버들은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김진서가 30분 이내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도선우가 받아서 정인아에게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정인아는 김진서에게 직접 연락을 받은 게 아니라, 굳이 도선우를 거쳐서 소식을 전해 듣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못마땅한 티를 내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이라 그냥 참았다.
얼마 뒤, 숙소에 김진서가 왔다. 그녀는 일을 하다가 바로 온 것인지, 북부성전사단의 복장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오, 엄청 일찍 왔네? 무슨 일이었어?”
가장 먼저 김진서를 반긴 것은 한수련이었다.
“별거 아니었어. 지진 관련해서 몇 가지 확인할 게 있대서.”
“확인?”
“이질적인 자연재해니까. 부두교 교주의 소행이 아니냐, 뭐 그런……. 근데 확인해 보니까 별거 아니었어.”
김진서가 짐을 풀면서 말했다. 한수련은 그 무렵에 이미 김진서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김진서가 입고 있던 성전사복, 정확히는 북부성전사단의 규정 복장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멍하니 김진서를 쳐다보던 한수련이 작게 감탄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너네 복장은 엄청 예쁘네. 우리는 진짜 촌스러운데.”
“근데 불편해. 쓸데없이 타이트해서.”
김진서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 * *
그들은 바다에 도착했다. 정인아와 여민서는 숙소에서 조금 더 쉬다가 나가자는 입장이었으나, 한수련과 강대만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여행을 왔으니 시간 아깝게 늘어져 있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놀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와……. 사람 봐.”
바다에는 사람이 많았다. 한수련은 인파를 보고 기겁하면서도, 동시에 설렘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각자 챙겨 온 수영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강대만은 상의를 전부 벗고 반바지만 입은 채, 모래사장에서 맨몸 운동을 했다. 잠깐이라도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진짜, 근육이 몸을 지배한 놈…….”
여민서는 그런 강대만을 보고 질색하며 말했다.
열심히 운동을 하던 강대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여민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여민서는 아직 수영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너는 왜 안 갈아입나?”
“나는 바다에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까.”
“흠……. 그래? 한수련!”
강대만은 다소 못마땅하다는 듯이 여민서를 보다가, 대뜸 한수련을 불렀다. 한수련은 이미 수영복으로 다 갈아입고 몸을 풀고 있었다.
강대만과 한수련의 눈이 마주쳤다. 둘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무방비 상태에 있던 여민서를 둘이서 번쩍 들어 올렸다.
“어, 야! 이 씹, 내려. 야, 내려라! 진짜, 좋은 말로 할 때……!”
여민서가 발버둥 치며 말했다. 그녀는 차마 한수련을 때릴 수는 없어서, 강대만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마구 내려쳤다. 하지만 강대만은 결코 여민서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하하! 바다에 왔으면 바다를 즐겨야지!”
“야, 잠깐만. 진짜, 나, 나 수영복 가져왔어. 옷만 갈아입자. 지금 들어가면, 개새끼야! 여벌 옷도 없는데에엑―!”
“잘 가라―!”
강대만은 그렇게 외치며 한수련과 함께 여민서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다에 내던져진 여민서는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젖은 머리를 위로 거칠게 쓸어 넘기더니,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그러고는 위협적인 눈빛으로 강대만을 노려보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뒤졌다, 개새끼야. 덤벼.”
“바라던 바다!”
풍덩!
강대만은 자진하여 바다로 뛰어들었다. 한수련이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서로 물을 뿌리거나, 바다에 빠트리거나 하며 재밌게 놀았다.
강대만이 한수련과 여민서를 빠트리기도 했지만, 보통은 여민서가 바다에 빠지는 역할이었다. 한수련과 강대만이 협공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너는 안 들어가?”
아직 바다에 들어가지 않은 김진서가 도선우에게 물었다. 그녀는 진작 옷을 갈아입고, 피부가 드러난 부분에 선크림을 바르고 있었다.
하지만 도선우는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그저 해변에 앉아서 멍하니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좀 이따가.”
도선우가 말했다. 그는 파도와 하늘이 맞닿는 지점을 보고 있었다. 파도는 높았다. 사람들은 높은 파도에 몸을 맡기며 꺅꺅 비명을 질렀다. 하늘에는 갈매기와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까마귀는 이따금 울었으나, 그 소리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에 묻히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