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18
제318화
강대만과 여민서, 한수련은 정말 재밌게 놀았다.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크윽!”
강대만이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는 기술로 여민서를 바다에 빠트렸다.
“것 버스터!”
“크아악!”
여민서도 웬 이상한 기술명을 외쳐대며 강대만에게 반격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다에 마구 빠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화를 냈던 여민서도, 막상 물에 들어가고 나니 즐거웠는지 웃으면서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한수련은 깔깔대며 두 사람 모두에게 물장구를 쳤다.
“후, 후……! 야, 잠깐 쉬자. 솔직히 좀 힘들다.”
“인정한다. 잠깐 휴전하지.”
“휴전 말고 연합은 어때?”
그러다 서로를 빠트리며 노는 것에도 지치고, 질렸을 때. 휴전을 하려던 그들은 한수련의 제안으로 연합하게 되었다. 그들은 눈동자를 굴리며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그들의 시선은 아직 바다에 들어오지 않고, 파도가 부서지는 얕은 지점 언저리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는 정인아에게로 향했다.
“정인아?”
“정인아.”
강대만과 여민서, 한수련은 마치 원시인처럼 사인을 주고받고는, 정인아를 향해 달려갔다. 정인아에게 저항할 수단은 없었다. 세 사람이 정인아의 팔과 다리를 한 짝씩 들었다.
풍덩!
그러고는 바다에 무자비하게 던져버렸다. 정인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다에 빠졌다. 정인아가 발버둥을 치다가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을 빠트린 세 사람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푸하! 야, 너네……!”
“한 번 더?”
“한 번 더.”
풍덩!
세 사람은 정인아에게 원망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연달아서 바다에 나동그라진 정인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히 넋이 나간 꼴이었다.
그들의 다음 적은 김진서였다. 김진서는 아직까지 바다에 발도 담그지 않고, 도선우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대만과 여민서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강대만과 여민서, 한수련이 일제히 김진서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김진서는 정인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재빨리 그들의 속셈을 눈치채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너다, 김진서―!”
“어, 어! 저 새끼 튄다! 잡아―!”
김진서는 잽쌌다. 여민서와 강대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지만, 김진서는 그들에게 결코 잡히지 않았다.
결국 여민서와 강대만은, 김진서를 따라잡기 위해 축복을 사용했다. 달리던 김진서가 문득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했다.
“이런 미친놈들……!”
악마종과 마수를 토벌할 때나 쓰는 축복을, 고작 이런 일에 사용하다니. 김진서는 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진서도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축복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축복을 사용하려고 정신을 집중한 그 순간, 여민서와 강대만은 이미 김진서를 따라잡은 상태였다.
“잡았다!”
“익, 잠깐만……! 야!”
“잠깐만은 무슨, 죽어라!”
풍덩!
여민서와 강대만이 김진서를 바다에 빠트렸다. 한수련과 정인아는 바다에 빠진 김진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녀의 위에서 꾹꾹 눌렀다.
발버둥 치던 김진서가 겨우겨우 일어나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김진서는 자신을 빠트린 여민서와 강대만, 한수련과 정인아를 차례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김진서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해변에서 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도선우를 향하고 있었다.
“야야, 저기서 후까시 잡고 있는 놈, 마음에 안 들지 않냐?”
“도선우?”
“도선우.”
“가자!”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도선우에게 달려갔다. 도선우는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팔을 잡으려고 들면 팔을 내주었고, 다리를 잡으려고 들면 다리를 내주었다.
사지가 잡혀서 옴짝달싹 못 하는 와중에도 도선우의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풍덩!
그들은 주저없이 도선우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옷도 채 갈아입지 않은 도선우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맥없이 바다에 빠져버린 도선우를 보며 여민서가 깔깔 웃었다.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 바다에 왔으면 바다에 들어가야지.”
“아까 바다에 안 들어가겠다고 한 여민서가 맞나? 역겨운 이중성에 치가 떨리는군…….”
“강대만, 이 새끼가……. 갑자기 왜 또 시비야? 어쨌든 나는 잘 놀았잖아!”
강대만과 여민서가 가볍게 실랑이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도선우는 여전히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도선우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새까만 그림자만 바다 속에 둥둥 떠 있었다.
“……설마 죽었나?”
“야, 설마…….”
정인아와 김진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촤아악!
그때였다. 도선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죽은 줄 알았던 도선우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잠시, 도선우가 성큼성큼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민서가 실소를 흘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을 치다가, 등을 돌려 미친 듯이 달아나며 외쳤다.
“야, 이 새끼 빡쳤다. 튀어!”
“도망쳐―!”
강대만이 덩달아 외치며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치던 그들의 얼굴에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야, 근데 우리가 왜 도망치냐?”
“그러게? 한 번 더?”
“한 번 더 가자!”
그들은 다시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도선우를 잡아들고 바다에 던졌다. 두 번이나 바다에 빠졌다가 일어난 도선우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을 고르던 도선우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강대만과 여민서도 웃었고, 한수련도, 그리고 김진서와 정인아도 덩달아 웃었다.
그들은 서로를 빠트리며 놀았다. 빠지는 사람도, 빠트리는 사람도 모두 웃고 있는, 그런 날이었다.
* * *
“……쟤들은 지치지도 않나?”
한창 놀다가, 지쳐서 모래사장으로 돌아온 정인아가 말했다. 그녀는 강대만과 여민서, 한수련을 보고 있었다.
김진서와 정인아, 도선우는 놀다가 힘들어서 도중에 바다를 나왔는데, 나머지 셋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놀고 있었다. 특히 처음에는 바다에 들어가기 싫다며 난리를 피웠던 여민서가 가장 열심히 놀았다.
도선우는 열심히 놀고 있는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보다는 생기가 있는 눈동자였다.
그는 이제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모든 게 괜찮았다. 여행도 계획한 대로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었고, 바다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다들 잘 놀았고, 날씨도 좋았다. 정말로, 모든 게 괜찮았다.
“어, 어어……!”
파도가 이상해진 것은 그 무렵이었다.
콰아아―!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유난히 거칠었다. 높은 파도를 보며 환호성을 질렀던 사람들은, 슬슬 이상함을 감지하고 표정을 굳혔다.
그들은 슬금슬금 바다에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나올 수 없었다. 그들은 해변을 향해 헤엄쳤지만, 어째서인지 점점 더 해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안류?”
강대만이 중얼거렸다. 그는 그 무렵에 발이 닿는 곳에서만 놀고 있었으므로 다행히 이안류에 휘말리지 않았다.
“어라? 나, 나 바다로 자꾸 빨려 들어가! 구, 구해줘!”
문제는 한수련이었다. 그녀는 발이 닿지 않는, 물이 깊어지는 지점에서 튜브를 끼고 놀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점점 해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강대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도움을 청하는 것은 한수련만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놀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이한 파도의 흐름에 휘말려서 점점 깊은 바다로 끌려가고 있었다.
해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안전요원들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몇몇 요원들은 이미 바다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구하러 헤엄치고 있었다.
강대만도 한수련을 구하러 갈 준비를 했다. 허겁지겁 바다에서 빠져나오고 있던 여민서가 강대만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야! 뭐 하려고?”
“구하러 간다. 당연히.”
“너도 휘말리면 어쩌려고? 그땐 진짜 답 없어!”
여민서가 말했다. 강대만은 코웃음을 쳤다.
“난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이 있다. 저 정도 이안류에는 휩쓸리지 않지.”
“학생도 그거 딸 수 있는 거였냐?”
“성기사는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희망자에 한해서.”
“오, 그래? 그럼 빨리 구하러 가!”
풍덩!
강대만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능숙한 수영 솜씨로 한수련에게 다가갔다.
강대만은 그녀가 끼고 있던 튜브를 거칠게 잡아당기고는, 해변 쪽으로 다시 수영을 해서 나왔다. 가까스로 해변으로 돌아온 한수련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와, 지, 진짜.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우와, 미친. 미친……!”
“내가 아니었으면 위험했을 거다. 이번 일로 성전사와 성기사의 격차가 드러났군.”
강대만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는 동안, 바다로 들어간 요원들은 능숙하게 사람들을 구해내고 있었다. 아직 구조되지 않은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비명이 컸다. 까마귀가 울었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섞여서 불쾌하고 불길한 울림을 자아내고 있었다.
“…….”
그때, 도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함께 있던 김진서와 정인아와 동시에 고개를 들고 도선우를 올려다보았다.
도선우는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어딘가 먼 곳. 그곳을 보는 도선우의 눈동자는, 요동치고 있었다. 늘 공허하게 비어 있었던 그의 눈동자는 지금 크고 격정적인 어떤 감정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라 시렌.”
촤아아아―!
도선우가 중얼거리자, 파도는 다시금 기이하게 움직였다. 파도는 높았고 거칠었다. 그러나 그토록 거친 파도로 하여금 사람들은 다시 해변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요원들이 미처 구하지 못해서 저 멀리까지 떠내려간 사람들도, 파도를 타고 하나둘 해변으로 돌아왔다.
김진서와 정인아는, 도선우가 뭐라고 중얼거린 것인지 듣지 못했다. 하지만 눈치껏 그들은 알 수 있었다.
도선우가 파도를 움직였다는 것을.
“……뭐야, 어떻게……?”
김진서가 중얼거렸다. 기적 재현은 아니었다. 기적 재현의 전조인, 신성력의 꾸물거림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도선우는 신성력을 사출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떠한 말을 중얼거리는 것만으로, 파도를 조종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이상한 일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인 일이었다.
이질적인 일.
김진서는 그 말이 익숙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지 못하고, 따로 온 것도 그 이질적인 일 때문이었다.
서해 부근에서 일어난 지진. 그것이 이질적인 자연재해였기 때문에.
“……뭐야?”
김진서가 물었다.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막연히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저 멀리, 파도를 딛고 바다를 걸어오고 있는, 또 다른 이질적인 남자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선 기묘한 분위기의 여자를 보고 있었다.
정인아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그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빨리 나오세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들어가시면―!”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외쳤다. 안전요원은 남자와 그 옆에 있는 여자를 향해 나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구준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안전요원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주인공들 얘기하시려는데 감히……. 조용히 좀 해라. 빵!”
콰직.
남자의 등 뒤로 검고 거대한 손가락이 나왔다. 그것이 쏘아낸 검붉은 불꽃이 요원의 몸을 관통했다.
요원의 몸통이 통째로 사라졌다. 요원의 팔, 다리, 머리가 가지치기를 당한 나뭇가지들처럼 우수수 바다에 떨어졌다. 바다가 핏빛으로 번졌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전염되었다. 한 사람이 지른 비명은 모두의 비명이 되었고, 그들은 혼비백산 도망쳤다.
“……구준혁.”
정인아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결국 바다에서 만나는구나, 우리.”
“…….”
정인아는 침묵했다. 도선우도 침묵했다. 김진서는 구준혁을 보았고, 도선우를 보았다. 도선우는 눈물을 흘리며, 구준혁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구준혁 옆에 있는 묘한 분위기의 여자를 보고 있었다.
* * *
전부 참을 만했다.
강지아와 공원에 갔을 때,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전부 죽는 모습을 상상했다. 공원은 불타고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모습을.
나중에는 상상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새삼스럽게도 미쳤다고 생각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환청이 들렸다. 나의 무능함 때문에 죽었던, 혹은 내가 죽였던, 어떤 의미로든 나와 연관된 모든 죽은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나서, 나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말을 했다.
그들의 살점에서는 썩은 내가 났다. 나는 그들을 죽였다.
“꺄아아아악―!”
“사, 사탄교다! 신고, 빨리 신고해―!”
“살려줘, 살려주세요! 사탄교, 사탄교가―!”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으므로, 죽여도 죽지 않았다. 그들을 죽이고 조용해진 방 안에서 다시 잠을 청하면, 그들은 일어나서 다시 내 귀에 대고 저주를 속삭였다.
나는 그들을 죽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중에는 어머니도 있었다. 나는 어머니조차, 수없이 많이 죽였다.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어머니의 죽음이, 밤마다 수십, 수백 번 되풀이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견딜 만했다.
공원에서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별 느낌은 없었다. 촉각이 희미해진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부드럽고, 따스하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잠이 오지 않던 밤에, 강지아를 찾아갔다. 나는 너무도 추하고 부끄럽게 울었고, 그럼에도 강지아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안아주었다. 그 품이 내게는 따스했다.
바다로 놀러 와서, 친구들과 놀았다. 바다라고 해서 별로 다를 건 없었다. 내게는 그저 그런 풍경들 중 하나였다. 큰 설렘은 없었다.
그럼에도 서로를 빠트리고, 가끔은 내가 빠지기도 하는 그 과정이, 나는 즐거웠다. 잠깐이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 속할 수 있었다.
과거를 좇았던 나날들을 잊고, 과거를 상실하며 느꼈던 슬픔을 잊고, 이대로. 어쩌면 평범하게 모두와 섞여서, 그들에게 속한 채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살아가도 된다고, 생각했다.
“꺄아아악―!”
“도망쳐라!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살려줘, 살려주세요, 으, 으어헝……!”
잠깐이었다.
나는 구준혁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하얀 옷을 입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여자를.
“도선우, 재회 기념 선물이야!”
“선우야.”
여자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너무나 다정하고, 따스하게. 그 여자는 나의 어머니였다. 나의 눈앞에서 죽었던 어머니. 내가 밤마다 몇 번을 죽이고, 또 죽였던 어머니.
그녀가 나의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지하 감옥에 있어야 할 구준혁과 함께.
“…….”
나는 그것이 구준혁의 박제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아닌, 단지 어머니의 외형을 완벽히 본뜬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밤마다 수없이 많은 어머니를 죽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어머니에게는 손도 댈 수 없었다. 이건 환각이 아니었으니까. 실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으니까.
나는 구준혁을 지하 감옥에서 탈옥하게 둔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내 앞에 펼쳐진 모든 상황이 내게는 마치 환각이나, 상상처럼 느껴졌다.
“방해꾼들은 치우자. 그게 너한테 편할 테니까.”
화륵!
구준혁이 손가락을 들었다. 손끝에서 검은 불꽃이 휘몰아쳤다. 그의 손가락은 내 옆에 있던 김진서를 겨누고 있었다.
구준혁의 등 뒤로, 수십 개의 검은 손가락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의 손끝에서는 하나같이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검은 손가락들은 강대만과 한수련, 여민서, 그리고 그 밖에 도망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겨누고 있었다.
“……도선우.”
김진서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김진서를 보았다.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는 체념 섞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죽음을 짐작한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을, 드디어 알아차린 것처럼. 그렇게 웃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고, 무너지고, 그리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차츰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됐다.
그 미래에는 김진서도 있었고, 정인아도 있었고, 그리고 한수련, 여민서, 강대만도, 전부 있었다.
내가 그린 그토록 희망적인 미래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그저 희망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담 발라.”
나는 담 발라를 불렀다. 자그마한 뱀의 형태로, 모래사장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지팡이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쥐었다.
쿠웅―!
지팡이로 지면을 내리찍었다. 땅이 진동했다. 모래사장을 뚫고 거대한 식물 줄기들이 올라왔다. 구준혁이 쏘아낸 검은 불꽃, 흑마법이 식물 줄기에 막혔다. 흑마법에 맞은 식물 줄기가 까맣게 썩어 들어갔다.
다시 자라난 식물 줄기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란브와의 권능 덕분에, 구준혁의 흑마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진서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나는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있는 자리에, 그녀는 있을 수 없다. 정인아도, 강대만도, 한수련, 여민서, 모두. 내가 있는 자리에 그들의 자리는 없다.
또한 그들이 있는 자리에 내가 있을 자리도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속할 수 있었던 것은, 속했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존재가 거짓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교주야.”
나는 사이비였다. 그것은 바뀌지 않고, 또 바꿀 수도 없는, 진실이었다. 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