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21
제321화
피잉―!
고요한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청아한 소리. 나는 나의 손가락 3개를 교차로의 주인인 렉바와 칼푸에게 바쳤다. 그리고 교차로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 초대된 것은, 당연하게도 나와 구준혁이다.
정석적인 의식이나 제사 없이 열린 통로였다. 당장 바칠 수 있는 제물인 손가락 3개 따위를 바치고, 나는 구준혁을 교차로에 불러냈다.
합당한 제물을 바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교차로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 한정된 시간 내에, 나는 구준혁의 목숨을 끊어야 했다.
“여기서 끝을 보자.”
나는 말했다. 구준혁은 웃으며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처럼 그의 등 뒤에서 검은 손가락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교차로는 부두교만의 공간. 그곳에서 구준혁의 흑마법은 발동될 수 없었다. 기이함을 넘어 기괴하기까지 한 그의 회복 능력도 힘을 잃을 것이었다.
“……비겁한 놈. 네 나와바리에서 싸우자는 거냐?”
“비겁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지.”
나는 구준혁의 말을 무시하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곳에서는 로아의 권능조차 무력하다. 무력하다기보다, 써도 별 의미가 없다.
이곳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어떤 기적도, 권능도 아닌, 순전히 육체. 주먹과 다리, 나아가서는 몸에 달린 손톱과 이빨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무기였다.
주먹을 굳게 쥐고 서로에게 다가가던 우리는, 어느 순간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우리는 같은 곳에 있는 같은 사람을 보고 있었다. 교차로에, 내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와 있었다.
“…….”
정인아였다. 그녀는 멍청한 얼굴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 * *
정인아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난장판이 된 해변도 아니었고, 주술과 흑마법이 오가는 전투의 현장도 아니었다.
그녀로서는 처음 마주하는,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적막한, 기이하고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밤하늘이라고 말하기에도 지나치게 어둡고 깜깜한 하늘에는 불길한 모양의 달이 떠 있었다.
달은 핏빛처럼 붉었고, 그 빛은 어둠이 내린 이 공간에 스산하게 내리깔려 있었다.
정인아는 순간 자신이 죽은 줄 알았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버려서, 연옥이라는 공간에 와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선우와 구준혁. 두 사람이 같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마주한 구준혁은, 똑같았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구준혁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건 도선우도 마찬가지였다. 도선우는 똑같았다. 다만 지팡이를 들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지팡이, 그것을 보자 정인아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도선우가 그토록 이상했던 이유. 평소에 자신에 대한 것을 그토록 철저하게 숨겼던 이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까지.
“너……. 너! 너 이……!”
깨닫고 나서, 정인아는 분노했다. 그녀는 말을 다 끝맺지도 않고 도선우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도선우는 저항하지 않았다. 정인아가 멱살을 잡으면 잡는 대로, 흔들면 흔드는 대로 전부 받아들였다.
그 역시 정인아의 등장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구준혁도 마찬가지로 놀란 기색이었다.
“이, 이 배신자……!”
정인아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깊은 침묵 속에서, 누군가 피식 웃었다. 구준혁이었다.
처음에는 작게 실소만 흘렸던 그는 이윽고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구준혁은 도선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 배신자! 감히 우리를 속이다니. 염치도 없는 놈!”
“네가 할 말이냐?”
도선우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인아는 분노에 찬 얼굴로 도선우를 노려보다가, 이윽고 절망에 찬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정인아는 도선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가 부두교라는 사실을, 나아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종교가 달랐고, 종교에 의해 소속된 집단이 달랐다. 처음부터 그들은 달랐던 것이다.
도선우도, 구준혁도, 그리고 정인아도.
“애초에 다짜고짜 싸움은 왜 건 거야? 나는 싸우기 전에 먼저 대화부터 하려고 했는데.”
정인아의 등장으로 싸움이 잠시 멈춘 틈에, 구준혁이 말했다. 도선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해. 싸움을 안 걸게 생겼냐?”
“내가 뭘 했는데?”
“내 어머니를 모욕했지. 되도 않는 박제를 가져와서는, 선물이다, 뭐 어쩌고 하면서.”
“모욕이 아니지. 그건 내 완벽한 작품이었어. 어떤 의미로는 네 진짜 어머니보다 나은…….”
“안 되겠다. 넌 좀 맞자.”
도선우가 주먹을 쥐면서 말했다. 정인아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구준혁도, 도선우도, 정인아가 아는 그대로였다. 입학한 직후 셋은 늘 함께 다녔다. 그때의 대화와 지금의 대화는 거의 같았다. 조금은 유치하고, 그렇기에 웃음이 나오는 대화.
도선우는 지금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쥐고 구준혁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었다.
구준혁도 가만히 맞고만 있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얼핏 여유로워 보이는 웃음을 입에 머금고, 도선우를 응시하며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정인아는 그 두 사람 사이를 막아섰다. 뭔가 생각이 있어서 벌인 짓은 아니었다. 그저 몸이 먼저 움직였다.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기 직전이었던 두 사람이 멈춰 섰다. 정인아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왜, 왜 또 싸우려는 거야. 그래도, 대화라도 좀…….”
정인아가 말했다. 왜 싸우려는 거냐는, 그 질문이 얼마나 멍청한 것인지는 정인아 스스로도 잘 알았다.
로마니카교, 부두교, 사탄교는 공생할 수 없다. 양립할 수도 없다. 로마니카교의 존재가 부두교와 사탄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부두교의 존재는 다른 두 종교의 존재를 부정한다. 사탄교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없앨 수밖에 없다. 그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존립과 생존이다.
하나 그토록 멍청한 질문이라도, 도선우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는 정인아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구준혁을 섬뜩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왜 기어 나왔냐?”
구준혁은 고개를 갸웃댔다.
“다짜고짜 뭔 소리야?”
“지하 감옥에서 곱게 늙어 죽을 것이지, 왜 기어 나왔냐고.”
“아하, 그 얘기구나.”
구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나 하려고 온 거야. 그러고 나서는 다시 떠나려고 했지.”
“떠나?”
“그래. 아주 먼 곳으로 떠나서, 나는 나의 왕국을 세울 거야.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 거다.”
나름 진지하게 듣고 있던 도선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진정으로 구준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기는 정인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왕국을 세운다는, 다섯 살짜리 어린애가 할 법한 말을 그는 진지하게 입에 담고 있었다.
“정신 나갔냐?”
도선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구준혁은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일곱 개의 죄를 전부 가졌어. 다른 놈들……. 너희 말로 하자면, 다른 사탄교 간부들을 죽였거든.”
“그거 참 대단하네.”
“내가 존재하는 한, 더 이상 사탄교는 나오지 않아. 악마종도, 마수도. 그것들이 나올 수 있는 죄를 모두 내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냐? 그럼 자살해. 네가 죽으면 세상의 죄가 전부 사라지겠군.”
도선우가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죽는다고 사탄교가 사라지는 게 아니야.”
구준혁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릇’이야. 사탄교 자체가 아니지. 내가 죽으면 어딘가에서 다시 ‘그릇’으로 선택된 자가 나온다. 그리고 그자는 필연적으로…….”
구준혁은 잠시 어딘가를 보았다. 그는 도선우도, 정인아도 보지 않고 그저 먼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초점을 잃었다. 이윽고 초점이 돌아올 무렵에 그는 말을 이었다.
“……필연적으로, 그릇에 걸맞은 삶을 살게 되지. 그럼 그는 아까 내가 말한 불합리한 피해자가 된다.”
“…….”
“왕국이 세워지기만 하면 더 이상 불합리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아. 로마니카교를 없애고 나면, 우리를 탄압할 종교도, 우리와 갈등할 종교도 더는 없겠지.”
“로마니카교만 없앤다고 갈등할 종교가 없어지는 게 아닐 텐데.”
“맞아. 부두교도 없애야 해. 그 밖에 다른 모든 종교도, 전부.”
구준혁이 말을 이었다.
“새로운 시대에 종교는 하나뿐이어야 해……. 다수의 종교는 갈등을 불러올 뿐이니까. 우리가 지금 그러하듯이.”
“…….”
“로마니카교와 부두교가 사라지더라도, 너희 두 사람 자리 정도는 남겨둘 생각이야.”
구준혁은 정인아와 도선우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도선우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딱 사탄교가 할 만한 발상이군. 악하고 이기적인 발상의 표본이야.”
“나는 질서를 재정립할 뿐이다. 거기에 선악의 구분이 끼어들 여지가 있나?”
“있지. 사탄교 새끼가 정립한 질서가 선일 리가 있나?”
“도선우. 그럼 지금 존재하는 질서는 선이냐? 하나의 종교가 다른 종교를 악으로 단정하고 섬멸하려는 이 질서가?”
구준혁은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설령 부두교가 질서를 정립한들 그것이 선일까? 절대적 선악은 없어. 질서를 세우면서 선악은 만들어지는 거다. 질서를 세운 절대적 강자를 위해, 선악이 규정되는 거지.”
구준혁이 말했고, 도선우와 정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인아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도선우는 그저 멍하니 구준혁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할 말이 있나?”
침묵 속에서 구준혁이 말했다.
도선우는 마치 구준혁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그의 심정을 전부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비웃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구준혁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가족한테 사랑을 못 받았으면 박제들 데리고 소꿉놀이나 해. 되도 않은 왕국 같은 소리 하지 말고.”
“…….”
그 말을 들은 구준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금껏 내내 여유로운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던 그가, 처음으로 정색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역시 네 자리는 없는 편이 낫겠어, 도선우. 너는 내 왕국에서 걸림돌이야.”
“누가 내 자리 만들어 달랬냐? 네 묫자리나 알아보는 건 어때?”
도선우가 구준혁을 대놓고 비웃으며 말했다. 둘은 당장이라도 다시 싸울 듯이 서로를 노려보다가, 곧 서로를 향해 꽉 쥔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야, 잠깐……!”
그 싸움을 정인아는 말릴 수 없었다. 정확히는, 말릴 겨를이 없었다.
피잉―!
청아한 소리와 함께, 정인아의 시야가 뒤바뀌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붉은 달빛이 내리깔린 음산하고 어두컴컴한 거리가 아닌 난장판이 되어버린 해변이었다.
거대한 나무줄기가 바람을 따라 출렁였다. 먼 어딘가에서는 뭔가 부서지고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어, 여기! 단장님, 여기에 사람 있습니다!”
그때, 정인아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성기사였다. 어느 지역의 무슨 성기사단인지는 모르겠지만, 입고 있는 옷이 누가 봐도 성기사였다. 그는 동료들을 데리고 정인아를 향해 황급히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그 물음에 정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저 멀리에 있는 바다를 보고 있었다.
굉음과 폭음이 무섭도록 요란하게 들려오는, 도선우와 구준혁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 그 어딘가의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정인아는 그 싸움을 막을 수 없었다. 말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가 피해를 입을 일도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