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22
제322화
교차로에서 나왔다. 붉은 달빛도, 어둠이 내리깔린 길도, 이제는 없었다. 눈을 떴을 때 구준혁은 바다 위에 떠오른 살점을 밟고 서 있었으며, 나 또한 그러했다.
구준혁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 눈동자는 염소의 것처럼 동공이 가로로 나 있었다.
등에 난 날개는 탈피를 거듭하며 한층 기괴한 몰골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는 검고 긴 손톱이 자라났고, 양 다리에서는 굵은 털이 북슬북슬 자라나서 꼭 짐승의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사탄이었다. 수많은 명화와 성화에서 그려진 사탄의 모습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참…… 정말 못생겼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구준혁은 그렇게 말하며 날개를 펼쳤다.
“이제 2페이즈다. 2페이즈부터는 봐주고 그런 거 없어.”
“아까는 봐준 척하네. 입 닥치고 들어와.”
구준혁이 날개를 펄럭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바데!”
[아아, 오늘은 바쁘구만! 하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아!]바데의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웅―!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내 주위로 부는 바람은 온화했지만, 구준혁을 향해 부는 바람은 거셌다. 내 몸은 바람을 타고 차츰 공중으로 떠올랐으며 구준혁의 몸은 바람에 의해 밀려나고 있었다.
구준혁의 날갯짓은 그 무렵에 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의 날갯짓은 바데의 바람을 이겨내기에는 턱없이 약했다.
“쫄았냐? 바람으로 방어막 치고 도망이나 가려고?”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팡이로 놈을 겨누었다.
“마리네트.”
나는 마리네트를 불렀다. 원래 바데와 마리네트는 사이가 좋지 않다. 바데는 마리네트를 배신자로 여겨서, 결코 힘을 합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마리네트를 불렀다. 선지자로서 로아에게 권능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로아의 권능이 ‘사용되도록’ 강제하는 것.
위대한 선지자였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방식이었다.
콰아아아아―!
지팡이 끝에서 솟아오른 불꽃이 구준혁을 향했다. 구준혁을 휘감고 있던 바람을 타고 불꽃은 거대하게 번졌다. 폭발음과 함께 구준혁의 몸이 불꽃에 휩싸였다.
불꽃은 유난히 붉고 환했다. 나는 마리네트의 권능으로 불러낸 불꽃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지금 구준혁을 향해 쏘아낸 것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이었다.
“아……!”
불꽃에서 나온 구준혁은 당장이라도 녹을 것처럼 흐물흐물한 상태였다. 촉수가 그의 몸을 훑었지만, 그의 몸은 쉽사리 낫지 않았다.
당연하다. 바데의 권능과 만나 더욱 강력해진 마리네트의 불꽃이, 그의 몸에 달라붙었기 때문이었다.
그 불꽃은 꺼지지 않을 것이며 구준혁의 몸을 계속 태우고 녹일 것이었다. 이것으로 회복 능력은 사실상 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다 왔다. 이제 마지막 일격만 남았다. 나는 어느덧 깜깜해진 하늘 위, 떠오른 붉은 달을 보았다. 그리고 달을 향해 팔을 내밀면서 입을 열었다.
“칼―!”
딱.
그러나, 내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구준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달은 사라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까마득한 어둠만이 남았다.
위, 아래, 좌우 어디를 살펴도 전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이 어쩐지 익숙하다고 느꼈다.
사탄교 간부, ‘색욕’. 그것과 전투할 때, 나는 이와 같은 공간에 들어와 본 적이 있었다. 즉 이곳은 사탄교의 공간.
교차로가 부두교와 나의 장소였다면, 이곳은 사탄교와 구준혁의 장소였다. 내가 그를 교차로에 초대했듯, 구준혁 또한 나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끌고 온 것이다.
“……비겁한 놈. 네 영역에서 싸우자는 거냐?”
“뭐? 아니, 아까는 비겁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라며?”
어디선가 구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어이가 없다는 듯한 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기억하며, 부두 마력을 사출했다.
주술진을 그리고 참수검을 뽑았다. 구준혁의 목소리가 들려온 그 방향을 향해 참수검을 겨누고, 던질 준비를 했다.
뻐억!
그때였다. 누군가 내 머리통을 강하게 때렸다. 까딱하면 바로 눈알이 뒤집히고 기절했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고통은 없었지만, 머리를 맞은 탓에 어지럽고 눈앞이 핑핑 돌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마수와 악마종, 그리고 흉측하게 생긴 박제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 씨…….”
나는 짜증이 나서 중얼거렸다.
“추잡하게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추잡이 아니라 현명한 거라니까! 하하!”
구준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경박한 웃음소리가 듣기 거슬렸다. 나는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지점을 한층 정확하게 짚고, 기억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마수와 악마종, 박제의 수를 셌다. 암흑 속이라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30마리는 있는 것 같았다. 암흑 속에 몸을 숨긴 것들까지 생각하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얼마나 많든, 어차피 의미는 없다. 구준혁은 결판을 짓기 위해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것이 아니다. 잠시 시간을 벌고, 그동안 조금이라도 회복을 하려고 한 것이리라.
내가 해야 할 것은, 최대한 빨리 여기에 있는 모든 악마종과 마수를 처치하고, 구준혁에게 마지막 치명상을 입히는 것. 나는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서걱!
참수검을 휘둘렀다. 악마종의 내장이 바닥에 흐르고, 검은 피가 튀어서 얼굴에 달라붙었다.
다시 검을 휘둘렀다. 반으로 잘린 마수의 피가 내 머리 위에 쏟아졌다.
검을 휘두른다. 박제에서 뿜어져 나온 톱밥과 솜이 몸에 붙었다. 악마종을 죽이면 그 뒤에 마수가 나왔고, 마수를 죽이면 박제가, 박제를 죽이면 다시 악마종이 나왔다.
그것들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마수나 악마종, 박제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의 악마종이나 마수는, 참수검을 대충 휘두르기만 해도 픽픽 죽어나갈 만큼 약했다. 하지만 구준혁의 악마종과 마수, 박제들은 달랐다.
그것들은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은 것처럼 보여도 꿈틀꿈틀 움직이며 어떻게든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나는 악마종의 떨어진 머리통과, 머리 없는 마수의 몸뚱이, 토막 난 박제 조각과도 싸워야 했다. 참수검 하나로는 그 모든 것들을 썰 수 없었다.
썰고 또 썰다가, 참수검이 닳아서 없어지면, 새로운 참수검을 꺼냈다. 처음 몇 번은 괜찮았는데, 5번째쯤 되니 코피가 흘렀다.
“보수, 더!”
몇 마리나 죽였을까. 걷는 곳마다 악마종이나 마수, 박제의 사체가 밟힐 무렵, 나는 보수를 불렀다.
구준혁과 마주한 이후로 계속 보수의 권능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부작용을 염려하여 최대한도까지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악마종과 마수, 박제를 썰다가 힘이 부치면 보수의 권능을 조금 더 사용했다. 부작용을 감내하고 권능의 출력을 올렸다.
[하지만, 더 하면……. 몸이 부서질 거다. 이번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도, 결국…….]“상관없어.”
서걱!
보수의 말을 잘랐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부담을 느끼고 있다. 권능과 주술의 과도한 사용 때문이다. 권능과 주술을 아껴 써도 모자랄 판에, 권능의 출력을 높이는 건 미친 짓이다.
설령 이번 전투에서 이기고, 구준혁이 아닌 내가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무식하게 권능을 사용한 것에 대한, 후폭풍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보수는 아마 내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더 이상, 나는 그런 것을 상관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으니까…….”
소기의 목표였던 어머니는 이미 죽었다. 내가 상상하고 그렸던, 평화롭고 행복한 미래는 이제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그 미래는 거짓된 존재와 신분으로만 이룰 수 있는 거짓된 평화와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는 끝내 정체를 드러냈고, 거짓된 존재와 신분을 전부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거짓되었으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포기하고, 진실되었으나 비참한 최후가 자명한 길을 선택했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다. 나는 저항을 택했다.
지금껏 나의 모든 선택은 본질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나는 부두교의 교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구준혁과 싸우고 있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다.
서걱!
악마종을 벴다. 마수를 베고, 박제를 벴다. 얼마나 베었는지 이제는 셀 수조차 없다. 나는 다만 기계적으로 팔을 움직였고, 저들 또한 기계적으로 죽었다.
어느 순간, 나는 허공에 참수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모든 악마종과 마수, 박제가 죽어서 사라진 것이었다.
“구준혁.”
나는 끝없는 어둠 너머, 나를 지켜보며 회복하고 있을 그를 보았다. 적들을 베느라 닳아빠진 참수검을 버렸다. 부두 마력을 사출해서 새로운 검을 꺼냈다. 그리고 구준혁을 향해 던졌다.
푸욱!
“윽!”
검이 박히는 소리. 그리고 구준혁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그와 함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암흑이 걷혔다. 곧 우리는 돌아왔다. 처음이자 끝이 될 바다로.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
구준혁은 하늘 높이 떠 있었다. 그는 흉측한 날개를 펄럭이며 나를 내려다본 채로 말했다.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날개에는 검이 박혀 있었다. 내가 아까 던진 참수검이었다. 마리네트의 불꽃은 여전히 그의 몸에 붙어서, 피부에 흉측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그의 날갯짓은 처음보다 힘이 없었다. 전처럼 날개를 맹렬하게 펄럭이며 내게 돌진해 오는 등의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구준혁의 얼굴과 몸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 내가 좀 빠른 편이야.”
나는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여유로운 척하면서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그렇게 멀쩡하지는 않았다.
어지러워서 잠깐이라도 의식을 놓으면 기절해 버릴 것 같았고, 눈앞이 불시에 까맣게 흐려졌다가 하얗게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바데의 바람을 이용하여 해수면을 밟고 서 있는 것도, 지팡이가 있기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일말의 힘은 남아 있다. 구준혁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힘. 사력을 다해 싸우면서도 끝까지 아끼고 숨겨두었던 최후의 계책. 그것을 사용할 여력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구준혁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침묵 속에서 나는 지팡이를 들고, 그것으로 하늘에 뜬 붉은 달을 가리켰다. 구준혁은 내가 밟고 서 있는 바다의 아래, 그보다 더 아래, 심연에 있는 뭔가를 보며 손을 들었다.
“칼푸.”
“사탄.”
이 싸움에서 지는 쪽은 필연적으로 파멸한다. 그러나 이기는 쪽도 온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기려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그렇기에 이기더라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싸움.
둘 중 누구 하나가 죽기 전까지는 결코 포기하거나 피할 수 없는,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치킨 게임.
그것도 이제 결착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달과 교차로의 로아시여.”
“지옥의 황제이며, 하늘에 있는 악의 영이시여.”
나는 하늘을 보았고 구준혁은 바다를 보았다. 우리의 시선은 교차하고 있었지만 결코 맞닿지는 않았다.
“내 오른팔을 바치겠나이다.”
“내 모든 것의 절반을 떼어가소서.”
우득!
팔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붉은 달이 나를 비웃듯 가늘게 이지러지고, 바다는 핏빛으로 새빨갛게 물들어서 부글부글 끓었다.
하늘에서 붉은 빛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내려와 구준혁의 몸을 휘감았다. 바다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가리를 벌리고 내게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