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23
제323화
구준혁은 아버지를 죽였다. 기억조차 흐릿할 만큼 아주 어렸을 때에. 기억이 흐릿했다고 변명할 수 있는, 어중간하게 어린 때에.
그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평범하게 다정하고, 또 평범하게 폭력적인 사람이었다.
하루는 구준혁이 악몽을 꾸었다. 무섭고 어린 마음에 어머니를 찾아다니던 그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고, 어머니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비명을 질렀고, 그리고, 그리고……. 구준혁은 알 수 없는 감정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죽어 있었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혼절했는지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아버지의 시체는 썩은 내를 풍기며 집에 계속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도 계속 집에 있었다. 어머니도 썩은 내를 풍겼다. 어머니는 숨을 쉬고 있었지만, 구준혁이 보기에 그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이따금 어머니는 정신을 차렸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그 찰나에, 어머니는 그 말을 했다.
구준혁은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기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살아 돌아온다면 어머니는 다시 정신을 차릴 것이며, 자신을 미워하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새 아버지를 만들었다. 최초로 만들어낸 박제였다.
첫 작품인 만큼 그것은 온전하지 않았다. 가죽을 제대로 기우지 못해서 톱밥과 솜이 흘렀고, 피부색은 핏기 없이 창백했으며, 언어 능력도 없었다.
아버지의 시체로 만든 구준혁의 첫 박제는 오직 하나의 말밖에 하지 못했다.
사랑해, 라고. 박제는 그 말만 반복했다. 그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종종 속삭이고는 했던 말이었으며, 어머니를 향한 구준혁의 마음이었다.
“탑이 높아서 넘어질 것 같아. 동반 자살은 피차의 살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에어컨, 날벌레가 엉겨 붙는 미인도 단명할까…….”
“응…….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철학적이네. 우리 엄마는 철학자가 되었어야 했나 봐.”
그것 때문에 어머니는 미쳤다. 찰나의 순간 돌아오던 어머니의 정신은 그 일로 하여금 완전히 소멸되고 말았다.
최초의 죄는 오만으로 생겨났고, 최초의 살인은 시기로 일어났다. 그의 살인 또한 그러했다. 그렇다면 최초의 창조는 무엇으로 생겨났을까.
아마도 사랑일 것이라고 구준혁은 생각했다. 그 또한 사랑을 위해 아버지를 창조했으므로.
하지만 그의 창조는 불완전했고, 그렇기에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완전한 창조에 가까워지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탄의 그릇으로 선택되었고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았다.
어쩌면, 그가 사탄의 그릇에 걸맞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일지도 몰랐다.
무엇이 먼저이고 나중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구준혁은 종종 상상했다. 만일 사탄의 그릇으로 선택되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랐을까.
그가 만약 평범하게 로마니카교도로서 성장했다면. 하다못해 부두교, 이슬람, 또는 이름조차 낯선 어느 종교의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적어도 사탄교가 아니었다면.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말대로,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에이, 씨발.”
그것이 의미 없는 상상이라는 것은 구준혁이 제일 잘 알았다. 그가 문득 옛날을 떠올린 것은, 그리고 옛날에 했던 의미 없는 상상들을 곱씹어 본 것은, 눈앞에 죽음이 가깝기 때문이었다.
촤아아악!
하늘에서 뻗쳐 온 붉은 손이 구준혁의 몸을 찢었다. 그 붉은 손은 구준혁의 몸을 짓뭉개기도 하고, 아주 산산조각을 내버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구준혁의 몸에 깃든 촉수는 그의 몸을 억지로 붙이고 치료했다.
그는 자신의 탄생과 생애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처럼, 죽음 또한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백 번도 넘게 찢기고 갈리는 와중에, 구준혁은 자신의 죽음을 상상했다. 이대로 죽는다면 어떨까. 그것으로 편해질까.
만일,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된다면 어떨까. 박제와 추종자로 구성되어 만들어진, 거짓된 국민들로 가득 찬 거짓된 왕국에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향한 질문도, 그는 곧 그만두었다. 그 질문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우직, 우지직―!
붉은 손이 구준혁의 몸을 짓뭉갰다. 촉수가 튀어나와서, 농구공만 한 크기로 압축된 구준혁의 몸을 펼치고, 다시 원상태로 만들었다.
붉은 손은 구준혁의 몸에서 튀어나온 촉수를 잡아 찢었다. 하지만 구준혁의 몸에 깃든 촉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수십, 수백 개였다.
구준혁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 과정에서 붉은 손에 조금이나마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바다 위에 있던 도선우는, 심연에서 튀어나온 사탄에게 잡아먹혔다. 그 또한 구준혁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나름의 발버둥을 치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언가를 바쳐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혹은 서로를 바쳐 자신을 죽이고 있었다.
발버둥조차 의미가 없어지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야 말았을 때, 구준혁은 정신을 잠깐 잃었다.
찰나인지, 혹은 영원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같은 곳에서 눈을 떴다.
“…….”
그곳은 해변이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이름 모를 해변. 그곳에서 구준혁은 온몸이 찢기고 무너진 채로 누워 있었다. 도선우의 몸도 구준혁의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뒤집힐 듯한 눈동자에 힘을 주어서, 서로를 응시했다.
둘은 서로를 한참 응시했다. 깊은 침묵이 흘렀다.
“씨, 발……. 이거, 불공정 계약 아니야?”
침묵을 깬 것은 구준혁이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모든 것의 절반을 바쳤는데, 사람 하나를 못 죽이네. 사탄 이 새끼, 이거……. 악명이 거품이네.”
“같은 마음이다. 망할, 나 오른손잡이인데…….”
도선우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둘은 서로에게 다가갔다.
파도는 잔잔했다. 바람도 그랬다. 천둥은 치지 않았고, 번개도 마찬가지였다. 비는 내렸으나 빗줄기가 굵지는 않았다.
도선우의 손에는 여전히 지팡이가 들려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목발처럼 짚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미 사력을 다했다. 거창하고 요란한 권능을 쓸 힘은 그에게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아까는 정말로, 후. 후우……. 죽는 줄 알았다. 이대로 죽으면……. 어쩌나 했어. 어우, 말도 안 나오네.”
구준혁이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선우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덕분에……. 지옥에, 다녀왔다. 아주 좆같은 곳이었어.”
“방금 라임, 좀. 어, 좀……. 괜찮은데?”
“그러냐?”
둘은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다. 도선우는 이제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왼 주먹을 쥐었다.
구준혁의 몸에 깃든 촉수는 더 이상 그의 몸을 치료해 주지 않았다.
구준혁은 촉수를 움직여서, 힘을 잃은 자신의 팔과 다리를 휘감았다. 그렇게 해서야 구준혁은 겨우 자신의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나아갔다.
촤아악!
구준혁의 몸에 달라붙어서 흐느적거리던 촉수가 움직였다. 촉수는 느렸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도선우는 그것조차 피할 여력이 없었다.
촉수가 도선우의 옆구리를 스치듯 베었다. 도선우가 이를 악물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뻐억!
지팡이가 구준혁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막을 틈은 없었다. 아니, 막을 여력이 없었다.
구준혁은 촉수를 내뻗었고, 도선우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촉수도 지팡이도 전부 느렸지만, 그들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때리는 대로 전부 맞았다.
그 싸움에는 주술도, 권능도, 흑마법도, 계약도 없었다. 처절한 싸움 속에서 도선우는 지팡이를 놓쳤다. 구준혁의 촉수도 사력을 다했는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지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담, 발라.”
쿠드드드득!
도선우가 말했다. 그가 놓친 지팡이가 부풀면서 거대한 뱀의 형상이 되었다. 도선우의 입에서 피 구토가 쏟아져 나왔다. 내장까지 전부 토해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구준혁은 촉수의 힘을 빌려 손을 들었다. 그리고 마기를 사출하여, 흑마법진을 그렸다.
끼이이이익―!
섬뜩한 소리와 함께, 흑마법진에서 거대한 살덩이가 튀어나왔다. 지옥의 망자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인간 지네였다.
담 발라를 소환한 것이 도선우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는 이제 주술도, 권능도 더는 사용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구준혁도 마찬가지였다. 지옥의 망자로 이루어진 지네를 소환한 것이 그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그 역시 흑마법을 사용할 여력이 없었으며, 악마와의 계약 또한 할 수 없었다. 더는 대가로 바칠 게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담 발라가 구준혁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갔다. 인간 지네는 섬뜩한 소리를 내며 도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콰직.
불길하고 섬뜩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도선우를 향해 나아가던 인간 지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들은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검은 연기로 변해서 하늘로 너울너울 사라졌다.
구준혁에게 달려들었던 담 발라는 구준혁의 하반신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담 발라는 구준혁의 하반신을 삼키고는, 곧 지팡이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아…….”
최후의 결투에서, 구준혁은 졌다. 그가 소환한 인간 지네는 느렸고, 도선우가 소환한 담 발라는 인간 지네보다는 조금 더 빨랐다.
그것이 패인이었다. 구준혁은 상반신만 남은 채, 해변에 널브러졌다.
그는 하늘을 보았다. 별이 촘촘했다. 구준혁은 기시감을 느꼈다. 언젠가, 도선우와 함께, 이토록 별이 촘촘한 밤하늘을 봤던 것 같았다.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바다라는 걸 알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야, 내가……. 너희한테 구라를 좀 많이 치기는 했는데, 응……?”
“…….”
“하나, 하나만 알아라. 그냥, 하나만…….”
구준혁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몇 초도 잘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이단 심문관들은 끊임없이 구준혁을 고문했다. 한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릴 수 없었다.
구준혁의 몸에 깃든 촉수는 그를 결코 죽게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고통마저 없애주지는 않았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머리를 비우자 고통을 잊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것도 잊게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기억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중에는 꽤 중요했던 것 같은 기억도 사라졌다.
“바다에 가자는 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바다에 와서…….”
사라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그는 잊지 않으려고 했다. 바다에 가자는 약속을.
쉼 없이 의식이 날아가고 기억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그 약속을 떠올렸다.
그러므로 그 약속은 그에게 무엇보다 진실되고 중요한 것이었다.
“그 말도, 거짓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그리고 구준혁은 깨달았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그 어머니의 절규 또한. 진실이었음을.
찰나의 미움으로 튀어나온 마음에도 없는 말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정신과 의식 속에서도 꼭 붙잡고 있어야만 했던 진실한 증오의 말이었음을.
“아…….”
구준혁은 죽음이 눈앞에 왔음을 깨달았다. 그토록 바랐던 죽음이었다.
“그래도, 재밌었는데.”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아쉽기도 하네, 이제 와서…….”
구준혁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차 같은 마음이었다.
구준혁의 숨은 완전히 끊어졌다. 그는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는 이제 알 수 없었다. 피렌체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방금의 전투를 말하는 건지, 또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의 생애를 말하는 건지도.
파도는 여전히 잔잔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비도 어느 틈엔가 그쳤다. 수평선 너머로, 아직 떠오르지 않은 해가 내뿜는 빛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던 별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도선우는 밝아지는 하늘을 멍하니 보았다.
* * *
그리고 도선우는 사라졌다. 피렌체에서도, 중앙성기사단에서도 볼 수 없었다. 교황청에서 수배령을 내렸다.
그들은 세상에 나타난 부두교의 교주, 도선우를 찾아 죽이라고 사람들에게 명하고 있었다.
로마니카교와 부두교의 2차 성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길한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