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27
제327화
도선우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5년 전이었다.
김진서가 많이 변한 것처럼, 도선우도 많이 변했을 것이었다. 그녀는 어쩌면, 도선우를 다시 마주치더라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는지, 김진서는 도선우를 마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를 못 알아볼 수 있을까.
김진서는 창문을 열고 들어온 그를 한참 응시했다. 그는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다. 방은 깜깜했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진서는 그가 도선우라는 것을 알았다. 알 수 있었다.
“…….”
그런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오랜만이라는 말은 조금 식상할 것 같았다.
그저 말없이 울어야 하나. 아니면 웃으면 되나? 화를 내야 할 것도 같았다. 너무 많은 감정이 밀려왔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왜……. 왔어?”
그녀는 물었다. 달리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뭐라도 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온 말이었다.
도선우는 한동안 침묵했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김진서를 보기만 했다. 젖은 그의 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따금 하늘에서는 번개가 쳤다. 간헐적인 섬광이 방을 비추었다. 멀찍한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휴대폰.”
도선우는 김진서의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김진서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들었다.
습관적으로 전원 버튼을 눌러서 켜 보았다. 켜지지 않았다. 그새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리는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잘 켜졌으니까.
도선우가 오고 나서, 휴대폰은 꺼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어두웠다. 거실에서 방으로 새어 들어오는 일말의 빛조차 없었다.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들어왔다. 불도 제대로 끄지 않은 채로. 그런데 지금 그녀의 방은, 아니 집은, 마치 전기가 전부 나가버린 것처럼 온통 깜깜했다.
도선우가 한 짓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왜?”
“신고할 수도 있으니까.”
도선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김진서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도선우를 보았다가, 이내 피식 웃었고, 끝에는 얼굴을 찌푸렸다.
“……기껏 와서 처음 한다는 말이…….”
화가 났다. 휴대폰을 먹통으로 만든 것보다, 집 안의 불을 허락도 없이 전부 꺼버린 것보다, 그가 자신을 의심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김진서는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신고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5년 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떠날 것이다. 앞으로는 몇 년을 더 못 만나게 될까.
5년 이상, 어쩌면, 죽는 날까지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선우를 신고하지 않는다. 신고할 수 없다.
신고를 한다면 물론 도선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일어날 듯하던 성전도 아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기뻐할 것이고, 김진서는 몇 계급의 특진을 받거나 혹은 영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도선우는 죽는다.
그렇다면 그녀는 결코 기쁠 수 없다. 그녀의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도선우는 오자마자 신고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나 늘어놓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는 정말…….
“개새끼. 넌 진짜 쓰레기야. 너는……!”
“네가 신고할 거라는 말이 아니야. 네 휴대폰에는 도청 장치가 있다.”
도선우는 김진서의 말허리를 끊고 들어왔다.
“교황청에서는 너를 감시하고 있어. 네 휴대폰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걸 끈 거야.”
“…….”
“내가 언젠가 한 번은, 너를 만나러 올 것을 교황청도 알고 있는 거겠지.”
그 말은 김진서에게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교황청에 충성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로마니카교에는 충성을 다했다.
사탄교의 몰락 이후 잔여 마수와 악마종을 처리하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군말 없이 검을 쥐었다. 기도를 하라면 했고, 연구를 위해서 기적 재현의 시연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는 순순히 기적 재현을 해주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 왜 김진서의 휴대폰에 도청 장치를 심고,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녀를 감시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냥 내가 널 신고할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니야? 이, 이……. 찌질한 새끼야.”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김진서는 도선우의 말을 부정했다. ‘찌질한 새끼’라는 말은, 그와 별개로 그냥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때 도선우가 손을 들었다. 김진서의 방 안에 있는 쇠붙이, 이를테면 만년필이나 예전에 쓰다가 버린 검, 자그마한 쇳조각 같은 것이 공중에 떠올랐다.
그것들은 붉게 달아오른 채, 도선우와 김진서를 겨누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전부 진실이야.”
도선우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할 말도. 이건 오군의 권능.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김진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들어본 적이 있기는 했다. 교황청은 각지의 성직자단에 부두교과 그 교주의 능력을 공유했다. 관측을 통해 수립된 가설, 그리고 현 교황인 마유현의 경험 등으로 연구된 나름 믿을 만한 정보였다.
오군의 권능은 일대의 쇠붙이를 전부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때로는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데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교황청에서는 말했다.
“너도 이제 거짓말은 하지 마.”
“할 생각도 없었어. 내가 너야?”
도선우의 말에 김진서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도선우는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김진서의 방에 있던 의자 하나를 골라서 앉았다.
김진서는 침대에 삐딱하게 걸터앉았다. 그냥 앉을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의 앞에서는 삐딱하게 앉고 싶었다. 소심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예전에, 내기했던 거 기억하고 있어? 네가 내 소원을 한 번 들어주기로 했었지.”
침묵 속에서 도선우가 말했다. 비는 여전히 내렸다. 천둥도, 번개도 여전히 치고 있었다.
“5년이나 지난 일을 어떻게 기억해?”
김진서가 말했다.
“그렇겠지.”
도선우가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진서는 사실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도선우와 김진서는 싸운 적이 있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거기서 김진서는 졌다. 그녀는 도선우의 소원을 한 번 들어주어야 했다.
“……일단 말해. 들어보고 결정할 거니까.”
김진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곧 전투가 있을 거야.”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가 되겠지. 사람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몇 명은 죽을지도 몰라.”
“…….”
“그 전투에 너는 오지 마.”
이야기는 조금 갑작스러웠다. 적어도 김진서에게는 그랬다. 로마니카교는 분명 성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만간 성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성직자들은 물론 성직자와는 관련이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입에서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 성전이라는 말이, 그 무거운 단어가, 김진서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도선우의 말로 하여금, 김진서는 실감했다. 정말로 성전이 일어나게 되겠구나. 더는 돌이킬 수 없겠구나, 하고.
“이게 내 소원이야.”
도선우가 말했다. 김진서는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이유를 그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가지 않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김진서가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도선우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보았다.
“이번 전투에서 아마 너희의 목적은 나를 구속하는 것. 혹은 나를 사살하는 것이겠지.”
“그래, 아마.”
“우리의 목적은 너를 생포하는 것.”
“왜?”
“네가 우리에게 가장 껄끄러운 상대니까. 포로로서 가치도 높고.”
도선우의 말투는 담담하고, 건조했다. 거의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평온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이따금 들이치는 섬광이 방의 어둠을 몰아낼 때, 도선우가 떠는 모습을 김진서는 보았다.
“네가 전투에 나오지 않으면, 우리는 최소한의 전투만을 치르고 돌아갈 거다. 애초에 목적이 너였으니까, 네가 없으면 전투를 할 이유가 없지.”
“…….”
“하지만 네가 나오면, 나는 너를 포획해야 해. 그때는 보는 눈도 있고, 어쨌거나…….”
도선우는 거기서 잠깐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나는 교주니까. 적을 앞에 두고 봐주는,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어. 지금처럼.”
도선우가 말했다. 그 말은 조금 이상했다. 김진서는 도선우를 보았다. 도선우는 김진서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지금은?”
김진서가 물었다. 도선우는 김진서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김진서가 말을 이었다.
“지금은, 뭔데?”
그제야 도선우는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김진서는 생각했다.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있던 도선우의 팔을 잡아서 확 끌었다. 도선우는 맥없이 김진서의 손에 끌려갔다. 그는 저항을 하지 못했다.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
그녀는 도선우를 침대로 끌고 왔다. 그리고 그를 넘어뜨렸다. 도선우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그 위에 김진서가 올라갔다.
그녀는 위에서 도선우의 몸을 꾹 눌렀다. 도선우는 조금 당황한 듯, 김진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김진서는 도선우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 시선의 격차가 마음에 들었다.
“묻잖아. 지금은 뭔데?”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두 사람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맞닿을 듯이 가까웠다. 당황한 도선우의 숨결이 느껴졌다. 도선우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지금은……. 지금은 그냥, 나야.”
“그래?”
김진서는 꽤나 만족한 것처럼 웃었다. 도선우는 그녀의 미소 앞에서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한참이나 보았다. 어쩐지 친숙하고, 또 조금은 아늑하기까지 한 그 미소를.
“약속은.”
“어?”
도선우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나랑 약속한 건, 기억하고 있어?”
김진서가 재차 말했다. 도선우는 분명히 말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 아직은 대답해줄 수 없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대답해 줄 것이라고. 그렇게 약속했다.
그리고 도선우는 그 약속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김진서가 그랬듯이.
“좋아해.”
“조금 다르게 말해 봐.”
“……사랑해.”
“언제부터?”
그녀는 그게 궁금했다. 정확히는 도선우가 직접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네가 처음 나한테 이 말을 해줬던 때도, 같은 마음이었어.”
도선우가 말했다. 김진서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웃었다.
“금지된 사랑 같은 느낌이네.”
“그런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도선우가 말했다. 김진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많이 변했다. 도선우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것이 알려졌고, 사탄교는 완전히 몰락했고, 세상은 성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피렌체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전부 같았던 그들 중 누군가는 교사가 되었고, 누군가는 성기사나 성전사가 되기도 했지만, 또 어떤 누군가는 사이비가 되기도 했다.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할까.”
그러나 김진서는 모든 것이 여전하다고 느꼈다. 크게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바뀔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었다.
도선우가 김진서를 끌어안았다. 이따금 들이치는 번개가 방 안을 비추면,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찰나의 순간에 비치는 서로를 응시하고 눈에 담았다.
김진서는 도선우의 살결을 만졌다. 그의 몸에는 언제부터인가 자그마한 쇠붙이 하나가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무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