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31
제331화
윤시몬은 칼자루에 손을 얹은 채, 남자를 응시했다. 백발의 긴 머리카락 너머로 보이는 형형한 눈동자는 여전히 윤시몬을 응시하고 있었다.
윤시몬은 느꼈다. 이 남자는 강하다. 결코 평범한 노숙자, 노인은 아닐 것이다. 긴장감으로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미안하네. 내가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서.”
그러나 남자의 이어진 행동은 윤시몬의 예상과 달랐다. 그는 윤시몬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윤시몬은 칼자루 위에 놓았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바닥에 늘어진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윤시몬의 눈에 보이는 남자는, 아까와 달리 너무나 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평범한 노숙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몰골이었다. 윤시몬이 남자를 향해 느꼈던 적대감은 곧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괜찮으시다면, 동부성기사단 측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료 급식소도 있고, 어르신께서 머물 수 있는 곳 정도는 있을 겁니다.”
윤시몬이 말했다. 동부성기사단은 최근에 건물을 증축하여, 노숙자나 길을 잃은 노인들이 머물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
이 남자도 동부성기사단 측에 인계하면, 습하고 더러운 길바닥보다는 쾌적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아니, 괜찮아.”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길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다네. 보기 껄끄러운 얼굴도 있고.”
“……알겠습니다.”
윤시몬이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동부성기사단에는 노숙자를 위한 임시 보호소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몇몇 노숙자들은 그 공간을 이용하기를 꺼렸다.
임시 보호소에 머무는 노숙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자립 지원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일부 노숙자들은 아직 자립할 의지가 없거나, 혹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반강제적으로 사회에 나가게 만드는 그 프로그램을 껄끄럽게 여기고는 했던 것이다.
윤시몬도 그런 노숙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기에, 굳이 강요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짐을 챙겨서 떠났다. 뒤늦게 윤시몬에게 다가온 김진서는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김진서가 물었다. 윤시몬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노숙자였습니다. 동부성기사단에 안내해 드리겠다니까, 거절하셔서 그냥 보냈습니다.”
“그냥 노숙자? 확실해? 이런 곳에 노숙자가 왜…….”
김진서가 물었다. 노숙자들은 보통 역 앞이나 후미진 공원 등에 자리를 잡았다.
빛의 제전이 있을 이곳은 너무 탁 트여 있고 사람도 많이 지나다녀서, 노숙자가 머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그냥 노숙자가 있었다는 것이 김진서는 의심스러웠다.
“노숙자가 뭐 장소 가려가면서 다니나요. 그냥 자리 있으면 눕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김진서는 윤시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가까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꾸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김진서는 터덜터덜 거리를 떠나는 남자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 걸음걸이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 * *
비로소 빛의 제전 당일이었다.
북부성전사단의 세 사람, 김진서와 윤시몬, 한솔은 당일 새벽까지 부지런히 일을 했다.
건물을 돌아다니며 수상한 인물이나 물건이 없는지 검토했다. 하지만 역시나 수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부성기사단에 물어보니, 그쪽에서도 달리 수상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것은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빛의 제전은 예정대로 열렸다. 거리에는 노점상들이 가게를 열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산 길거리 음식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기도회와 이단 심문관 임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성직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냥 떠들썩한 분위기를 즐기러 왔거나, 혹은 유명한 고위 성직자의 얼굴을 보러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진서와 윤시몬, 한솔은 북부성전사단 정복을 차려 입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나름대로 행사 경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적도 나타나지 않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조차 드물었기 때문에, 그들은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자 제전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기게 되었다.
“솔이가 저게 먹고 싶은 모양인데요.”
윤시몬은 거리에 늘어진 노점상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한솔이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노점상을 향하고 있었다. 노점상에서는 아이스크림과 과일 음료를 팔고 있었다.
날도 더운데 정복을 차려입고 거리를 돌아다녔으니, 시원한 음료를 파는 쪽에 시선이 가는 것도 당연했다. 김진서는 노점상 쪽을 흘긋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먹고 싶으면 먹어. 사줄까?”
“정말 괜찮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김진서가 말했다. 연신 괜찮다고 말하는 한솔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던 데다가, 얼굴까지 빨개져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 것 같았다.
김진서는 그런 한솔을 빤히 쳐다보다가, 노점상 쪽으로 갔다. 그리고 한솔이 먹고 싶어 할 만한 시원한 음료 하나, 자신이 먹을 음료 하나를 샀다.
“먹어.”
그녀는 사 온 음료를 한솔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한솔은 엉겁결에 음료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불안한 얼굴로 음료와 김진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 임무 중에는 이런 거…….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더워서 쓰러지는 것보다는 나아.”
김진서가 말했다. 그들은 행사 경호 임무를 하러 나온 것이었기에, 가급적 취식은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음식이나 음료를 먹고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발생하면, 반응이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진서가 말한 것처럼, 더워서 쓰러지는 것보다는 뭐라도 마시면서 하는 편이 나았다.
한솔은 눈치를 보다가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이 확연히 밝아졌다. 김진서는 그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근데 음료를 왜 두 개나 사셨습니까. 혹시 하나는 저 주시려고?”
그때 윤시몬이 끼어들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김진서는 불쾌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뭔 소리야? 네 거는 네가 사야지.”
“아.”
윤시몬은 서운하다는 듯이 김진서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같은 노점상에 가서 자신의 음료를 사왔다.
세 사람은 시원한 과일 음료를 마시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한솔은 열심히 음료를 마시면서도 꾸준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행사 경호’라는 임무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어떤 수상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분위기 같은 것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김진서도 그렇게 느꼈다. 수상한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고, 어떤 불길한 징조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거리에는 행사 경호를 위해 나온 동부성기사단의 성기사들이 즐비하고 있었으며, 이단 심문관 임명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고위 성직자들도 많았다.
“……뭘 어쩔 생각이지?”
김진서가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물론 로마니카교 쪽도 어느 정도 피해를 입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부두교 쪽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었다.
행사 경호 임무를 위해 이곳에 모인 성기사와 성전사들은 전부 완전 무장 상태였다. 부두교가 이곳을 습격한다고 해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선우는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지?
김진서는 그의 몸을 어루만지다가 느꼈던, 차가운 쇳조각의 감촉을 기억했다.
그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면, ‘조만간 전투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던 그 말이 거짓말이었던 걸까?
김진서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했던 다른 말이 아니라, 차라리 그 말이 거짓말이기를 바랐다.
“……부단장님?”
그때, 윤시몬이 김진서를 불렀다.
그녀는 그제야 생각하기를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김진서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한솔은 음료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고 있었고, 윤시몬은 의아하다는 듯이 김진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그냥……. 멍 때렸어.”
김진서는 설명하기가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말했다.
“부단장님도 멍을 때릴 때가 있습니까? 신기하네요.”
윤시몬이 말했다. 김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걸었고, 그러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 위험해 보이거나 수상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 * *
그곳에서 성하연을 만난 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세 사람은 이단 심문관 임명식이 진행될 성당으로 가고 있었다. 성당 앞에는 거대한 인파가 있었는데, 김진서는 그것이 성당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일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인파의 중앙에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성하연이었다.
성하연을 둘러싼 사람들은 다양했다. 기자도 있었고, 성하연을 동경하는 사제, 축복 연구가, 또는 성하연의 연구에 흥미를 가진 고위 성직자들이었다.
“……성하연?”
그 많은 인파 사이에서 김진서는 성하연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외모는 여전히 눈에 띄었다. 온통 새하얀 머리카락. 이질적으로 창백한 피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사람이 많아도, 성하연은 보였다.
“성하연? 어디요?”
윤시몬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한솔도 덩달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성하연은 로마니카교 성직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한참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은 마침내 성하연을 발견했다. 그들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는 성하연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우와, 진짜 하얗네. 그건 그렇고 은퇴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은퇴는 아니고, 그냥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다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윤시몬과 한솔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그들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인파가 어쩐지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 뭔가…….”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요?”
정확히는, 성하연이 그들을 향해 인파를 이끌고 다가오고 있었다. 윤시몬과 한솔은 당황해서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김진서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성하연은 김진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덧 인파는 성하연과 김진서,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오랜만이네요.”
먼저 말을 건 것은 성하연이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존댓말을 썼다. 김진서는 성하연에게 존댓말을 써야 할지, 아니면 편하게 반말을 할지 고민했다.
피렌체에 다닐 때도 성하연과는 서먹서먹한 사이였던 데다가, 졸업하고 난 이후에는 연락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 그대로 애매한 사이였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반말을 할 만큼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존대를 할 사이는 아니었다. 김진서는 그냥 반말로 대답했다. 성하연이 김진서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행사 경호 때문에 와 계신 건가요?”
“응, 너는?”
“저도 비슷해요. 만날 사람도 있고.”
성하연이 말했다. 김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끊겼다. 달리 더 할 말이 없었다.
김진서는 애초에 성하연이 왜 자신 쪽으로 왔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인파들도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
“정말 반가워요. 이런 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성하연이 갑자기 김진서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갑작스러웠다. 김진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진서는 성하연과 포옹을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으며, 설령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성하연은 누군가에게 포옹을 할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성하연은 포옹을 통해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진 틈을 타, 김진서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조심해요.”
성하연은 김진서에게 귓속말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김진서의 주머니에 뭔가를 집어넣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