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32
제332화
김진서는 성하연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왔다. 윤시몬과 한솔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김진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 부단장님, 성하연 사제님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윤시몬이 물었다. 김진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몰랐어?”
“몰랐습니다. 말씀해 주신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윤시몬은 저 멀리, 인파를 이끌고 멀어지는 성하연을 흘깃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피렌체. 같은 학년이었어.”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겠네요. 뭔가 되게 신기하네.”
윤시몬은 김진서와 성하연이 아는 사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두 사람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리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성하연의 명성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다. 성하연은 수많은 축복과 성물을 발명한 연구가이자, 학자였던 것이다.
성유다의 죽음과 그에 얽힌 불미한 루머 때문에 성하연의 명성이 이전만 못해졌다고는 해도, 그는 여전히 위대한 사제이며 성직자였다.
북부성전사단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김진서 역시, 명성으로 따지면 결코 성하연에게 뒤지지 않는 성전사였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친하다고 하니, 윤시몬에게는 그것이 뭔가 굉장히 대단한 인연처럼 느껴졌다.
“학교 다닐 때 엄청 친하셨나 봐요. 막 포옹도 하시던데. 성하연 사제님은 피렌체에서는 어땠어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네?”
윤시몬이 되물었다. 김진서는 멍한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성하연이 김진서의 주머니에 몰래 집어넣은 물건이 만져졌다. 김진서는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꺼냈다. 성하연이 주고 간 물건은 딱딱하고 둥근 어떤 구체였다.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달리 어떤 쓸모가 있는 물건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성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쓰레기는 아닐 것이었다.
“뭡니까, 그건?”
윤시몬은 김진서의 손에 들려 있는 구체를 보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김진서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겠다, 진짜로.”
성하연이 대뜸 주고 간 이 물건이 뭔지. 포옹을 하면서, 김진서의 귀에 속삭였던 ‘조심해요’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녀는 정말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찝찝하고 불쾌한 어떤 감각만이 그녀에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임명식에 앞서,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아도나이께 감사를 드리며…….”
이단 심문관 임명식이 시작되었다.
임명식은 성당에서 치러졌다. 무척이나 거대한 성당이었는데, 김진서가 느끼기에는 중앙사제단 부속 성당보다 더 컸다.
임명식에 참석한 사람도 많았고, 경호를 위해 준비된 인원도 많았다. 김진서와 윤시몬, 한솔은 성당의 뒤편에서 무장을 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경호 인력들은 전부 주술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부두교의 주술 테러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동부성기사단장도 있네요. 한대호 단장.”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경호 인력들의 면면을 살피던 윤시몬이 말했다. 김진서도 그쪽을 흘긋 보았다.
윤시몬이 말한 대로 동부성기사단장인 한대호가 주술 방독면을 착용한 채, 성당 뒤편에 서 있었다.
방독면을 착용한 탓에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한대호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한대호는 일단 덩치가 너무 컸기 때문에, 성당에 몰린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 그는 오른팔이 없었다.
한대호 옆에는 강대만도 있었는데, 누가 더 크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을 만큼 그의 덩치도 살벌하게 컸다.
“그러고 보니까 김진서 부단장님은 강대만 성기사님이랑도 친분이 있지 않으십니까?”
윤시몬이 물었다. 김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부단장님도 인맥이 대단하시네요. 성하연 사제님에, 강대만 성기사님이랑, 거기에…….”
“조용히 좀 해.”
“아, 넵. 알겠습니다.”
주절주절 떠들던 윤시몬이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김진서는 뒷짐을 지고 선 채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성당 안에 수상한 인물이 섞여 들어왔을 가능성을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당에 그런 사람은 역시나 없었다. 고위 성직자와 경호를 위해 준비된 인원이 전부였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행사가 있기 전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성가, 미사 등의 차례가 끝나고, 비로소 임명식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제의 호명과 함께, 이단 심문관으로 임명될 성직자들이 차례로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때까지도, 성당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잠깐 나갔다 올게.”
한창 임명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김진서가 말했다. 윤시몬이 고개를 갸웃댔다.
“담배 피우러 가십니까?”
“그래.”
김진서는 그렇게 말하고 성당을 잠시 나왔다.
하늘은 어느새 깜깜해지고 있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다녔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아이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성당 뒤편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바닥에는 몇 개의 꽁초도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빼 물고, 불을 붙였다.
정확히는 붙이려고 했다.
“…….”
그런데 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라이터가 말썽이었다.
김진서는 계속해서 불을 붙이려고 해봤지만 라이터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의미 없는 헛손질만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불이 잘 붙던 라이터였다. 갑자기, 그것도 하필 지금 불이 안 붙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화륵.
그때, 한 남자가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
김진서는 불을 붙여준 남자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남자의 손끝에서 타오르는 새빨간 불꽃이 골목의 깊은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김진서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벽에 등을 기댔다.
“담배 끊었다고 하지 않았나?”
남자가 말했다. 그녀는 하늘로 솟구치는 희뿌연 연기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시 피워. 덕분에.”
“다시 끊는 건 어때?”
“너 하는 거 봐서?”
김진서가 말했다. 남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했다. 그가 김진서를 날카롭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오지 말라고, 내가 분명 말했던 것 같은데.”
“…….”
김진서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의 손끝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차츰 커지고 있었다. 살짝이라도 닿으면 피부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겨누었다. 불꽃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남자의 손끝에서 떨어져 나갔다. 불꽃이 자취를 길게 남기며 하늘로 치솟았다.
파앙―!
그가 쏘아낸 한 점의 불꽃은 하늘 높이 떠올라, 마침내 터졌다. 수십 가닥의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며 거리를 화려하게 비추었다.
어디선가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그 불꽃의 폭발은 마치, 빛의 제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성대한 의식의 일환처럼 보였다.
하늘에서 터진 빛은 김진서와 도선우가 있는 골목까지 비추었다.
“왜 말을 안 들을까.”
그가 말했다. 김진서가 피식 웃었다.
“반항 한번 해봤어.”
“나는 반항하는 걸 아주 싫어해.”
“그래?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저번에도 조금 반항해 주니까 좋아했잖아.”
김진서가 말했다. 그건 도선우를 당황하게 만들기 위한 그녀의 도발이었다.
김진서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놓았다. 자세를 낮추고 칼자루를 쥐었다. 신성력을 사출하고, 축복을 사용했다. 축복의 빛이 그녀의 다리를 휘감았다.
김진서는 땅을 강하게 박차면서 검을 뽑았다. 그리고 도선우를 향해 휘둘렀다. 그 모든 행동은 담배가 바닥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전부 이뤄졌다.
김진서의 검은 빨랐다. 그녀의 검은 도선우의 목을 향해 맹렬히 나아갔다.
그러나,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그녀는 도선우의 목을 베는 것을 망설였다. 그 망설임이 자아낸 찰나의 틈은 컸다.
도선우는 그 짧은 순간에 주술진을 그려냈다. 보랏빛 안개가 그녀의 얼굴을 휘감았다. 김진서의 눈이 풀렸다.
그녀는 끝까지 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힘이 풀려버린 다리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김진서는 끝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도선우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주술에는 약하네.”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김진서는 도선우의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김진서는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팔과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어나기는커녕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김진서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윤시몬과 한솔에게 무전을 쳐서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진서의 손은 끝내 무전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톡.
그 대신,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구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까 전에 성하연이 김진서의 주머니에 몰래 넣었던, 그 구체였다.
콰직!
구체는 보랏빛 안개를 조금 빨아들이다가 깨졌다. 구체는 깨지면서 빛을 토했다. 맑고 찬란한, 극도로 순수한 축복의 빛.
그것은 정화의 축복진이 자아내는 빛과 완벽히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정신이 일순간 맑아졌다.
* * *
파앙―!
성당 바깥에서 소리가 들렸다. 윤시몬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임명식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성당 내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 인력들도 가만히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윤시몬 혼자인 것 같았다.
그때, 윤시몬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한솔과 눈이 마주쳤다.
“윤시몬 성전사님, 아까 무슨 소리가…….”
“그래, 너도 들었어?”
“네, 무슨 일이 일어난 거 아닙니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윤시몬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았다. 아직 김진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성당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경호 인력들은, 성당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에 대해서 아직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진서의 명령 없이, 윤시몬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만일 그랬다가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전부 윤시몬이 지게 될 것이었다.
“일단은 대기. 조금만 기다려보자.”
“……알겠습니다.”
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시몬은 김진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김진서는 담배를 피우러 성당 밖으로 나갔으니, 만약 성당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녀가 먼저 윤시몬 쪽에 연락했을 것이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윤시몬의 생각이었다.
“아도나이의 종이며 로마니카교의 칼이 될, 신입 이단 심문관들을 위하여. 교황 성하(聖下)의 대리인인 제가, 성하께서 내린 축복의 빛을 여러분에게 하사할 것이며…….”
성당 바깥에서 들려온 의문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임명식은 아무 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임명식을 진행하고 있던 사제는 기도를 하는 듯이 손을 다소곳이 모았다.
그의 손에서 일반적인 축복의 빛과는 사뭇 다른, 보다 찬란하고 웅장한 빛이 생겨났다.
저 빛을 신입 이단 심문관들에게 하사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임명식은 끝날 것이었다.
“……이단 심문관의 머리 위로 교황 성하의 빛이 쏟아질 때마다, 여러분은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또각, 또각, 또각.
그러나 그때, 단상 위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올라왔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장발, 덥수룩한 수염. 누더기나 다름없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한 노인이었다. 윤시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그는 어제, 윤시몬이 내쫓았던 그 노숙자였다.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 인력들이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갔다. 덩치로 치면 노인보다 2배는 더 커다란 성기사들이, 노인을 끌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노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정 넷이 달라붙었는데도 노인을 끌어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콰앙!
노인이 성기사 하나의 몸을 단상 아래로 집어던졌다. 거대한 장정의 몸이 단상 아래로 나동그라졌다.
“끄아악, 끄. 끄으아아악―!”
“…….”
성기사는 부러진 어깨를 쥐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쳤다. 성당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