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34
제334화
문요셉은 지난 몇 년간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살았다.
콘클라베 이후 마유현이 교황이 되고, 문요셉은 파면을 당했다. 이유는, 사실상 없었다. 근무 태만이라는 둥, 부두교와의 어떤 유착 관계가 의심된다는 둥, 전부 거짓으로 만들어낸 명분만 존재했다.
교황이 죽었다는 것을 밝혀낸 건 문요셉이었다. 교황의 붕어(崩御) 소식은 교황청과 몇몇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으나, 문요셉과 중앙사제단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문요셉은 그것 때문에 자신이 파면을 당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문요셉은 부조리하게 모든 명예와 권력을 잃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
그는 돌아보았다. 무엇이 남았는가? 가족은 없다. 아내는 예전에 죽었고, 딸은 가출해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이단 심문관도 아니었고, 성기사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로마니카교 성직자조차 아니었다. 그를 이루고 있던 수많은 이름들이 이제는 없었다. 이렇게 쉽게 사라질 이름일 줄은 몰랐다.
문요셉은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화창하고, 조용했다. 눈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오래 고개를 들고 있지는 못했다.
그는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떠돌아야 했다. 역 앞이나 사람 없는 공원을 거처로 삼아, 며칠을 지냈다. 모아둔 돈은 있었지만, 거처를 정해서 한곳에 머무르는 일이 그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기억할 가치 없는 나날들이었다. 문요셉은 하루하루를 일일이 기억하지 않았고, 느끼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며칠인지, 몇 달인지, 몇 년인지 모를 세월을 그렇게 떠돌면서 지냈다.
“문요셉 이단 심문관님.”
그때, 그가 찾아왔다.
문요셉 이단 심문관님, 이라고 그는 똑똑히 말했다. 의아했다. 그 이름과 소속을 아는 사람들과는 전부 연락을 끊었을 터인데. 찾아올 사람도, 분명 없을 것인데.
문요셉은 고개를 들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도선우.”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사상 최악의 범죄자가 된 그가 앞에 있었다. 누워 있던 문요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못 본 새 많이 변하셨군요.”
“……변했나, 내가?”
문요셉이 중얼거렸다. 그는 머리가 길어졌고, 수염도 덥수룩했으며, 얼굴에는 깊게 패인 주름이 몇 개나 생겨 있었다.
하지만 크게 바뀐 건 없었다. 그는 언제나와 같았다. 다만 그를 이루고 있던 이름이 사라지고, 그의 소속이 불분명해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문요셉은 분명, 변화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무엇 때문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자네는…… 똑같군. 예나 지금이나, 그리…….”
“어디 들어가서 이야기할까요.”
도선우가 말했다. 그는 문요셉을 어느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사람이 없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가 나는 식당이었다. 간판도 없었고,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분위기도 어쩐지 꺼림칙한 공간이었다.
문요셉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멀쩡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음산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제대로 된 식당에 들어와 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적어도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요셉은 문득 의아했다.
“생각보다 멀쩡히 잘 돌아다니는군. 이제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는 처지 아니었나?”
“사람들이 찾는 건 부두교의 교주입니다. 제가 아니고.”
“그래도 이렇게 뻔뻔하게 돌아다니면 누군가는 자네를 알아볼 텐데. 이 식당 직원들도 그렇고.”
“여기는 안전합니다. 식당 주인이 부두교도라서.”
도선우가 말했다. 문요셉은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사회에 녹아든 부두교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문요셉과 도선우가 있는 식당도 부두교도의 것이라고 하니.
음식은 시키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굳이 음식을 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요셉은 도선우를 보았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피렌체의 신입생일 때나, 그리고 부두교의 교주일 때나, 똑같았다. 다만 지금이 조금 더 자유로워 보였다.
“나를 죽이러 왔나?”
문요셉이 물었다. 도선우는 피식 웃었다.
“그러면 뭐가 바뀝니까?”
“……그것도 그렇지.”
문요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문요셉은 도선우가 부두교의 교주라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심층적인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문요셉은 정직(停職)을 당했다.
문요셉은 정직을 당했던 그때, 독자적으로 도선우를 죽이거나,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훼방을 놓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요셉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럼 왜 날 찾아왔지?”
문요셉이 물었다. 도선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영입을 제안하려고 왔습니다.”
“나더러 부두교 쪽에 붙으라는 말인가?”
“개종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영입’입니다.”
“하긴, 신념은 그리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지. 내가 아무리 이렇게 비참한 처지라고 해도.”
“처지가 비참할수록 더 그렇지요. 신념까지 버리면 뭐가 남겠습니까.”
도선우의 말에 문요셉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근데, 영입을 한다고 해도 날 어디에 쓸 셈인가? 이렇게 늙고, 비참한 노인네를 가져가서 어디에 쓰려고?”
“아무래도 전투원으로 쓰겠죠. 부두교는 전투원이 부족합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제가 선두에 서야 할 정도죠.”
“전쟁을 생각하고 있나?”
“필요하다면.”
도선우가 말했다. 문요셉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도선우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거절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지?”
“승낙했을 때의 조건을 먼저 물어보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군. 승낙한다면 나에게는 무슨 이익이 있지?”
“따님을 찾아드리죠.”
도선우가 말했다. 문요셉은 처음에 잘못 들었나 싶었다. 딸을 찾아준다? 어떻게 찾는다는 거지? 아니, 애초에 딸이 있다는 것을 도선우에게 말한 적이 있었나?
문요셉은 간만에 혼란스러웠다. 반면 도선우는 그런 반응조차 예상했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사실 이미 찾기는 찾았습니다.”
“……딸은 어디에 있지? 그것만 말해줄 수는 없나?”
“어떤 조잡한 용병단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더군요. 약 때문에 그쪽에 빚을 진 모양입니다.”
“…….”
“마침 그 용병단이 까마귀 용병단과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제거하는 김에 따님도 찾아올 생각입니다.”
“까마귀 용병단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거지?”
“까마귀 용병단도 부두교 소속입니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도선우가 말했다. 문요셉은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부두교의 소속인가.
어쩌면 사탄교보다도 힘이 약한, 한때는 ‘제3 종교’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으로도 불리던 부두교는 몇 년 사이 착실하게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다. 문요셉이 생각한 것보다 그들의 규모는 컸다.
“한 가지만 묻지. 자네는 도대체 뭘 하려는 건가?”
문요셉이 물었다. 도선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곧 그는 말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뭘 할 것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 있고, 무엇을 위해 싸우며, 또한 부두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그것을 말할 때, 도선우의 눈동자는 강한 생명력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생명력은, 다시 말해 그들의 생명력은 생명력의 부재로부터 나왔다.
결핍된 생명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 부두교를 움직이는 생명력이며 동력이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군.”
문요셉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도선우의 계획은 허무맹랑하고 위험했다. 그리고 무모했다. 그야말로 승산이 없는 싸움,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런 싸움을 아주 좋아해.”
하지만, 그렇기에 끌렸다. 문요셉은 도선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도선우는 그 손을 잡았다.
지금, 문요셉은 성당에 있다. 그리고 한대호와 대치하고 있었다. 한대호는 문요셉을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짐작이 가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건 어려워.”
“그렇군요.”
한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요셉은 철퇴를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한대호는 주먹을 굳게 쥐었다.
“문요셉 이단 심문관님과는 한번 전력으로 붙어보고 싶었습니다. 예전부터.”
“그렇다면 오늘이 기회겠군.”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콰앙!
문요셉의 철퇴와 한대호의 주먹이 맞부딪혔다. 한대호의 주먹이 부서져서 피가 났고 문요셉의 철퇴는 찌그러졌다.
문요셉은 재빨리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다른 철퇴를 주워서, 휘둘렀다. 한대호는 철퇴에 맞아 주먹의 형체가 일그러지는 와중에도, 얼굴 한번 일그러뜨리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외팔이었다.
근처에 있던 성기사들은 그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그건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의 싸움이 아닌 수준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막거나, 맞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문요셉의 얼굴에 한대호의 거대한 주먹이 꽂혔다. 문요셉의 이가 부러졌다. 문요셉의 철퇴가 한대호의 머리를 쳤다. 한대호의 눈동자가 잠깐 돌아갔다.
콰직!
한대호의 주먹이 문요셉의 눈을 가격했다. 문요셉은 이제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결코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 용감하지만 무식한 난타전.
그 정신없는 싸움 속에서도 문요셉은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아아아아―!”
문요셉은 포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전력을 쏟았다. 문요셉은 앞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양손에 철퇴를 들고 미친 듯이 휘둘렀다.
문요셉에게 다가오던 성기사들의 주술 방독면이 하나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의 역할은 성기사들의 주술 방독면을 부수는 것. 그리고 한대호를 무력화하는 것. 마지막으로, 죽을 때까지 싸우며 주술이 성당 전역에 퍼질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
사아아아…….
문요셉과 한대호의 전투에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성당은 이미 보랏빛 안개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안개에 접촉한 성기사들이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문요셉도 주술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의식 역시 차츰 흐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는다.
설령 쇠사슬에 온몸이 묶여도, 눈이 뽑혀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도, 죽음을 불사하며 싸우는 것.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단신으로 신전의 기둥을 뽑아 자신의 적과 함께 죽는 것.
그게 문요셉에게 하나 남은 마지막 이름, ‘나실’이라는 이름의 본질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서 있다.
퍼져가는 안개 속에서, 성기사들은 한 명씩 쓰러지고 있었다. 성당 안의 거의 모든 사람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오직 세 사람만이 의식을 붙잡고 서 있었다. 주술의 안개를 맡고도 정신력으로 의식을 붙잡은 한대호와 문요셉.
“…….”
마지막으로 주술의 시전자이며,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하수영이었다.
* * *
윤시몬은 김진서를 동경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강했다. 북부성전사단의 누구도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마수와 악마종을 검으로 베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영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멋있고 아름다웠다.
원래 성기사가 되려고 했던 윤시몬은, 오직 김진서 때문에 성전사가 되기로 했다. 그녀 때문에 북부성전사단에 들어왔다.
“…….”
그랬던 그녀가 쓰러져 있었다. 누구보다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패배는 윤시몬에게 분노를 안겨주었다.
김진서에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윤시몬의 동경은 이성적인 호감과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김진서를 쓰러뜨린 부두교의 교주를 향해, 광적인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검을 쥔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이를 너무 강하게 악문 탓이었다. 윤시몬은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너를……. 죽이겠다.”
윤시몬이 말했다.
“소보.”
도선우는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말했다.
쩌엉―!!
번개가 윤시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