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43
제343화
전투의 파장은 컸다. 그리고 길었다.
사실상 전력 손실이 크지는 않았다. 성전 기사단의 많은 단원들이, 교주의 압도적인 모습에 진작 도망쳐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비록 용병과 현역 성직자를 섞어서 급조한 단체라고는 하지만, 성전 기사단은 어쨌거나 ‘기사단’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사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했어야 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두교의 교주를 향해 용감하게 달려들었어야 한다. 그들의 투쟁이 후일 조직될 기사단에게 귀감이 되도록. 그들의 죽음이 로마니카교라는 소속 아래 안타깝고 가엾게 느껴지도록.
또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적어도 인질만은 전부 탈환했어야 한다. 그 자그마한 성공을 위안 삼아, 로마니카교의 건재함을 증명할 수 있도록.
“머저리들.”
마유현이 중얼거렸다.
근면의 호위대장 강대만이 죽었다. 그는 ‘우물’의 베라카를 지닌 채로 죽었다. 베라카는 떠났다. 떠나간 베라카는 돌아오지 않는다.
또 한 명, 마유현의 베라카를 쥐고 있었던 교황 대리인은 아직도 부두교의 손에 있다.
전투도, 인질 탈환도, 모든 것이 실패나 다름없었다. 상대는 마치, 로마니카교 측의 작전을 전부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인질 탈환을 위해 조직한 별동대의 대장인 윤시몬이 말하길, 그들은 인질들을 전부 한 건물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정작 교황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교황 대리인’은, 다른 인질과 분리해서 보관해 두었고.
그들은 교황청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교황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머저리는 나인가.”
마유현이 피식 웃었다. 내통자의 존재를 상정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로마니카교 내에 부두교와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것쯤은 마유현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통자를 먼저 잡고, 그다음에 전투를 치렀어야 한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 오판이 이토록 뼈아픈 결과를 낳을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부두교와의 전투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흐름을 타서, 교황령 곳곳을 노려 공격을 감행했다.
“염만근의 공장이 부두교에게 점거됐다고 합니다. 염만근, 그 작자도 부두교였던 것으로…….”
그들은 주로 자신들의 예배당이 있던 장소를 골라서 습격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예배당과 교인들을 확보했다.
전투가 있었거나, 부두교가 어떤 유의미한 행동을 할 때마다, 마유현은 공의회를 열었다. 그리고 전투의 피해 규모 및 차후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교황령 내 몇몇 지역에서 부두교 발로 추정되는 폭동이…….”
“교주가 지난 몇 년 동안 손을 써둔 모양입니다. 진압에 무리는 없지만, 여론전으로 가면…….”
이제 새삼스럽게 ‘성전’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추기경은 없었다. 성전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마유현은 잠자코 추기경들의 말을 들었다. 좋은 소식은 없었다. 어느 지역이 부두교에게 점령을 당했다. 어느 여론이 로마니카교에 적대적이다. 그런 듣기 껄끄러운 소식들뿐이었다.
그들의 말을 통해 그나마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교주의 일반적인 행보였다. 어떤 의미로는 습관이나 강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 그의 일관된 행보.
교주는 거의 모든 전투에 나섰다. 여론전을 생각한 어떤 정치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고, 기질적으로 매번 전투에 나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이 사실은 중요했다. 거의 모든 전투에서 교주가 나타났다는 것은, 달리 말해 모든 전투에서 지더라도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교주를 잡아낸다면 승전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어지간한 각오로는 안 되겠군요.”
마유현은 지금까지 성전 기사단을 비롯해, 많은 기사단을 조직하여 부두교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 기사단에 마유현이 속해 있지는 않았다.
또한 근면의 호위대장이었던 강대만의 죽음 이후, 마유현은 다른 호위대장을 전투에 보내지 않았다.
그는 은연중에, 베라카가 손실되거나 부두교 측에 빼앗기를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어쭙잖은 각오로는 안 된다.
로마니카교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호위대장들과 고위 성직자, 그 외 명성이 있는 성직자들을 모두 파견해야 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면, 교황인 마유현 본인이 직접 전투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었다.
마유현은 지금 총력전을 고려하고 있었다. 총력전을 해서라도 교주를 잡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만큼이나 로마니카교의 상황이 안 좋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통자를 잡았다는 소식입니다, 성하.”
그때, 한 추기경이 말했다. 종일 어둡던 마유현의 얼굴이 조금이지만 밝아졌다.
* * *
강대만의 장례가 치러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전투에 나섰던 성전 기사단원들도 왔고, 강대만과 알고 지내던 고위 성직자들도 왔다. 정인아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녀는 이제 피렌체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부두교와의 전투, 즉 성전이 지속되면서 피렌체 아카데미가 휴교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
정인아는 그곳에서 한수련을 만났다.
둘은 싸웠다고 했다. 강대만이 성전 기사단의 단장이 되어 출전할 때까지도, 그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고 했다.
싸운 이유는, 이제 와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별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는데, 라고 한수련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죽일 거야.”
한수련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렇게 덧붙였다.
“그 새끼는 내가 죽여버릴 거야. 내가, 내 손으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 뿐, 표정에서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수련의 표정은 여느 때와 같이 담담하고 무신경했다. 그런데 눈에서만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수련은 반쯤 미친 것 같았다.
“너는.”
한수련이 말했다. 정인아는 그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정인아는 그저, 조금 무서웠다.
무표정하게 눈물만 줄줄 흘리는 한수련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었던 강대만이 죽었다는 사실도.
그를 죽인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도선우라는 것도.
“너는 누구 편이야.”
한수련이 재차 물었다. 정인아는 대답할 수 없었다. 누구 편이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당연히 로마니카교의 편일 터였다. 그녀의 소속은 어쨌거나 로마니카교였다. 휴교령이 내려졌다고는 하나, 그녀는 여전히 피렌체의 교사였다.
“나는…….”
하지만, 소속이 로마니카교라고 해서 로마니카교의 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소속과 편이 같은 것인지, 다르다면 무엇이 다른 것인지, 정인아는 헷갈려서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무서웠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동생 윤아가 실종되었을 때에도, 우연히 도선우와 구준혁과 삼자대면을 하게 되었을 때도.
또한 그녀는 무서워서 사제가 되기보다는 교사가 되는 길을 택했다.
정인아는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나오는 도중에 몇몇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피렌체 동기들. 그리고 여민서였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사를 건넬 수가 없었다.
“…….”
강대만의 장례식이 있고 나서, 그녀는 한동안 집에서 쉬었다.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정인아는 이 지독한 싸움이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싸움을 끝내는 방법은, 끝까지 싸우는 것밖에 없었다.
우우웅―!
그때, 정인아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그리고 정윤아가 부두교와의 내통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 * *
경상교단에서 인질을 두고 벌어진 성전 기사단과의 전투를 마치고, 기세를 몰아 염만근의 공장이 있던 전라교단까지 탈환한 그들은 강원교단 본부로 돌아갔다.
전투를 통해 얻은 전리품, 이를테면 로마니카교에서 사용하는 총이나 전차 같은 것들과 함께.
본부에 머무르고 있던 부두교도들은 그들을 환대했다. 성전 기사단과의 전투는 물론, 전라교단과 충청교단 인근까지 탈환한 그들은 부두교의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단연 가장 많은 환호를 받은 것은, 당연히 교주인 도선우였다.
다른 부두교도들이 환대를 받는 동안, 도선우는 이진성의 방으로 갔다.
“아주 귀하신 분이 오셨네.”
방으로 들어가자, 이진성은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다. 도선우는 이진성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좀 늙었네, 삼촌.”
“인마, 너도 이 나이 되면……. 아니다.”
이진성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뭐 하러 왔어?”
“뭘 뭐 하러 와? 전투 마치고 귀환한 건데.”
“아니, 내 방에는 뭐 하러 왔냐고.”
이진성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방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다.
도선우는 맞은편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그리고 이진성이 마시고 있던 차를 빼앗아서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차야?”
“캐모마일. 요즘 불면증이 생겨서 잠을 못 자.”
“캐모마일이 불면증에 좋나?”
“그렇다고는 들었는데, 효과는 모르겠다.”
“안타깝네.”
도선우가 말했다. 딱히 진심 같지는 않았다. 이진성은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도선우를 보았다. 도선우를 응시하는 그의 눈동자는 날카롭고 서늘했다.
그러나 차가운 눈동자 너머로는, 자그마한 동정과 안쓰러움 같은 것도 느껴졌다. 도선우는 그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읽고, 씁쓸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로마니카교의 전차와 총을 빼앗았어. 다음 전투에 활용할 수 있을 거야.”
도선우가 말했다. 이진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진성은 도선우에게 그런 걸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잘됐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었냐?”
“전부 셀 수는 없지. 하지만 상대적으로 로마니카교의 피해보다는 적어.”
“상대적으로.”
이진성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선우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럼, 이제 앞으로 몇 명이나 죽을 것 같냐.”
이진성이 물었다. 도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진성이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도선우는 알고 있었다.
“아직 생각이 안 바뀌었나 보네. 몇 번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그래도 조금은 날 지지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꿀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니까.”
“그래……. 그럼, 갈게.”
도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생각이 바뀌었는지, 안 바뀌었는지. 그거 하나 물어보려고 온 거냐?”
이진성이 물었다. 도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물어본 게 아니야. 확인한 거지. 생각이 안 바뀌어서 다행이야.”
“…….”
“그냥 어떻게 지내나, 한번 보고 싶어서 온 것도 있고.”
도선우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는 없냐?”
이진성이 말했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는 것을, 이진성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그만두면, 더 큰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하지만 이대로 싸움을 이어간다면, 도선우는 반드시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진성은 한 번이라도 더, 도선우를 말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어렵지.”
하지만 도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