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5
제35화
인간은 고통에 약하며, 고통보다 쾌락에 더 약하다. 고통으로 두려움을 주입하는 것보다, 쾌락으로 신앙을 주입하는 것이 훨씬 쉽다.
사람들은 대개 고통은 경계하면서 쾌락은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급 환혹, 도취.
이 주술을 사용하면 그저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신도들에게 쾌락을 주입할 수 있으며, 신앙을 고취시킬 수 있었다.
기존 부두교에서는 ‘금기’로 여겨지는 주술이었으나 알 바는 아니었다. ‘기존’ 부두교에서는 금기였으나, ‘부두재림교’에서는 금기가 아니었으니.
‘2대 교주님은 뭐 하러 금기 같은 걸 만드셨을까. 고지식하게.’
새삼, 재가 되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린 2대 교주를 떠올렸다. 그와 함께, 자신이 ‘부두재림교’를 세웠을 당시의 목표를 떠올렸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라.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기어이 그것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결의를 다지며, 주술을 사용했다. ‘부두재림교’를 모독하고서도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는 저들 삼인조를 향해.
곧, 주술진이 일궈낸 보랏빛 안개가 저들을 집어삼켰다.
저들은 곧 모든 걱정과 슬픔을 잊고 웃게 될 것이다. 멍청하고 초라하게, 실성한 듯 그렇게 웃다가,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쾌락에 뇌가 절여질 것이다.
7년 전 자신이 그랬듯이.
“어, 라?”
그러나, 그들은 웃지 않았다.
도리어 냉혹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면 밑으로 흘깃 보이는 얼굴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곧, 저들 중 하나가 당찬 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부두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그는 상황을 이해했다.
‘부두교도인가.’
부두재림교를 응징하기 위해 기존 부두교의 신도가 찾아온 거구나.
그렇다면 주술이 통하지 않은 것도 설명이 된다. 부두교도들은 보통 주술에 대한 저항력이 일반인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저항이 강하다면, 저항조차 무시할 만큼 강한 주술을 사용하면 되니까.
중급 환혹, 혼절.
혼절 주술은 도취 주술보다 난도가 높고, 위력도 강하다. 저항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혼절 주술에는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처분을 결정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좀비로 만들든, 묶어서 개밥으로 주든, 일단 제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음.”
그러나, 저자는 기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와 같이 터벅터벅 걸어올 뿐이었다.
‘내성이 저 정도로 강하다고?’
하급이 아니라 자그마치 중급 환혹이건만. 저자의 주술 저항력은 어지간한 부두교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일반 신도가 아니라 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부들은 일반 교도보다 주술 저항력이 강하다. 그 역시 한때는 부두교의 간부였기에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강하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더 강한 주술을 사용해야만 한다.
몸 안에 있는 모든 부두 마력을 끌어 쓰는 한이 있더라도.
“후우.”
상급 이상의 주술을 사용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손끝으로 정제된 부두 마력을 사출하였다. 그리고 주술진을 그렸다.
상급 환혹, 악몽.
안개가 저자를 덮쳤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놈은 안개를 뚫고 성큼성큼, 계속해서 다가왔다.
상급 환혹, 불안.
효과가 없다. 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가온다.
상급 환혹, 망상.
역시, 효과가 없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저자의 주술 저항력이 강한 게 아니다.
자신의 주술이 애초에 발동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고작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주술진을 해체하고 분해하여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었다.
‘간부가 아니야. 저놈은…….’
간부는 결코 타인의 주술진에 간섭할 수 없다. 그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부두 마력에 간섭하여 주술진을 해체하고, 끝내 주술이 불발되도록 만들 수 있는 자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다.
부두교의 교주.
2대 교주의 아들, 도선우.
그놈밖에 없었다.
도선우는 주술로 결코 제압할 수 없다. 기본적인 저항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주술에 대한 이해도가 일반 교도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섣불리 주술진을 그렸다간 주술이 발동되기도 전에 해체되고 만다.
“마리네트!”
그렇다면 남은 건 권능밖에 없다. 황급히 마리네트를 불러냈다.
로아의 선택을 받지 못한 몸으로 연달아 권능을 사용하면 부작용이 강하게 온다. 자칫하면 피를 토하다 죽을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망설일 틈조차 없었다.
마리네트를 부른 직후, 곧바로 손을 뻗고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나 아무리 집중해도 마리네트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권능이 사용되지 않았다. 뻗은 손끝이 갈피를 잃고 허공을 떠돌았다.
“마리네트! 뭐 해, 빨리!”
[도망, 빨리. 렉바! 아, 렉바! 렉바가!]다급한 마음에 마리네트의 이름을 외쳤으나, 마리네트는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로 그저 도망치라는 말만 반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촤르르륵─
그 무렵, 도선우는 제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품에서 웬 씨앗을 꺼내 제단에 부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씨앗들이 일순 녹색으로 반짝이다,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제물이 바쳐졌다.
그리고, 그간 약화되었던 로아의 권능이 본래의 힘을 되찾았다.
[빨리, 도망!]“아, 이런 씹─”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 도주를 시도하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란브와.”
차분한 음성과 함께, 그의 손끝이 녹색으로 반짝였다.
콰지지지직─!
도선우가 바닥에 손을 대자,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 굉음이 일었다. 아니, 뒤집어지는 ‘듯’이 아니었다.
정말로 천지가 뒤집어지고 있었다.
예배당 바닥은 일찍이 수평을 잃고 기울어졌으며, 벽면과 천장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균열 틈으로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촉수처럼 일렁이며 쇄도했다.
도선우가 그란브와에게 바친 제물은, 영혼나무의 뿌리도 아니었으며 하다못해 고목나무의 가지도 아니었다. 농익은 과실도 아니었고, 봄 향기를 머금은 파릇파릇한 잎사귀조차 아니었다.
그저 씨앗.
오는 길에 마트에서 사 온 8,000원짜리 무순과 상추 씨앗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도선우는 로아의 선택을 받은 선지자. 그가 부리는 권능은 남들과 비할 바 없이 강대했다.
“케헥……!”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나무뿌리들이 온 전신을 빈틈없이 휘감은 탓이었다. 압박감에 폐가 짓눌려 호흡을 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현기증이 일었고, 이내 눈앞이 까마득하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식이 끊겼다.
* * *
“케륵, 끄으윽─!”
교주는 온몸이 나무뿌리에 꽁꽁 묶여, 거품을 질질 흘리다 기절했다.
사실 주술을 사용했더라면 보다 쉽고 빠르게 교주를 제압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굳이 그란브와의 권능을 사용했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냥 한번 써보고 싶었던 거겠지.]“오, 정확해요.”
눈앞에 제단이 있고, 마침 바칠 만한 제물도 있다. 머릿속에서는 로아들이 제물을 달라며 꺅꺅 비명을 지르고 있다. 주술보다는 권능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유만으로 권능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보셨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이 믿어온 교주는 가짜입니다. 이것이 진짜 부두교, 원조 부두교의 교주가 부리는 기적입니다!”
이진성 삼촌이 교주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탈취하여 연설을 했다. 신도들은 모두 삼촌의 말을 귀 기울여 경청하고 있었다.
삼촌은 짭두교 신도들을 죄다 부두교로 흡수하여 데려올 생각인 듯했다. 내가 주술이 아닌 권능을 사용하여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덕에, 삼촌의 말에 설득력이 더해졌고 홍보 효과는 배가됐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잘된 셈이었다.
삼촌이 연설을 하는 동안 나는 뒤에서 주섬주섬 전리품을 챙겼다.
“제단. 물통. 밧줄은 챙길 필요 없고. 목줄? 흠.”
[목줄을 뭐 하러 챙기나. 버려. 불순하다.]“뭐가 불순해요?”
[당연히 불순하지.]“예?”
[……모르면 됐다. 아무튼 챙기지는 마라.]뭐가 불순하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챙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제단, 물통, 그리고 기타 잡다한 전리품들을 전부 바알의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그 많던 물건이 다 들어갔음에도 무게는 변함없이 가벼웠다. 내부 공간도 아직 여유로웠다. 완전히 사차원 주머니가 따로 없었다. 역시 비싼 값을 했다.
“그럼, 다음은 부두교 예배당에서 뵙겠습니다!”
대충 정리를 마쳤을 무렵, 이진성 삼촌의 연설도 끝이 났다. 신도들이 계단을 통해 우르르 예배당을 빠져나갔다. 하도 많아서 나가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신도들이 다 나간 예배당은 황량했으며 동시에 처참했다. 균열 곳곳에서 뻗어 나온 나무뿌리들 탓에, 몇 천 년 동안이나 방치된 고대 유적 같은 분위기가 났다.
그란브와의 권능이 가진 위력에 감탄하는 한편, 생각보다 풍경이 나쁘지 않아서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쿨럭, 케흑! 크허…….”
이윽고 침묵 사이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기절해 있던 짭두교 교주가 방금 막 정신을 차린 참이었다.
그는 한참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아무도 없는 예배당을 보고 절망한 듯 고개를 푹 떨궜다.
“하, 하하. 망할.”
그가 실성한 듯 웃었다. 나는 다가가 그의 가면을 벗겼다.
가면 아래로 드러난 맨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어릴 때 분명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한수엽?”
문득 떠오른 이름을 입에 담자, 그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광경을 지켜보던 삼촌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 그러네? 한수엽이네?”
나무뿌리에 휘감긴 한수엽을 향해 삼촌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삼촌의 얼굴에 분노, 배신감, 희열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떠올랐다. 삼촌을 본 한수엽이 떨떠름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다, 진성아.”
“반가워? 혼자 도망가 놓고 반가워? 배신자 새끼가. 그리고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빡.
삼촌이 한수엽의 머리통을 거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7년 전 성전이 일어났을 때, 부두교의 간부들이 단체로 도망을 간 사건이 있었다. 한수엽은 그때 도망간 간부 중 한 명이었다. 삼촌은 사건 당시 도망간 간부들을 통틀어 ‘배신자’라 칭했다.
“다른 배신자 새끼들은 어딨어?”
삼촌이 한수엽의 머리채를 잡아 강제로 고개를 들며 물었다.
“몰라.”
“어~ 몰라? 알게 해줄까?”
삼촌이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그러쥐었다. 딸칵, 소리와 함께 펜촉이 세워졌다. 삼촌은 그것을 한수엽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펜촉을 앞에 둔 한수엽의 눈동자가 공포로 이리저리 흔들렸다.
“다시. 어딨어?”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찌를 기세였다. 광경을 지켜보던 강지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한수엽은 공포에 질린 듯 입술을 떨며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모, 몰라. 진짜 모른다고! 나도, 나도 간신히 숨은 거야. 나머지는 다……!”
“다. 다 어쨌는데. 끝까지 말해.”
“…….”
한수엽이 대답 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삼촌이 펜으로 그의 눈알을 찌르려 들었다.
“삼촌. 하지 마. 물어볼 거 많잖아.”
나는 삼촌을 뜯어말렸다.
아직 한수엽에게는 물어볼 것이 많았다. 화가 나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눈알을 파내 봐야 얻을 수 있는 게 없었다. 도리어 죽거나 기절하기라도 하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후, 그래. 물어볼 거 많지.”
삼촌은 그제야 안정을 되찾은 듯, 펜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팔짱을 꼈다.
분노가 다 식지는 않은 모양이었는지, 눈꺼풀이 간헐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한참 화를 삭이던 삼촌이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돈은 다 어딨어? 헌금 모아둔 데가 있을 거 아니야?”
“…….”
“어? 이 새끼가? 너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어. 변호사 선임도 안 되고. 돈 어딨냐고.”
“어, 없어. 다 태웠어. 아까 너도 봤잖아.”
한수엽이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나는 새까맣게 타 재가 되어버린 헌금함을 뒤지며, 그 안에 든 돈다발을 꺼냈다. 렉바의 말대로 탄 것은 헌금함뿐이었으며 안에 든 돈은 모두 멀쩡했다.
돈다발을 본 삼촌의 얼굴이 복잡해졌다.
“태웠다며, 이 새끼야.”
빡.
삼촌이 한수엽의 머리통을 한 대 더 후려쳤다. 한수엽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돈다발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거 말고 없어. 진짜야. 다른 돈은 다 태워서 하늘로─”
“끝까지 이러네. 그냥 눈알 파버린다? 불만 없지? 달게 받아라.”
“아아아악! 기다려, 기다려!”
삼촌이 펜을 꺼내 촉을 세웠다. 그러곤 한수엽의 눈알에 펜촉을 천천히 들이밀었다. 한수엽이 묶인 채로 한참 동안 발버둥을 쳤다.
이윽고 펜촉이 한수엽의 눈동자와 거의 맞닿았을 무렵, 강지아가 다가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교주님. 저기, 저쪽에 수상한 문이 하나.”
그녀가 예배당 구석 저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문이 있었다. 페인트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어, 육안으로 보기에는 벽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문.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났다.
나는 문으로 걸음을 옮기기 전, 한수엽의 얼굴을 힐끗 살폈다.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굳어 있었다. 저 안에 뭔가 중요한 게 들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 안 돼……. 거기는 안 돼! 야아악─!!”
“‘야’는 반말이고.”
문으로 걸음을 옮기자, 한수엽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를 막으려 들었다. 삼촌은 그런 한수엽의 머리통을 때려주었다. 그간 어지간히 쌓인 게 많은 듯했다.
삼촌이 한수엽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다. 곧 문 앞에 섰다. 함께 있던 강지아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철컥.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끼이이이…….
이윽고 문이 열렸다. 다소 스산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