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53
제353화
하판석은 어차피 죽었을 것이다.
부러진 다리. 채찍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 전신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 그리고 추위. 그 모든 것이 하판석을 서서히 죽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판석의 목숨은 가만히 두었어도 알아서 사라질 것. ‘대가’로 취급하기에는 무가치한 것. 도선우의 몸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그러나 칼푸는 응답했다. 하판석의 목숨을 대가로, 권능을 빌려주었다.
그건 이 자리에 하수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판석이 바친 것이 비단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일그러지는 하수영의 표정. 그 표정을 마주하는 하판석이 느낄 복잡한 심경까지, 칼푸는 전부 받은 것이다.
사아아아…….
하판석의 몸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주술진에서 일반적으로 흘러나오는 보랏빛 안개와 달리, 그 안개는 붉었다.
붉은 안개와 함께 하판석의 몸은 사라졌다. 그의 몸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붉은 안개가 되어서 사라졌다.
붉은 안개가 하늘로 너울너울 솟구치며, 달로 흘러갔다. 사라지는 하판석을 보는 하수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직, 우지직.
“아, 어?”
그리고, 인내의 호위대장의 몸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칼푸의 권능, 붉은 손이 인내의 호위대장을 쥐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인내의 호위대장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인내의 호위대장은 조금씩 찌그러지고 있었다.
“아, 억―”
콰직!
마침내, 그의 몸은 완전히 뭉개졌다. 납작하게 찌부러진 그의 시체가 눈밭을 나뒹굴었다.
그 무렵에 하판석의 몸은 이제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붉은 안개만이 너울너울 떠다녔다.
“…….”
하수영은 가만히 서서 두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버지가 죽었다. 아니, 사라진 건가. 모르겠다. 하수영은 하판석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나쁜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
따지고 보면 죽은 게 아니라 붉은 안개로 변했을 뿐이니까, 살아 돌아올 수도 있지 않나?
하수영은 순간, 그런 생각까지 했다.
휘릭―!
그러나 상황은 그녀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두 명의 호위대장 중, 살아남은 하나. 친절의 호위대장이 하수영에게 채찍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공기가 찢어지면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하수영의 정신을 깨웠다.
그녀는 눈을 뜨고, 친절의 호위대장의 채찍을 응시했다. 친절의 호위대장이 팔을 움직이는 모습을 응시했다.
지금은,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당장 저 채찍을 피하지 않으면, 얼굴이든 몸이든 박살 나서 죽어버릴 게 분명했다.
쫘악!
채찍이 눈앞을 스쳐 간다. 하수영은 가까스로 그것을 피했다. 채찍이 스쳐 지나간 얼굴 부근이 저릿저릿했다. 저 채찍에 맞을 것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하수영은 주술진을 그렸다. 참수검을 뽑아서 들었다. 검을 쥐고 친절의 호위대장을 응시했다. 붉은 안개가 떠도는 부근을 보았다. 하늘에 떠서 전투하는 도선우와 마유현을 보았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현실. 아무리 현실감이 없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하판석은 죽었다.
하수영은 직시했다. ‘별 없는 밤’, 어머니가 죽었던 그때, 하수영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레위단에게 끌려가서 죽는 모습을 벌벌 떨면서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도망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지금은 그때와 다를까. 그때와 다를 수 있을까. 하수영은 이제 그때처럼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남는 것이 후회밖에 없으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일단 너 먼저 죽이고, 그다음에는 마유현 눈깔 뽑으러 간다.”
하수영은 도망치는 대신, 직시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는 참수검을 쥐었다. 그리고 주술진을 그렸다. 보랏빛 안개가 자욱하게 퍼졌다.
친절의 호위대장은 주술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애초에 하수영은 상대에게 주술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전투를 위해 안개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수영은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채 검을 쥐었다.
“감히, 무례하게…….”
친절의 호위대장은, 혀를 차며 그렇게 말했다. 친절의 호위대장은 채찍을 들었다. 하지만 하수영은, 그 채찍이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 * *
“…….”
마유현은 찌그러진 인내의 호위대장을 말없이 보았다.
자신을 호위하던 최측근이 죽었음에도, 마유현의 얼굴빛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처참하게 죽어버린 인내의 호위대장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어차피 호위대장을 할 사람은 많았다. 인내의 호위대장에게 주었던 ‘베라카’가 소멸한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지만, 괜찮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도선우를 죽일 수만 있다면, 그깟 베라카 하나쯤이야 사라져도 별문제가 없었다.
마유현은 빛의 창을 고쳐 쥐었다.
부웅!
마유현은 날개를 펄럭이며 도선우에게 돌진했다. 마유현의 창끝은 도선우를 향하고 있었다.
“칼푸.”
그때, 도선우가 외쳤다. 거대한 붉은 손이 주먹을 쥐었다.
뻐억!
주먹이 마유현의 몸을 강타했다. 도선우를 향해 날아오던 마유현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유현의 몸이 눈밭을 굴렀다. 그가 떨어진 자리에 큰 구덩이가 생겼다.
마유현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배 속이 뜨거웠다. 내장이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빛의 날개로 막았는데도 이 정도. 막지 않았더라면 즉사했을지도 모를 위력. 과연,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바쳐 얻어낸 권능이었다.
그러나 마유현은 그때조차 웃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배가 뜨겁게 아프고,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그는 웃었다.
권능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바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바친 권능으로도,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해서.
“첫째 인.”
마유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중얼거렸다.
촤아악!
마유현의 창이 빛을 토했다. 창이 꿈틀거리더니, 곧 거대한 활로 변했다. 마유현이 고개를 들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도선우를 보았다. 마유현은 도선우를 겨냥한 채 활시위를 당겼다.
“오군.”
도선우의 등 뒤로 수십 개의 날붙이가 떠올랐다. 성직자나 부두교도가 쓰던 검이나 창 같은 무기들이었다.
새빨갛게 달궈진 날붙이는 도선우의 손짓을 따라 모이면서, 거대한 못이 되었다.
도선우가 지팡이로 마유현을 가리켰다. 날붙이로 만들어진 거대한 못이 마유현을 향해 쇄도했다.
마유현은 활시위를 놓았다. 분명 활에는 화살이 걸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위를 놓자, 빛의 화살이 생겨나서 도선우를 향해 쇄도했다.
카가가각―!
거대한 쇠못과 빛의 화살이 마주했다. 못을 이루던 쇠붙이들이 덜덜 떨리며 저들끼리 부딪쳤다. 날카롭고 섬뜩한 소리가 났다.
도선우를 향해 나아가던 화살이 빛났다. 마유현을 향해 나아가던 쇠못이 떨렸다.
콰창!
먼저 부서진 것은, 도선우의 쇠못 쪽이었다.
쐐애액―!
화살은 다시 도선우를 향해 질주한다. 도선우가 지팡이를 들었다.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거센 바람에도 화살은 멈추지 않았다. 빛의 화살은 오히려 도선우가 불러낸 바람을 찢으며 나아갔다.
푸욱!
도선우의 배에 화살이 박힌다. 도선우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화살은 도선우의 몸에 박힌 즉시 사라졌다. 상처 또한 없었다.
하지만 도선우의 입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마치 지독한 저주에 걸려버린 것처럼.
펄럭!
마유현은 날개를 펼쳐서 날았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고개를 숙인 도선우 쪽으로 다가갔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구나?”
마유현이 도선우를 비웃으며 말했다.
도선우는 상태가 안 좋았다. 이번 전투 때문에 안 좋아진 게 아니다.
산을 뒤흔들어 성직자들을 뿔뿔이 흩뜨려 놓은 뒤부터. 아니, 어쩌면 그전부터, 로아의 권능을 과도하게 사용한 부작용으로 도선우의 몸 상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도선우는 그 피로를 미처 회복하기도 전에, 마유현의 앞으로 왔다. 그리고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그러니 상태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도선우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살벌한 눈동자로 마유현을 보았다. 도선우가 지팡이를 들었다. 마유현은 위기를 감지하고 뒤로 물러났다.
“……담 발라!”
도선우가 외쳤다.
콰드드득―!
지팡이의 모습이 변했다. 지팡이는 탈피를 거듭하며 차츰 덩치를 불려나갔고, 마침내 거대한 뱀이 되었다. 담 발라의 현현(顯現)이었다. 도선우는 주술진을 그렸다.
끽, 끼기긱, 끼긱―!
주술진에서 섬뜩한 소리와 함께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참수검이 주술진에서 뽑혀 나왔다.
도선우는 검을 쥐고 마유현을 응시했다. 지팡이가 변해서 된 거대한 뱀, 담 발라가 입을 벌리고 마유현에게 달려들었다.
콰득!
담 발라가 마유현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하반신을 통째로 물어뜯으려던 것이었으나, 마유현의 날갯짓이 빨랐던 탓에 실패했다. 한쪽 다리라도 물어뜯은 것이 다행이었다.
직후 도선우가 참수검을 들고 마유현에게 달려들었다.
카가각!
참수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마유현이 날개로 막았다. 빛의 날개는 얼핏 물러 보였지만, 참수검으로도 벨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도선우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늘 위에 뜬 붉은 달을 응시했다.
“칼푸, 한 번만 더……!”
도선우가 말했다. 하늘에서 붉은 손이 내려왔다.
“둘째 인.”
그때, 마유현이 중얼거렸다.
촤악!
마유현이 들고 있던 활이 빛을 토했다. 그것은 다시금 형태를 바꾸었다. 빛의 활이었던 그것은, 거대한 빛의 검이 되어 마유현의 손에 들렸다.
마유현은 거대한 검을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도선우를 향해, 담 발라를 향해,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손을 향해.
서걱.
담 발라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 붉은 손의 손가락이 잘려서 우수수 떨어진다. 도선우가 들고 있던 참수검이 부러진다.
고작 한 번. 딱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도선우는 모든 공격 수단을 잃어버렸다.
마유현은 치유진을 그려서, 담 발라에게 물어뜯긴 다리 쪽에 사용했다. 치유의 빛이 절단면을 감쌌다. 출혈만 가까스로 멎었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펄럭!
마유현이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다시 도선우에게 다가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한 빛의 검은, 어느덧 최초에 보여주었던 빛의 창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마유현은 그 창을 도선우의 목에 겨누었다. 도선우는 피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럴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란브와. 바데. 칼푸. 담 발라. 오군.
그는 많은 권능을 사용했다. 이제 더는 권능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용하더라도 목숨을 내걸어야 할 것이다.
목숨을 내걸어 권능을 사용하더라도, 일격으로는 마유현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쩔 생각이냐?”
마유현이 물었다. 도선우는 숨을 골랐다. 그는 부두 마력을 사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부두 마력은 그의 손끝에서 반짝이기만 할 뿐, 사출되지는 않았다.
도선우는 이제 주술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지친 상태였다. 지팡이도 없다. 그에게는 이제 저항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유현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고르는 도선우를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도선우가 고개를 벌떡 들었다. 도선우의 표정을 본 마유현의 얼굴이 굳었다.
“어쩌긴 뭘 어째.”
도선우는 죽어가는 와중에도 웃고 있었다. 섬뜩했다.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아직 하나 남았다, 개새끼야.”
그는 떨리는 손끝으로 마유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바로 천벌!”
쩌엉―!!
그러자, 번개가 내리쳤다. 거대한 번개가 마유현을 덮쳤다. 그 옆에 있던 도선우도 덩달아 번개에 맞았다. 새까맣게 탄 두 사람의 몸이 추락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