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54
제354화
쿠구구구구―!
산이 요동치면서, 지형이 마구 뒤바뀌었을 때.
대열의 후미, 사제단이 밀집해 있던 곳에서는 크나큰 혼란이 번졌다.
일반적으로 사제단은 전투 능력이 거의 없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성기사나 성전사처럼 혼자서도 적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의 무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이 전방에 있는 성전사, 성기사 대열과 멀어지고, 심지어는 같은 사제들끼리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으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흩어진 사제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눈에 덮여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되지 않는 산을 마구 뛰어다니며 헤맸다.
정인아도 그렇게 흩어져 버린 사제 중 하나였다. 정확히는, 홀로 고립되어 버린 사제 중 하나였다.
“…….”
정인아는 떠돌았다. 떠돌면서, 자신처럼 고립된 다른 사제들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인아는 아직 패닉에 빠지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죽어가는 사람의 단말마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적나라하고 끔찍한 비명이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늘이 붉어졌다. 하얗던 산이 붉어졌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달이 떠 있었다.
섬뜩하고 무서웠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정인아는 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저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무모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정인아는 움직이지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도 못한 채 불안에 떨었다.
뽀득.
그때, 어디선가 눈 밟는 소리가 들렸다. 정인아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발걸음 소리가 아군의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적의 것이라면 큰일이었다. 그녀는 지금 부두교에게 저항할 그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로마니카교 성직자……. 사제인가.”
불행하게도, 정인아를 찾아온 사람들은 가면과 판초를 쓰고 있었다. 부두교도였다. 정인아는 바들바들 떨었다.
부두교도들에게는 무기가 있었다. 하지만 정인아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저항할 방법이라고 해봐야, 축복을 사용해서 신체 능력을 강화한 뒤 육탄전을 벌이는 것.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그럴 의지가 없다. 그녀는 애초에 이런 싸움에 끼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정윤아가 부두교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가족의 안위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참여했을 뿐이었다.
“…….”
부두교도들은 말없이 정인아에게 다가왔다. 정인아는 주춤주춤 뒷걸음을 쳤다. 심장이 요동쳤다.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이라도 축복을 써야 하나? 적의 수는 다섯이었다. 축복진을 쓴다고 해도 이길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축복을 써야 했다. 더 이상 주저했다가는, 주저할 기회조차 없어질 것이었다.
정인아는 신성력을 사출했다. 정확히는, 사출하려고 했다.
“으아악!”
파삭!
그러나 정인아는 그 순간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손끝에는 사출되다가 만 신성력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성력을 본 부두교도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전의가 없는 성직자라면 인질로 쓰거나, 혹은 교황의 위치를 특정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성력을 사출했다는 건 어쨌거나 전의가 조금은 남아 있는 성직자라는 뜻이었다.
즉, 사살하는 수밖에 없다. 부두교도들은 무기를 들었다. 정인아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잠시만요.”
그런 부두교도들을 말린 건, 뒤늦게 도착한 또 다른 부두교도였다. 다른 부두교도와는 달리 가면과 판초를 쓰고 있지 않았다.
정인아는 그녀를 알아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 정인아와 똑같은 특징을 가진 여자.
“……제 가족입니다. 저번에 말했던.”
“…….”
정인아의 친동생인 정윤아였다. 부두교도들은 정윤아의 말을 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기를 품에 집어넣고 떠났다.
정인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정윤아를 올려다보았다. 정윤아가 손을 내밀었다. 정인아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정윤아가 손수건을 꺼내서, 아직 멎지 않은 정인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정인아는 말없이 정윤아를 응시하고 있었다.
말도 없이 부두교도가 되어서,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동생이 눈앞에 있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부두교도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정윤아가 반갑기도 했지만, 그만큼 정윤아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너……!”
“오랜만이야, 언니.”
정윤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정인아는 할 말을 잃었다. 물어볼 게 많았다. 왜 부두교도가 된 건지. 남은 가족들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하지만 막상 정윤아가 눈앞에 있으니,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뭘 먼저 물어봐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나, 예전에 좀비가 됐었어.”
정윤아는 그런 정인아의 마음을 알아채고 말했다. 정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내가 왜 부두교도가 됐는지 궁금할 것 같아서.”
“…….”
정윤아는 말했다. 좀비가 되었던 것. 그리고 그가 자신을 치료해 주어서, 비로소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을 제외한 모든 것을 정인아에게 말했다.
정인아는 묵묵히 들었다.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부두교도가 된 거야. 그런 빚을 지고도, 로마니카교가 돼서 부두교를 상대로 전쟁에 가담할 수는 없었으니까.”
“…….”
“언니는 어떻게 할 거야?”
정윤아가 물었다. 갑작스러웠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인아는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뭘 어째야 하는 걸까.
좀비가 되었던 정윤아를 고쳐준 게 도선우니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두교도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로마니카교에 남아야 할까.
“난, 나는…….”
정인아는, 어느 쪽도 택할 수가 없다.
애초에 그녀가 바라는 건 그런 거창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가 특별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두가 특별하고 거창한 것을 바라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냥, 평범한 것을 바랐다. 가족, 친구인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일상. 적어도 서로가 죽고 죽이지는 않아도 되는 일상.
그녀는 일상을 바랐지만, 이제 일상은 너무 멀어졌다. 잡을 수도 없고, 어쩌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말았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바라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면, 그때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래, 언니.”
정윤아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정인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윤아는 산 너머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가. 여기는 곧 위험해질 거야. 저쪽으로 쭉 가면, 나갈 수 있어.”
“…….”
정인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윤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이 무거웠다.
정인아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정윤아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같은 자리에 서서, 정인아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
정인아는 그런 정윤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언제, 돌아올 거야?”
“……우연이 겹치면.”
정윤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정인아는 고개를 돌리고, 걷던 길을 마저 걸었다. 주머니를 뒤졌다. 아까 정윤아가 건네주었던 손수건이 손에 잡혔다.
* * *
교황청으로 향하는 행렬이 있었다. 거대한 행렬이었다. 그 무리에는 일반적인 성직자는 물론, 유명한 고위 성직자도 있었고, 학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신학회의 학회장까지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교황청을 향해 진군했다. 그리고 교황청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대성전을 둘러쌌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현 교황, 마유현에 대해 반감을 가진 자들. 또는, 사탄교를 저지한 부두교를 조금이나마 옹호하는 자들. 교황과 상관없이, 현 교황청의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자들.
이유가 뭐든, 그들 전부는 ‘개혁’에 동의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성하연이 있었다.
“슬슬 가죠.”
성하연이 말했다. 교황청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교황청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과 호위대장이 전투로 자리를 비운 덕분에, 경비는 허술했다.
최소의 교황청 경비대는 있었지만, 그들은 성하연을 주축으로 한 ‘개혁파’를 막을 수 없었다.
개혁파의 일원 중에는 교황청 경비대장보다 직위가 더 높은 성직자도 있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정화의 일족 성하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하연은 교황이 가진 힘, ‘베라카’를 누구보다 정당하게 소유하고 있는, 교황청에 적법하게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
개혁파는 들고 있는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고, 너무나 손쉽게 교황청을 점령했다. 그들은 이어서 교황의 거처로 들어갔다. 교황이 업무를 보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교황이 전투를 나간 동안, 대신 업무를 해줄 교황의 최측근.
추기경의 교계를 갖고 있으며, 한때는 교황 후보의 자리에도 올랐으나 마유현의 회유로 후보를 자진 사퇴했던 ‘연’이라는 남자였다.
장발 탓인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그 남자는, 교황청을 점령한 수십, 수백의 개혁파를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개혁파의 선두에 있던 성하연을 보고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반란이군요.”
연이 말했다.
“아직은 모르죠.”
성하연이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그녀가 말한 대로, 아직이었다. 그들의 교황청 점령이 의미를 갖는 것은 지금이 아니었다.
지금 치러지고 있는 전투. 부두교의 교주, 도선우와 로마니카교 교황, 마유현의 싸움이 끝난 이후.
그때 비로소 개혁파의 교황청 점령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반란일지, 아니면 개혁일지.
“앉으시겠습니까?”
연이 말했다. 그는 의자를 끌어 주었다. 성하연이 자리에 앉았다.
연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체스판을 꺼내왔다. 그가 책상 위에 체스판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체스나 한판 두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결과를 기다리셔야 할 텐데.”
“이 와중에도 체스를 권하시네요.”
성하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연이 소탈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반란을, 아니. 어쩌면 반란이고, 어쩌면 개혁이 될 뭔가를 꾸미고 있을 것이라고. 교황이 자리를 비운 때가 적기 아니겠습니까.”
“그걸 알면서도 여기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요?”
“손님이 올 줄 알게 되었으면, 맞이할 준비를 해야지요. 집을 비울 것이 아니라. 아,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탁.
연이 기물을 움직였다. 성하연은 얼떨결에 체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체스를 해본 적이 있기는 했다. 나름 잘하는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태연하게 체스나 두고 있다는 게 어쩐지 이상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성하연은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도 기물을 움직였다. 그렇게 게임은 시작되었다.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게임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연이 물었다. 질문이 묘하게 중의적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체스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교주와 교황의 전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어느 쪽이든 별 상관은 없었다.
“제가 이길 것 같은데요.”
탁.
성하연이 기물을 옮기며 말했다.
“아하. 저도 제가 이길 것 같습니다. 게임을 시작했으면 어쨌거나 이기고 싶은 게 정상이니까요.”
연이 말했다. 그는 기물을 옮기려다가, 잠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까지 파죽지세로 기물을 옮기던 모습과는 다소 상반된 모습이었다.
몇 번인가 고민하며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던 연이 마침내 기물을 움직였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교황 쪽은 잘 모르겠군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