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58
제358화
얼떨떨하다.
어머니가 있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은 건 적어도 5년 전이니까.
그토록 오래전에 죽은 어머니가 아직까지 교차로에 남아 있다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 앞에 있는 어머니가 어쩌면 가짜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론 삼디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바론 삼디는 장난을 자주 치는 로아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바론 삼디라도 이런 걸로 장난을 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어머니가 맞다. 그걸 인정하고 나자 머리가 새하얗게 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내 멱살을 잡은 이야기부터 하는 건 어떠냐?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 하고 징징대면서 말이다.]그때, 바론 삼디가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아니, 내가 언제요?”
나는 당황해서 황급히 대답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긴 했지만, 내가 바론 삼디의 멱살을 잡은 적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마주하고,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그때.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고, 바론 삼디에게 화풀이를 했다.
하지만 바론 삼디가 말한 것처럼, ‘우리 엄마 살려주세요’라고 추하게 징징거린 적은 없었다. 확신은 못 하겠는데, 아마도 그럴 것이다. 설마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
“선우가 그랬어요?”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색하다는 이유로, 얼떨떨하다는 이유로,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어머니의 얼굴을, 이제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작게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투는 차분했다. 예전과 같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 차분한 듯하면서도 잘 들어보면 온화함이 느껴지는 말투와 목소리.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나지 않게 되었던 것들. 흐릿했던 어머니의 모습들.
그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고, 예전과 같이 뚜렷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나는 무심코 눈물을 흘렸다.
[울고불고 난리였지. 지금처럼.]바론 삼디는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비웃는 듯한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다행히 눈물은 금방 멎었다. 어머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웃었다.
“의외네. 어릴 때는 너무 안 울어서 오히려 걱정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셌던 모양이야. 하긴, 지금 성격 보면 그랬을 것 같긴 해!]바론 삼디가 어머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억울하다. 나는 자존심이 세서 울지 않았던 게 아니었으니까. 아니, 생각해 보면 자존심이 세서 울음을 참았던 적도, 몇 번은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바론 삼디가 나를 놀려도, 어머니가 그의 말을 듣고 쿡쿡 웃어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어땠니, 지금까지.”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가 짓고 있는 미소가 어쩐지 씁쓸했다.
나는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교주가 되어서,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조금 힘겨워 보였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는 것이 오히려 힘겹다.
“꽤 잘했어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에게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1차 성전이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피렌체에 들어갔고, 그러고 나서는 어떻게 지냈는지.
피렌체에 들어간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구준혁의 이야기도 하게 됐다.
그놈이 사탄교였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설명하면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친구라고 얼버무렸다.
“그런 애랑 어울리지 마. 걔 좀 쎄하네.”
어머니는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아……. 지금은 안 친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어서 이진성 삼촌의 이야기도 했다. 강지아 누나의 이야기도. 간부들의 이야기도. 그리고, 2차 성전의 이야기까지.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구준혁이 사탄교였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처럼,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알아서 생략했다.
윤창수와 하판석이 죽었다는 것. 지하 감옥에서 죽어버린 어머니를 보고 울었던 것. 몇 번인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저질렀던 기행들.
그리고, 내 생각보다 훨씬, 어쩌면 어머니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내가 힘들었다는 것.
그런 건 그냥 말하지 않았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런 것들은, 지하 감옥에서 죽은 어머니 앞에서 몇 번이고 말했던 것들이니까. 굳이 두 번씩이나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엄청 잘했네. 정말 많이 고생했어. 정말…….”
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머니는 말했다. 고생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계속 여기에 있었던 거예요?”
나는 괜히 머쓱해서 물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널 계속 기다렸지. 네가 생각보다 너무 일찍 와버렸지만.”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계속 미안했지. 네게 너무 많은 걸 떠안기고, 그냥 가버린 것 같아서…….”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처음으로 슬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지만, 차마 끄덕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없었다. 울지는 않았고, 웃기도 뭐했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나는, 마침내 입꼬리를 조금 올려서 어머니를 향해 웃어 보였다.
“조금 힘들긴 했어요.”
그렇게 말했다.
언젠가 나는 과거를 좇아서 살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어머니를, 지하 감옥에서 구해 내겠다는 목표 하나로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어머니를 조금 원망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그토록 어머니를 구해내는 것에 집착한 것일지도 모른다. 원망은 갈망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좇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과거는 과거인 채로, 추억인 채로 남겨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자, 이제 가야지. 시간은 많이 주었다. 슬슬 할 얘기도 없는 것 같고.]할 이야기가 마땅치 않아서 침묵이 왔을 때, 바론 삼디가 말했다.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바론 삼디는 길쭉한 손가락으로 교차로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교차로의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저쪽으로 가면 된다. 쭉 가다 보면, 망자가 머물러야 할 곳이 나올 거야.]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론 삼디가 가리킨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고, 바론 삼디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안 돼. 여기서부터는…….”
어머니와 바론 삼디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걸으려고 했다. 바론 삼디를 무시하고, 그를 그냥 지나쳐서, 어머니와 함께 걸으려고 했다.
하지만 바론 삼디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는 집요하게 내 앞길을 막았다.
그 탓에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아직 네가 마무리하지 못한 게 있으니까.]바론 삼디가 말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왜 내 앞길을 막는 것인지도,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사자의 계약.]바론 삼디가 말했다.
나는 그제야 바론 삼디와의 계약을 떠올린다. 바론 삼디가 내게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린다. 내게 마지막 남은 한 번의 기회.
사자의 계약.
[선택해라. 죽을 것인지, 아니면 살 것인지.]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처음이 될 수도 있는, 거대한 선택.
[그것이 문제로구나. 하하!]바론 삼디는 내게 주사위를 내밀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가 건넨 주사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 *
성전이 끝났다.
마유현이 죽었다는 소식은 전장 곳곳에 퍼졌다. 부두교도들이 그렇게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니카교 교황군, ‘최후의 기사단’ 모두가 부두교도들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부두교도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유현이 죽으면서, 그의 몸에 깃들어 있던 수십 개의 ‘베라카’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본 로마니카교도들은, 하나둘 마유현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교황이 죽었다는 건, 최후의 기사단 최대 전력인 호위대장들 또한 죽었거나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었다.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최후의 기사단은 투항을 선택했다.
끝까지 마유현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저항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몇 안 되는 패잔병에 불과했다. 부두교의 적수가 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당시 교황청을 점령하고 있던 성하연을 필두로, 새로운 교황청이 세워졌다.
“쿠데타 교황은 물러나라!”
“교황의 개 주제에! 감히 주인을 물어, 어딜……!”
“사악한 부두교와 손을 잡은 교황청은 필요 없다!”
당연히 반발은 있었다. 마유현을 지지하던 세력들이나, 사교와의 타협을 결사반대하는 세력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들고 일어난 명분은 다양했다. 성하연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는 것. 본디 교황의 신하였던 정화의 일족이 교황의 권력을 넘봤다는 것. 사교와 손을 잡은 교황청이라는 것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신경 쓰지 않으면 됩니다.”
그들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을 고민하는 성하연을 보며, 연은 말했다.
“성하연 사제……. 아, 이제 ‘성하(聖下)’라고 불러야 할까요. 어째 이름을 부르다 마는 것 같아서 이상하긴 한데.”
“편하게 부르세요. 저는 상관없으니까.”
“성하라고 부르는 게 아무래도 편하겠습니다. 아무튼 저런 것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성하.”
연이 말을 이었다.
“성전의 피해 복구. 부두교와의 관계 설정. 이것을 먼저 해결하고 나면, 저들은 알아서 잠잠해질 겁니다.”
“…….”
“어차피 저것들은 목소리만 큰 놈들입니다. 목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때 차차 개선할 부분은 개선하면 됩니다.”
연이 말했다.
실로 그랬다. 성하연은 가장 먼저 피해 복구에 신경을 썼다.
성전 때문에 여러 가지 기능이 마비된 지역을 되살렸고, 전투 피해를 입은 민간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러자 연이 말한 것처럼, 반기를 든 시위대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다음은 부두교와의 관계 설정이었다.
부두교가 더는 사교(邪敎)가 아니라, 로마니카교와는 다르지만 어쨌거나 하나의 종교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1차 성전에서 비롯된 기나긴 부두교와의 갈등이 비로소 종식되었다는 것을,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선포해야 했다.
그러려면 먼저, 부두교의 교주가 죽었다는 사실을 공표할 필요가 있었다.
부두교가 로마니카교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려야 했으니까.
성하연은 성기사를 파견하여, 최후의 전투가 발생한, ‘노아의 방주’ 인근을 수습하게 했다.
그곳에서 성전에 참전한 이들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신원도 전부 파악했다. 대부분은 로마니카교 성직자였지만, 부두교도의 수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단 두 구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
최후의 기사단 별동대의 일원, 김진서. 그리고 부두교의 교주, 도선우였다.
같은 별동대원이었던 소도진과 윤시몬, 한수련에게 그들의 행방을 물었다. 그들 역시 두 사람의 행방은 모른다고 했다.
대신 마지막 순간에, 도선우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는 김진서의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도선우의 죽음을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증언에 따르면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분명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공표할 증거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김진서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녀는 분명 눈사태에 휩쓸렸다.
하지만 김진서의 신체 능력을 고려하면, 그깟 눈사태에 휘말려서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살아 있다. 다만 종적을 감췄을 뿐.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설은, 김진서가 도선우의 시체를 들고 어딘가로 도피했다는 것.
굳이 도선우의 시체를 갖고 도피한 이유는, 그의 시체가 성전의 종식을 알리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대충 앞뒤가 맞기는 했다.
“이대로 부두교와 적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교주가 죽지 않았다고 하고, 그 공포를 이용하는 거죠.”
연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안 돼요. 그건 약속을 어기는 일이라서.”
성하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연을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연은 움찔 몸을 떨었다. 연는 성하연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면서,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방금 그건 농담입니다.”
“네. 그럼 교주는 죽은 걸로.”
성하연이 말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부두교와의 갈등 관계는 여기서 끝내는 것으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