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59
제359화
새로운 교황청의 등장. 성전 피해 복구. 부두교와의 갈등 종식 선언.
그 모든 사건들은 긴 시간에 걸쳐서 일어났다.
새로운 교황청이 등장한 것은 2차 성전 직후였지만, 성전 피해를 대부분 수습하고 참전 성직자들에 대한 처분이 결정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그리고 부두교와의 갈등이 종식되었음을 교황청에서 공식 선포한 것은, 2차 성전으로부터 1년 6개월 뒤였다.
그러나 사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도 길지는 않았다. 각각의 사건들이 로마니카교도에게 끼칠 파급과 영향을 생각하면, 그조차 짧았다.
나름의 유예 기간을 갖고 선포한 내용이었는데도 로마니카교 보수파는 극렬한 반대 입장을 취했다.
결코 부두교와의 갈등이 종식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목소리였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 반드시, 부두교는 로마니카교를 공격할 것이며, 끝내 로마니카교의 모든 권력을 탈취하려고 할 것이라고.
대부분의 중도 로마니카교도는 부두교와의 갈등을 종식하는 데에 찬성했다.
로마니카교 최대의 적이었던 사탄교를 사실상 제거한 그들을 굳이 사이비라고 칭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니카교 보수 세력들의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를 않자, 성하연은 공의회를 열었다.
“……부두교의 현 교주, 하수영입니다.”
그리고, 부두교의 교주인 하수영을 그 자리에 초청했다.
로마니카교 보수 세력은 물론이고, 중도 세력들조차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반발은 분명 있겠지만, 성하연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부두교의 교주를 빼놓고, 교황 혼자서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해 봐야 별 설득력이 없었다.
부두교의 교주와 로마니카교의 교황이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름의 평화 조약 같은 것을 체결해야 비로소 부두교와의 갈등은 완전히 종식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입장은 이전과 같습니다. 우리를 가만히 두세요. 그럼 우리도 가만히 있을 테니.”
하수영의 입을 통해 전달된 부두교의 입장은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만히 둘 것’. 간단했다.
로마니카교가 먼저 부두교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은 한, 부두교도 로마니카교를 적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갈등 종식을 선언한 순간부터 이미 결정된 바예요. 이제는 로마니카교가 굳이 부두교를 건드릴 이유가 없지 않나요?”
성하연이 말했다. 로마니카교가 부두교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2차 성전을 일으킨 결과는 이미 보았다.
교황이 죽고, 2차 성전으로 위상이 격하한 로마니카교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부두교를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아니, 건드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더 이야기할 건 없겠군요. 이것으로 부두교와의 갈등은 ‘완전한 종식’을, 다시금 선언합니다.”
성하연은 그렇게 말했다. 공의회에 참여한 추기경과 대주교 중에는 그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성하연을 지지하는 세력의 힘이 반대 세력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던 까닭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로아의 권능은 하수영 교주, 당신에게 있겠지요?”
그때, 하수영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이번 질문은 연이 한 것이었다. 공의회에 참석한 추기경과 대주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갈등이 종식된 상황에서도, 로아의 권능을 소유한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꽤나 중요했다.
부두교의 전력. 화력. 나아가 권력과 위세는, 그 대부분이 로아의 권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하수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성하연은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대답이었다. 지금은 그걸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연은 납득하지 못한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수영에게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살짝만.
“3대 교주, 도선우의 생사에 대해서도 묻겠습니다. 혹시 이것도 대답하기 어렵습니까?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아니라, 이번 공의회의 목적과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라.”
연이 물었다. 하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로아의 권능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즉, 선지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부두교 측에서는 죽었다고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3대 교주인 도선우는 죽었습니다. 분명히. 확실합니다.”
“분명히…….”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수영의 말을 되풀이했다.
‘분명히’. 그건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하수영은 굳이 그 말을 강조했다.
그 강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연은 부두교의 4대 교주인 하수영이 마냥 만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물을 것도 없군요.”
성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불편한 질의응답 시간을 끝마치기 위한 것이었다.
공의회는 계속되었다. 부두교와의 관계에 대한 회의도 했지만, 대부분은 로마니카교 교황청 및 로마니카교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성하연과 연은 그곳에서 비리와 부패, 세속적인 목적을 위한 종교의 도구화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발표했다.
그중에는 교황 및 일부 최고위 성직자들에 대한 금혼령도 있었다.
본디 교황과 최고위 성직자라는 자리는 세습되어서는 안 되며, 자격을 갖춘 자에게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금혼령의 이유였다.
대외적 명분은 그러하나, 교황인 성하연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상으로 공의회를 마치도록 하죠.”
성하연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공의회는 끝났다.
공의회에 참석한 성직자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부두교의 4대 교주인 하수영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적잖이 있어서, 완전히 해산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성하연은 인파를 헤치고 그곳을 나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속이 안 좋았다. 밖으로 나와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나니, 그나마 속이 편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창백하던 겨울 하늘이 빛깔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히, 죽었다…….”
성하연은, 아까 하수영이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도선우가 분명히 죽었다고 단언했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죽음을 확인할 근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죽었다면 그냥, 죽은 거다. 만일 살았다고 한들, 하수영이 공식적으로 죽었다고 공표한 이상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은 할 수 없겠지.
이전처럼 신분을 숨기고, 조용한 곳에서 지내는 게 전부일 터다.
어쩌면 그것이 도선우 스스로 생각한, 속죄의 방법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이제는 도선우가 로마니카교에 위협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
성하연은 도선우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존을 확인할 어떤 근거도 없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할 근거가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게 조금 더 나을 것 같았다.
* * *
로마니카교 성직자단은 여전히 있었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바에 따라, 몇 가지 변화가 있기는 했다.
로마니카교 보수 세력과 연루된 고위 성직자들의 직위가 몇 단계씩 떨어졌다든지. 인사 조정이 있었다든지.
부두교와의 갈등이 종식되면서, 성직자단의 보편적인 행동 강령이 수정되었다는 것 정도.
그러나 ‘로마니카교 보수 세력과 연루된 고위 성직자’라는 특수한 위치가 아닌 이상, 큰 변화는 없었다.
참전한 성직자들은 성전에 참전했다는 이유로 이익을 받지 못했다. 당연했다. 패전했으니까.
하지만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다. 적어도 현 교황청에 반기를 들지 않은 성직자들에 한해서는 그랬다.
성전에 참전했던 한수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어떤 이익도,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성전이 있기 전처럼, 성전사단에 출근했다.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더 이상 부두교가 적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악마종과 마수는 여전히 있었고, 사탄교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전과 같은 악명을 떨치지는 않았다.
한수련은 평일에 출근을 하고, 주말에는 쉬었다. 가끔, 강대만의 가족을 찾아갔다. 그리고 아주 가끔, 여민서를 만났다.
“요즘은 좀 어때?”
한수련이 물었다. 여민서는 여전히 성물 사업을 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아. 지금은 좀 지지부진하기는 해도, 전보다는 나아. 성전 때 돈을 확 벌어둔 게 큰 도움이 됐지.”
여민서가 말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매출은 부두교와의 2차 성전에서 피크를 찍었다. 그 이후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성전이 일어나기 전보다는 낫다고 한다.
요즘에는 전투 성물뿐 아니라, 이런저런 편의 기능을 갖춘 다용도 성물도 취급하고 있어서, 다행히 사업은 순항 중이라고.
한수련은 들어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여민서는 줄줄 했다. 어쨌거나 잘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동생은.”
한수련이 물었다. 여민서는 잠시 주저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잘 지낸다. 그놈도 독립했어.”
“그래? 다른 가족들은? 연락은 하고?”
“가끔 아버지라는 인간이 빨대 꽂으려고 연락하더라고. 예전에는 무시했는데, 요즘에는 그냥 뭐……. 생활비 정도는 보내주고 있어.”
“다행이네.”
정말로 다행이었다. 여민서는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늘 기괴하게 비틀린 미소만을 지을 줄 알던 그녀는, 이제 슬슬 제대로 된 웃음도 지을 줄 알았다. 비록 그것이 씁쓸한 웃음이었다고는 해도.
“……어릴 때는 그 인간을 죽이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만도 않다. 용서라도 했는지.”
여민서가 말했다. 한수련이 미소를 지었다. 여민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한수련 쪽을 흘긋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좀 어떤데?”
“나? 나는, 그냥……. 글쎄, 잘 모르겠다. 아직은.”
한수련은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 환하게 웃어 보였다.
둘은 그렇게 헤어졌다. 여민서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일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나서도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한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즐거웠고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수련은 맥주를 마셨다. 간만에 술이 먹고 싶었다.
틀어 놓은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막연히 맥주만 홀짝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한수련은 문자를 확인했다. 여민서에게서 온 문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
그건, 입금 문자였다. 어마어마하게 큰돈이 한수련에게 입급된 것이었다.
그건 가히 평생 성전사로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수준의 돈이었다. 그쯤 되니 무서웠다. 무슨 사기 같은 것에 연루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이진성이 누구야?”
입금자 이름은 이진성으로 되어 있었다.
직후 강대만의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다. 그들도 돈을 받았는데, 한수련이 보낸 것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한수련은 자신도 돈을 받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들에게 돈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진성이 누구인지도.
* * *
“……방학 동안에 공부 열심히 하고.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인 거 알지?”
정인아가 말했다. 학생들은 언제 정인아의 말이 끝나는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죽은 눈으로 허공만 보던 것들이, 이제 와서 눈을 빛내는 게 괘씸하기는 해도, 정인아는 이해했다. 자신도 피렌체 아카데미에 다닐 때는 그랬으니까.
“하여튼, 다들 방학 잘 보내고. 어디 이상한 데 가서 놀다가 다치지 말고. 해산!”
정인아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피렌체 아카데미는 방학을 맞았다. 학생들은 신나게 교실을 빠져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교사였다. 피렌체도 여전히 있다. 성전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피렌체도 당연히 변화를 겪어야 했다.
정인아도 조금은 변했다. 먼저 담임교사가 되었고, 사제과의 축복 담당 교사도 겸하고 있다.
잔실수가 많고 허둥대는 성격 탓에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놀림도 받았지만, 지금은 교사 생활에 적응한 덕분인지 나름 여유도 있었다. 큰 변화였다.
방학식을 끝내고, 정인아는 교무실에 왔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래, 반성은 좀 했고?”
정인아는 교무실에 서 있는 학생을 보고 말했다. 정인아가 담임교사로 있는 자선반의 학생이었는데, 공부도 잘하고 실기 성적도 좋다.
부모님 중 한 분이 고위 성직자라서 신앙심도 깊고. 사제과를 지망해서 몇 번 진로 상담을 한 적도 있었다. 여러모로 장래가 기대되는 학생이었다.
“…….”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토록 우수한 학생이, 다른 날도 아닌 방학식에 교무실에 와 있는 까닭은 학교 폭력 때문이었다.
피렌체는 여전히 로마니카교 성직자를 육성하는 아카데미였다.
그러므로 신성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적어도 조금은 로마니카교에 대한 신앙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가족 중 부두교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학을 거절당하지는 않는다.
부두교는 이제 사교가 아니니까.
그러나 지금 정인아의 앞에 있는 이 학생은, 가족 중에 부두교도가 있는 다른 학생에게 지속적으로 ‘사이비’, ‘악마의 자식’이라는 둥의 폭언을 일삼았다.
“부두교는 이제 사이비가 아니야. 사교도 아니고. 그냥 다른 종교지.”
정인아가 말했다.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했다. 정인아는 학생이 자신의 말에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다.
학생이 고개를 들고 정인아를 보았다. 눈시울이 붉었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건 그냥, 교황청에서 그렇게 정했을 뿐이잖아요.”
학생은 당돌하게도, 정인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변한 게 많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여전히 성직자 아카데미, 피렌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그곳에는 여전히 사이비가 있었다.
부두교도를 사이비라고 여겨 배척하고, 비난하며, 가족 중에 부두교도가 있는 다른 학생을 따돌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부두교는 사이비가 아니다’라고 선포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있었다.
“걔가 사이비라는 건 누가 정한 건데? 그것도 네가 정한 거 아니야?”
그러나, 여전하지만은 않다. 교황청도, 정인아도, 피렌체 아카데미도.
이제 피렌체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다.
친척 중에 부두교도가 있어도, 또는 형제, 심지어는 부모가 부두교도여도 마찬가지였다.
자격만 갖추고 있다면, 그리고 진심으로 로마니카교 성직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피렌체에 들어올 수 있었다.
“피해 학생이 선처를 베풀어서 일이 크게 안 번진 거야. 고마운 줄 알아.”
“……네.”
정인아는 학생을 적당히 훈계하고, 귀가하도록 시켰다.
적당히 훈계했다고는 해도 30분을 붙잡고 설교를 늘어놓았으니, 학생도 어느 정도는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었다.
정인아는 학생을 보내고 나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전히 부두교를 배척하려는 단체도 있지만, 반대로 부두교를 포용하고 지지하는 단체도 있다.
앞으로 조금씩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정인아는 생각했다. 저 학생도, 그리고 이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저, 선생님.”
급한 일을 마치고, 슬슬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한 학생이 정인아에게 왔다. 처음 보는 학생이었다.
아니, 분명 얼굴은 알고 있는데 이름은 모르는, 그런 특징 없는 학생이었다.
“응. 무슨 일?”
“아까 어떤 분이 전해달라고, 이걸…….”
학생은 그렇게 말하며 정인아에게 웬 편지를 건네주고 떠났다. 정인아는 학생이 준 편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혹시 행운의 편지, 뭐 이런 건 아니겠지. 정인아는 괜스레 불길함을 느끼며 편지를 꺼내 펼쳤다.
그리고 편지의 첫 문장을 읽은 순간, 정인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언니에게.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