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36
제36화
“어머, 너무 잘 어울리신다~”
점원이 살랑살랑 웃으며 말했다.
정인아가 거울 너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줍은 듯 엷은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럼 이것도 살게요!”
“네~ 더 둘러보시겠어요?”
“아뇨! 그냥 이 정도만.”
정인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이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그럼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점원이 정인아가 고른 옷들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삑, 삑, 바코드를 찍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총 456,100원입니다. 포인트 적립 필요하세요?”
“아뇨아뇨, 괜찮아요.”
“영수증 드릴까요?”
“그냥 버려주세요!”
“네~”
점원이 봉투에 옷을 담았다. 정인아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정인아 입장에서 45만 원이면 지출이 제법 컸지만, 그렇다고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가 산 옷은 전부, 돌아올 동생을 위한 선물이었으니까.
정인아는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을 나왔다. 곳곳에 꽃향기가 만연했고 파릇파릇한 풀 내음이 바람을 타고 실려 왔다.
거리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손을 맞잡은 채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는 연인들이나, 나들이를 나온 가족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놀거리를 찾는 아이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정인아도 덩달아 행복해져서 실없이 웃었다.
딸랑─
정인아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동생은 케이크를 무척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제일 좋아했다.
“이걸로 주세요.”
정인아는 진열된 케이크 중 가장 크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점원이 케이크를 포장하는 동안 정인아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구준혁에게 문자가 몇 통, 그 외 다른 친구들의 별 의미 없는 안부 문자가 몇 통 와 있었다.
도선우는 답장이 없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선우는 주말마다 연락이 잘 안 됐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나왔습니다.”
의미 없이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며 도선우와 나눈 문자 내용을 훑던 중, 케이크가 나왔다.
정인아는 감사합니다, 하고 작게 인사를 하며 가게를 나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에서 청량한 소리가 났다.
그렇게 양손 가득 옷이며 케이크, 이런저런 잡다한 선물을 들고 뒤뚱뒤뚱 집으로 돌아갔다. 걷다 보니 슬슬 어깨가 아파서, 근처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으아.”
정인아가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벤치에 풀썩 앉았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꽤 났다. 날이 갑자기 따뜻해진 탓이었다.
차갑던 바람이 어느덧 산뜻했고, 햇살은 푸근했다. 완연한 봄이었다. 그녀는 한참 벤치에 앉아 햇살로 몸을 말렸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봉오리들이 수줍게 열리고 있었다. 열린 틈으로 삐져나온 잎들은 맑은 분홍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곧 벚꽃이 필 때였다. 새삼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다.
작년, 동생과 함께 갔던 석촌 호수. 그곳에 찬란하게 피어난 벚꽃. 바람이 불 때마다 흐드러져 쏟아지던 벚꽃 잎.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이도 먹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되새긴 추억이 흐릿해서 더욱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돌이켜 생각하면 더없이 행복했던 날이었다.
“다행이다.”
정인아가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뭐라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냥 이것저것 전부 다행이었다.
“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인아는 공연히 웃었다. 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발자국처럼 아로새겨진 구름들이 귀여웠던 까닭이다.
언제나 봐왔던 풍경이 오늘따라 괜히 낯설고 재밌었으며, 또 아름다웠다.
* * *
문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빛이라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어둠만이 가득했다.
강지아와 나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복도를 걸었다. 정적 틈으로 이따금 딸랑, 딸랑 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사각거리는 소리도 났다. 벌레나 쥐가 기어 다니는 소리 같았다.
소리가 날 때마다 옆에 있던 강지아가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교주님. 돌아가서 손전등이든 촛불이든, 앞을 밝힐 만한 걸 가지고 다시 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복도는 어두웠지만, 그렇다고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쭉 가죠.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 돌아가기도 귀찮았고, 무엇보다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지아는 다소 못마땅하다는 듯 비척대는 걸음으로 나를 쫓았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 휴대폰 손전등 기능으로 앞이라도 밝히면서 가시는 건 어떨까요.”
한참 걷던 강지아가 제안했다. 나는 휴대폰을 켰다. 배터리가 2%밖에 없었다.
“배터리가 없네요.”
“아.”
강지아가 절망한 듯 풀썩 고개를 떨궜다.
“직접 하시면 되지 않아요?”
“제가 아까 휴대폰을 놓고 와서…….”
“그럼 그냥 갑시다.”
우리는 다시 걸었다. 강지아는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은 채 나를 쫓았다.
그렇게 제법 많이 걸었는데도 복도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앞으로 한참은 더 걸어야 할 듯싶었다.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교주님.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앞을 밝힐 것을 가져와서 다시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강지아가 다시 말을 건넸다.
“어두워도 앞은 보이잖아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어둡습니다.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강지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혹시 무서워요?”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요. 그럼 돌아갈 테니까.”
“무서운 건 아닙니다. 그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덜컹!
“히익……!”
어둠 너머, 크고 건조한 소리가 울렸다.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복도를 스산하게 돌아다녔다.
강지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둠 사이로 그녀의 눈 가장자리에 맺힌 눈물이 자그맣게 빛났다.
“무서운 거 맞네.”
“……아닙니다.”
강지아는 끝끝내 부정했지만, 아무리 봐도 무서운 게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부두 마력을 사출하여 허공에 주술진을 그렸다. 그려진 주술진에서 보랏빛 양초가 너울너울 솟아 나왔다.
양초의 보라색 불빛이 복도의 어둠을 사르고 너머의 풍경을 드러냈다.
하급 재현 주술, 의식의 양초.
하급 재현인 만큼 빛이 강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양초를 들고 터벅터벅 앞으로 나아갔다. 주저앉아 있던 강지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왜 처음부터 안 쓰시고……?”
“반응이 재밌어서. 죄송해요.”
“…….”
강지아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체념한 듯 나를 뒤따랐다.
“교주님은 스승님과 닮은 구석이 참 많네요.”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뭐가 닮았어요?”
“두 분 다 장난기가 많으신 점이.”
“에이, 난 삼촌에 비하면 약과죠.”
“아니요……. 제가 보기엔 별 차이가 없으신 것 같습니다.”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성큼성큼 복도를 걸었다. 빛이 있으니 확실히 걷기가 편했다.
어느덧 복도 끝에 다다르자, 너머로 굳게 닫힌 철문이 하나 보였다. 빗장이 세 개나 걸려 있었고, 빗장 하나하나마다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제가 열겠습니다.”
촤륵.
강지아가 주머니에서 열쇠 더미를 꺼냈다. 그녀는 열쇠를 하나하나 꽂아 넣으며 빗장에 걸린 자물쇠를 풀었다. 나는 곁에서 양초로 빛을 밝혀주었다.
철컥.
이윽고 모든 자물쇠가 풀렸다. 떨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카가가각.
바닥이 갈리는 듯 기괴한 소리와 함께 뻑뻑한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거대한 방이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복도와 마찬가지로, 한 가닥 빛 없이 어둠만 가득한 방이었다.
복도에서 계속 들렸던 정체불명의 딸랑거리는 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은 악취로 가득했다. 오물과 땀이 뒤섞인 시큼한 냄새였다.
이따금 인기척이 느껴졌으나, 강지아의 것인지 아니면 여기 있는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심하세요. 마수 같은 게 있을 지도 모릅니다.”
강지아가 주의를 줬다. 나는 양초로 앞을 밝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금고였다. 아주 거대하고 튼튼해 보이는 금고.
강지아가 총총 달려가 금고의 소재를 파악한 뒤, 곧바로 금고를 따기 시작했다.
철커덕─!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금고 문이 열렸다.
안에는 5만 원 지폐 다발과 금괴, 그리고 보석이 가득했다. 그간 예배를 통해 모아온 돈인 듯했다. 현금과 현물이 너무 많아서 값을 어림할 수조차 없었다.
“전부 가져갑시다.”
강지아가 말했다.
나는 신성력을 사출하여 바알의 아가리에 주입했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입구가 열렸다. 강지아는 돈다발과 금괴, 보석을 전부 바알의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흡사 은행 강도와 같았다. 이렇게 보니 삼촌의 제자가 확실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
덜컹.
“하아아아악! 하아악!”
“꺄아아악!”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려던 강지아의 발에 무엇인가가 차였다.
쇠창살이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났고, 동시에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미친 듯이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강지아는 그 괴성에 놀라 덩달아 비명을 질렀다.
“끄으으, 으. 어. ……어?”
그렇게 한참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던 강지아가, 대뜸 의문 어린 탄식을 내뱉었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공포에 질린 것 같기도 하며, 혐오스러운 듯하기도 했다.
“교, 주님. 이걸.”
강지아가 손가락으로 철창 너머를 가리켰다. 나는 강지아에게로 다가가 그녀가 가리킨 방향으로 양초를 돌렸다. 보라색 불빛이 철창 너머를 비췄다.
“하아아아악! 하아아악!”
빛이 닿자, ‘그것’은 다시금 미친 듯이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괴성은 멈추지 않았다. 목이 쉬고 목소리가 다 갈라지는 와중에도, 그것은 계속해서 괴성을 질렀다. 완전히 이지를 상실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철창 너머의 ‘그것’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갈색 머리칼은 곱슬기가 있었고, 팔다리는 앙상하게 말랐다. 찢어진 옷 틈으로 드러난 피부는 창백했고, 푸른 정맥과 멍이 곳곳에 산개해 있었다.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갈색빛이 도는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좀비였다.
“하아아악! 하아악─!”
덜컹. 덜컹덜컹덜컹.
좀비가 쇠창살을 잡고 흔들었다. 내지르는 괴성에선 쇠를 긁는 듯 끔찍한 소리가 났다. 한껏 벌린 입에서 투명한 침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걸린 목줄에는 방울과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딸랑, 딸랑딸랑, 딸랑.
좀비가 난동을 부리자 방울이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마르고 건조한 소리였다.
이름표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을 확인한 나는, 그저 어이가 없어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찾았네…….”
나는 이름표에 적힌 이름을 멍하니 바라보며, 주저앉은 채 그저 실성한 것처럼 웃었다. 웃을 때마다 위액이 끓는 듯 속이 메스꺼웠고, 창자가 끊어지듯 배가 찌릿하게 아팠다.
“근데 왜 하필 여기 있냐…….”
정인아의 실종된 동생, 정윤아.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
좀비가 되어, 철창에 갇힌 채로.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