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40
제40화
정인아는 성하연이 전개한 융합 축복진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하연은 마이크를 잡은 채, 손으로 융합 축복진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발표를 이었다.
“여기 보이는, 핵심 축복진을 이어주는 하급 축복진들은 ‘다리’ 역할을 해줘요. 축복진끼리 ‘충돌’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치인 셈이죠. 또한─”
정인아는 자신이 나름 축복을 잘 다룬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정인아는 축복을 잘 다뤘고, 자선반 내에서는 감히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선반 내에서만’ 그랬다.
“축복을 억지로 합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성질의 것들끼리 스스로 융화하도록 두어 신성력의 손실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했어요. 크게 보면, 각각의 축복진이 가진 특성을 부각하는 반면 단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설계하였는데, 덧붙여─”
몇몇 학생들이 성하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인아는 성하연의 말을 겨우 이해했으나, 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성하연은 말 그대로 천재였다. 그러나, 그녀의 천재성은 비단 축복진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58초 41.’
성하연이 발표를 마쳤을 때, 하예진은 즉시 타이머를 끄고 시간을 확인했다.
성하연의 발표 시간은 58초 41. 그녀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였으나, 그럼에도 주어진 시간을 넘기지는 않았다.
애당초 1분 안에 발표를 하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으나, 성하연은 그 1분이라는 시간 내에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왔음에도 학생들은 전부 조용했다. 달리 질문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성하연의 발표를 완벽히 이해한 학생 자체가 드물었기도 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꿋꿋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기는 있었다. 성하연의 질문 때문에 억울하게 감점을 당했던 발표자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성하연을 향한 악감정 하나로 어떻게든 질문할 거리를 찾아 손을 들었다.
“접합부가 헐거운 것 같은데요! 의도하신 건가요?!”
“네, 의도했어요. 거리가 지나치게 긴밀하면 아까 말한 대로 ‘충돌’ 현상이 발생하니까요.”
“그, 그렇게 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하급 축복진이 둘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끔 해서 보완했어요. 발표로 말씀드린 내용인데, 제대로 이해를 못 하신 건가요?”
“익……! 그, 그럼! 저건……!”
한 학생이 성하연과 잠깐 토론을 벌였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학생은 이내 질문할 것을 찾지 못하고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성하연은 발표만큼이나 질문에 대한 응답도 완벽하게 해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만점이었다.
‘엄청나네.’
하예진은 속으로 감탄을 토하며, 성하연이 속한 1조에 전부 만점을 주려 했다.
“참, 선생님. 드릴 말씀이 하나 있는데요.”
한창 점수를 매기던 하예진의 손이 멈췄다.
“네, 말씀하세요.”
“융합 축복진은 제가 혼자 그렸고, 발표도 제가 혼자 준비했어요. 다른 조원들에게는 점수를 안 주셨으면 해요.”
냉소적인 말투. 졸면서 듣고 있던 구준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억?! 야. 아니, 네가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랬─”
“그런다고 정말 가만히 있을 줄은 몰랐네요. 어쨌거나 제가 혼자 다 한 건 사실이잖아요?”
“…….”
뭐라 항의하려던 구준혁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짜증 나지만 사실이었다.
하예진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조원들끼리 소통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원래 감점을 줘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감점을 주기에는 성하연의 발표가 너무 완벽했다.
“아예 점수를 안 줄 수는 없겠지만 고려는 해보겠어요. 참, 성하연 학생.”
“네.”
“발표가 굉장히 좋아서, 다른 반 실습을 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할까 하는데. 발표 개요서나 큐 카드를 제출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죄송하지만, 어려울 것 같아요.”
성하연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예진은 고개를 갸웃댔다.
“이유가 있나요?”
“개요서가 없어서요. 원하시면 지금 써서 드릴 수는 있어요.”
“아하……. 알겠습니다~”
하예진은 태연하게 말하면서도 내심 두려움을 느꼈다. 성하연은 개요서나 큐 카드 없이 그토록 완벽한 발표를 해낸 것이다.
아직은 여러모로 미숙한 점이 많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을 뛰어넘는 사제가 될 것이다. 하예진은 성하연을 그렇게 평가했다.
“아! 그럼 다음. 24번째가……. 46조? 46조 발표자 누군가요?”
한참 성하연을 바라보던 하예진이 뒤늦게 실습을 재개했다. 46조 발표자, 정인아가 조심스레 손을 들고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정인아는 마이크를 들고도 쉽사리 입에 가져다 대지 못하고, 선 채로 숨을 몇 번이나 골랐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46조, 발표자 정인아입니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곧, 그녀가 발표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우리 46조에서 전개한 융합 축복진의 키워드는 ‘광역’, ‘회복’, ‘정신’으로─”
한참이나 떨던 정인아는, 막상 발표가 시작되자 청산유수로 말을 잘했다. 침묵과 강세를 적절히 활용하여 청자의 집중도를 높이기도 했고, 어려운 부분을 설명할 때는 예시를 드는 것으로 이해를 도왔다.
“전투 도중 발생한 부상은 ‘치유’를 통해 금방 회복이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착안한 축복진이며, 실용성에 초점을 두어─”
융합 축복진의 완성도만 보면 성하연보단 아래였다. 그러나 청자의 입장을 고려한 발표라는 점에서, 발표의 수준 자체는 정인아가 위였다.
종합적으로 따지자면, 정인아는 성하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표를 잘했다.
“이상, 발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인아는 실수 하나 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쳤다.
하예진은 타이머를 확인했다. 56초 13. 시간 안배도 훌륭하다.
“네, 다른 학생들. 46조에게 질문할 거 있으면 질문해 주세요~”
하예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조용했다. 마치 성하연이 발표를 한 직후와 같았다.
질의응답 시간만 되면 바로 하이에나처럼 상대를 물어뜯던 성하연조차 지금만큼은 조용했다.
신성 훈련장에 잠깐 정적이 감돌았다.
“없나요? 그럼, 다음 조─”
“질문 있어요.”
정인아가 마이크를 입에서 떼려던 순간. 자리에 앉은 채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던 성하연이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정인아가 놀라 딸꾹질을 했다.
“윽, 네. 말씀하세요.”
“우측 상단에 중급 회복력 강화. 그리고 중급…… 평안의 축복인가요? 두 축복의 접합부가 조금 독특한 것 같은데, 설명이 가능할까요?”
정인아가 자기 조 융합 축복진을 슥 훑어보았다. 성하연의 말대로, 해당 축복진의 접합부가 조금 기묘했다. 다만 정인아에게는 그것을 설명할 재주가 없었다.
‘뭐야. 저게 왜 저렇게…….’
의도한 게 아니었으니까.
정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성하연이 짚어준 부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저 부분만 유달리 접합부가 복잡하고 끈적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정확히 무슨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충돌’ 없이 축복진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효율이 극대화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정확히 무슨 현상인지 모른다’.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그 부분은.”
그냥 솔직하게,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하면 적어도 창피를 당할 일은 없으니까.
“죄송하지만, 의도한─”
“되게 좋은 질문이네요~ 46조가 만든 축복진의 핵심이 거기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저도 그 부분에서 감탄을 했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계속하세요!”
하예진이 정인아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하예진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정인아는 어쩐지 그 미소가 얄미웠다.
하예진의 말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참이고 정적이 흘렀다. 정인아의 얼굴이 차츰 붉어지더니 이내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그녀는 곤란한 상황이 되면 금세 얼굴이 붉어지는 체질이었다.
‘망했다…….’
정인아가 고개를 픽 떨궜다.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지면 고개를 푹 숙이곤 했다. 붉어진 낯빛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한편, 질문을 던진 성하연은 정인아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46조의 융합 축복진, 그중에서도 자신이 지적한 부분의 접합부 퀄리티는 학생 수준을 월등히 넘어서고 있었다.
인공적인 듯하면서도 자연스럽다고 해야 할까. 반대로, 자연스러우면서 인공적이기도 했다. 인위적이며 동시에 자연적인,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섬세함이 있었다.
설마 의도한 건가 했는데, 역시나 의도한 건 아니었구나.
“설마 의도된 게 아니라는 말씀은 안 하시겠죠? 저 부분이 핵심인데.”
“…….”
성하연은 곧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정인아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고, 뭐라 말을 하려 해도 말이 나오질 않았다. 타는 듯 화끈거리는 얼굴은 식을 기미가 안 보였다.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대답을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시간 끌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한 다음 깔끔하게 물러나자. 감점을 조금 받겠지만. 조금 쪽팔리기도 하겠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인아가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죄송합─”
파악.
“……니다?”
그때, 도선우가 정인아의 마이크를 빼앗았다. 정인아는 하던 말을 멈추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당황한 탓에 화끈거리던 얼굴도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도선우는 마이크를 잡은 채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주, 축. 아. 저희 46조에서 만든 융합 축복진의 주축이 되는, 해당 접합부는 ‘충돌’의 하위 개념인 ‘엉킴’ 현상을 활용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짧은 설명을 마친 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리에 다시 착석했다. 모두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도선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흐르는 정적 틈에서, 성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와 달리 약간 흥분한 듯한 얼굴이었다.
“자, 잠시만요. 설명이 부족해요. 엉킴 현상을 어떻게 활용했다는 거죠?”
“엉킴이 과하게 일어나면 충돌 현상이 일어나죠? 그러나 과하지 않으면 오히려 효율적인 융합을 가능케 합니다.”
“아니, 그건. 맞는데, 요.”
성하연이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도선우의 말은 이론적으로 보면 맞았다. 유능한 고위 사제들은 엉킴 현상을 활용하여, 더 쉽고 효율적으로 융합 축복진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선우는 고위 사제가 아니다. 하다못해 고위 성기사, 성전사도 아니다. 엉킴 현상을 활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지금, 엉킴 현상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는 건가요? 어떻게요?”
“먼저 엉킴 현상을 일어나게 한 뒤, 획을 의도적으로 끊어서 정도를 조절했습니다.”
“획을요? 의도적으로? 그게 말이 되는.”
성하연은 46조의 융합 축복진, 그중에서도 자신이 짚었던 접합부를 다시 살폈다. 도선우가 말한 대로 획을 의도적으로 끊은 흔적이 보였다.
그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도선우는 의도적으로 엉킴 현상을 활용한 것이다.
“그러면, 그러면요. 엉킴 현상의 원리는 무엇인가요?”
하여, 성하연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학생 수준에서는 절대로 대답할 수 없는, 악의적인 목적이 다분한 질문이었다.
도선우는 잠시 고민하듯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이상입니다.”
아주 뻔뻔하고 당당한 태도였다. 성하연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허점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얕은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럼, 애초에 의도적으로 엉킴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도─”
“그만. 도선우 학생이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게 대답을 잘해 주었네요!”
파죽지세로 질문을 이어가려던 성하연의 말을 하예진이 끊었다. 하예진은 싱글싱글 웃으며, 그러나 은근하게 성하연을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엉킴 현상의 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건 저도 대답을 못 하는 질문이에요. 성하연 학생, 앉아주세요.”
“아, 네에…….”
성하연이 떨떠름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도선우 학생, 엉킴 현상을 이용한다는 발상은 어떻게 했나요? 이런 건 너튜브에서 안 알려줄 텐데.”
“아, 네. 이런 건 너튜브에 안 나오죠.”
하예진이 장난스레 건넨 말을, 도선우도 장난스레 받아쳤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도선우는 마이크를 쥐고 선 정인아를 넌지시 가리켰다.
“조장인 정인아 학생의 지시였습니다.”
“네?”
도선우는 정인아의 지시였다고 말했으나, 정작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예진이 흥미롭다는 듯한 얼굴로 도선우와 정인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음. 그렇구나. 네, 알겠어요. 발표와 질의응답 모두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 차례로 넘어갈게요.”
하예진은 도선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정인아가 도선우에게 지시를 내린 건 아닌 것 같았다. 엉킴 현상을 이용하여 융합 축복진을 전개한다는 건 순전히 도선우의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도선우는 자신의 공을 정인아에게 넘겼다.
왜?
도저히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 * *
융합 축복은 융합 주술과 속성이 다르다. 하지만 만드는 방법과 원리는 비슷하다.
주술진에도 엉킴 현상은 존재하며, 융합 주술을 전개할 때 나는 엉킴 현상을 활용하곤 했다.
내가 성하연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다.
[말실수를 할 뻔했구나.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임기응변으로 잘 넘기긴 했다만.]그 탓에, 대답하던 중 주술진과 축복진을 혼동하여 말실수를 할 뻔했다. 렉바는 그에 대해 나를 꾸짖었다. 합당한 지적이었기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발표는 계속됐고, 그렇게 2시간쯤 지났을 무렵 실습이 끝났다.
[40분이다.]2시간이 아니라 40분쯤 지났을 무렵 실습이 끝났다. 너무 지루해서 2시간 정도는 가뿐히 지난 줄 알았는데 아직 40분밖에 안 지났구나.
시간의 속도가 상황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새삼 고뇌하던 중, 구준혁이 성난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성하연 원래 저러냐? 진짜 이마빡에 싸대기 날리고 싶네…….”
분노 섞인 하소연이었다. 그는 실습이 끝나고 성하연과 잠깐 언쟁을 벌였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이기진 못한 것 같았다. 아주 억울하고 분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성하연이나 구준혁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조원들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놓고 점수를 독식하려던 성하연이나, 그렇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화장실에서 머리카락이나 만지작거리던 구준혁이나.
물론, 나 역시 성하연의 질문에 대답한 것 외에는 한 게 없었다. 피차 구준혁에게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듣기만 했다.
“아니 근데 저럴 거면 존댓말을 왜 쓰지? 상대를 존대하지를 않잖아. 존댓말만 하면 뭐 햐냐고.”
신성 훈련장을 나갈 때까지도 구준혁은 내내 성하연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정말 어지간히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표정도 그냥, 사람을 무슨 벌레 보듯─”
끊길 줄 모르던 구준혁의 험담은 곧 끊겼다.
훈련장 바로 앞에서 누군가 팔짱을 끼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아! 오늘따라 달리기가 하고 싶네.”
구준혁이 어색하게 말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치를 보다, 이윽고 미친 듯이 달려 도망치듯 이곳을 빠져나갔다.
타다다다다─
나는 멀어지는 구준혁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는 도망칠 때만큼은 평소보다 두세 배 정도 달리기가 빨랐다.
“도……선.”
정적 속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정인아가 어색하게 나를 불렀다.
저번에는 ‘우’만 떼서 부르더니, 이번에는 ‘도선’만 떼서 부르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비슷했지만 어감은 판이하게 달랐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침묵이 오갔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언제나 그렇듯 정인아였다.
“내가 시킨 거 아니었는데 왜 거, 거짓말해.”
목소리가 떨렸고 말투도 어색했다. 나 아직 화 안 풀렸다, 그렇게 주장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시킨 대로 알아서 할 거 찾아서 한 거니, 까.”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려 했으나, 분위기가 하도 어색해서 그런지 말도 덩달아 어색하게 나왔다. 주고받는 말보다 침묵이 더 길었다.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이따금 찾아오는 정적을 깨기 위해 입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됐어!”
무슨 대답을 바랐던 건지 모르겠으나, 정인아는 토라진 듯 퉁명스럽게 말하며 교실로 올라갔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삐진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아침보다는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뒤늦게 교실로 올라가자, 정인아는 없었고 구준혁만 있었다.
“방금 조퇴한다고 교무실 감. 동생 보러 간다고.”
구준혁이 다가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전 실습만 하고 조퇴한다는 이야기를 아침에 언뜻 들었던 것도 같았다.
“기분 좀 괜찮아 보이더라. 내일이면 그냥 원래대로 돌아올 거 같던데?”
“다행이네.”
“원래 금방 화내고 금방 풀리고 그러잖아. 밥이나 때리러 가자.”
구준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밥을 먹었다. 산책은 하지 않았고, 곧바로 교실로 들어가 오후 수업을 들었다.
오늘 구준혁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정인아가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따금 내게 장난을 걸어올 때를 제외하면 달리 입을 열지 않았다.
다음 날, 정인아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