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뭘 찾았다는 거야. 설마 저거 여민서냐?”
구준혁이 흉물이라도 보는 듯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여민서를 쳐다봤다. 김진서는 아무 말 않고 있었지만, 여민서의 광기에 내심 겁을 먹은 듯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는 여민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찾았다, 라고 여민서는 말했다. 무엇을 찾았다는 걸까.
문득, 아까 여민서가 내게 뱉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플래시, 아니. 휴대폰. 휴대폰이나 레이저 포인터 같은 거. 있냐?’
휴대폰이나 레이저 포인터. 새 마수들이 아이덴 동산을 점령해 버린 상황에, 여민서는 뜬금없이 그것을 찾았다. 은제 탄환이 장전된 총이나 은제 검과 같은 무기를 찾아도 모자랄 판에.
새 마수들은 섬광이 번쩍일 때만 공격을 가해 온다. 눈치가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섬광이 번쩍일 때 ‘누구를’ 공격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처음에는 나를 공격했고, 이후에는 구준혁을 공격했다. 얼핏 보면 무작위 대상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그러나, 여민서가 아무도 움직이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을 때. 그리하여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각자의 자리에 서서 침묵을 지켰을 때.
그때만은, 섬광이 번쩍였음에도 마수들이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여민서가 찾고 있었던 것. 그토록 입증하고자 했던 것은.
“야, 너네. 그거 알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거랑 똑같아. 마수들은 빛이 번쩍일 때, 움직이고 있는 대상만 공격해.”
섬광이 번쩍일 때, 마수가 ‘누구를’ 공격하는지에 대한 규칙이었다.
“그게 갑자기 뭔 개소리야. 무궁화가 왜 피는데?”
구준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하며 말했다. 무궁화가 왜 피냐니, 세상에 저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자가 구준혁 말고 또 있을까?
여민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비틀린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로 입을 열었다.
“너 빼고 나머지는 다 이해한 거 같은데.”
여민서의 말이 맞았다. 나는 물론, 김진서도 여민서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있었다.
구준혁은 그제야 자신만이 소외됐다는 사실을 알고 멋쩍은 듯 뒷목을 긁었다.
“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구준혁이 뒤늦게 이해한 척을 했다. 여민서는 가볍게 비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수들 공격에는 우선순위가 있어. 그냥 움직이는 사람보다, 반격을 시도하는 사람을 먼저 공격해.”
“그걸 어떻게 알아?”
“아까 도선우가 돌 던지려고 했을 때, 마수가 다른 애들 다 제끼고 도선우부터 공격했거든.”
“아하.”
구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고, 그냥 대충 이해한 척만 하는 것 같았다.
“또, 우두머리는 저기, 저놈.”
여민서가 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깜깜한 하늘 속에서, 희뿌연 안광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를 관찰하는 듯한 눈이었다.
“저놈이 계속 우리를 관찰하고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저놈인 것 같고. 빛을 터트려서 공격 신호를 주는 것도 저놈이야.”
“빛을 터트려? 마수가?”
“내가 아까부터 봤는데 빛이 저놈 눈깔에서 나오는 거 같더라고. 원리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 지능도 상당한 것 같고.”
여민서가 설명을 이었다. 구준혁은 내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마수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던 김진서가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고도가 낮아졌어.”
나는 흘깃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수들이 차츰 비행 고도를 낮춰가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민서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러다 지상까지 내려오면 그때 우리를 다 죽일 셈이거나……. 뭐 그런 거겠지.”
“굳이? 왜?”
“큰 뜻이 있겠지. 아님 그냥 가지고 노는 거거나. 하는 짓을 보면 ‘바포멧 셋’인 거 같네.”
여민서가 말했다. ‘바포멧’은 마수의 위험 등급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수가 높을수록 위험하며, ‘바포멧 셋’은 인간에 준하는 지성을 가진 마수를 칭했다.
그 정도 지성을 갖춘 마수는 인간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기도 했다.
“죽치고 구조만 기다릴 수는 없겠네.”
나는 점점 다가오는 마수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구조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여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수의 권능을 이용한 투석(投石)은 불가능하다. 자세를 잡기도 전에 마수의 공격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란브와의 권능을 사용할 수도 없다. 마수들은 하늘을 날고 있고, 그란브와의 권능은 날고 있는 적을 상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날씨도 마침 이러니, 그놈이 제일 적합할 듯한데. 하필이면 산이라 애매하군.]렉바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조곤조곤 울렸다.
나 역시 ‘그분’을 떠올리기는 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마수를 상대로는 이만한 분이 없었다. 마침 날씨도 딱 좋다. 먹구름이 낀 하늘.
그러나 여기는 산이다.
그분의 권능을 잘못 사용하면 지금보다 더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의 권능을 제어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 어쩌자고? 움직여도 안 돼. 반격도 안 돼.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안 돼? 에라이 썅.”
다른 방법이 있나 고민하던 중, 구준혁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여민서는 제 턱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그녀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미소는 항상 섬뜩한 구석이 있었다.
“네 명이 다 죽는 것보다는 한 명만 죽는 게 나은 것 같은데. 어때?”
서두가 불길했다. 여민서는 그렇게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계획을 읊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얼굴은 차츰 굳어갔다.
* * *
“아, 참고로 나는 안 할 거야. 너희 셋 중에 알아서 정해.”
“뭐? 그딴 게 어딨─”
“작전을 짠 게 나니까.”
여민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구준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했다. 그렇다고 달리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니었으므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김진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수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날갯짓이 자아낸 바람이 이마에 닿을 정도였다.
남은 시간은 아마 5분 남짓.
그때까지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여기 있는 넷은 전부 죽고 말 것이다.
“어떡할 거야?”
그녀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구준혁은 여민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한껏 구겨진 얼굴로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도선우 역시 멍한 얼굴로 그저 하늘을 올려다볼 뿐,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있었다.
“…….”
김진서는 고개를 푹 떨군 채, 여민서의 작전을 되새겼다.
‘돌을 던지든,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든, 한 명이 미끼가 돼서 마수들 주의를 끄는 거야. 그동안 나머지는 도망치면 돼. 간단하지?’
여민서의 작전을 따르면, 세 명은 높은 확률로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다. ‘마수는 반격을 하는 대상을 우선적으로 공격한다’라는 규칙에 따라, 마수의 공격이 미끼에게 집중될 테니까.
그러나, 미끼는 거의 확정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네 명이 다 죽는 거보다 한 명이 죽는 게 낫다고 말했잖아.’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잔혹하고 차가운 작전. 그러나 여민서의 말대로 네 명이 다 죽는 것보다는 한 명만 죽는 편이 낫다.
잔혹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지면 이만큼 합리적인 작전도 없었다.
문제는, ‘누가’ 미끼를 하느냐.
“아직도 안 정하고 뭐 해? 한 사람이 용기 있게 나서라고.”
그 문제는 한참 동안이나 해결되지 않았다.
적막이 가득한 숲속, 여민서가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에 구준혁의 입가가 거세게 비틀렸다.
“그럼 니가 해. 이 새끼는 아까부터 계속 뒤에서 입만 터네?”
“나는 안 돼. 내가 죽으면 피렌체 입장에서 큰 손실이니까.”
“뭐, 뭐 그럼 나는, 나는 죽어도 된다는 거냐?”
“너 하나 죽는다고 해도 뭐…… 아니다. 아무튼 알아서들 정해, 빨리.”
구준혁이 뒷목을 잡았다.
“와, 화병으로 죽어버릴 거 같네? 그냥 다 같이 죽을까? 어?”
“나쁘지 않네. 나는 그래도 상관없거든.”
여민서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는 타인의 목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마저 가벼이 여겼다.
그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구준혁은 말문이 막혔는지,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거의 졸도하기 직전이었다.
뒤에도 이런저런 언쟁이 오갔지만, 누구 하나 섣불리 나서는 이가 없었다.
당연했다. 목숨이란 것은 그리 쉽게 내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주의만 끌어주면 돼?”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소란을 잠재웠다. 잠깐 동안 숲에 정적이 일었다.
구준혁이 눈을 깜빡이며 김진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민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나오나 했네. 그래. 잠깐 주의만 끌어주면 돼. 한 5초 정도?”
처음부터 김진서가 미끼를 자처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구준혁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눈썹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뭐, 무슨, 진짜? 아니 왜?”
“미끼가 돼도 살 가능성이 제일 높은 게 쟤거든. 역시 김진서야. 똑똑하네.”
여민서가 비꼬듯 대답을 대신했다.
김진서는 어렴풋하나마 마수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도선우, 구준혁, 여민서는 미끼가 되면 100% 죽는다. 그러나 김진서가 미끼가 되면 그 확률을 80% 정도로 낮출 수 있었다. 적어도 살 가능성은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 이런 거는 원래 말 꺼낸 사람이 하는 게 국룰 아니야? 여민서가 미끼를 해야 맞지.”
구준혁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이미 김진서는 결심을 마친 상태였다. 구준혁이 아무리 뭐라 해도 그녀의 결심을 흔들 수는 없었다.
“오케이. 그럼 미끼가 신호를 보내면, 우리는 일제히 도망가는 거야. 알아들었지?”
“아니, 이게 무슨. 이거 완전히 미친─!”
“아~ 그래. 미끼가 되어준 김진서 양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구준혁이 하던 말을 멈추고 멀뚱멀뚱 여민서를 바라보았다.
여민서는 이런 상황에도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 존중과 같은 개념이 없는 듯했다.
“괜찮아. 안 죽을 거니까.”
김진서가 투명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죽음을 각오한 듯 체념한 얼굴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타인의 목숨을 대가로 얻어낸 삶은 과연 행복할까.
지금 그녀의 삶 또한 양어머니의 목숨을 대가로 얻어낸 것이었다. 그녀의 삶에는 불행이 폭풍처럼 일었고, 그것은 언제나 그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갔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만이 남았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줄곧 폐허를 헤매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외롭고 황량한 곳이다.
그녀는 상상했다. 도선우나 구준혁, 둘 중 하나의 목숨을 바쳐 얻어낸 삶을.
그것은 삶이 아니었다. 삶을 가장한 죽음이거나, 죽음보다 더 가혹한 삶이다.
“…….”
김진서는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가오던 먹구름은 어느덧 해를 완전히 집어삼켰고, 하늘을 온통 뒤덮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마수의 날갯짓 소리가 불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쩐지, 그 소리가 전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문득 바라본 도선우는 여전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미끼가 되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라는 듯 태연한 얼굴.
김진서는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결심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왼손에 쥔 팔찌의 감촉을 느꼈다. 낙하의 충격으로 끊어진 그것은 더 이상 팔찌가 아니었다. 단지 조잡하게 엮인 끈에 불과하다.
그것을 깨닫자 마음이 조금은 편했다.
김진서는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안 돼.”
그때, 어둠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명령을 하는 듯, 또는 꾸짖는 듯 단호한 말투에 김진서는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정적이 일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까마득하게 멀고 흐렸다.
잠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번쩍.
그 순간, 내리친 섬광이 어둠을 몰아냈다.
그 찰나의 순간, 김진서는 그의 모습을 본다. 앞으로 당당히 걸음을 내뻗는 그의 뒷모습을 본다.
그러나 다시금 찾아온 어둠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고, 그의 뒷모습은 사라진다.
────!!
어둠은 길지 않다.
벼락이 하늘을 반으로 가르고 어둠을 몰아낸다. 우렛소리가 귓가를 쩌렁쩌렁 울린다. 동시에 마수 하나가 재가 되어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한다.
───!! ───!!!
벼락은 끊이지 않고 계속 몰아쳐, 하늘에 드리운 암흑을 수십 개로 조각냈다. 어둠과 빛이 수십 수백 번 눈앞에 교차했다.
조각난 하늘이 비명을 지르듯 우레를 뱉었다. 수 마리의 마수들이 비가 오듯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광경.
폭풍의 중심에서, 그의 뒷모습이 역광으로 비쳐 보였다.
“───.”
그가 고개를 반쯤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전했다. 목소리는 우레에 가려 들리지 않았다. 희미한 울림만 가까스로 전해졌을 뿐이다.
……‘제발’?
김진서는 독순(讀脣)을 통해 의미를 파악하려 했으나, 입 모양만으로 뜻을 짐작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동안 벽력과 우레가 뒤섞인 폭풍은 여전히 하늘에 몰아치고 있었다. 마수들의 시체가 첩첩이 쌓여 갔고, 뒤늦은 바람에 그녀의 머리칼이 살랑거렸다.
그러기를 한참. 이윽고, 폭풍은 멎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
그곳에, 그가 남아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