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45
제45화
여민서가 작전을 제시한 뒤, ‘미끼’를 정하기 위해 아이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동안.
나는 그저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우두머리 마수의 희뿌연 눈동자가 여전히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끈적하고 불쾌한 위화감이 들었다.
도대체 바라는 게 뭐지?
‘바포멧 셋’급 마수는 종종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奇行)을 벌이곤 한다. 사람을 장난감 취급하며 가지고 놀거나, 인간의 뼈를 발라내어 집이나 둥지를 만드는 등.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고서도 저들의 행동은 이해가 안 됐다.
마수들은 섬광이 터질 때 움직인 대상을 공격한다. 만약 섬광이 터질 때 두 명 이상이 움직였다면, 둘 중 움직임이 큰 쪽을 공격한다. 결코, 둘을 동시에 공격하는 법은 없다.
마치 ‘한 명이 미끼가 되면 나머지 셋은 살아 나갈 수 있다’라고, 넌지시 말하는 듯하다. 동시에 우리의 도덕성을 시험하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또 다시 의문이 생긴다.
마수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건 나조차 이해할 수가 없구나. 사탄은 종종 인간을 시험한다고 하지만…… 한낱 마수가 인간을 시험하려 든다니.]“…….”
나는 말없이 그저 하늘을 막막히 바라보았다. 먹구름은 어느덧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새 마수들은 천천히 고도를 낮춰가며 우리를 위협하듯 빙글빙글 날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나만 빼놓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딴생각을 하고 있던 탓에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다. 미끼가 될 사람을 누구로 정할지 토의하는 모양이었다.
[어쨌건, 하나를 희생하여 셋을 살린다는 저 여자의 계획은 그럴싸하다. 네가 미끼가 되어, 저들이 도망친 뒤 권능을 사용하면 그만─] [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불현듯 들려온 목소리가 렉바의 말을 끊었다.
너무나 경박해서,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가 버릴 듯 가벼운 말투. 렉바의 차분하고 묵중한 말투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다른 먹구름과 부딪히며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또 참을 수가 없지!] [여기는 산이야. 참아라, 이 생각 없는 놈.]렉바가 그를 꾸짖듯 말한다.
[벼락이라는 건 원래 참을성이라는 게 없는 법이라!]그러나 그는 그저 낄낄 웃으며, 얼버무리듯 렉바의 말을 흘린다.
소보.
벼락과 우레의 로아.
‘성인(聖人) 벼락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고, ‘애매한 사람 벼락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고,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종합하면, 선인이든 악인이든 범인(凡人)이든 재인(才人)이든 누구나 벼락을 맞을 수 있다는 뜻. 벼락은 사람을 가리지 않으며, 또한 변덕스럽다.
소보는 벼락의 로아이기에, 벼락만큼이나 성격이 변덕스럽다.
특히 지금처럼 먹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날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타나, 난데없이 벼락을 소환하고 홀연히 사라지고는 했다.
[하늘에 벼락 맞을 것들이 수없이 많구나.]소보가 중얼거렸다. 그의 말투는 경박했으나, 그 속에는 약간의 서늘함도 깃들어 있었다. 일찍이 먹구름에 덮인 하늘은 빛 한 점 없었다.
이번에도, 그는 벼락을 불러올 셈인 듯했다.
“……안 돼.”
나는 황급히 소보에게 명령했다. 이런 산중에 번개를 떨어뜨리면 산불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그것도 그냥 산불이 아니라, 아이덴 동산이 송두리째 다 타고도 남을 대화재가 일어날 것이다.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었다.
지금은 빈대 따위가 아니라 마수이긴 했지만, 어쨌건 맥락이 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안 돼?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이만 돌아가마.]다행히, 소보는 순순히 내 명령을 따르려는 듯……했으나.
[당연히 거짓말이지! 「천벌」.]───!!
그러나, 역시 벼락의 변덕은 예측할 수 없었다.
소보가 무슨 스킬 이름을 외치듯 그렇게 말하자, 번쩍. 벼락이 떨어져 하늘을 가르고, 그것을 덮치듯 곧바로 우레가 몰아쳤다.
[「라이트닝 볼트」] [「번개 화살」] [「썬더 스톰」]“지금 무슨 게임하세요? 어이가 없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관성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들어줄 만하겠는데, 어쩔 때는 영어를 썼다가 어쩔 때는 한자를 썼다가 하니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하늘이 어둠으로 뒤덮였다가 빛으로 뒤덮이기를 반복했고, 번개에 맞은 마수들이 하나둘 지면에 내려앉았다.
번개에 맞은 나무가 반으로 쪼개졌고, 쪼개진 자리에서 불이 피었다. 불은 이윽고 사방으로 번져 우리를 포위하듯 주변을 휘감았다.
나는 소보의 ‘영창을 가장한 되도 않는 추임새’를 들으며,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불이 다 번진 뒤에는 늦기 때문에, 지금 미리 퇴로를 찾아두려는 것이었다.
[이것도 오래 하니 재미가 없군. 이만 간다! 이번에는 진짜다…….]소보는 그렇게 한참이나 천둥 번개로 폭풍을 일구더니, 어느덧 지루해졌다는 듯 하품을 하며 떠났다.
그의 경박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차츰 멀어지고, 렉바의 진중한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바론 삼디와 소보. 나는 저 두 놈이 제일 이해가 안 돼.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 놈들.]렉바가 한탄하듯 가볍게 읊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론 삼디도 성격이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 소보에 비하면 약과였다. 소보의 성격은 독특한 것을 넘어 기이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잡념을 떨치며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반응들이 기묘했다. 여민서는 떨떠름하게 웃고 있었고, 구준혁은 정색을 한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으며, 김진서는 홀린 듯한 얼굴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저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번개가 마수들을 죄다 처치해 주기는 했지만, 마수보다 더한 위협이 우리를 옥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정신 차려. 도망가야 돼.”
나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쳤다. 세 아이들이 동시에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멀찍이 번지고 있는 불길을 가리켰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구준혁이었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시벌!”
그는 아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목소리 톤도 무척이나 높아져 있었다. 신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구준혁은 번개나 천둥, 이런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설마 니가 한 거냐? 진짜냐?”
“아니야. 빨리 나가기나 해. 불 번지면 못 나가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멀었던 불이 어느덧 코앞까지 다다라 있었다. 마침 산이라 탈 게 많아서 그런지, 불길 번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오메, 연기 봐라. 좀 무섭네.”
구준혁이 하늘 위로 치솟는 연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하늘을 가득 뒤덮을 듯 자욱했다.
먹구름에 연기까지 더해서 하늘은 더욱이 검었다. 검은 도화지에 암흑을 덧칠한 모양새였다.
그렇게 한참 연기를 바라보던 구준혁이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충격을 받은 듯, 분노에 찬 듯 복잡 미묘한 얼굴이었다.
“이런 씹. 여민서.”
그러고 보니 여민서가 없었다. 사태가 진정되자마자 바로 혼자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조금 이기적인 판단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욕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넷이 다 같이 탈출하다 이도 저도 못하고 불길에 갇히는 것보다, 하나라도 재빨리 탈출해서 구조 요청을 하거나 퇴로를 확보해 두는 편이 나았다.
“김진서.”
무엇보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곧장 김진서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아, 어. 응.”
김진서는 대답만 그렇게 하곤, 그 자리에 서서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았다. 넋이 나간 듯한 얼굴. 아직 정신을 미처 다 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듯이 하며 재빨리 이곳을 빠져나왔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그저 달렸다. 불길이 맹렬하게 우리를 추적하고 있었다. 등 뒤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머릿속으로 그란브와가 렉바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연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는데, 그란브와가 쫑알쫑알 투정까지 부리니 통증이 더 거세지는 것 같았다.
그란브와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지자 렉바가 혀를 쯧, 차며 입을 열었다.
[이게 내 잘못이냐?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지. 어이가 없군.]나는 대답 없이 그냥 달리기만 했다.
어둠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까 퇴로를 미리 봐둔 덕에 그나마 길을 찾기가 수월했다.
김진서는 어느덧 정신을 차렸는지 나보다도 더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내게 끌려오듯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끌려가듯 하는 모양새였다.
달리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손을 놓자, 도리어 그녀 쪽에서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냥.”
설명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냥’.
그냥이 뭐가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물을 겨를도 없고 해서 그냥 이대로 뛰기로 했다. 나는 애초에 그녀의 악력을 뿌리칠 만한 힘이 없었다. 보수의 괴력을 빌리는 게 아니고서야.
나는 흘깃, 내 손목을 틀어쥐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보았다. 피부가 하얀 건 둘째 치고, 의외로 손목이 가늘었다.
[네가 평생 운동을 해도 저 아이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 같군. 신체능력만은 타고난 것 같다.]“…….”
저 가는 손목에서 이만한 악력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한편, 괜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렉바에게 반박할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던 까닭이다.
앞으로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새삼스러운 다짐을 하며 나는 열심히 뛰었다.
그때, 앞서 뛰고 있던 구준혁이 돌연 멈춰 섰다.
“조졌네 이거.”
구준혁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앞이 불길로 막혀 있었다. 뒤로는 여전히 불길이 번져와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불 막아주는 축복진……이 있을 리가 없구나. 생각해 보니까. 야, 너네─”
구준혁이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그리고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나에서,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김진서의 손을 타고 그녀에게 향했다.
“세상에.”
체념과 허망이 뒤섞인 듯한 말투였다. 김진서는 그제야 내 손목을 놓았다. 표정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계속 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뭐 놓을 것까지는 없긴 한데, 아무튼 이거 어떡하냐.”
구준혁이 우리 앞길을 가로막은 불길을 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맨몸으로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보수의 권능으로 구준혁과 김진서를 던져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이건 너무 도박이었다.
고민하는 사이 불길은 어느덧 우리 코앞까지 따라붙었다. 사방이 열기로 가득했다. 나아갈 곳도 물러날 곳도 없었다.
“아.”
그 순간 김진서가 나지막이 탄식을 했다. 아니, 그것은 탄식이 아니라 탄성이었다.
그녀는 불길 너머, 다가오는 형상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불을 뚫고 무엇인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곰이었다.
정확히는 곰만 한 덩치를 가진 사람이었으나, 온몸이 불에 활활 타고 있는 탓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구준혁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할 기력도 없다는 듯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곰인가.”
불에 타고 있는 곰이니 불곰……. 그럴싸한 말이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듯, 장대비가 우수수 내리기 시작했다. 곰의 몸에 붙어 있던 불이 차츰 꺼지고, 이내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