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48
제48화
“거기 앉아요.”
하예진이 빈자리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도선우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여민서에 비해 훨씬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였다.
하예진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맺혔다. 여민서를 마주한 직후라 그런지, 별거 아닌 행동도 괜히 예쁘게만 보였다.
첫 번째 질문은 역시나 마수의 사인에 대한 것. 도선우는 질문을 듣고 한참 고개를 갸웃댔다. 구준혁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잘 모르겠네요. 그때 하도 정신이 없었어서.”
“그런가요……. 낙뢰 전에 전조 같은 건 없었나요? 신성력을 봤다든가?”
다소 노골적인 물음이었다. 도선우는 고개를 기울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내려는 듯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번쩍 뜨며 입을 열었다.
“아! 김진서 주변에 신성력이 잠깐 보였던 것 같네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한데.”
“꼭 신성력이 아니더라도 뭐, 빛 같은 게 일렁이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
“어, 네.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도선우가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은 듯했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상황이었으니,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기억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어렴풋한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게 고작일 것이다.
하예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네, 그럼 이게 뭐일 것─”
“잠깐. 한 가지 물어볼 게 더 있다.”
기계를 꺼내 탁상에 올려놓으려던 하예진의 손이 멈췄다. 김복동이 그녀의 말을 가로챈 탓이었다.
김복동은 잔뜩 찌푸린 눈으로 도선우를 응시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서, 평소보다 더 험상궂게 보였다.
“심장에 관통상을 입은 마수 두 마리가 현장에서 발견됐다. 여민서는 네가 했다고 그러던데?”
“네? 음…….”
도선우가 기억을 더듬듯 관자놀이에 손을 얹었다.
“네, 제가 한 거 맞습니다.”
“화기에 의한 관통상으로 보인다. 맞나?”
“예? 화기요? 제가 화기를 무슨 수로.”
도선우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짓말이나 연기는 아니었다.
김복동은 고개를 갸웃댔다. 화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마수를 처치했다는 말인가.
“아니, 잠깐. 이거…….”
생각해 보니, 화기에 의한 관통상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아직 1학년들은 사격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격 훈련은 1학년 2학기 말부터, 그것도 성전사 지망생들에 한하여 진행되는 훈련이다.
게다가, 몇 년을 훈련한 성전사들조차 날아다니는 표적의 심장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헌데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일개 1학년이 그걸 해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마수를?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화기에 의한 관통상’이라고 결론을 지어 놓고, 그에 맞춰 정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김복동은 문득 확증 편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럼 ‘어떻게’ 한 거지?”
결국, 그는 질문을 수정했다. 도선우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돌을 던져서, 음. 네.”
더 말하기도 부끄럽다는 듯 도선우는 말끝을 흐렸다.
김복동은 어이가 없어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화기를 사용해도 어려운 것을, 고작 돌팔매질로 해냈다는 말이었다.
소도진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그는 피곤에 찌들어 멍한 눈으로 도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말이 되냐? 다윗 왕도 그 짓은 못 하겠다.”
“어어? 말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을!”
하예진이 소도진의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신성 모독은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위험 발언이었다.
소도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다른 교사들과 장로를 향해 사죄를 표했다. 딱히 미안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김복동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 이내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하예진은 기다렸다는 듯 기계를 꺼내 탁상 위에 올렸다.
“이게 뭐일 것 같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카메라?”
“어, 음.”
구준혁이랑 짰나?
하예진은 약간 당황했다.
“네, 이만 가도 돼요. 바로 집으로 귀가하시면 됩니다.”
“아, 저 교실에 책을 놓고 왔는데 그거만 가지고 가도 되나요.”
“네네, 물론이죠.”
하예진이 생긋 웃었다.
도선우는 가끔 보면 예쁜 짓을 자주 했다. 잘 보이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몸에 밴 듯한 성실함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나갈 때에도 교사들을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회의실을 나갔다. 역시나 무척 예의가 발랐다.
“돌팔매질로…… 하하.”
김복동이 혼잣말을 읊으며 실성한 듯 웃었다.
비단 김복동만이 아니었다.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도선우의 발언에 헛웃음을 토하고 있었다.
오직 가브리엘만이 웃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김진서가 회의실에 도착한 것은 4시 20분이었다. 하예진은 뜸 들이지 않고 곧장 질문을 던졌다.
“기적을 재현하여 낙뢰를 일으킨 게 본인 맞죠?”
앞선 세 명의 발언으로 이미 많은 것이 확정되었다.
특히, 도선우의 발언 덕분에 김진서가 기적을 재현하여 낙뢰를 일으켰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다.
김진서 본인이 그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마수 처치에 대한 공은 전부 김진서에게 돌아갈 것이었다.
김진서는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한참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누가 그래요?”
무표정한 얼굴.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으나, 평소보다 조금 더 서늘하고 차가운 무표정이다.
하예진은 괜히 당황하여 제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도선우 학생……뿐만 아니라. 여러 학생들의 의견을 종합했습니다.”
“아, 네.”
김진서가 게슴츠레 뜬 시선을 바닥에 떨궜다. 어쩐지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
* * *
[멍청한 척은 일부러 하는 건가.]회의실을 나온 직후, 렉바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가끔은 멍청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게 편하다.
시도 때도 없이 기어오르려는 학생보다는, 저자세로 늘 배우려고 하는 학생이 교사 입장에서 보기 좋을 테니까.
[낙뢰를 일으킨 것도 김진서라는 아이가 했다는 식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던데.]“네.”
[그건 네가 일으킨 것이다. 따지자면 소보가 일으킨 것이지만.]“…….”
[고위 성직자가 되고 싶기는 한가?]렉바가 연이어 나를 꾸짖었다. 낙뢰를 일으켜 마수를 없앤 것은 분명 나인데, 그 공을 왜 굳이 다른 사람에게 넘기냐는 말이었다.
물론, 내가 기적을 재현하여 낙뢰를 일으켰고 그것으로 마수를 없앴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당장은 유명세를 얻게 될 것이다.
‘기적을 재현한 1학년’이라며 천재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 분에 넘치는 칭찬을 질리도록 들을 수 있겠지. 김진서가 그랬듯이.
믈론 나도 그러고는 싶다.
“여민서가 날 보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상황에, 여민서는 그 표독스러운 눈으로 똑똑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 낙뢰가 ‘기적 재현’을 통해 일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낙뢰를 내가 일으켰다고 말하면 잠깐 유명세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여민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미지수다.
이번 일로 약점을 잡아 나를 협박하려 들거나, 내 뒷조사를 하려 할 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여민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기에, 다른 건 몰라도 낙뢰를 내가 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김진서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녀에게 공을 넘기는 게 최선이었다.
[최선? 아예 모른다고 잡아떼든가, 자연적 낙뢰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나.]“자연적 낙뢰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부자연스러워요. 더 깊게 파기 전에 김진서가 한 거라고 결론 내는 게 편하죠.”
[생각이 과하군. 그런 것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나.]“고려해서 나쁠 게 없으니까요.”
[글쎄. 과연 네 생각이 맞을까.]렉바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입을 다문 채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아이덴 동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출입 금지’라 적힌 테이프가 막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학생들은 전부 하교했고, 교사들은 모두 회의실에 있으므로 목격자는 없다. CCTV도 이쪽 길목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나는 숨을 죽인 채, 테이프를 넘어 아이덴 동산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아직 해가 질 무렵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동산은 어두컴컴했다. 떠다니는 마기 때문이었다.
마기는 안개가 되어 바람을 타고 동산을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란브와.”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란브와를 불러냈다. 손끝을 땅에 가져다 댄 채, 그녀의 권능을 사용했다.
곧 눈앞이 깜깜해진다. 일말의 빛조차 새어 들지 않는 깊은 어둠. 마치 장막을 친 것만 같다.
이윽고 장막은 걷히고, 눈앞에 새로운 시야가 찾아 든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시야.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 보는 세상이다.
나는 지금 아이덴 동산에 있는 수많은 식물들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오래는 하지 말아요. 부담이 크니까.]그란브와가 경고했다. 권능을 단순히 사용하는 게 아니라 활용하는 경지였으니 부담이 큰 게 당연했다.
허나 그 정도 리스크는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시야를 풀에서 꽃으로, 꽃에서 나무로 옮겨 가며 아이덴 동산의 상황을 파악했다.
대충 동산의 절반 정도가 마기에 잠식된 것 같았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나는 시야를 지하로 옮겼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본다.
아이덴 동산의 깊은 지하에 묻힌 정체불명의 ‘상자’. 사람 다섯 정도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상자다.
의식을 집중하여 상자의 외형을 살폈다. 상자 주변으로, 빛나는 기름 같은 게 덕지덕지…….
“크훕, 아. 아이고.”
그 순간, 의식이 끊기고 창자가 뒤엉키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오래 하지 말라니까!]“아니, 그렇게 오래 안 했어요…….”
나는 괜히 의기소침하여 대답했다.
권능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부작용이 온 것은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이유로 권능이 ‘강제로’ 끊긴 것이었다.
원인은 아마 상자 주변에 덕지덕지 칠해져 있던 그 빛나는 기름인 듯한데.
사실 너무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정확히 뭐가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지끈거리는 통증이 아직도 아랫배에 남아 있었다.
[뭘 봤지?]렉바가 물었다. 나는 숨을 골라가며 억지로 통증을 눌렀다. 몇 분 동안 계속 주저앉은 채 숨만 골랐던 것 같다.
통증이 그나마 가라앉았을 무렵 나는 입을 열었다.
“동산 밑에 이상한 게 파묻혀 있던데요.”
[이상한 거라고만 하면 어떻게 아나.]“상자요. 뭔지는 몰라요. 죽을 뻔했네, 어후.”
[그게 사탄교도들의 목적인가?]“그것도 몰라요. 얼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지금까지는 사탄교도가 일을 저지르면, 뒤늦게 그것을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사탄교도의 행동을 예측하여 대비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기에.
사탄교도 사건의 대부분은 아이덴 동산 근처에서 일어났다.
목적하는 바가 아이덴 동산에 있거나, 적어도 아이덴 동산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내가 하예진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이덴 동산으로 찾아온 것도 그들의 목적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목적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차후 행동을 예측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근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요.”
[뭐든 그렇지.]아이덴 동산 깊숙이 웬 상자가 파묻혀 있다는 사실은 알아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불명. 상자 표면에 덕지덕지 발라져 있던 기름의 정체도 불명. 심지어는 저 상자가 사탄교도의 목적이라는 것도 불명이다.
사실상 알아낸 게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국 사탄교도의 목적은 알아내지 못했고, 기껏 알아낸 정보도 죄다 불명확한 것뿐이었으니까.
[아직 첫걸음이다. 그리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거였으면 진작에 알았겠지.]“그렇긴 하네요.”
[슬슬 나가라. 아무리 미량이라고 한들, 마기는 건강에 좋지 않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뒤 동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가 산봉우리에 걸쳐 차츰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밝았던 하늘이 지금은 꽤 어두웠다.
나는 들어왔던 길 그대로 동산을 나왔다.
아까 피를 토한 탓인지 걸음이 몹시 무거웠다. 발이 푹푹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손발은 차고, 기운도 없고, 몸도 으슬으슬 추웠다.
얼른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다. 가능하면 잠도 좀 자고.
“……어?”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