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나는 부두 마력을 사출하여, 허공에 주술진을 그리며 물었다.
아까만 해도 이리저리 어그러져 엉망이었던 것이, 지금은 흠결 없이 완벽하게 잘 그려졌다. 멍했던 정신은 어느덧 또렷해졌다.
[자세히 설명할 것도 없다. 너는 이미 소도진과 같은 재주를 은연중에 사용하고 있었으니.]렉바가 말했다. 말투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다. 이렇다 할 감정이라는 게 없는 평평한 목소리.
“그러니까 그걸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거예요.”
[이쯤 말하면 감이 올 때도 됐을 텐데. 네놈은 하급 복원 주술을 사용할 때, 굳이 주술진을 그리나?]이마를 탁 쳤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하급 복원 주술을 사용할 때는 주술진을 그리지 않는다. 굳이 주술진을 그리지 않아도 주술을 발동시키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나.]마침 아이덴 동산에서 산불을 피해 도망치던 중 풀잎에 베인 탓에, 발목에 잔상처가 나 있었다. 나는 하급 복원 주술을 사용했다.
손끝에 집중하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안개가 솟아올랐다. 안개는 내 발목에 난 잔상처를 향해 스멀스멀 흘렀다. 상처는 안개와 만나 말끔히 사라졌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는 것도 같다.
[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는 성전 이후 하급 복원 주술을 자주 사용했지.]“뭐…… 맞죠.”
[그래. 그때의 반복 훈련을 통해 주술을 체득한 거다.]잘 이해는 안 됐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를 못 했으면 그렇다고 말해라.]“그렇습니다.”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마. 먼저, 주술의 시전은 세 개의 과정을 거쳐 이뤄진다.]렉바가 설명을 이었다.
주술을 시전하기 위해선 세 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 부두 마력을 사출한다. 둘째, 부두 마력으로 주술진을 그린다. 셋째, 주술진의 표적을 정하고 이를 발동시킨다.
순서대로 ‘사출’, ‘구현’, ‘발동’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명칭은 누가 지었어요? 좀 구리네.”
[네 아비가.]“다시 생각해 보니 막 그렇게 구린 것 같지는 않네요. 어, 직관적이기도 하고.”
[계속 설명하지. 주술을 계속 사용하여 체득의 경지에 이르면, ‘사출’과 ‘구현’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또한, 주술에는 체득의 경지라는 것이 있다.
스스로에게 주술을 거는 것을 반복하여, 주술의 안개가 몸에 ‘스며드는’ 경지에 이르면, 그것을 체득이라 부른다. 체득을 하면 구태여 주술진을 그리지 않아도 주술을 발동시킬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납득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안개가 몸에 스며드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는 차치하고, 아무리 체득을 하였다고 한들 ‘사출’과 ‘구현’의 단계를 건너뛴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지. 또한, 그 원리는 무엇인지.
[나도 몰라.]이어진 렉바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토하고 말았다.
“몰라요?”
[이건 내가 아니라, 네 아비가 알아낸 것이다. 원리에 대해서는 나도 알 수 없지.]렉바가 다시금 설명을 이었다.
아버지는 평생토록 부두 마력을 연구하는 데에 전력하였고, 렉바는 그것을 어깨 너머로 보았을 뿐이다. 때문에 연구 성과는 어렴풋이 알지만, 그 원리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아버지의 연구 기록, 즉 논문과 같은 것은 어디 있냐고 물었으나, 그것도 마찬가지로 모른다고 했다.
[어딘가에 있긴 있을 거다. 다만 어디인지 모를 뿐이야.]“짐작 가는 데도 없어요?”
[아마 유품 중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렉바가 말했다. 나는 흘깃 서랍장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버지가 남긴 유품이 있었다.
하나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자그마한 나무 상자. 다른 하나는 심플한 디자인의 유골 반지.
유품은 이 두 개가 전부다. 연구 기록 따위는 없다.
[저 상자 안에 들어 있을 수도 있지.]“그건 아닐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남긴 유품 상자는 그 크기가 너무 작았다. 적어도 연구 기록을 담기에는 턱없이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연구 기록을 꼭 종이에 남겼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나.]“그거 말고 기록 방법이 뭐가 있어요?”
렉바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로서는 영 감이 잡히질 않는 소리였다.
연구 내용을 기록할 데가 종이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았다.
“USB 같은 데다가 저장했나.”
[그럴 수도 있겠군.]“근데 아버지는 컴맹이셨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군.]렉바는 내 말에 동의만 할 뿐, 딱히 도움이 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단념하고 상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돌려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상자를 열어 내용물이 뭔지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상자는 성인이 되면 열어봐.”
아버지가 남긴 유언.
죽기 일주일 전, 죽음을 예감하셨는지 상자를 건네면서 하신 말이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다만 유언이기에 지킬 뿐.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겠지. 지금은 내가 말한 것에만 전념해라.]“체득이 뭐 어쩌고, 그거요?”
[그래. 일단은 복원을 제외한 다른 주술에 적용해 보고, 깨닫는 바가 있으면 축복에도 활용해 보아라.]나는 묵묵히 환혹 주술진을 그렸다. ‘혼절’, ‘악몽’, ‘도취’ 등등. 하급부터 최상급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강도를 막론하고 전부. 그리고 그것을 나 자신에게 사용했다.
안개가 몸을 휘감고, 순간 현기증이 일듯 눈앞이 빙그르르 돌았다.
허나 그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이따금 두통과 현기증이 일기는 했지만, 기절하거나 악몽을 꾸거나 쾌락에 절어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주술이 발동은 되는데, 그게 통하지를 않았다.
[주술의 위력보다 저항이 강하구나.]개개인마다 주술 저항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최상급 환혹마저 내게는 효과가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저항력이 너무 센 건가요? 아니면 내가 주술을 잘 못 다루는 건가.”
[네놈은 남들보다 저항력이 월등히 강해. 교주니까. 그러나 선대 교주만큼 주술을 잘 다루지는 못한다. 그러니, 둘 다 맞는 말이다.]“저도 나름 잘 다루는 편 아닌가요?”
[그래. 하지만 네 아비에 비하면 한참 부족해.]렉바가 말했다.
아버지는 나를 가르칠 때를 제외하면 내 앞에서 주술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버지가 얼마나 주술을 잘 다뤘는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죽었으니까.
나는 의문을 접고 다시금 주술진을 그렸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그것을 반복했으나, ‘체득의 경지’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아쉽지는 않았다. 하루 만에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었다.
앞으로 꾸준히 노력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 믿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
근데 다리가 저려서 다시 앉았다.
[두 시간을 앉아만 있었으니 당연히 다리가 저리겠지.]“두 시간?”
그 말에 깜짝 놀라 창밖을 보니 어느덧 하늘이 깜깜했다.
아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배가 엄청나게 고팠다. 허기조차 잊을 만큼 집중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집중력이 이렇게 좋은 줄 처음 알았다.
[슬슬 저녁을 먹어라. 성장기에 영양 섭취는 중요해.]“이미 성장기는 끝난 것 같은데.”
[말대꾸하지 마라.]역시 꼰대,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전기가 흐르듯 저리던 다리가 어느덧 제 감각을 되찾았기에, 나는 자리에서 훌쩍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먹을 만한 게 있나 살피려는 셈이었으나, 놀랍게도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유통기한 지난 우유, 상해서 검게 변해버린 달걀, 곰팡이 핀 빵이 전부.
찬장을 뒤져봤지만, 기가 막히게도 마침 쌀도 다 떨어진 참이었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게…….
“고양이 사료가 있네요.”
[처지가 뒤바뀐 꼴이군. 사람 밥은 없고 가축 밥은 있고.]“그러게요.”
드르륵!
나는 사료 봉투를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값싸고 허름한 빌라지만 나름 테라스가 있었다.
타일 바닥은 색이 누렇게 바랜 데다가, 사이사이 곰팡이가 피어 테라스라 부르기도 부끄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테라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냐아앙.
사료 봉투를 흔들며 소리를 내자,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를 타고 훌쩍 테라스로 올라왔다. 그릇에 사료를 담아 주자,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받아먹었다.
아작아작.
맛있게도 먹네.
손을 가까이 대자, 쓰다듬어 달라고 아양을 부리듯 고양이가 머리를 들이밀었다.
[귀엽구나.]“그러네요.”
이런저런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심경도 복잡한 요즘,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이 고양이다.
이름은 지어주지 않았다. 키울 것도 아닌데 괜히 정들어서 좋을 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고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밥을 다 먹고 혀를 날름거리는 고양이를 마냥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는 배를 까 뒤집고 뒹굴며 몸을 쭉 폈다. 눈은 이미 반쯤 게슴츠레하게 감았다.
보고 있으니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이미 정든 것 같은데.]“귀여우니까.”
아무리 정을 주지 않겠다 다짐한들,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처럼 사건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피곤한 날이면, 나도 모르게 이 자그마한 길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사람은 속내를 짐작할 수 없지만, 길고양이는 속내를 짐작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사람보다 동물에 더 의지하게 되는 것 같다. 동물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으니까.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에도 지쳤을 무렵, 나는 일어났다. 고양이는 놀란 듯 훌쩍 테라스 담을 넘어, 나무를 타고 땅으로 내려갔다.
고양이의 녹색 안광이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곧 안광은 사라졌다.
[고양이들은 귀엽긴 한데 싸가지가 없군.]“그게 매력이죠.”
나는 불을 끄고 자취방을 나왔다.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리가 막 후들후들 떨렸다.
배고픈 탓도 있고, 아까 주술진을 마구 그려댄 탓도 있고, 엊그제 하체 운동을 한 탓도 있었다.
“그야말로 삼위일체…….”
[헛소리 말고 장이나 보러 가지. 살 건 내가 말해주마.]“좋네요.”
렉바가 있으면 굳이 장 보러 갈 때 메모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필요한 것만 척척 골라서 내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 * *
[파가 없던데. 마늘도 없고.] [과일은 사두면 좋다. 언젠가는 먹게 되어 있으니.] [닭 가슴살을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네 식단에는 전체적으로 단백질이 부족해.]나는 렉바가 짚어주는 대로 식재료들을 집어 쇼핑 카트에 담았다. 혼자 먹기에는 턱없이 많은 양이었지만, 애초에 혼자 먹을 게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내가 마트에 온 것은 내가 먹을 식재료를 사기 위함도 있지만, 정윤아에게 먹일 것을 사기 위함도 있었으니.
이것저것 다 담다 보니 어느덧 쇼핑 카트가 가득 차 있었다.
얼핏 봐도 가격이 상당할 듯싶었으나, 다행히 내게는 돈이 많았다. 삼촌이 1차 자금 세탁을 마치고 정산된 돈의 일부를 내게 보내준 덕분이었다.
계산을 전부 마치고 마트를 나왔다. 양손에 든 장바구니가 어처구니없이 무거웠다.
[보수의 권능을 사용하는 건?]“에이.”
렉바가 권능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고작 장바구니 들자고 권능을 사용하는 건 낭비였다. 제물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사실 무거워서 어깨가 빠질 것 같기는 했지만, 이것도 나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들 만은 했다.
“아.”
그때, 마주 걸어오던 누군가 나를 보고 탄식했다. 검은 후드에 검은 마스크, 검은 슬랙스. 심지어 슬리퍼까지 검은색이다. 온통 검정색.
나는 흠칫 긴장하여, 눈을 가늘게 좁힌 채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낯이 익다. 그러나 동시에 낯설다. 어디선가 분명 본 듯한데, 또 아예 처음 보는 사람 같기도 했다.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는, 아니 그녀는 곧 후드를 푹 눌러쓰고 얼굴을 가렸다.
타다다다다.
그러곤 뒤를 돌아 종종걸음으로 내게서 도망치려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쫓았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왠지 쫓아야 할 것 같았다.
전에 본 사탄교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라면 굳이 나를 보고 도망칠 이유가 없다.
다만 추격전을 벌이기에는 양손에 든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웠다.
“보, 어?”
철퍽.
하여 보수의 권능을 사용하려던 차, 그녀가 미끄러져 철퍼덕 넘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한참 넘어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한 치 미동도 없었다. 팔은 축 늘어져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겁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죽었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