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51
제51화
사흘 전, 정인아는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다. 어제 산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옷, 그리고 잡다한 선물들이 잘 있나 확인했다.
물건에 발이 달린 게 아니니 어디 도망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좋아.”
다행히 전부 잘 있었다. 정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했다. 그녀는 요즘 들어 혼잣말이 부쩍 늘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녀는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곧장 집을 나선 뒤,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서울동부, 아.”
“서울동부성기사단이요?”
“잠시만요.”
행선지를 말하려던 정인아는 문득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했다. 지난 주말 동안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은 문자였지만,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서울동부성기사단 실종수사팀…… 실종자 정윤아 학생을 보호 중에 있으니, 3/22(월) 출석을……]실종수사팀이 본관 몇 층에 있고, 수사관이 누구고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인아는 오직 ‘서울동부성기사단’과 ‘3/22(월)’이라는 글자에만 주목했다.
3월 22일 월요일. 오늘이 맞다. 서울동부성기사단도 맞다. 정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울동부성기사단으로 가주세요.”
택시가 출발했다. 차내에는 담배 냄새가 미약하게 감돌고 있었고, 그것을 방향제 냄새가 압도하고 있었다.
담배 냄새든 방향제 냄새든, 둘 다 정인아가 그리 좋아하는 냄새는 아니었다. 괜히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아서, 정인아는 차창을 열었다.
바람이 곁을 빠르게 스치며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났다. 차창 너머로 흘러가는 풍경은 너무나 빨라서 눈으로 쫓을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도로는 텅 비어 있었고, 이따금 버스나 택시만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
세상이 너무나 한적해서, 마치 아무도 없는 빈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풍경들이 괜스레 낯설고, 그래서 더욱 마음이 설렜다.
“여기 세워주세요.”
목적지에는 금방 도착했다. 정인아는 택시에서 내린 뒤 잠시 심호흡을 했다. 숨이 막혔고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차내에 가득하던 독한 방향제 냄새가 몸에 배어버린 것 같아, 괜히 몸을 흔들어 냄새를 털어내기도 했다. 물론 그런다고 냄새가 털어지지는 않았다.
서울동부성기사단 건물은 으리으리하게 컸다. 물론 피렌체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보아온 성기사단 중에는 제일 큰 것 같았다.
정인아는 침을 꿀꺽 삼키며 건물 내부로 향했다.
“무슨 용무로 오셨어요?”
그녀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다소 삐딱한 인상의 남자 성기사였다. 인상과 마찬가지로 말투도 삐딱했다. 세상만사가 전부 귀찮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 예전에 몇 번 왔는데요. 동생이 실종돼서, 근데 이번에 찾았다고. 주말에 전화가 와서…….”
정인아가 휴대폰을 들어 문자를 보여주었다. 긴장을 한 탓인지, 기대를 한 탓인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기껏 건넨 말은 고동 소리에 맞춰 뚝뚝 끊겼다. 머리가 멍했고, 그래서인지 잠깐 언어 능력이 퇴화해 버린 것 같았다.
“아, 그 학생이구나. 저기 앉아서 잠깐 대기하고 있어요.”
성기사가 무신경하게 말했다.
정인아는 잠자코 앉아 기다렸다. 지나간 시간은 고작 몇 분이었으나, 그녀에게는 마치 몇 시간이나 며칠처럼 느껴졌다.
“정인아 학생 맞나요?”
“네? 아, 네.”
“본인 확인을 위한 신분증을─”
“네, 가져왔어요. 여기”
문자에 신분증을 지참해 달라고 적혀 있었기에, 정인아는 학생증을 준비해 갔다.
성기사는 한껏 찌푸린 눈으로 신분증을 면밀히 검토했다. 그 시간마저 정인아에게는 억겁이나 다름없이 더디게 흘렀다.
“네, 따라오세요.”
성기사가 정인아에게 학생증을 돌려주며, 복도 쪽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정인아는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랐다.
복도는 삭막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고, 군데군데 페인트칠이 벗겨진 데가 있어 음산한 분위기마저 풍겼다. 공기는 건조했다. 정인아는 기침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앞서 걷던 성기사의 걸음이 문 앞에서 멈췄다. 정인아는 문패에 걸린 글귀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왜, 취조실로……?”
눈동자가 동요로 떨리고 있었다.
“아, 내빈실에 사람이 와 계셔서, 부득이하게─”
내빈실을 누가 사용하고 있어서, 공교롭게 취조실을 사용하게 됐다. 조금 삭막해도 양해 부탁한다. 그따위의 말이었다.
조금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정인아는 애써 이해했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었다. 바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이런저런 선물과 함께 파티를 열 예정이었다. 그리 생각하면 내빈실이나 취조실이나 별 상관이 없었다.
끼이이익─
다소 스산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취조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설렘과 기대가 이내 터질 듯이 부풀었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동생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맹렬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 눈가가 떨렸고 목이 멨다.
터벅, 터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동 소리가 점점 커졌다.
“동생분 맞나요?”
성기사가 취조실 구석 의자에 앉은 아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팔다리는 앙상하게 말랐고, 머리는 칠흑처럼 검었다.
“……잠시, 만요. 얼굴을 봐야.”
아이가 고개를 훌쩍 들었다.
눈동자는 머리칼과 마찬가지로 칠흑처럼 검었으며, 초점이 없어 퀭했다. 볼이 홀쭉하게 마른 탓에, 각진 턱과 튀어나온 광대가 도드라져 보였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 긴 시간동안, 얼굴형이 바뀔 수도 있는 거고 머리와 눈동자 색이 바뀔 수도 있다. 입술 아래 있던 점이 없어질 수도 있고, 그 점이 왼뺨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려 애를 쓰며,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정인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지기만 했다.
“동, 생 아니. 아니에요. 뭔가 착오가, 네. 착오인 것 같아요. 잘못 데려오신 것 같아요.”
지금 눈앞에 있는 아이는 결코 동생이 아니었다.
윤아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 닮은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성기사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류를 뒤적였다.
“착오……는 없는 것 같은데, 음. 죄송한데 다시 한 번만 봐주시면─”
“아니라구요. 윤아가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만 더, 검토를, 아.”
성기사가 흘깃 정인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격의 눈물이었을 그것은 절망의 눈물로 단숨에 뒤바뀌어 있었다. 터질 듯 부풀었던 설렘과 기대는, 기어코 터져 산산이 조각났다.
깨진 조각들이 그녀를 난도질했다.
“아니라고. 윤아 얼굴을 내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아니라고 하는데…….”
“그, 조금만 진정하시고.”
성기사가 곤란하다는 듯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취조실을 나갔다. 그리고 다른 성기사 하나를 더 데려왔다.
두 성기사는 정인아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그 어떤 말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마친 두 성기사가 당혹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정인아를 바라보았다.
“아이 씨, 왜 아니라는 거야……. 저기 학생. 아닌 거 확실해요? 확실히 본 거 맞아요?”
“…….”
뒤늦게 들어온 성기사가 적반하장으로 물었다.
정인아는 붉어진 눈시울로 한참 성기사를 바라보았다. 성기사는 이 상황을 그저 귀찮게만 여기는 듯했다.
동생과 만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자신을 떠올렸다. 설렘에 잠 못 이루던 어젯밤을 곱씹었다.
너무 멍청하고 비참해서 숨이 막혔다.
“대답을 안 하시네. 확실히 아닌 거 맞─”
텁.
눈시울을 붉힌 채 한참 성기사를 바라보고 있던 정인아가, 대뜸 그의 멱살을 잡았다. 성기사는 당황한 듯 고개를 뒤로 쭉 뺐다.
“이, 이거 왜 이래. 안 놔? 아니 이게, 놓으라고─!”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애초에 수사를 똑바로 했으면……!”
그렇게 말하는 정인아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툭 건들면 터질 듯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성기사는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확 구기며, 제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정인아의 손목을 쳐냈다.
“아니면 아닌 거지, 뭔 씨X 멱살을……. 야! 이거 데려가.”
“아, 예. 그, 정인아 학생? 따라오세요.”
성기사가 옆에 있던 후임 성기사에게 지시했다.
정인아는 그에게 끌려가듯 어딘가로 향했다. 걸음에 힘이 없었다. 걸음만이 아니라 그냥 몸 전체에 힘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급류에 휩쓸리듯 그렇게 걸었다.
도착한 곳은 상담실이었다. 정인아는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고, 마주 앉은 성기사가 뭐라 뭐라 말을 건넸다. 그녀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삐이이…….
건조하고 마른 이명만이 귓가에 맴돌았다. 들은 체 만 체하는 정인아를 앞에 두고, 성기사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요즘 사이비 종교 때문에 자발적 실종이 많아져서, 실종 사건은 보통 6개월 내로 수사를 끝내요. 저희가 지금 한 8개월 수사했는데 못 찾았다는 건, 아무래도─”
요약하자면, 성기사단 측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했다.
‘부두재림교’에서 정윤아를 납치했다는 증거도 없고, 정윤아가 자발적으로 입교하였을 가능성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하여 이 이상 수사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이야기였다.
정인아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가로젓지도 않고 그냥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말을 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녀는 성기사단을 나와, 택시를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잤다.
“아…….”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8시였다. 어제 잠이 든 것이 오후 2시였으니, 18시간을 내리 잠만 잔 셈이었다.
머리가 아프고, 일어날 수조차 없이 어지러웠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턱이 뻐근하게 아팠다. 자는 내내 이를 갈아댄 모양이었다.
“아, 선생님. 네. 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네에.”
지금 준비해서 학교를 가봐야 지각이었기에, 그냥 병원을 가고 결석을 하기로 했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빈속은 쓰리면서 동시에 메스꺼웠다. 그녀는 쓰러지듯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삐삐삐삐─! 삐삐삐삐─!
그러다 들려온 날카로운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정인아는 쓰린 속을 가다듬고, 잠긴 목을 푼 뒤 전화를 받았다.
“응. 엄마.”
– 학교니?
“오늘 아파서 좀 쉬려고. 속이, 좀.”
– 그래? 많이 아파? 병원은 가봤구?
“아니, 아니. 이따가…….”
정인아는 시계를 봤다. 4시였다. 더 늦기 전에 얼른 출발해야 할 듯했다.
“음. 지금 가려고.”
– 그래. 약 받아서 오고, 어제 성기사단은 가봤니? 윤아는 잘 있던?
“아…… 어제, 그거. 어제 말고, 오늘…… 내일. 내일 오라고 그러던데.”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 마침 잘됐네. 내일 그쪽으로 올라가려고 했거든. 요즘 일이 바빠서, 우리 인아 얼굴도 많이 못 봤고 하니까…….
“어? 아니 괜찮아. 바쁘면 안 와도 되는데.”
– 바빠도 우리 인아랑 윤아 얼굴은 봐야지. 기사단에서는 몇 시쯤 오라던?
“어……. 2시인가, 3시인가. 근데 엄마, 너무 기대하지 마요. 기사단에서 그거 아닐 수도 있대. 윤아 아닐 수도 있대. 응.”
목소리가 확연히 떨리고 있었다.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정인아는 심장이 굳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눈물은 애써 참았다.
– 뭐?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맞는 거지. 관할 단이 어디야? 서울동부?
“몰라. 기억 안 나요. 내일 가보고 맞으면 내가 다시 전화할게.”
– 너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래, 그럼 전화 주면 그때 날 잡고 올라갈게. 오늘 병원 꼭 가고.
“응. 알……겠어. 병원은 지금 갈게.”
정인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눈앞이 새까맣게 칠해졌다. 위액이 울컥 역류했고, 식은땀이 흘러 머리카락에 들러붙었다. 귀가 먹먹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음도 떨렸다.
– 인아야.
나갈 준비를 하던 정인아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엄마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네, 왜요?”
– 엄마, 아빠 보고 싶으면 말해. 금방 그리로 갈 테니까. 무슨 일 생기면 다 말하고. 알겠지?
“……내가 애도 아니고~ 알겠어. 근데 진짜 아무 일도 없어. 어차피 내일 윤아도 볼 텐데 뭐. 아무튼 끊을게요. 나 얼른 병원 가야겠다.”
정인아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목이 타서,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토해냈다.
창문을 타고 넘어온 바람은 분명 따스한 봄바람이었으나, 느끼기에는 겨울바람처럼 차가웠다.
정인아는 옷을 세 겹 가까이 껴입고 집을 나섰다. 그럼에도 추웠다. 기온이 아니라 체온이 낮은 것 같았다.
병원에서 스트레스성 위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오늘은 금식하고, 내일부터는 죽이나 미음 같은 연식(軟食)이나 유동식을 먹으라고 했다. 하급 치유진으로 통증을 가라앉혀 주었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통증만 가라앉은 거니까, 막 뭐 먹으면 안 돼요. 재발할 수도 있으니, 대략 3일간은 절대 안정 취하시고─”
치유진은 외과 치료에는 효과적이었으나, 내과 치료에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하급 치유진이어서 그런지, 통증도 제대로 가라앉은 것 같지가 않았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나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속이 쓰리고 아팠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일어나 물을 마셨다가 토해내기를 반복했다.
죽을 사 오는 것을 깜빡해서, 직접 끓여 먹어봤는데 그것도 토했다. 속이 안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맛이 없었다.
“선생님, 저 오늘도─”
“정말 죄송한데 오늘도 상태가 안 좋아서─”
하루, 그리고 이틀을 더 쉬었다.
도선우와 구준혁,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서 몇 통 연락이 왔지만 답장은 하지 않았다.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받기가 싫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고, 밥은 거의 먹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죽을 끓여 먹으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그냥 관뒀다.
정성을 들여 끓여도 어차피 맛도 없을 텐데 굳이 죽을 끓여 먹을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자니 배가 고팠다.
“……음. 사 먹자.”
결국 그녀는 큰맘 먹고 외출을 계획했다. 목표는 마트에 가서 죽을 사 오는 것. 대충 이틀 치를 한 번에 사가지고 올 생각이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오늘 안에 나을 것 같지는 않았고, 적어도 이틀 정도는 죽을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아.”
그렇게 마트로 들어가려던 중, 도선우를 만났다.
무심코 뱉은 탄식에 도선우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눈빛에 의심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정인아는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 도망치려고 했다. 그간 연락을 안 받은 것도 그렇고, 월요일에 싸웠던 것도 있고 해서 괜히 마주치기가 무서웠다.
철퍽.
그리고 넘어졌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쪽팔려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죽은 척을 할까 고민하던 차, 멀찍이 누군가 성큼성큼 다가와 자신의 어깨를 톡톡 쳤다.
“괜찮으세요?”
굳이 얼굴을 볼 필요도 없었다.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 짐작이 가능했으니까.
차라리 이대로 넘어져서 죽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정인아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얼굴이 벌써부터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