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52
제52화
사탄교도는 빠르다. 체구가 무척 크고,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다. 적어도 길바닥에서 넘어질 정도의 몸치는 아니었다. 덩치도 나랑 비슷하다.
그러나 저 앞에 넘어진 여자는 덩치도 나보다 훨씬 작고, 달리기도 느리고, 전체적으로 움직임도 엉성하다.
그제야 사탄교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그냥 지나치기도 뭐해서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뻗었다. 그러나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넘어진 그대로 누워만 있었다.
“저기요?”
재차 불러봐도 대답은 없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쓰러진 여자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떡해, 기절한 거 아니야? 119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드문드문 여자를 걱정하는 음성들이 들려왔다.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숨은 쉬고 있어.]“일어날 수 있어요?”
내가 봐도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쪽팔려서 저러고 누워 있는 것 같은데, 그리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은 모이고 있었고, 몇몇은 진지하게 119를 부를까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그녀도 사태가 심각해질 조짐을 느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탁탁 털었다.
“어, 안 다쳤어요. 괜찮아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녀는 흐트러진 후드를 꾹 눌러쓰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핏 갈색 머리칼이 보였다. 목소리도 어딘가 익숙했다.
사실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귀에 익었을 정도로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정인아?”
“네? 아닌데, 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까보다 목소리가 조금 굵직했다. 들키지 않으려 목소리를 최대한 깐 것 같았다.
저렇게 하면 목소리의 음은 바꿀 수 있겠지만, 타고난 톤을 바꿀 수는 없다. 목소리 톤이 딱 정인아였고, 무심코 나오는 습관도 역시 정인아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장 보러 왔어?”
나는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정확히는 태연한 척이었다.
정인아를 보면 좀비가 되어버린 정윤아가 떠올랐고, 방울 소리와 철창 흔들리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돌덩이를 얹은 듯 가슴 언저리가 묵직했다. 죄책감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그보다 더 무겁고 진득한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표정이나 말투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건 내 주특기였다.
“아, 응. 장 보러. 근데 살 게 없어서 그냥 집으로 갈까…… 생각 중.”
정인아가 후드를 훌쩍 벗고 마스크를 턱으로 내렸다. 계속 나를 모르는 척하거나, 또 도망치려고 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럴 생각은 없는 듯했다.
마스크 너머로 드러난 얼굴은 전체적으로 생기가 없었다. 뺨에는 약간 붉은 기가 감돌고 있었고, 눈은 퀭했으며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뺨도 홀쭉했다.
원래도 말랐지만, 근 이틀간 더 마른 것 같았다.
내가 한동안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인아가 훌쩍 마스크를 올려 얼굴을 가렸다.
뺨에 머물던 홍조가 눈 근처까지 올라왔다. 부끄러운 듯했다.
“뭐야. 왜, 왜 그렇게 봐.”
“그냥. 집 가는 거면 같이 가게.”
어차피 방향도 같고, 이왕 가는 거면 혼자 가는 것보다는 같이 가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와 별개로 할 이야기도 있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그냥 잡다한 것들.
“그럴, 그, 어. 그럴까……?”
그러나 정인아는 그리 탐탁잖은 듯한 눈빛이었다.
그녀 입장에서 나를 불편하게 여기는 건 이해한다. 내색은 안 하지만, 나 역시 그녀를 마냥 편하게 대할 수는 없었으니까.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그래도 내심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머뭇대기만 하는 정인아를 향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싫으면 그냥 따로 가고. 불편하면.”
“어…… 어? 아니 시아, 싫은 거 아니야. 같이 가자.”
정인아가 허둥댔다. 그녀는 오늘따라 말을 횡설수설했다.
눈의 초점은 또렷했지만 이따금 흐릿하게 풀릴 때가 있었다. 혀도 종종 꼬였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동생 때문일 것이다.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가자.”
나는 착잡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말했다. 양손에 든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웠다. 바닥에 폭삭 가라앉아 버리고 싶을 만큼 무거웠다.
* * *
하늘은 지독하게 어두웠다. 구름이 달빛을 가린 까닭이었다. 골목에 드문드문 들어선 가로등 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우리는 그 빛을 쫓아가듯 골목길을 걸었다. 언제 보아도 삭막한 골목이었다.
“…….”
정인아는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표정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기도 했고, 아예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걸음도 무척이나 느렸다.
나는 그녀의 걸음에 맞추어 평소보다 두세 배는 더 느리게 걸었다.
“뭐 사러 왔던 거야?”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정인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과 어색함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정적을 깼다.
이럴 때 항상 먼저 입을 여는 것은 정인아였지만, 이번에는 처지가 바뀌어 있었다.
정인아는 내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마냥 걷기만 했다.
“듣고 있어?”
“어? 아. 어…… 뭐라고 했어?”
“마트에 뭐 사러 왔던 거냐고.”
“아…….”
정인아가 고개를 떨구고 땅을 쳐다보았다. 나도 덩달아 시선을 옮겼다.
땅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으나, 잿빛 아스팔트 바닥은 여전히 검기만 했다.
“그거 사러. 죽…… 죽순.”
“죽순?”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 눈빛이 흔들리고 어깨가 굳었다.
어쨌거나 죽순을 사러 마트에 간 건 아니었고, 아마 죽을 사러 간 게 아닐까 싶다. 뭐 하러 내게 거짓말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응. 죽순.”
“병원에서 죽 먹으래? 위염이야?”
“응. ……어? 아니야. 위염 아니야.”
정인아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눈동자는 여전히 떨리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거짓말이었다. 너무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엉성한 거짓말이지만, 아무튼 본인은 나를 아주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병원에서는 뭐래?”
“……감기? 그리고 나 안 아파.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 부린 거야.”
“밥은.”
“먹었어.”
이것도 거짓말이다.
“어제는 먹었어?”
“당연하지.”
“어제오늘 아무것도 안 먹은 거야?”
“머, 먹었다니까!”
어쩐지 얼굴도 수척하고 팔다리도 앙상하더라니, 이틀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모양이었다.
위염에 걸리면 밥은커녕 물까지 토해버리니, 뭘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도 밥은 먹어야 돼.”
“먹으면 토하는데 어떡하라고……. 아, 아니. 먹었다니까 자꾸!”
“왜 자꾸 거짓말을 할까.”
지그시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휙 돌려 눈을 피했다. 정인아는 정곡을 찔리면 시선을 피하는 버릇이 있었다.
“……너는 뭘 그렇게 바리바리 샀어.”
정인아는 한참 고개를 돌린 채 나를 외면하다, 내 양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보며 입을 열었다.
“먹을 거.”
“다? 이게 다 먹을 거라고?”
“금방 먹어.”
내가 원체 많이 먹는 편이기도 하지만, 정윤아에게 먹일 것까지 생각하면 이 정도는 사둬야 했다.
정인아는 약간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더니, 장바구니로 시선을 옮기며 대뜸 손을 내밀었다.
“하나 줘.”
들어 주겠다는 뜻이었다.
“무거울 텐데.”
“괜찮아. 들 수 있어.”
“못 들겠으면 다시 줘.”
나는 선뜻 그녀에게 장바구니를 건넸다. 정인아는 한참 낑낑대며 걷다가,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바닥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다시 들어 보려고는 하지만, 힘이 부족해서 들 수 없는 듯했다. 장바구니가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무겁다고 했잖아.”
“들, 들 수 있어. 안 무거워.”
“그냥 줘.”
나는 다시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었다.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래도 못 들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걸었다.
내리쬐는 가로등 빛이 엷은 막이 되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 한없이 침묵만 흘렀다.
“성기사단은 가봤어?”
이번에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양손에 든 장바구니가 무거웠고, 떠다니는 공기가 탁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무겁고 질척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무게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기에, 아무 말이나 일단 꺼내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고개를 떨군 정인아의 초점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제야 내가 괜한 말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후회가 됐지만, 그렇다고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봤는데 동생은 없더라. ……차라리 기대라도 안 했으면 나았을 텐데.”
“미안.”
대뜸 사과하자 그녀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마스크를 벗고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웃었다. 힘없이 씁쓸한 미소였다.
“뭐가 미안해. 그냥 내가 설레발친 건데.”
“그래도 그냥.”
“됐어. 넌 무슨 그런 거까지 신경을 쓰냐.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친구끼리.”
정인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오랜만에 웃어서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친구끼리, 라는 말이 너무 이상하게 들렸다.
“친구끼리?”
“그래. 친구끼리. ……친구 아니면 왜, 뭔데.”
정인아가 괜히 짜증을 내듯 말했다. 진짜로 짜증이 난 건 아니다. 그녀가 속내를 숨기려고 하거나, 또는 괜히 어색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나는 말없이 정인아를 쳐다봤다.
그녀를 보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방울과 철창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괴성을 지르는 정윤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죄책감보다 더 진득한 감정이 내 몸을 천천히 삼켰다. 숨이 막혔다.
나는 그녀 앞에만 서면 이렇듯 알 수 없는 감정에 마음이 저리고 쓰렸다. 판관 앞에 선 죄인이나 다름없었다.
정인아가 판관이고, 내가 죄인.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기형적인 관계다.
“친구 맞겠지.”
“그럼! ……맞겠지가 아니고, 맞다구.”
“알겠어, 알겠어.”
은근히 나를 쏘아보듯 하는 정인아를 달랬다. 아까와 같은 침묵이 흘렀지만, 달리 분위기가 어색하지는 않았다.
침묵에도 나름 종류가 있었고, 그 중에는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침묵도 있었다.
멀찍이 정인아의 집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좋은 집이었다. 좁지만 나름 마당도 있고, 심지어 복층이라고 하니까. 저런 집은 얼마나 하려나.
“동생은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녀의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인아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 이내 체념하듯 고개를 떨궜다.
오늘 그녀는 자주 고개를 떨궜다. 머리를 지탱하기에는 목에 힘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죽은 거 아닐까?”
그녀가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벌써 6개월이나 지났고, 연락도 없고, 수사에 진척도…… 없으니까. 죽은 거, 죽었겠지. 기다리는 게 멍청한─”
“살아 있어.”
“어?”
“금방 찾을 거야.”
금방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정인아는 정윤아와 만나게 될 것이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기필코,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부디 그때가 오기 전에 정인아의 마음이 무너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마워.”
그녀가 웃었다. 여전히 힘없이 흐늘거리는 미소였지만, 적어도 씁쓸하지는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까만 해도 멀찍이 보였던 그녀의 집이 벌써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입을 열었다.
“내일은 올 거야?”
“아, 학교? 음…….”
정인아가 자기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가야지. 3일이나 빠져서 안 그래도 진도 밀렸는데.”
“그럼 내일 봐. 들어가서 밥 먹고 좀 쉬고.”
“에이, 내가 무슨 애야? 뭐 그런 걱정─”
덜컹.
철창 흔들리는 소리.
등골에 끼친 소름이 뒷목을 타고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온몸에 솜털이 바짝 곤두선 듯했다. 심장이 내려앉은 채, 건조한 소리를 냈다.
눈앞이 약간 아득해지는 듯해서, 나는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숨을 골랐다. 진정을 되찾았을 즈음 고개를 들었다.
“어, 야. 너 왜 그래.”
잘 보니 정인아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대문지방에 걸려 넘어진 듯했다.
“일어나. 또 계속 그러고 있지 말고.”
이번에도 쪽팔려서 계속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숨은 쉬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인아.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 야. 야!”
소리를 쳐봐도 반응은 없다.
이번에는 진짜 기절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