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55
제55화
“아, 아. 잠깐만. 진짜 뼈 맞음. 아니 아까 봐준다고 그랬─”
팡.
김진서의 주먹이 구준혁의 턱에 쇄도했다. 구준혁은 그 자리에 흘러내리듯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건 아니었지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힘이 풀려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스파링은 김진서의 승리로 끝. 서브미션 없이 오직 타격으로만 얻어낸 승리였다.
“아, 와. 혀 씹을 뻔. 너 이거 살인 미수야.”
“네가 마우스피스 안 하겠다며.”
“어? 그랬나.”
구준혁은 도발을 위해 마우스피스를 착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헤드기어도 쓰지 않았다. 덕분에 더 아프게 맞은 셈이었다.
구준혁은 링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운 채 헛웃음을 흘렸다.
“아 진짜 미치겠네. 실력이 늘지를 않아.”
“늘었어. 전보다는.”
김진서가 주먹에 감은 핸드 랩을 풀며 태연하게 말했다. 구준혁은 그런 김진서를 멍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더 해야 이길 수 있는 거냐. 진짜 까마득하네.”
“3년.”
“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아니다. 15년.”
“15년? 그건 좀. ……아니다. 15년도 부족한가?”
구준혁이 뒷목을 긁적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턱을 직격으로 수십 번이나 맞은 탓에 머리가 핑핑 돌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땀에 젖은 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멀찍이 스파링을 지켜보던 관장이 팔짱을 낀 채 걸어왔다.
“준혁이 괜찮냐? 그냥 헤드기어 끼라니까 참. 새끼 고집 하나는 세가지고.”
“그러게요. 그냥 헤드기어 낄 걸 그랬네. 턱이 막 흔들리는데요.”
“그렇게 맞았으니 턱이 흔들리지. 진서, 너도 스파링 할 때 힘 좀 빼고 해. 애 죽겠어.”
수건으로 얼마 나지도 않은 땀을 닦아내던 김진서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장은 김진서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구준혁은 체육관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인데, 김진서는 그런 그를 가지고 놀다시피 하며 이겼다. 관장은 그런 천재가 자신의 체육관에 등록해 준 것을 감사히 여겼다.
“진서. 곧 대회 하나 있을 건데, 나갈래 말래.”
“무슨 대회요?”
“대회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할래? 순위 들면 수상 실적 넣을 수 있을 건데.”
수상 실적, 이라는 말에 김진서의 눈이 잠깐 빛났다.
“네, 해요.”
“오케이. 그럼 신청해 놓는 걸로 하고.”
관장이 품에서 펜을 꺼내 노트에 뭔가를 끼적였다. 그는 한참 펜을 딱딱거리다 문득 생각난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맞다. 진서, 대회 나가려면 너 그거도 끊어라. 담─”
“아, 관장님.”
“……뭐 아무튼. 건강관리 잘 하라는 거지.”
김진서가 다급히 관장의 말을 끊었다. 관장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말을 넘겼다.
“뭐야, 김진서. 너 담배도 피우냐?”
구준혁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체육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김진서에게 집중되었다.
김진서가 서늘한 눈빛으로 구준혁을 노려보았다.
“안 피워.”
“그럼 아까는 뭐야. 관장님이 뭐 끊으라고 그러지 않았냐?”
“모르겠는데.”
김진서는 여전히 구준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표정에 말투도 건조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화난 것처럼 보였다.
“그래?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죽일 듯이 보냐.”
“스파링 한 번 더 할까?”
김진서가 웃으며 물었다. 구준혁은 그 미소에 겁을 먹고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엄…… 아! 집에 일이 생겨서. 가야겠네요. 스파링은 다음 기회에~”
구준혁은 그대로 도망치듯 체육관을 나가 버렸다.
김진서는 곧바로 운동을 재개했다. 줄넘기를 하고, 섀도복싱을 하고, 샌드백과 미트를 쳤다.
몇몇 회원들이 그녀에게 스파링을 신청했지만, 전부 1라운드를 넘기지 못하고 실신해 버렸다. 어느 누구도 김진서의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그녀는 장장 4시간 가까이 운동을 한 뒤, 씻고 체육관을 나왔다.
체육관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50분정도.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정상이지만, 김진서는 그 길을 굳이 달려서 갔다.
체력 단련을 위해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잡념을 잊기 위해서였다.
“어.”
그러다 익숙한 뒷모습을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도 오직 그의 뒷모습만은 뚜렷이 구분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언제나 어둠 속에서 자신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도선…… 음.”
별생각 없이 그를 부르려던 김진서의 말이 멎었다.
일전에 구준혁에게 들은 바로, 도선우는 빌라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고 했다. 헌데 지금 그가 나온 집은 빌라가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친구 집에서 놀다가 나온 건가. 아니면 친척 집? 여러 추측이 오갔지만, 어느 무엇도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뭐했다. 자칫 잘못 말을 꺼냈다가는 미행을 했다고 착각할지도 모르니.
“…….”
그러는 동안 도선우는 어느덧 멀어졌다. 이제 와 잡기도 뭐했다. 김진서는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더 달렸을 무렵, 숨이 차서 가슴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예전에는 30분을 내리 뛰어도 전혀 힘들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체력이 안 좋아졌다. 다른 건 몰라도 심폐 지구력은 확실히 안 좋아진 것 같았다.
타각.
몸을 굽힌 채 숨을 고르고 있으니, 안주머니에 넣어둔 담뱃갑이 떨어졌다. 잠시 그것을 주울까 말까 고민하다, 끝내는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아무리 달려도 한번 붙은 잡념은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숨이 막히고 심장이 덜컥거렸으나, 그럼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자학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어떤 잡념을 떨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달렸는지는, 그녀 자신조차 몰랐다.
* * *
짝.
누군가 내 뺨을 쳤다. 정신이 확 들었다. 벌떡 일어나려고 했으나, 몸 이곳저곳이 쑤시고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힘없는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다시 누웠다.
눈앞에 거한이 나를 멀거니 응시하고 있었다.
“일어났냐. 미친놈아.”
앞뒤 없이 대뜸 욕지거리를 하니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는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다.
시험 삼아 목소리를 내보니 생각보다 목소리는 잘 나왔다. 건조해서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던 입은 어느새 촉촉하게 적셔져 있었다.
거한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야, 너. 무슨 생각으로 들어간 거냐?”
나는 대답하지 않고 일단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병원 침상 위. 어느 병원인지는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불분명했다. 오른팔에 링거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어쩐지 품이 허전했다.
“아, 어. 뭐야. 어디…….”
기껏 챙겼던 유품과 바알의 아가리, 그리고 나팔이 없었다.
안주머니부터 바지 주머니까지 전부 뒤져도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심장이 덜컥거리며 고장 난 태엽 감는 소리를 냈다.
“뭐 찾아. 이거?”
그때, 거한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내가 찾던 유품과 성물들이었다.
돌연 어지럼증이 일고 숨이 가빠졌다. 거한은 대수롭지 않은 양 그것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너 설마 이거 챙기자고 들어간 거─”
타악!
나는 그것을 거한에게서 빼앗아 품에 넣었다. 심장이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열었어요?”
성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품은 결코 남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거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하며 입을 열었다.
“안 열어봤어, 인마. 뭔데 그래?”
“…….”
“말하기 싫으면 말든가. 내 살다 살다 이런 미친놈을 또 보네.”
또, 라는 말이 조금 거슬렸지만 넘어갔다. 다행히 상자를 열어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했으나, 배터리가 나갔는지 켜지질 않았다. 액정 모서리에 살짝 금이 가 있었다.
“지금 몇 시죠?”
거한에게 물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거한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목시계를 살폈다.
“11시 조금 넘었네. 왜, 약속 있냐?”
11시. 정인아의 집을 나왔을 때가 9시 무렵이었으니, 대강 2시간쯤 기절해 있던 셈인가. 화재 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든 것치고는 상당히 빨리 일어난 편이었다.
나는 아픈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섰다. 온몸에 통증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걸을 만은 했다.
자취방이 다 타버렸으니 오늘은 예배당에 가서 자는 편이 낫겠다.
그리 생각하고 걸음을 옮기자, 거한이 팔을 뻗어 나를 막았다.
“어어? 이 미친놈이 그 몸으로 어딜 가려고. 약속 있으면 그냥 캔슬해라. 아직 치료 덜 끝났으니까.”
“괜찮아요.”
“억지 부리지 마. 그 몸으로는 걷기는커녕, 어…… 걸을 수는 있네.”
툭.
나는 링거를 뽑고 병실 밖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아무래도 걷는 속도가 평소보다 확연히 느렸지만, 그렇다고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제단이 없었을 때 보수의 권능을 썼다가 관절이 뒤틀리고, 그란브와의 권능을 썼다가 반나절 동안 피를 토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었다.
“야 인마! 말릴 건 아닌데 이건 받아라.”
한창 걷던 도중 쩌렁쩌렁한 외침이 뒤통수에 닿았다. 거한이 쿵쿵 소리를 내며 내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명함이 들려 있었다.
“너 혹시라도 몸에 뭐 이상 있거나 그러면 버티지 말고 바로 병원 가라.”
“네.”
“새끼, 흘려듣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아프다 싶으면 바로 여기로 연락해. 비용 부담해 줄 테니까.”
나는 명함을 받았다. ‘서울동부성기사단장 한대호’. 직위와 이름 아래에는 번호가 적혀 있다.
디자인은 무척 심플했다. 그저 흰 종이에 검은 글씨, 성기사단 로고가 쓰여 있고 그 외에 꾸밈은 없다.
“근데 그 상자는 뭐냐?”
명함을 보며 한참 전화번호를 머리에 새겨 넣던 중 거한, 한대호 단장이 물었다.
“유, 음.”
유품, 이라고 말하려다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유품이라고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을까. 혹여 괜한 의심을 사게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유? 유, 뭐.”
“어머니 유품입니다.”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을 하며 말했다. 실제로는 아버지의 유품이었지만, 위장 신분을 생각했을 때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하는 편이 자연스러울 듯했다.
유품에 대한 설명을 할 때마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게 비참했다.
“아……. 그래, 가. 아프면 꼭 연락하고.”
한대호는 연민이 서린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 머쓱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그대로 병원을 나왔다.
가로등조차 드문 골목은 어둠이 가득했다. 이따금 의지와 상관없이 무릎이 풀썩 접혀 넘어질 뻔했지만 그냥 버텼다.
찌지직.
나는 한대호가 준 명함을 대충 찢어 바닥에 버렸다.
[기껏 준 건데 왜 찢나.]렉바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차피 연락 안 할 거라서.”
[언젠가 필요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잖나. 저자의 말대로, 정말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는 거고.]“혹시 몰라서 번호는 외우긴 했는데, 이 정도는 그냥 쉬면 나아요.”
[안일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군.]나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걸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