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어, 야! 너 이 새끼 왜 전화가 꺼져 있어. 죽을래?”
“고장 난 건지, 배터리가 나간 건지. 아무튼 그렇게 됐어.”
예배당으로 가자 이진성 삼촌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 뒤를 강지아가 종종 쫓았다.
둘 다 눈은 비몽사몽한데, 옷은 차려입은 채였다. 외출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뭐야. 어디 가게?”
“어디 가긴 뭘 어디 가. 너 괜찮나 확인하려고 금방 나갈 준비 하던 건데.”
“어?”
살짝 당황했다. 삼촌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던 탓이다.
“나는 괜찮은데, 집은 다 탔더라. 괜찮아?”
자취방은 삼촌이 구해준 것이고, 당연하지만 그것도 돈이다. 삼촌이라면 당연히 나보다 집 걱정부터 할 줄 알았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나 싶겠지만, 그런 사람이 바로 삼촌이었다.
“뭔 소리야. 갑자기 집 얘기가 왜 나와? 너만 괜찮으면 됐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데?”
순간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질감이 들었다.
삼촌은 돈을 제외한 다른 가치는 전부 의미가 없는 허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삼촌이 나를 걱정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지만, 감동보다 의심이 먼저 들었다.
뒤에서 안절부절 손을 꼼지락대던 강지아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 괜찮으신가요.”
“네. 멀쩡? 멀쩡한 건 아니고. 그냥 적당히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지만, 병원은…….”
“괜찮아. 안 가도 돼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유품과 성물들을 책상에 던져 놓고, 재킷을 벗어 의자에 대충 걸었다.
짧은 대화조차 나눌 여력이 없을 만큼, 몸도 정신도 피로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자야 할 것 같았다.
삼촌이 가늘게 뜬 눈으로 유품과 성물들을 바라보았다.
“뭐야. 매형 유품? 그그, 성인 되면 열어보라던 그거냐?”
“어. 아까 가져왔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이걸 어떻게 가져왔어?”
“그냥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지.”
삼촌이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불난 집에 들어가서 가지고 나왔다고? 아까? 아니지. 이건 말이 안 되네.”
“왜. 그거 맞는데?”
“맞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깜짝 놀란 얼굴로 입술을 달싹거리던 삼촌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에라이, 미친놈아! 목숨 아까운 줄을 좀 알아, 제발. 이게 지 아빠를 닮았나.”
삼촌이 호통을 치며 뭐라 뭐라 나를 꾸짖었다.
말뜻이 선명하지 않았다. 귀가 막힌 듯 먹먹해서, 삼촌의 말은 들어오지 못하고 전부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나동그라진 말들이 허공을 떠다녔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그것들을 털어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눅눅한 침대에 몸을 누이고 눈을 감았다. 오늘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빠르게 스쳤으나, 어느 하나 기억에 뚜렷이 남는 게 없었다. 전부 꿈에서 일어난 일처럼 흐릿했다.
금방 잠이 왔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강지아 누, 씨.”
“네, 교주님.”
나는 강지아를 불러내어 그녀에게 바알의 아가리를 건넸다. 강지아는 그 자그마한 손바닥에 바알의 아가리를 올려놓은 채,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깜빡 떴다.
“무슨……?”
“저번에 그, 좀비 있잖아요. 짭두교 털 때 데려온.”
“아, 네.”
“제가 관리하려고 하니까 이런저런 문제가 좀 있어서, 혹시 대신 관리를 해줄 수 있나 하고…….”
아무리 좀비가 되었다고 한들 사람은 사람이다. 밥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거고, 청결을 유지하지 않으면 병에 걸린다.
나는 밥을 줄 수는 있지만 정윤아를 씻길 수는 없다. 하여 강지아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 알아들었습니다. 그런 거라면 물론 할 수 있습니다.”
“저번에 보니까 겁이 좀 많으시던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러나 강지아는 겁이 많다. 그녀가 과연 정윤아를 관리할 수 있을지가 마음에 걸렸다.
강지아가 일순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기 드문 표정 변화였다.
“할 수 있습니다.”
“네. 고마워요.”
“그리고 저 겁 많은 거 아닙니다. 그때는 놀라서 그런 겁니다.”
강지아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때 일로 내심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보다 나이는 많은데 어째 하는 짓이 영락없는 어린애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라고 어린애가 아닌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아하. 알겠어요.”
나는 마지못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진짜입니다.”
“네, 알겠다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강지아는 무덤덤하면서도 은근 끈덕진 구석이 있어서, 얼른 자리를 피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몸을 던지듯 침대에 누웠다.
불면증은 생각의 병이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뒤늦은 생각들이 마구 밀려와, 잠에 들지 못하도록 나를 괴롭히는 짓궂은 병.
그러나, 오늘은 그러한 생각조차 하기 버거울 만큼 피곤했다. 눈을 감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마치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 * *
간만에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삼촌은 어느새 일어나, 늘 있던 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인터넷 뉴스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엄청 빨리 일어나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삼촌이 고개를 들어 흘깃 나를 봤다.
“나이 들면 잠이 주니까.”
“그런 말 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잖아.”
“음, 그건 그러네. 근데 원래 내가 잠이 적잖아.”
삼촌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는지 빙긋 웃으며 보던 뉴스를 마저 봤다. 옆에서 보니, 어제 있었던 화재에 대한 보도인 듯했다. 나는 옆에서 그것을 같이 읽었다.
정리하자면, 동부기사단이 초동 대처를 잘해준 덕에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몇 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이송됐다.
지원팀이 늦어서 진압에 차질이 생겼지만, 한대호 단장이 기적을 재현하여 물보라를 일으켰고, 그것으로 화인(火因)을 제거한 덕에 큰불로 번지지는 않았다.
정작 단장 본인은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본인이 부정하든 말든 정황상 한대호 단장의 공일 가능성이 크므로 대충 그렇게 결론지었다는 모양이다.
“뭐, 인명 피해는 없으니 됐네. 집 탄 건 좀 속이 쓰리긴 한데.”
삼촌이 뉴스를 읽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뉴스 전문을 읽고 이어서 댓글까지 읽었다. 동부기사단을 향한 칭찬으로 가득했고, 지원팀의 무능을 비판하는 내용도 더러 있었다.
대중은 시민들을 멋지게 구해낸 성기사들을 칭찬하는 반면,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고 이런 걸로 대중들을 우매하다 말할 생각도 없으나, 어쩐지 마음이 허전했다.
“학교 가냐? 근데 너 교복은 괜찮냐? 연기 냄새 안 뱄어?”
“빨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래? 음, 알아서 해라.”
삼촌은 화재 보도를 읽다 말고 경제면으로 넘어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집중력으로 뉴스를 읽어 내려갔다.
코인 망했네, 한강 수온이 36.5도로 맞춰지겠네, 혼잣말을 늘어놓는 삼촌을 뒤로하고 마저 준비를 했다.
“음.”
오늘은 넥타이를 성공적으로 잘 맸다. 나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매무새를 정돈하고 머리를 다듬었다.
나가려던 차, 이진성 삼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우야. 그리고 어제 말한 거 진심이다. 몸조심해.”
“어? 갑자기 뭐야.”
대뜸 걱정하듯 말하는 삼촌을 보며,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이질감이 과해서 불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드디어 삼촌이 죽을 때가 됐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삼촌도 성전으로 가족을 잃었기는 나와 마찬가지다. 그나마 남은 혈육인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삼촌을 너무 돈만 밝히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어쩌면 색안경을 끼고 삼촌을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새삼 반성하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어지간해서는 안 죽을 거니까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그건 아는데 그냥 조심하라고. 혹시 모르니까.”
“알겠다니까. 웬일로 삼촌이 걱정을 다 해주네. 돈만 밝히는 줄 알았더니.”
나는 피식 웃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삼촌은 미간을 찌푸린 채 턱을 쓰다듬으며, 다소 진지함이 묻어나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치를 환산하면 집보다 네가 더 크거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아냐.”
“어, 그래.”
나는 무시하고 예배당을 나왔다. 아까 했던 반성은 철회했다.
* * *
어제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몸에 통증은 아직 남아 있었다. 예배당에서 준비를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걸으니 그제야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학교로 갔다.
내가 들어가기 전만 해도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릴 만큼 시끄러웠는데, 내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번엔 또 뭐야.”
왠지 비슷한 상황을 저번에도 겪었던 것 같다. 벌써부터 두통이 밀려왔다.
괜히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자리에 앉자, 멀찍이 정인아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을 헤치고 내 앞자리에 풀썩 앉았다. 어째 표정이 어두웠다.
“야, 너, 너네. 너네 집에 불났다던데. 어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괜찮아? 어제 재난 문자 받고 놀라서 전화했는데, 안 받길래 뭔 일 났나 해서…….”
“괜찮지. 안 괜찮았으면 학교도 못 왔을걸.”
“음. 그렇기는 하네.”
정인아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빨라서 좋았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준혁이 등장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야! 어제 불 또 났던데. 그거 너네 집 맞냐?”
“어.”
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두 번 대답하는 것만큼 피곤한 게 또 없었다.
“괜찮냐? 학교 와도 되는 거야? 멀쩡해 보이기는 하는데.”
“안 괜찮았으면 학교 못 왔지.”
“음. 타당하네.”
구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정인아만큼이나 납득이 빨랐다.
구준혁은 내 앞자리에 앉은 정인아를 보더니, 한층 더 놀란 듯 눈을 다시 치켜떴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기세였다.
“아니, 뭐야! 정인아가 있네? 너 왜 왔냐?”
“왜 왔냐? 왜 안 왔냐고 물어봐야 맞는 거 아니냐?”
“어? 아, 그러네. 뭐 아무튼 뜻만 통하면 됐지.”
“애초에 뜻이 안 통하는데 뭔 개소…… 음.”
한창 언성을 높이려던 정인아가 말을 멈췄다. 정강이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구준혁이 의외라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라. 정인아 왜 이러냐. 그새 고장 났나.”
“고장? 내가 기계도 아니고 뭔…… 아니다. 나 화를 좀 줄이기로 했거든? 협조 좀 해.”
정인아가 구준혁을 은근히 노려보며 강압적으로 말했다. 화를 줄이기로 한 것치고는 다소 공격적인 말투였다.
그래도 아직까지 구준혁의 정강이가 멀쩡한 걸 보면 결심을 하기는 한 것 같았다.
구준혁은 피식 비웃음을 흘리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얼마나 가나 내기하실? 나는 이틀 안에 깨진다에 2만 원 걺.”
“아 진짜, 내가 협조하라고 아까─”
“그럼 나는 오늘 안에 깨진다에 2만 원.”
구준혁을 타박하려던 정인아가 말을 멈추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몹시 억울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너, 너까지. 와, 진짜 너네……!”
그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푸념을 했다. 구준혁은 그런 정인아를 보며 깔깔댔다.
확실히 정인아는 반응이 격해서 놀리는 맛이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놀고 있으니, 하예진이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 좋은 아침~”
하예진이 활기차게 인사를 했고, 시끄럽던 교실은 금방 조용해졌다. 하예진은 곧바로 출석을 부르고 조회를 시작했다.
“어제는 산불이 크게 나서 조기 하교를 시켰죠? 규정대로면 휴교령을 내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곧 시험 기간이고 해서 정상 등교를 하게 됐네요!”
몇몇 학생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험 기간이라는 말에 마음이 착잡해진 듯했다. 나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참 그리고, 아이덴 동산으로는 절대로 접근하면 안 돼요. 아직 이것저것 처리할 게 많아서. 마찬가지로 제1축사도 가면 안 돼요! 절대!”
동산이 마기에 잠식되었다는 정보를 학생들에게 알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학생들 모르게 조용히 처리할 셈이겠지. 피렌체다운 대응이었다.
“자선의 성호 재선출 시험은 다음 주중에 있을 것 같아요. 신청자도 아마 다음 주에 받을 거구요. 준비할 친구들은 준비하시고~ 네. 이만하면 전달 사항은 끝!”
재선출 시험이 다음 주중에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시험 내용에 대해서는 당일까지 비공개.
물론, 시험 내용이 뭐든 나는 지원할 생각이다. 고위 성직자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이거니까.
“아, 도선우 학생은 잠깐 따라 나와요.”
그때 하예진이 나를 불렀다. 말투로 보아 혼내는 건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잘못한 게 없으니 당연했지만, 따라 나오라 그러면 잘못한 게 없어도 괜히 긴장이 됐다.
나는 학생들의 의문 섞인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하예진을 따라 교실을 나갔다. 그리고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읽어보고, 결정해요.”
하예진은 한참 서랍을 뒤적거리다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말투가 사뭇 진지했다.
하예진이 내게 건넨 것은, 웬 서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