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eric Academy's Shaman RAW novel - Chapter 62
제62화
“일부러 그러는 거냐? 나 좆 같으라고?”
여민서의 목소리에 날이 바짝 서 있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 위협적인 말투.
“힘이 다 빠져서.”
그러나 결코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된다. 심리적 우위를 빼앗기는 순간, 기껏 만들어낸 승산은 사라지고 말 테니.
“힘이 빠져? 상대를 봐가면서 구라를 쳐. 진짜 뒈지고 싶냐?”
“그깟 대련 하나 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진짜 예민하네.”
‘그깟 대련 하나’, ‘예민’.
한 단어씩 입에 담을 때마다, 여민서의 눈썹이 흉측하게 뒤틀린다. 심기가 불편한 것을 넘어, 마치 단어 자체를 혐오하는 듯한 반응.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심리를 정확히 엿본 모양이었다.
“……아, 그래. 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힘이 빠질 만도 하네. 맞네.”
여민서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텅 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직후 그녀는 신성력을 사출하여, 빠른 속도로 축복진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을 성유다의 축복진에 던져 넣었다.
성유다의 축복진은 여민서의 축복진과 뒤엉켜 꼬이더니, 이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펑─!
이어지는 폭발음.
성유다의 축복진은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한창 성유다의 축복진을 분석하던 학생들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몇몇은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도망을 쳤다. 경미하지만 부상을 입은 학생도 있는 것 같았다.
“이러면 힘이 좀 나시겠어요?”
여민서가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는 여전히 축복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반면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축복의 빛도, 보수의 권능도.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여민서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머리를 겨냥하지는 않았다. 철퇴로 냅다 머리통을 후리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우직.
그러나 여민서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철퇴를 잡아 부숴버렸을 때, 내가 감히 누굴 봐줄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봐주냐? 얼탱이가 없네, 이런 개같은 새끼가.”
봐준 게 아니라 보수의 권능이 사라져서 힘이 엄청나게 약해졌을 뿐.
그러나 여민서는 내가 자신을 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흰자에 시뻘건 핏줄이 다닥다닥 솟아 있었다. 화가 정말 많이 난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의 주먹이 내 안면에 쇄도한다.
카앙!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녀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내 머리 위를 지나쳐 케이지를 강타했다.
케이지에 주먹 모양 그대로 자국이 남았다. 가공할 만한 힘, 아니 축복이었다.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연이어 공격이 들어온다. 이번에는 주먹이 아니라 무릎 차기.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정통으로 무릎 차기를 맞으면 골절상은 기본. 운 나쁘게 눈이라도 맞았다가는 실명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여민서는 지금, 나를 죽일 생각으로 덤벼들고 있었다.
──!
피할 수 없었다. 타격음은 들리지도 않는다. 맞은 순간 이명이 울리고 눈앞이 까맣게 흐려졌다.
맞은 부위는 코.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을 맞았더라면 그대로 눈알이 터져버렸을 거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엄청나게 아팠다.
코뼈가 부러졌거나, 뒤틀렸거나, 혹은 바스러졌거나. 셋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공격을 두 번이나 맞을 수는 없었다.
나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코를 부여잡은 채, 여민서의 다음 동작을 눈으로 읽었다. 허나, 눈으로 쫓기에 여민서의 공격은 너무 빨랐다.
그녀는 팔꿈치를 들어, 그대로 내 후두부를 내리찍었다. 저건, 맞으면 진짜로 죽는다.
콰직.
신성 훈련장에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정작 쓰러진 것은 내가 아닌 여민서.
의식을 잃은 채 엎어진 여민서의 뒤로, 소도진이 짝다리를 짚은 채 서 있었다. 피곤에 절어 눈매는 축 처졌지만, 여민서를 응시하는 눈빛만은 뚜렷했다.
“앞뒤 안 가리는 건 좋은데, 선은 넘지 마라.”
소도진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지만 이미 기절한 여민서에게는 들리지 않을 경고였다.
너무 빨라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칼등으로 여민서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킨 듯했다.
교사가 학생을 저렇게 패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내가 맞은 건 아니니까.
“여민서 실격, 도선우 승리. 내려가라. 치료 필요하냐?”
소도진이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걱정하는 듯한 말투는 아니었다.
“괜찮습, 어우. 아.”
투둑.
코에서 쏟아져 나온 피가 바닥을 적셨다. 묽은 피가 아니라, 덩어리째로 뜯어져 나오는 피였다.
피를 보니 괜스레 통증이 거세어지는 것 같았다.
“괜찮기는 뭐가. 그러다 코 망가진다.”
“킁, 아.”
“일단 응급 처치 해줄 테니까 병원부터 가라.”
소도진이 신성력을 사출하여 축복진을 그렸다.
아, 축복진이 아니라 치유진이네.
아무튼, 치유진에서 흘러나온 빛이 다가와 내 코를 감쌌다. 그럼에도 통증은 여전했다. 코가 통째로 뜯겨져 나간 것처럼 아팠다.
“한 거 맞죠? 계속 아픈데요.”
“……치유는 내 주전공이 아니야. 잔말 말고 가. 일단 이걸로 지혈하고.”
소도진이 머쓱하다는 듯 말하며 내게 수건을 한 장 건네주었다.
나는 수건을 받아 지혈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인아와 구준혁이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혼란에 빠진 학생들을 소도진이 진정시키고 있었다.
쓰러졌던 여민서가 뒤통수를 부여잡은 채 침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돌 현상으로 폭발했던 성유다의 축복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동되고 있었다.
잘난 듯이 굴던 여민서도 성유다의 축복진을 완전히 부술 수는 없었다. 잠깐 망가뜨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피가 줄줄 쏟아져 나오는 코를 수건으로 틀어막은 채, 성큼성큼 신성 훈련장을 나왔다.
분명 승리했음에도, 어쩐지 막막한 심정이었다.
* * *
나는 병원으로 가지 않고 곧장 예배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이따금 핏덩이가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불쾌했다.
[누굴 탓하겠나. 네가 스스로 자초한 일인데.]“으. 좀”
[왜 그리 무모한 짓을 했지.]“무모한 건 아니, 아. 아프니까 말.”
아프니까 말 좀 그만 걸라는 뜻이다.
렉바는 무모하다고 했지만 마냥 무모한 짓은 아니었다. 나는 여민서의 눈에서 그녀의 속내를 읽었다.
여민서는 ‘증명’에 미쳐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가설, 혹은 능력을 남에게 증명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기권을 해버리면, 대련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다.
여민서는 그토록 증명에 미쳐 있기에, 뒷맛이 씁쓸한 승리는 결코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다고 설마하니 성유다의 축복진을 부숴 버리면서까지 내게 달려들 줄은 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나에게 득이 됐다.
여민서는 돌발 행동으로 실격패를 당했고, 그 결과로 나는 대련에서 승리했으니까.
어쨌거나, 이겼다.
[모든 것이 도박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렉바는 퍽 언짢은 기색이었다.
대답하지 않았다. 말을 할 때마다 코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여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고작 대련에서 이기자고 그만한 출혈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이 또한 맞는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반만 맞는 말이었다.
고작 대련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나름 의미가 있는 싸움이었다. 어찌 됐건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었으니.
또한,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각오해야만 한다. 이번에는 그게 코였을 뿐이다.
엄청나게 아프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하급 복원 주술만으로도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으.”
불현듯 몰려온 통증에, 수건으로 코를 꾹 눌러 피를 막으며 걸었다. 하얗던 수건이 벌써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불편해서 괜히 고개를 떨궜다.
어느덧 예배당에 도착했다. 삼촌은 나간 듯했고, 강지아가 방금 막 일어난 듯 졸린 눈으로 커피를 타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오셨, 어? 코는 왜.”
“학교에서 대련하다 다쳤어요.”
“어째 맨날 다치고 오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요즘 좀 자주 다치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한 뒤, 화장실로 향했다.
피에 젖은 수건은 대충 쓰레기통에 버리고 거울을 봤다. 코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나는 하급 복원 주술로 그것을 치유했다.
“더럽게 아프네.”
치유가 아닌 복원이었기에, 상처는 말끔하게 나았지만 통증은 아직 남아 있었다. 물로 덕지덕지 묻은 피를 닦아내고 거울을 봤다.
“더 못생겨졌나.”
어쩐지 코가 조금 삐뚤어진 것 같았다.
[넌 원래 그렇게 생겼었다.]“진짜요? 충격적인데?”
새삼 내 얼굴에 충격을 느끼며 화장실을 나왔다. 강지아가 커피를 홀짝이며 걱정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진 않으십니까?”
“조금 아프기는 한데 심하진 않아요.”
이 정도는 견딜 만한 고통이었다. 내가 워낙 고통에 둔감한 체질이기도 했고.
나는 강지아를 뒤로하고 찬장을 뒤지며 물건을 찾았다. 분명 여기 어디에 둔 것 같은데, 막상 찾으려고 하니 보이질 않았다.
“그거 어딨어요? 유품이랑 반지.”
“아마 창고…… 아니, 교주님 방 서랍장에 있을 겁니다.”
강지아가 고민하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말했다.
나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다 말고 강지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지아…… 음.”
여전히 호칭이 마땅치 않았다. 강지아가 커피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저번에 말씀드렸지만,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 ‘저기요’라고 하셔도 되구요.”
“그건 너무 딱딱한데. 그냥 누나라고 할까요?”
“교주님께서 편하시다면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네, 그럼 호칭은 그렇게 하고. 아무튼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제 방에 들어오지 말아주세요.”
“무엇 때문인지 여쭤도 되겠, 아.”
강지아가 뒤늦게 깨달은 듯 말끝을 흐렸다. 눈동자가 당황으로 떨리고 있었다. 살짝 얼굴이 붉어진 것도 같다.
강지아는 당황할 때나, 무서워할 때만큼은 표정 변화가 뚜렷했다.
“어,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네.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네? 어차피 신경 안 쓸 거긴 한데…… 일단 알겠어요. 근데 진짜 들어오면 안 돼요.”
나는 강지아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강지아의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랍장을 뒤지자 아버지의 유품인 상자와 반지가 나왔다. 나는 그것을 바닥에 늘어놓은 뒤, 주술을 사용했다.
하급 재현, 의식의 양초.
재현 주술로 만들어낸 양초 불에서는 안개가 흘렀다. 주술의 상징인 보랏빛 안개였다.
양초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불을 껐다. 깊은 어둠 사이, 양초의 보랏빛 불빛과 안개만이 선명했다.
“후우.”
가볍게 숨을 가다듬었다. 처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자주 하던 짓은 아니라 그런지 좀 떨렸다.
나는 양초를 앞에 두고 꿇어앉은 채,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냈다.
“으.”
아프다. 나는 그 피를 양초에 흘려 넣었다.
양초의 빛은 피에 닿아, 점점 탁하고 진한 보랏빛으로 변한다.
나는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죽음과 삶과 부활의 게데, 그 모든 로아의 통치차, 바론 삼디시여, 부두교의 교주가 아뢰기를 원합니다.”
기원(祈願) 의식.
처음으로 로아를 받아들였을 때를 제외하고는 해본 적이 없는 의식이다. 원래는 처음 로아를 받아들일 때를 제외하면 할 필요가 없다.
최초의 기원 의식을 통해 로아를 받아들이고 나면 몸 안에 로아가 깃들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굳이 의식을 거치지 않고서도 로아를 불러낼 수 있으니.
그러나 바론 삼디는 경우가 다르다. 바론 삼디는 내 몸에 깃들지 않고 속세를 떠도는, 이른바 ‘떠돌이 로아’이기 때문이다.
바론 삼디를 만나기 위해선 그가 내 몸에 깃들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기원 의식을 통해 ‘강제로’ 그를 불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놈이 과연 부름에 응해줄지 모르겠군.]렉바가 의뭉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론 삼디는 다른 로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성격이 까탈스럽다.
기원 의식을 통해 강제로 불러낸다고는 했지만, 부름에 응할지는 미지수였다.
애초에 바론 삼디는 ‘강제’라는 단어가 통하는 로아가 아니다.
어둠을 가르는 보라색 안개와 빛. 그 사이 흐르는 적막에서,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를 기다렸다.
“…….”
또각, 또각, 또각.
이윽고, 어둠 사이로 반가운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눈을 뜨지는 않는다. 그저 다가오는 구둣발 소리에 집중한다. 멀찍하게만 느껴지던 인기척은 어느덧 내 코앞에 있다.
바론 삼디의 시선이 나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음을, 나는 눈을 뜨지 않고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나는 문득 등골에 소름이 끼쳐오는 것을 느낀다.
찰나인지 한참인지 모를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입을 연다.
“긴히 간청할 것이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